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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간의 기대와 설렘…복권의 세계
입력 : 2012.02.27 13:5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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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본 복권 2653명
역대 로또 1등 당첨자수. 1~475회(1월7일 기준)까지 1등 당첨자수는 총 2653명으로 집계됐다. 1회당 1등 평균 당첨자수는 5.8명. 1등 평균 당첨금은 세전 기준 21억6111만4548원이었다. 407억
역대 로또 최고 당첨금. 1인당 최고 당첨금은 2003년 4월12일에 추첨한 19회차 1명으로 당첨금은 407억원. 반면 1인당 최저 당첨금은 2010년 3월20일에 추첨한 381회차 19명으로 당첨금은 각 5억6000만원. 23명
1회당 1등 당첨자가 가장 많았을 때. 2003년 4월26일 추첨한 21회차 로또복권으로 총 23명의 1등 당첨자가 나왔다. 3일
연금복권 당첨자가 1등 복권을 분실했던 기간. 2011년 연금복권 2회차 복권을 샀던 인천 모 회사원은 연금복권을 구입한 후 이를 넣은 지갑을 분실했다가 3일 뒤 우연히 되찾았다. 복권 번호를 확인하니 1등이었다.
호주머니에 단돈 1천원밖에 없다. 이 돈으로 일주일을 살라고 한다면 당신의 선택은?
누군가는 당장 먹을 빵보다는 ‘복권을 산다’는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선택을 당신은 비웃을 것인가.
하지만 복권 한 장이 가져다주는 일주일간의 기대감과 설렘은 배고픔과도 바꿀 수 있을 만큼 ‘매력’이 있다는 점엔 동의할 것이다. ‘꽝’이 될 것이 뻔하다고 생각하면서 어리석게 복권 당첨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다.
실제로 회사원 Y씨는 매주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 로또 판매대에 들른다. 어쩌다 회의라도 있어서 판매대에 들르지 못하면 마음이 편치 못해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서둘러 판매대로 달려간다.
Y씨 같은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유난히 ‘경제 한파’가 몰아쳤던 2011년 복권은 대박이 났다.
로또와 연금복권은 발행될 때마다 매진 행렬을 이어갔다. 복권 판매액은 작년 3조804억원이라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2003년 ‘로또 광풍’ 이후 근 10년 만에 벌어진 복권 열풍이다. 이를 지켜보는 마음은 씁쓸하다. 땀과 노력보다는 한방에 인생역전을 노리는 사람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일확천금의 꿈, 복권(福券·Lottery)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나라 복권 발행을 책임지고 있는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의 정의는 이렇다. ‘일정한 사행심을 전제로 국민에게 건전한 오락 기능을 제공하고 복권 판매에 따른 재원은 공익사업에 활용해 국민복리 증진에 기여하는 제도.’ 복권위는 복권의 순기능을 얘기한다.
복권위 관계자는 “건전한 오락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당첨의 기쁨도 주며, 발행 수익금은 사회공익사업에 쓰이게 되니 결국 본인과 사회 발전에 기여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주택복권은 서민주택 건설 지원에, 기술복권은 과학기술 진흥, 자치복권은 지자체 재원 확보, 기업복권은 중소기업 진흥 등에 골고루 쓰임으로써 사회 발전에 공헌하고 있다는 얘기다.
또 사람들은 사행 심리가 있어 자칫 불법적인 도박에 빠질 수 있는데 이를 건전한(?) 복권으로 대체해 이와 관련된 범죄를 줄이는 파급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복권 기능은 과연 그뿐일까.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의 정의는 조금 다르다.
그는 복권을 ‘강제력을 수반하지 않고 공공재원을 조성할 수 있는 희생 없는 조세(Painless Tax)’라고 표현했다.
조세저항(Tax Revolt)을 일으키지 않고 재원 확보가 용이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복권의 역사는 고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통 없는 세금’이 복권의 기원인 셈이다. 토머스 제퍼슨은 복권을 ‘이상적 재정수단(ideal fiscal instrument)’이라고까지 언급했다. 실제로 1980년대 미국에서 복권을 발행하는 주정부가 우후죽순 격으로 계속 증가하였던 이유는 바로 세금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과 부담감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정치적 위험이 없는 가장 쉬운 세입수단이 복권이다.
