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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베 수교 20주년 베트남 현지 취재]한국과 가까운 젊은 나라 베트남
입력 : 2012.12.03 17:5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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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이공 무역센터 자리에 들어선 버테코 파이낸스 타워에서 본 베트남 최대 도시의 최근 모습이다. 2010년 문을 연 68층 높이의 이 건물은 전망이 뛰어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호치민시의 랜드마크가 됐고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베트남 경제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 건물 바로 앞에 지난해 개통된 트띠엠터널은 한강 다리들이 서울 강남·북을 연결하듯 사이공강 바닥을 가로질러 호치민 구시가지와 강 건너 신개발지(1구)를 이어주고 있다.
하늘로 올라가면 용트림하는 베트남의 모습이 더 확실히 보인다. 남부 호치민시에서 중부의 다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베트남 전역은 한마디로 개발의 열기가 넘쳤다. 광활하게 펼쳐진 열대우림을 뚫고 신도시나 공단이 수없이 들어서고 있다.
역동성은 거리로 나가면 더 확실히 느껴진다. 아침 6시면 스쿠터 대열이 거리를 수놓기 시작한다. 7시를 지나 8시가 되면 호치민 시내는 스쿠터 대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출근하는 직장인, 학교 가는 아이들을 태운 주부들…. 퇴근 시간 호치민시 중심부는 아예 스쿠터 대열로 가득 찬다. 한 대에 두 명이 타는 것은 보통이고 셋 넷이 타고 가는 경우도 흔하다. 현재 호치민시 인구는 800만명에 근접했는데 스쿠터는 400만대에 이른다고 한다. 2명 당 1대꼴이다.
스쿠터 타는 사람이 많은 만큼 이 나라는 젊다. 미국 CIA는 올해 7월 말 기준 베트남 인구를 9150만명으로 추산했다. 또 전체인구의 중간 연령은 28.2세, 남자의 중간 연령은 27.1세라고 했다. 노동가능 인구만도 4825만명에 달한다. 특히 노동인구의 48%가 아직도 농업에 종사하고 있어 제조나 서비스업 쪽으로 옮겨갈 수 있는 인력이 아직도 15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것이 젊은 베트남의 잠재력이다.
외국인이 많이 찾는 호치민시의 벤탄사장 트띠엠 터널 개통으로 개발이 시작된 사이공강 건너편
최대 커피생산국 지위를 유지한다는 것은 베트남 경제가 여전히 농업에 의존하고 있음을 뜻한다. 실제로 베트남은 태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쌀 생산국이며 세계 후추의 3분의 1을 생산하고 있다. 메콩델타 일대는 연간 3~4회 벼를 재배할 수 있는 천혜의 쌀 생산지다. 수산물도 이 나라의 수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갑오징어나 옥돔 등은 한국에도 상당량이 들어오고 있다.
높은 1차 산업 비중과 양질의 인력은 베트남의 가능성이 아주 밝다는 것을 뜻한다. 이 나라의 문자 해독 인구는 90%를 넘어선다. 대학 수는 300여개에 이를 정도로 교육열도 높다. 전통 수공업으로 이어온 손재주와 높은 교육열은 베트남의 미래를 개척할 인재로 연결된다.
이들은 지금 스쿠터로 거리를 누빌 뿐 아니라 인터넷과 휴대폰으로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도 한창이다. 호치민 시가지를 걷다보면 수없이 들어선 휴대폰 가게와 전자제품 가게들이 보인다. 그중 한 가계엔 ‘4GB USB 69만동’이란 세일 안내 문구가 걸렸다. 고도 호이안의 인터넷 카페엔 컴퓨터로 숙제를 하는 아이들과 게임을 하려는 노인들도 들어온다.
지역에 따라선 아직 1인당 소득이 7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곳도 많지만, 소득에 비해 적지 않은 돈을 내고도 인터넷을 연결하고 USB를 쓰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다. 현재 이 나라의 인터넷 사용 인구 비중은 30%에 달한다. 이것이 베트남의 새로운 모습이다.
