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Quality Korea] 신년 기획 이제는 삶의 질이다

    입력 : 2012.12.27 11: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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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 3000억달러 돌파(2006년),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진입(2007년), 세계에서 5번째로 원전수출(2009년 12월, 두바이), G20 정상회의 유치(2010년 11월), 세계에서 9번째로 무역 1조달러 클럽 가입(2011년 12월),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동계올림픽 유치(2018년 평창)… 유엔(UN) 사무총장(반기문)과 세계은행 총재(김용)를 배출한 나라. 제국주의 열강에 의한 식민지배,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나라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눈부신 성과다.

    특히 최근 수년간은 선진국 부럽지 않은 대접을 받는 국가가 됐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을 호령하고 있고, 문화 한류는 세계 곳곳에서 동경의 대상이 됐다.

    2012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외국 관광객 1000만명이 우리나라를 찾았다. 선진국들이 줄줄이 몰락하는 와중에도 무디스 등 세계 3대 신용평가 회사들은 유독 우리나라의 신용등급만 모두 A등급 이상으로 상향 조정했다.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는 글로벌 시장에서 더 이상 디스카운트(Discount)의 대상이 아니라 이제는 프리미엄(Premium) 취급을 받는다.

    우리나라는 숨 가쁘게 달려왔다. 그리고 많은 것을 이뤄냈다.

    대한민국 국민 삶의 질 36개국 중 34위 그렇다면 우리 국민들의 삶 자체도 높아진 국격 만큼이나 풍요로워지고 여유로워졌을까.

    우리 국민들은 과연 선진국처럼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기고 있을까.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지난해 발표했던 ‘삶의 질 지수(The Better Life Index)’를 살펴보면 그 답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조사대상 36개 국가 가운데 34위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우리나라보다 삶의 질 지수가 더 낮은 나라는 멕시코와 터키뿐이었다. 양적인 경제 성장, 선진국에 근접한 각종 지표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의 실제 생활은 아직 안타깝게도 후진국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유엔(UN)이 지난해 발표한 세계 행복 보고서에서도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10점 만점에 5점대 후반으로 150개 조사대상 국가 가운데 56위에 그쳤다.

    이들 조사가 절대적 가치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세계 주요국을 대상으로 객관적인 비교 조사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창피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왜 아직도 팍팍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OECD 조사에서 우리나라가 특히 낮은 점수를 받은 분야는 10점 기준으로 2.5점에 그친 소득불평등, 4.1점을 받은 공동체 생활과 5.0점을 받은 근로 환경 등 3개 분야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최근 15년 동안 약 1.8배 증가한 반면 소득분배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 중산층 비율, 비정규직 비율, 상대적 빈곤율 등 대부분의 지표들은 소득 증가비율을 따라가지 못했거나 오히려 더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2월 막을 내린 18대 대통령선거에서 ‘경제 성장’ 보다 ‘경제 민주화’가 정책 공약 이슈를 주도했던 것도 바로 이처럼 악화된 양극화 구조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우리 삶에서 공동체(Community) 생활이 적다는 것은 가족이나 사회 구성원 간의 유대감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의미다. 공동체 의식이 약하다 보니 퇴근 후에도 여가 활동에 참여하는 기회가 부족한데다 저출산 고령화 추세로 가족 간의 정서적 유대감도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직장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연평균 2193시간을 일하는데 이는 OECD 조사 대상 회원국의 평균 노동시간인 1749시간에 비해 훨씬 많은 수치다. OECD는 우리나라에 대한 평가에서 “한국에서 돈(Money)은 높은 수준의 생활을 달성하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며 “다만 돈으로 결코 행복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상위 20%의 소득계층이 하위 20% 보다 약 5배 이상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다는 우리나라의 소득 불균형 문제를 지적했다.

    삶의 질이 개선되기는커녕 최근에는 고속 성장에 따른 후유증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혼율과 자살률은 이미 세계 1~2위를 오르내리고 있고 삶의 질을 따질 때 중요한 지표인 범죄율, 음주율, 교통사고율, 흡연율, 직장 불만족도, 우울증 비율 등도 대부분 OECD 회원국 가운데 상위 수준을 기록 중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사교육비, 대졸취업난, 승진경쟁과 아파트 장만, 노후대책, 비정규직 차별과 빈부격차….

    우리 사회를 둘러싸고 있는 빡빡하고 숨 돌릴 틈 없는 경쟁 구조로 인해 국민들은 어느새 ‘쉼표가 없는 삶’으로 내몰리고 있다. 서양의 경우 “일할 때는 일하지만 쉴 때는 쉰다”는 이분법적 정서가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퇴근 후에는 가족들이나 주민들과 어울려 저녁시간을 즐기고 주말에는 레저 활동이나 주말농장 등을 통해 자연과 유대감을 쌓는다.

    나라는 프리미엄 국민은 가난… 미스매치 뚜렷 우리나라의 최근 상황은 “나라는 부자지만 국민은 가난하게 산다”는 일본과 비슷한 경로를 밟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일본의 경우도 1990년대 장기 불황기에 접어든 이후 국민들의 삶이 훨씬 팍팍해졌다. 해외여행을 나가서 엔화를 물 쓰듯 쓰고 도쿄 긴자에서 고급 와인을 마시며 선진국 생활을 즐겼던 일본 국민들이 이제는 우리나라 국민들보다 더 검소하게, 더 초라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 28호에서 계속... [채수환 매일경제 경제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8호(2013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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