복권의 역사… 올림픽후원권에서 연금복권까지.종편MBN의 연금복권520 추첨방송
이후 복권은 일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시로 발행됐다. 1949년 이재민 구호자금을 위해 발행된 후생복표가 대표적이다. 1950년에는 재정자금을 만들기 위해 애국복권이 등장했고 산업박람회 복표(1962년), 무역박람회 복표(1968년) 등 특정 행사를 지원하기 위한 복권이 뒤를 이었다.
지금과 비슷한 형태의 복권이 나타난 것은 1969년부터다. 이때 나온 주택복권이 사실상 현대적인 의미의 복권의 시작이다.
당시 한국주택은행은 무주택 군경 유가족과 국가유공자, 베트남 파병 장병들의 주택 마련을 위해 주택복권을 발매했다. 주택복권은 2006년 로또 열풍에 밀려 없어질 때까지 30년 넘게 한 세대를 풍미했다.
1990년대 이후에는 갖가지 복권이 등장하며 본격적인 복권 ‘춘추전국시대’가 전개된다. 1990~1993년 대전엑스포 개최 비용을 조성하려고 최초의 즉석식 복권인 엑스포복권이 나왔다. 이후 동전으로 긁는 스크래치 복권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전체 복권 시장이 황금기를 맞는다.
이처럼 복권의 인기가 높아지자 각종 복권기관이 난립하며 판매도 되지 않고 곧바로 폐기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2000년대 초까지 명멸한 복권만 체육복권(1990년), 기술복권(1993년), 복지복권(1994년), 기업복권(1995년), 자치복권(1995년), 관광복권(1995년), 녹색복권(1999년), 플러스복권(2001년), 엔젤복권(2001년) 등 9종에 달했다.
2001년에는 제주도에서 국내 최초의 전자복권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이듬해에는 건설교통부 등 10개 기관이 연합해 온라인복권이 시장에 나왔다.
복권 ‘과잉공급’사태가 계속되자 결국 정부는 구조조정에 나선다. 2004년 복권 및 복권기금법을 시행해 복권 발행기관을 복권위원회로 단일화한 것. 현재 국내에서 발매되는 복권은 총 12종이다. 이 가운데 로또 판매액이 전체의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평생 당첨금을 쪼개 받을 수 있는 연금복권이 등장하며 고령화시대의 한 단면을 반영했다.‘연금복권520’은 매주 추첨을 통해 1등 당첨자 2명에게 매월 500만원씩 20년간 당첨금을 지급하는 새로운 상품이다. 지난해 7월6일 첫 추첨 이후 지금까지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가 공인한 사행산업은 복권을 비롯해 카지노, 경마, 경륜, 경정, 체육진흥투표권 등 6가지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이하 사감위) 잠정 통계를 보면 지난해 6대 사행산업의 전체 매출액은 17조8164억원에 이른다. 매출 비중을 보면 경마가 40%로 가장 크고 다음이 복권이다. 복권은 경륜, 카지노 등과 같이 15~13%로 엇비슷하다.
복권은 기획재정부 장관 소속인 복권위원회에서 발행부터 관리, 규제, 기금 편성 등 주요 정책을 결정한다. 기획재정부 2차관이 위원장을 겸임하며 민간위원 11명, 정부위원 9명 등 위원장을 포함해 21명으로 구성된다. 사무처장을 비롯해 복권총괄과, 발행관리과, 기금사업과 등은 모두 기획재정부 공무원들로 구성된다. 참여정부 때인 2004년 만들어져 국무총리실 산하에 있다가 이번 정부 들어 2008년에 기획재정부 소속으로 변경됐다.
실제 판매와 관리 등 세부 업무의 경우 로또복권은 주식회사 나눔로또에게, 나머지 각종 인쇄·전자복권은 한국연합복권주식회사에 위탁 운영하는 시스템이다. 한국연합복권은 전자복권 업무를 SG&G, 엔젤로또, 다우기술 등 3개 사업자에게 재수탁한다.
복권 매출이 30% 이상 급증한 경우는 예외 없이 새로운 복권이 출시됐을 때라는 것이다. 경기 탓이 아니라는 얘기다. 판매가 부진할 때는 ‘복권 피로(lottery fatigue)’라는 현상 때문이라고 말한다. 복권 피로는 새로운 방식의 복권이 발행된 후 일정기간이 지나면서 소비자들이 점차 흥미를 잃어가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국내 전체 복권 매출액은 1983년 올림픽복권 출시 이후 154.0%로 급증했었고, 1990년 엑스포복권과 체육복권이 나왔을 때 71.5%, 1993년 기술복권 출시 당시 35.3% 등으로 새로운 복권이 등장할 때마다 큰 폭으로 늘어났다.