지난 10월 22일 응엔 떤 중 베트남 총리는 국회 연설을 통해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은행이나 국영기업의 부실이 늘어나는 등 실정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혁신을 다짐했다. 베트남은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정부나 공공부문의 비효율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호치민 시내 공원에서 여학생까지 모아놓고 집총이나 제식훈련 교육을 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게 이 나라 현실이다.
그러나 시장경제로의 도도한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추세다. 베트남 정부는 경제사회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있지만 생산과 분배를 따지는 계획경제가 아니라 국가가 나갈 방향을 제시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특히 베트남 정부는 시장경제를 배운 보트피플 2~3세까지 받아들일 채비를 갖췄다.
더 나아가 시장경제로 나가는 또 하나의 실험을 준비 중이다. 토지의 사적소유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1992년 제정된 헌법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베트남은 토지의 소유는 ‘인민’에 있다고 하며 개인에겐 사용권만 허용하고 있다. 내년으로 예정된 헌법 개정에 이 부분이 어느 정도 반영될지 주목된다.
글로벌 위기나 개혁과 무관하게 세계의 전문가들은 베트남 경제가 장기적으로 높은 성장률을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PWC는 베트남이 2025년까지 연평균 10%의 성장률을 유지할 것이라고 했고, HSBC는 2050년이면 베트남 GDP가 노르웨이나 싱가포르를 추월할 것으로 예상했다.
INTERVIEW
허병희 코트라 호치민 무역관장은 베트남 경제가 글로벌 침체의 영향을 받고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특히 최근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자금이 돌지 않아 내수가 위축됐다고 했다. 환율이 급등하고 인플레이션이 치솟아 대출규제가 불가피했던 것 같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베트남 경제를 낙관한다고 했다. 상하이에서도 오래 근무한 허 관장은 최근 중국의 임금이 급상승해 중국 생산기지를 이곳으로 이전하는 기업이 많다며 단순히 임가공 전진기지로 여기지 말고 거대한 시장의 교두보로 베트남을 활용하라고 강조했다. 선진국 경제가 빨리 회복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중국 역시 자국 챙기기에 급급할 가능성이 크니 아세안을 대안으로 주목하라는 얘기다.
“베트남은 아세안 6억명 인도 11억명 중국 13억명 등 30억명 시장의 중심에 있다. 최근 아세안 통합이 급진전되고 있다. 2015년까지는 하드웨어 통합까지 마칠 예정이다.”
그러니 임가공 보다는 거대시장을 선점하는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라는 주문이다. 아울러 임금 면에서도 경쟁력은 여전하다고 했다.
“지난해 노동쟁의로 임금이 50~70%나 올랐다. 그러나 아직은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 최근 미얀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 같은데 미얀마는 개방을 하기 전에 이미 물가가 급등했다. 라오스나 캄보디아는 인구가 적어서 안 된다.”
대규모 시장의 거점으로 의미가 더 큰 만큼 이젠 임금 따먹기에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게 허 관장의 주장이다. 특히 전략적 협력자로 따진다면 지리적으로나 인종 문화 종교 등 모든 면에서 베트남이 아세안에서도 최적이라고 했다.
“지금 아세안은 과거 아시아의 네 마리 용과 비슷하다.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 속해 있고 충효를 중시하는 것도 비슷하다. 그중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이 가장 뜨는 시장이다.”
허 관장은 중국과 일본계 자금이 대부분을 잠식했는데 예외적으로 베트남은 유일하게 이들 자금의 영향이 적어 한국이 강점을 가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이 베트남으로 올 수도 있으나 역사적으로 베트남은 중국인을 싫어한다고 했다. 1000년의 지배를 받았다는 것. 베트남에서 베이징 비행기가 하루 한 편 정도로 적은 게 그런 이유라고 했다.
[호치민 = 정진건 기자·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7호(2012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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