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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스멘·현대경제연구원 공동기획] Chapter Ⅱ 시대를 앞서간 진정한 승자
입력 : 2017.10.20 11: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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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플랫폼 시장에선 누가 먼저 제대로 된 기준을 만드느냐가 관건이다. 남들보다 먼저 뛰어든 퍼스트 무버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구글의 움직임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자율주행자동차(무인차) 개발을 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글의 관점에선 컴퓨터나 스마트폰뿐 아니라 TV나 세탁기, 심지어 자동차까지도 탑재된 운영체제에 의해 통제되는 기기에 불과하다.
구글의 목적은 자동차 업체와 무인 자동차 판매 경쟁을 하는 게 아니라, 구글맵스와 구글어스 서비스를 바탕으로 무인자동차 운영체제를 선점하려는 것이다. 성과는 가시화하고 있다. 실제 도로에서 주행 테스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관련 동영상이 유튜브를 통해 확산되면서 무인차 상용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안전에 대한 우려도 점차 해소되고 있다. 전체 교통사고의 94%는 전방주시 태만, 졸음운전 등 운전자의 부주의에서 비롯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구글의 한발 앞선 플랫폼 선점에는 숨은 전략이 있다. 모든 것을 갖겠다고 움켜쥐는 게 아니라 당장의 이익을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이다. 구글은 이미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무료로 공개해 스마트폰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노키아, 모토로라, 블랙베리 등 공룡 같았던 기업이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한순간에 몰락했다. 이런 장면이 자동차 산업에서 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자동차 업계는 상당히 긴장한 모습이다. 때가 되면 자동차 제조사에 무인차 운영체제를 공개하겠다고 나설지도 모를 일이다. 구글과 스마트폰 시장에서 격돌해 온 애플도 차량용 운영체제(iOS in the car)를 발표하며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인터넷 검색에서 출발해 모바일 기기, 가전제품을 거쳐 자동차 산업에 뛰어든 무모한 무버(Mover) 덕분에 상상 속의 무인 차를 실제로 탈 날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창업자(왼쪽)와 테드 서랜도스 최고콘텐츠책임자
넷플릭스 설립 당시 DVD 대여 시장은 수천 개의 오프라인 매장을 거느린 블록버스터가 장악하고 있었다. 넷플릭스와 블록버스터의 대결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유될 정도였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소비자의 제품 구매 방법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간파하고 주문한 DVD를 문 앞까지 배달해 주는 서비스를 시행했다.
동시에 소비자들의 주된 불만사항이었던 연체료를 없애고 개인별 취향에 맞는 영화 추천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기존업체와는 다른 차별화된 전략을 구사했다. 결국 환경변화를 무시하고 오프라인 매장 위주의 사업을 고수한 블록버스터는 넷플릭스에게 정상의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넷플릭스의 최고경영자인 리드 헤이스팅스는 퍼스트 무버에 등극했다고 자만하지 않았다. 그는 소비자의 동영상 시청 방식이 온라인 대여에서 동영상 다시보기로 변화하고 있음을 놓치지 않았다. 기존의 핵심 사업이던 온라인 DVD 대여업이 동영상 다시보기 서비스에 의해 잠식될 수 있었기 때문에 일부 투자자들은 새로운 사업 모델을 거세게 반대했다.
투자자들의 이탈이 속출하고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시장의 부정적인 반응에도 헤이스팅스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는 플랫폼 구축에 회사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 몇 년 후, 그의 예상은 적중해 DVD 대여업은 몰락했다. 그러나 이미 핵심 사업을 동영상 다시보기 서비스로 전환한 넷플릭스에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
변신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콘텐츠 구매비용이 증가하고 유사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자 직접 콘텐츠를 제작하기로 결정한다. 그 첫 번째 성과물이 2013년 에미상 시상식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킨 정치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즐겨봤다고 알려진 이 드라마는 방송 전파를 타지 않은 온라인 전용 드라마로는 최초로 감독상 등 3관왕을 차지했다. 그런가 하면 넷플릭스는 몇 년 전부터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해 있다.
과도한 인터넷 트래픽을 유발하고 있는 업체들에 대해 추가비용 부담 등 규제 강화 논의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경영환경이 변화할 때마다 온라인 DVD 유통업체→동영상 플랫폼 제공 기업→콘텐츠 제작자 등으로 성공적인 변신을 해 왔다. 과연 이번에는 어떤 방식으로 변신을 시도할지 결과가 주목된다.