특히 2002년 12월 로또복권이 나왔을 때는 2003년에 332.0%라는 기록적인 복권 매출 신장을 기록하기도 했다. 작년도 마찬가지다. 연금복권이라는 새로운 상품이 출시된 탓이라는 지적이다.
반면 새로운 복권이 출시된 다음해는 판매량이 줄었다.
예를 들어 로또복권 열풍이 휩쓸고 간 다음해인 2004년에는 복권 매출이 18.3% 급락했다.
또 1998년 외환위기 당시의 복권 매출은 전년 대비 12.4% 감소했으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복권 매출 신장세는 0.2%에 그치는 등 정체되는 모습을 보였다.
앞서 사감위는 기획재정부 산하 복권위원회에 복권 발행량을 줄이라고 권고했다. ‘복권 열풍’이 위험 수위를 넘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로또 인기에다 연금복권 열풍까지 더해지면서 작년 연간 복권 발행 허용한도인 2조8046억원을 12월 초에 이미 넘어섰다. 그러나 복권위는 사감위 권고를 듣는 대신에 발행총액을 복권위 민관 위원의 서면 동의를 받아 3000억원 더 늘려버렸다.
결과적으로 복권 발행액은 2009년 2조4706억원, 2010년 2조5255억원에 이어 지난해 3조804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1주일에 592억원어치씩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 셈. 연매출 3조원이면 대략 마카오 전체의 한 달 도박 대출액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2003년 로또가 처음 나왔을 때 연간 3조8000억원어치의 복권이 팔려나간 적은 있지만 2005년 이후론 작년에 처음 3조원을 넘었고, 미리 규정된 발행 총액을 억지로 올려 끼워 맞춘 것은 처음이다. 그러자 시민단체들이 “정부가 사행산업을 부추긴다”며 시위에 나서는 ‘사태(?)’까지 발생한 것이다. 복권이 너무 잘 팔려도 사단이 나는 셈이다. 정부는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모자라는 재정을 채운다는 비판까지 들어야 했다. 복권 과열을 방조한 정부의 ‘복권 장사’가 지나치다는 것이다.
사감위의 권고를 받은 복권위의 속내도 사실은 복잡하다.
복권위는 “복권은 중독성이 없는 오락”이라는 입장이다. 복권은 사행산업에서 빼야 한다는 주장도 한다. 또 복권 열풍으로 이끈 연금복권은 한탕을 노리는 로또 편중에서 벗어나 20년에 걸쳐 나눠 받는 신개념 복권문화를 만들자는 건전한 취지에서 탄생했다는 하소연이다. 이와 함께 복권 판매액의 50.5%는 당첨금, 9.5%는 수수료 등 제반 경비로 쓰지만 실질적인 수익금에 해당하는 나머지 40%는 복권기금으로 적립하기 때문에 공익을 위한 측면이 강하다는 해명이다. 지난해의 경우 1조2022억원이 기금으로 적립됐다. 이 가운데 65%인 8422억원은 저소득층 공익사업에 지원하고, 나머지 35%인 3580억원은 법으로 정해진 곳에 배분했다. 수익금의 6%는 지방자치단체가 나눠 갖고, 6%는 제주도 특별회계에 편입된다. 과학기술진흥기금이나 국민체육진흥기금 등 10개 기금에도 수십억원에서 수백원억씩 돌아간다.
이번에 복권위와 논란을 벌인 사감위는 국무총리실 산하 기관으로 ‘바다이야기’가 사회적 논란이 되자 2007년 9월 만들어진 기관이다. 사감위는 지난 2008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0.687%였던 6대 사행산업 순매출(당첨금 제외)을 2013년까지 0.58%로 줄일 계획이다. 매년 사행산업 규모를 줄여가야 한다는 얘기다. 총량한도를 어기면 다음 해 발행량 등에서 ‘페널티’를 물게 된다. 하지만 복권뿐 아니라 이미 경마와 카지노 등도 사감위가 정한 한도를 넘어섰다. 이는 사감위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사감위는 사행산업을 통합 관리하는 동시에 총량 조정이 필요하면 조정이나 권고에 나선다. 하지만 강제할 힘은 없다. 사감위에 실질적 권한이 없다 보니 말 그대로 권고에 그치는 형편인 셈이다. 사행심리가 위험 수위로 치닫지 않도록 사감위가 제때 급제동을 걸려면 사행산업 감독체계를 획기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병득·신헌철·김정환 / 매일경제 경제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7호(2012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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