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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남방정책 특별좌담회] “베트남 투자환경 탁월하지만 올인은 탈피해야”
입력 : 2018.10.01 17:3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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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의 3차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평양 방문에 온 이목이 쏠렸을 때, 매일경제 럭스멘은 현 정부의 외교 정책의 핵심 정책 중 하나인 신남방정책으로 눈을 돌렸다. 남북관계 못지않게 대한민국에 주요한 이슈가 신남방정책이고, 들여다볼 만한 시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에 밀려 아세안에 대한 관심이 뜸해진 이유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신남방정책을 천명한 이후 대한민국의 아세안을 향한 관심은 이보다 더 뜨거울 수 없었다. 새로운 경제 신천지가 나타난 듯했고, 갑자기 대한민국의 모든 기업이 아세안을 입에 올렸다. 공교롭게도 베트남에서 ‘박항서 신드롬’이 불면서 아세안 열기를 더 부채질했다. 하지만 냉정히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아세안에 대한 관심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 90년대 초 중반에도 아세안 열풍은 뜨거웠고, 2010년대에도 잠깐 그랬다. 그리고 현재 이야기되는 내용도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다른 점은 문재인 정부의 아세안 정책에 대한 의지가 역대 어느 때보다 강하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직속으로 아세안 정책 총괄 타워인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를 설립했고, 지난 8월 28일 공식 출범했다.
이 특위에 대한 안팎의 기대는 크다. 왜냐하면 과거와 다른 아세안 정책 추진 모습을 보여줄 것 같다는 기대 때문이다. 이에 매일경제 럭스멘은 창간 9주년을 맞아 신남방정책에 대한 특별좌담회를 열었다. 생산적 논의를 위해 한-아세안 관계 발전을 위해 일선에서 실제 뛰는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다.
특위 산하에 설립된 신남방정책추진단에서 총괄 업무를 맡고 있는 박재경 국장, 민관을 두루 섭렵한 문기봉 아세안비즈니스센터장, 곽성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신남방경제실장, 그리고 설진훈 럭스멘 국장이 좌담회에 참가했다.
이들 4명의 참석자들은 “신남방정책이 아세안서 우리 기업의 활동 반경을 넓혀주는 플랫폼이 돼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공감을 한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우리식 Heart to Heart 정책이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Heart to Heart는 일본이 아세안 진출 초기인 1970년대 현지 반감에 놀라 당시 후쿠다 총리가 경제적 이익 추구보다는 마음을 열고 진정성 있는 행보로 다가가겠다고 내세운 전략을 말한다.
박재경 국장은 “문 대통령이 지난해 밝힌 신남방정책 기조인 3P(Peace, Prosperity, People)에 이미 ‘사람’이 들어가 있다”면서 “우리는 아세안과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호흡하려 하고 있고 이를 정책으로 구현키 위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곽성일 실장은 “문 대통령이 인도를 방문했을 당시 신발을 벗고 사원에 들어간 것이 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며 “그 나라에 대한 존중이 깔려있고 마음을 얻기 위한 행동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세안의 특성상 한 나라에 집중되는 최근 분위기는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공감대를 나타냈다.
문기봉 센터장은 “신남방정책의 실제 추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균형 감각’이라고 본다”면서 “지금처럼 베트남에만 집중하다가는 나머지 아세안 국가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참석자들은 “아세안의 주요 가치 중 하나가 ‘서로 동등한 입장이고 차별받지 않는다’라는 것인데 이런 특징들을 이해하는 것이 지역 진출에 앞서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좌담회는 더 진솔한 이야기를 이끌어내기 위해 격식을 배제한 편안한 분위기에서 설진훈 럭스멘 국장 주재로 진행됐다.
박재경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 국장, 곽성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신남방경제실장, 문기봉 아세안비즈니스센터장
▷박 국장 숲이란 아세안과 나무인 개별회원국을 조화롭게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인도네시아 한국 대사관과 공간을 같이 쓰고 있는 아세안 대표부가 곧 독립하고, 근무인력도 3배 가까이 늘어나게 된다. 아세안 정책이 과거와는 확실히 다를 것이란 이야기다. 아세안 전체를 관할하는 대표부가 역내 각국 대사관과 연계해서 기업 진출을 고루 지원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겠다. 아세안이 내수시장이 커지고 있는데 ▷문 센터장 먼저 아세안 내수시장에 대한 오해부터 말씀드리겠다. 보통 6억5000만 명의 인구, 평균 연령이 젊다는 점 때문에 성장 잠재력이 있는 시장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 인구들이 소비하는 패턴은 소득 계층마다 다르다. 2억5000명 인구의 인도네시아를 보면 하위 80%의 인구는 우리 돈 2000원이 넘으면 물건을 잘 사지 않는다. 이런 시장은 이미 토종기업들이 석권하고 있고, 우리기업들이 진출하기에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 외면한다. 아세안 전체를 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우리의 눈높이와 다른 시장과 진출하기 힘든 수요층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문화적 이해도가 부족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곽 실장 맞는 지적이다. 아세안 현지 도요타 자동차를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품질이 아니다. 그쪽 현지 실정에 맞는 상품과 공략법을 고민해야 한다. 아세안 시장은 해마다 성장하는 시장임에는 분명하다. 우리 눈높이가 아니라 현지 국민들의 선호도·취향 등을 미리 조사해서 들어가야 한다. 최근 아세안 내수 시장을 겨냥해 들어가는 우리 기업들이 많은데 구체적 전략을 가지고 들어가야 한다. 특히 한류에 의존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박 국장 좀 더 넓혀서 아세안 각국의 소득별 수준을 감안해 상품을 다변화하는 방안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즉 한 기업의 아세안 진출을 고민할 때 같은 수준의 국가를 묶어서 동시에 공략하는 방안을 짜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미국 유럽 등 선진국 기업들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직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이 많이 되고 있지는 않은데 특위에서 기업들을 위해 실질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영역 중 하나라고 본다.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에서 좌담회를 하고 있는 모습
