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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사 책임 없다?…건보공단 담배와의 전쟁선포
입력 : 2014.04.25 10: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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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장기간 담배를 피우다가 폐암에 걸린 환자나 그 가족이 국가나 KT&G를 상대로 제기한 4건의 담배소송에서 아직 한 번도 웃지 못했다.
개인의 제조사 상대 배상청구 ‘불가능’에 가까워져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KT&G의 ‘제조물’로서 담배의 안전성에 이상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민법상 제조물을 만들어 판매하는 사람은 현재의 기술수준이나 경제성 등에 비추어 기대 가능한 범위내의 안전성을 갖추지 못할 경우 사용자에게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대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담배소비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맛이나 향을 가진 담배를 선택하여 흡연하고 안정감 등 니코틴의 약리효과를 의도하여 흡연하는데 니코틴을 제거하면 이러한 효과를 얻을 수 없는 점 등을 고려하면 설령 니코틴이나 타르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채용하지 않은 것 자체를 설계상의 결함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원심결정을 받아들였다. 이밖에 담배의 소비방법이 KT&G가 담배를 제조하기 이전부터 행해졌고 국내에 1960년대부터 흡연이 폐암의 주된 원인이라는 연구결과가 언론을 통해 다수 보도됐다는 점, 1976년부터 경고 문구를 사용한 점 등을 들어 표시상 결함도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에 중요한 쟁점 중 하나였던 인과관계에 있어서는 흡연과 폐암의 원인중 하나로 인정 될 수 있음을 보였으나 원고당사자의 ‘개별적인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의학적으로 질병은 크게 특정 원인에 의해 발생해 결과가 명확한 ‘특이성’ 질환과 발생 원인 및 유전·체질 등의 선천적 요인이나 음주, 흡연, 환경적 요인 등의 후천적 요인으로 발병하는 ‘비특이성 질환’으로 분류된다. 폐암을 비특이성 질환으로 분류한 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폐암은 소세포암과 비소세포암으로 나뉘는데 흡연과 관련성이 높은 것부터 관련성이 있다고 볼 수 없는 것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다”며 “비소세포암 중 흡연과 관련성이 전혀 없거나 현저하게 낮은 폐암의 유형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라는 고등법원 판례를 받아들였다.
2심에서 흡연과 개별적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본 소세포암(폐암)과 편평세포암(후두암) 환자 4명에 대한 법리판단을 하지 않았지만 이들 암과 흡연간 인과관계는 사실상 인정된 셈이다.
이에 따라 흡연이 폐암에 직접 영향을 주었다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먼저 흡연으로 인해 직접적인 역학관계가 소세포암과 비소세포암 중 편평세포암 등에 해당되어야 한다. 동시에 개별적으로 흡연을 한 시점과 정도, 흡연하기 전 건강상태, 생활습관, 질병상태 변화, 가족력 등을 추가로 증명해야 하는 입증책임은 개인에게 있다. 이밖에 법원은 제조사가 익히 담배의 유해성을 알고도 일부러 이를 숨긴 채 팔았는지 등 ‘위법성’과 ‘의도성’에서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담배제조자인 피고들이 법률 규정에 따라 담뱃갑에 경고문구를 명시하는 것 외에 추가 설명이나 경고, 기타의 표시를 하지 않았다고 하여 피고들이 제조·판매한 담배에 표시상의 결함이 인정된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회사와 국가가 담배의 유해성에 관한 정보를 은폐한 것으로도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소송을 주도해 온 서홍관 한국금연운동협의회 회장은 이에 대해 “KT&G는 한번도 자체적으로 담배의 유해성에 대해 알려온 적이 없고 규제에 의해 수동적으로 움직여 왔다”며 “언론이나 사회단체들이 적극적으로 흡연의 유해성에 대해 알려 왔던 것이 KT&G의 면죄부가 된 격”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 변호사는 “미국이나 호주, 캐나다 등과 비교해 국내는 법적용이 담배제조사에 관대한 것이 사실”이라며 “해외의 경우 ‘라이트’나 ‘마일드’라는 용어를 붙이는 것이 자칫 건강에 해롭지 않다는 인상을 준다는 이유로 금지하거나 케이스도 폐암으로 인한 고통을 연상시키는 끔찍한 그래픽을 의무적으로 넣도록 한다”고 밝혔다.
‘제대로 붙자’ 건강보험공단 537억 담배소송 착수 이번에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이 나섰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4일 뒤인 지난 4월 14일 건보공단은 흡연으로 인해 추가로 부담한 진료비를 배상하라는 취지로 KT&G는 물론 외국계 담배사 필립모리스코리아와 BAT코리아 등 국내외 3개 담배 제조사를 상대로 537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김종대 건보공단 이사장은 이번 소송에 대해 “정의와 양심의 문제”라고 강조하며 승소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당초 건보공단 측은 최대 2300억원대의 소송가를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승소 가능성과 소송 비용 등을 고려해 자문위원, 사내외 변호사 등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청구액 규모를 낮췄다. 공단 측은 “청구가가 이전보다 낮아졌지만 소송 과정에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 44호에서 계속...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4호(2014년 0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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