(왼쪽)프라이탁의 공동 설립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커스 프라이탁, (오른쪽)트럭 덮개로 만든 프라이탁의 가방
프라이탁은 1993년 스위스 취리히의 젊은 디자이너인 프라이탁 형제에 의해 탄생됐다. 이후 몇몇 친환경 가방(에코백)이 나왔지만 여전히 이 분야의 선두는 프라이탁이다. 다른 에코백이 공정 무역과 친환경만을 내세우는 반면, 프라이탁은 가방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디자인까지 강조한다. 사실 시작은 단순했다. 자전거족인 프라이탁 형제는 가방이 자주 비에 젖자 문득 거리를 오가는 트럭 방수포로 수제 가방을 만들면 멋질 거란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처음엔 자신이 쓰거나 친구에게 줄 선물용으로만 만들었지만 미술관이나 매장에서 주문이 밀려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20여 년 동안 매년 30만 개 이상의 가방을 만들고 수출하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프라이탁의 성공 배경에는 친환경 초심을 잃지 않는 진정성이 있다. 디자이너 프라이탁은 “마케팅만을 목적으로 친환경을 말하는 기업과 제품이 많다”며 “프라이탁 제품은 빗물이 본사 건물 옥상에 깔아놓은 자갈과 모래를 통과하면서 자연적으로 정화되는 물로 폐방수천을 세척하는 것부터 작업이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프라이탁은 향후 업사이클 산업의 성장을 이끌 것이다. 지금까지 업사이클 산업은 프라이탁처럼 개인적인 재미와 필요에 의해 소규모로 출발했다. 그러나 앞으로 업사이클 기업은 재활용 이전의 제품을 제작하는 단계에서 관여하거나 재료를 직접 수거하는 등 제품 생산의 전주기에 동참하며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처음부터 업사이클 제품을 염두에 두고 방수포 색깔을 정하거나, 아예 프라이탁 같은 업체가 트럭 방수포를 디자인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 폐품에 융합 기술과 개인 맞춤형 디자인이라는 희소가치를 더한 업사이클 제품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대를 열고 있다.
탐스의 창립자 블레이크 마이코스키
2006년 탐스의 창립자 블레이크 마이코스키(Blake Mycoskie)는 아르헨티나를 여행하고 있었다. 그는 많은 아이들이 신발을 신지 않고 포장도 되지 않은 거리를 맨발로 뛰어다니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천진난만하게 뛰어 노는 모습은 여행 기간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는 자신이 휴가 중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기부금을 모금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 방법은 일회성 이벤트에 그칠 뿐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직접 신발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기로 한다. 그러나 이 방법 역시 재정적인 지원이 없고 수익 창출원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한계가 있었다. 뭔가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했다. 고민 끝에 생각해 낸 아이디어는 신발 한 켤레가 팔릴 때마다 한 켤레를 빈곤국 어린이에게 선물로 제공하는 일대일 기부 방식의 ‘원포원(One for One)’ 비즈니스 모델. 성공만 한다면 수익 창출과 새로운 기부 문화 정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회사 이름도 사업 모델에 걸맞게 ‘내일을 위한 신발(TOMorrow’s Shoes)‘란 의미의 탐스(TOMS)로 결정했다. 기부 정신이 깃든 신발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뜨거웠다. 현재까지 1000만 명이 넘는 소비자들이 신발을 구매해 맨발로 뛰어다니던 동일한 숫자의 아이들에게 신발을 선물했다. 탐스는 원포원 방식을 다른 품목으로 확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소비자가 선글라스 등 눈과 관련된 제품을 구입하면 시력에 문제가 있는 아이에게 안경을 기부하거나 무료로 수술을 해줘 시력을 되찾아주고 있다. 탐스가 만든 신발은 친환경 소재를 사용한 예쁜 디자인에 착용감도 좋아 제품 자체로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그 정도 품질의 제품은 시장에 널려 있다.
만일 일대일 기부 전략을 채택하지 않았다면 그저 괜찮은 신발 브랜드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탐스는 평범한 신발에 나눔의 정신을 가미해 소비자의 마음까지 뿌듯해지는 특별한 신발을 만들어 냈다. 첨단기술과 거리가 멀고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물건이라도 소비자들이 특별하게 생각한다면, 그 제품을 생산한 기업은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있다. 탐스를 퍼스트 무버라고 부르기에 손색없는 이유다.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창간 7주년 특집호·제85호 (2017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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