▷문 센터장 일본의 무서운 힘은 곳곳에 숨겨진 인프라들이 많다는 것이다. 베트남정부가 집중하고 있는 것이 민영화 대상 기업들을 보면, 베트남 항공의 경우 상당 지분을 일본 항공사 ANA가 가지고 있고, 베트남 은행업계에서 영향이 있는 현지 엑심뱅크도 일본이 지분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런 기업들을 우리가 겨냥해 들어가면 승산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곽 실장 사실 아세안의 발전의 큰 그림은 지금까지 일본이 그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기업들은 그 속에서 활동을 하는 것이고, 중국의 경우 경제적 이득만 챙긴다는 인식이 커져 있어 아세안내에서 최근 반감이 좀 있는 편이다. 해법은 없나 ▷문 센터장 다른 아세안 접근법이 필요하다. 일례로 우리가 아직까지 제조업 마인드를 가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세안에서도 트렌드란 것이 있다. 이것을 간과하면 필패다. 태국의 경우 현재 파타야 등 방콕의 동쪽 지역을 동부경제회랑으로 지정하고 대대적인 개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유치하려는 사업들이 로봇 바이오 등 4차 산업들이 많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까지 철 지난 물관리 사업만 외치고 있다. 각국 정부가 무엇을 고민하는지 눈여겨봐야 한다. 트렌드에다가 현지 정보까지 빠르게 입수해 나아간다면 금상첨화다. ▷곽 실장 아세안 인프라 투자의 패러다임 전환 에 주목해야 한다. 아세안 각국이 이제 품질을 따지기 시작했다. 일본은 차별화된 품질로 인프라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우리도 차별화를 꾀하는 것이 숙제인 셈이다. ▷문 센터장 중국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가 인도네시아를 공략하는 행보도 눈여겨볼 만하다. 인도네시아서 글로벌 유명 전자상거래 업체가 많이 진출했지만 성공한 이들은 거의 없다. 전자상거래가 안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결제와 배송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알리바바는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인도네시아 정부에 제시했고, 현재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전자상거래 자문관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인도네시아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꿰뚫은 것이다. 만일 알리바바가 인도네시아 전자상거래업만 하겠다고 했으면, 기존 진출업체들과 비슷한 처지였을 것이다. 민관의 협력도 신남방정책 추진에 있어 중요하다. ▷문 센터장 내 경험을 하나 말씀드리겠다. 인도네시아 금융감독 기관인 OJK에서 자국 핀테크 관련 규제 샌드박스를 만드는데 한국기업이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인도네시아 핀테크 규제에 우리 표준을 넣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 우리 기업은 여기에 비용을 지출하고 시간을 쏟아야 한다. 우리 핀테크 기업의 경우 이 같은 여력이 안 되었다. 이럴 때 ODA 자금 등을 활용해 측면 지원이 이루어졌으면 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혹 지원된다 해도 몇 년 후의 일이다. 버스 떠난 뒤 문 두드리는 격이다. 현지 대사관을 통해 방안을 찾아보려 했지만 문턱이 높았다. 관에서 일을 할 때와 민간에서 나와 일을 할 때랑 확연히 다른 여건이었다. 소통채널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박 국장 OJK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기회인데, 아쉽게 놓쳤다. 그런 부분을 적극 고려해 현장 수요에 맞는 지원책을 마련하겠다. ▷문 센터장 ODA도 시대 현상을 반영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4차 산업과 관련된 지원은 패스트트랙으로 빠르게 지원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본다. ▷곽 실장 ODA의 경우 수원국을 따라가면 안 된다. 우리가 먼저 지원 분야를 제시할 필요도 있다. 양쪽의 의견을 미리 나눠 ODA 실제 집행보다 앞서서 의견이 나와야 실천 가능한 측면이 있다.베트남 경제 중심지 호치민시가 사이공강 너머로 보이고 있다.
▷곽 실장 맞는 말씀이다. 국내부터 아세안 전문가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 저희도 신남방 포럼을 만드는 등 네트워크 확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해외 아세안 전문가들과 포럼 멤버들 간 교류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그리고 아직 본격 부각되지 않고 있지만, 현지 진출 중소기업의 생존문제도 서서히 눈겨여봐야 한다. 최근 아세안 각국 정부가 자국의 기업들의 발전을 원하면서 우리 진출 대기업들에게 자국 중소기업 제품을 써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계속 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현지 중소기업들의 기술 수준이 현저히 뒤처진다는 것이다. 이에 대기업들은 일부 기술전수를 하고 있는데, 문제는 대기업들을 따라 나간 우리 중소기업들에게 불똥이 튀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과의 관계가 서서히 약해지면서 현지에서 이들 중소기업들은 홀로 생존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문 센터장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각종 민원들을 접수해서 적재적소에 전달할 수 있는 항구적 소통 채널이 이번에는 만들어졌으면 한다. [문수인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7호 (2018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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