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까지만 해도 유명 대기업의 대표이사를 지낸 바 있는 이재화(가명) 씨는 고향으로 내려와 직원 3명을 두고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하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새벽에 별을 보며 출근했다가 밤늦게 별을 보며 퇴근했다. 지금은 다 커버린 두 아들이 어떻게 컸는지도 모른다. 그건 집 사람의 몫이었다. 아이들 크는 재미는 남의 집 얘기였다. 대기업 사장으로 은퇴했으니 돈을 많이 모았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미국과 달리 한국의 월급쟁이는 사장이라고 해도 큰돈을 만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30년 이상의 직장생활 후에 덤으로 따라 온 것이 직업병이었다. 스트레스로 인한 위장병과 당뇨였다. 은퇴 후 건강을 다시 되찾는데 3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이씨는 건강을 추스르고 나서 평소 알고 지내던 지방자치단체장의 권유로 저소득층 독거노인을 위해 도시락을 배달하는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대기업 시절에 비하면 용돈을 버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지역사회를 위해 조금이라도 기여한다는 자부심도 있고, 여유 있게 출퇴근하면서 부인과 같이 보내는 시간도 많아졌다. 큰 아들 결혼 준비를 함께하다 보니 부부 사이도 더 좋아졌다. 서먹서먹했던 아이들과의 관계도 다시 회복되고 있다. 제2의 인생을 보내는 요즘 대기업 시절보다 훨씬 더 삶의 질이 좋아졌다고 이재화 씨는 감히 단언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 중산층 복원을 공약으로 내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그만큼 우리 국민들의 생활이 팍팍하다는 방증이다. 성장도 좋지만 이제는 국민들의 삶의 질도 올려야 한다는 유권자들의 요구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라 경제의 겉모습만 보면 아무 문제도 없다. 2007년에 1인당 국민소득(GDP 기준) 2만달러에 처음 도달했으며, 2011년에는 무역 1조달러를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기록했다고 정부에서는 풍선을 터뜨렸다. 선진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하고 우리나라가 의장국 역할을 하는 등 국격(國格)이 높아졌다고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응답하지 않는다.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은 별로 나아진 게 없기 때문이다. 국민 개개인들이 삶의 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국민소득이 2만달러 이상으로 올라오면서 물질적 풍요보다 더 가치 있는 것들이 많다는 사실에 눈뜨게 됐기 때문이다. 소득과 더불어 건강 가족 취미생활 안전 환경 등도 생활을 영위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데 중요하다고 느끼게 됐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정의해보면 ‘삶의 질’이란 삶을 가치 있고 윤기 있게 만들어 주는 총량으로서의 만족감이다. ‘삶의 질’이란 경제·사회 발전과 환경의 변화, 그리고 사회구성원의 가치관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소득 건강 안전 환경과 같은 객관적 지표는 물론 주관적 만족도로 구성되기 때문에 삶의 질을 측정하기란 쉽지 않지만, 측정가능한 객관적 지표를 중심으로 삶의 질 수준과 추이를 추정해 보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삶의 질’을 수명, 보건, 안전, 분배 등 7가지 분야, 15개 세부 지표로 구성해 지수화하고 국제적으로 비교해 본 결과, 한국은 OECD 회원국 가운데 27위에 머물렀다. 현대경제연구원에서도 소득 증가와 삶의 질 증가의 관계를 측정해 봤다. 1995년 1인당 국민소득(GDP) 1만2000달러에서 2010년 2만1000달러로 올라서는 등 지난 15년간 소득은 약 1.8배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삶의 질 지수는 100에서 132.3으로 1.3배 정도 완만하게 개선되는데 그쳤다. 삶의 질을 구성하는 항목 중 보건, 복지, 생활 인프라는 1995년 대비 큰폭으로 개선됐지만, 경제적 안정은 대내외 경제위기로 인한 고용 불안과 소득분배 악화로 오히려 하락했다. 가족과 안전 등 사회적 유대감도 악화됐는데 이혼, 자살, 범죄 건수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국가경제적인 측면에서 삶의 질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삶의 질은 경제 발전의 성과물이며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마중물이기도 하다. 삶의 질 향상은 소득이 높아짐에 따라 얻어진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삶의 질을 높이고 국민들의 생활 만족도를 높아지게 만들면 같은 시간 일해도 과거에 비해 노동생산성과 경제의 효율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국민소득을 2만달러까지 끌어올렸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한참 멀었다. 새 정부는 복지 확대에 전력을 기울일 전망이다. 삶의 질과 관련된 복지서비스의 확대는 국가 경제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에도 크게 기여한다. 가장 먼저 고용의 안정성을 높이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다음으로 가족 복지 서비스의 확대가 필요하다. 가족의 가치(Family Value)에 대한 재조명, 남성의 가사분담 확대, 직장과 가정의 양립 지원, 보육시설 확충, 양육비용 지원 등 이혼율을 낮추기 위한 사회 전체적 노력도 필요하다. 최근 모든 연령대에서 급증하고 있는 자살률을 낮추고, 범죄건수를 줄이기 위해 공동체적 의식을 키울 수 있는 사회적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