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Ⅳ. 태블릿PC가 가져올 변화

    입력 : 2011.01.14 20:3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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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시장에 태블릿PC 출시가 임박했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애플코리아는 지난 10월11일 ‘태블릿PC’ 아이패드에 대한 전파인증 심사를 전파연구소에 신청했다. 전파연구소는 애플코리아가 제출한 국내 지정시험기관의 시험성적서 등 관련 서류를 심사한 후 기술적 문제가 없을 경우 접수 후 5일 내에 인증서를 교부하게 된다. 휴대전화 등 전파인증을 받아야 하는 대부분의 제품이 인증 후 한달 안에 출시되는 것을 감안하면 늦어도 11월 중순 경에는 아이패드가 출시될 것으로 보인다. 독자가 이 글을 읽고 있는 순간에 아이패드가 출시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삼성전자가 아이패드의 대항마로 내세우고 있는 ‘갤럭시탭’도 거의 완성 단계에 있다. 당초 10월14일 국내 미디어에 갤럭시탭을 공개하려 했지만 국내 특화 애플리케이션 등 한국형 콘텐츠를 강화하고 사용자 환경에 최적화된 제품을 선보이기 위해 출시 일정이 무기한 연기된 상태. 업계는 아이패드보단 늦겠지만 올해 안에 갤럭시탭이 출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 애플이 2010년 4월 아이패드(iPad)라는 새로운 단말기를 내놓고 80일 만에 300만 대를 팔아치우면서 순식간에 태블릿PC계의 왕좌를 차지하긴 했지만 아이패드 이전에 태블릿PC라는 개념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아이패드가 최초의 태블릿PC가 아니라는 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스티브 잡스보다는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어느 정도 완성된 형태의 태블릿PC 개념을 제안한 사람에 가깝다. 여기서 말하는 태블릿PC는 키보드나 다른 입력 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프로그램 실행이나 화면 위에 바로 메모나 필기입력이 가능한 모바일 디바이스다.

    그는 2001년 IT 전시회 컴덱스에서 태블릿PC를 소개하고 이후 운영체제(OS)로 Windows XP Tablet Edition을 내장한 태블릿PC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물론 당시에야 매우 불편한 터치 기능과 부족한 하드웨어 성능, 짧은 배터리 사용 시간, 그럼에도 매우 높은 가격 문제로 시장을 만드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이패드는 이런 과거 전작의 단점을 거의 완전히 해결했다. 아이패드 중 3G 64GB 모델의 판매가격은 829달러로 같은 크기의 디스플레이를 갖춘 윈도 기반 노트북과 큰 차이가 없다. 무게또한 730g으로 2㎏을 훌쩍 넘어가던 이전의 12인치급 태블릿PC를 생각하면 충분히 휴대가 가능할 정도로 가벼워졌다. 배터리 성능도 크게 나무랄 것이 없다. 하루 종일 외부에서 영화감상, 인터넷 서핑 등을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하드웨어 성능도 좋았지만 사실 아이패드에 날개를 달아준 건 바로 무선인터넷이다. 3G 휴대전화 망과 무선랜(Wi-Fi)을 활용한 모바일인터넷 기능을 지원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대형 디스플레이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휴대전화와는 완전히 다른 모바일 디바이스로 자리 잡았다.

    아이패드 vs 갤럭시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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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등장한 아이패드가 태블릿PC라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이름 좀 있다’ 하는 단말기 제조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아이패드를 따라잡을 수 있는 (또는 그렇다고 믿는) 단말기를 내놓기 시작했다. 이 중에서 특히 우리 눈길을 끄는 건 단연 삼성전자의 갤럭시탭이다. 9.7인치의 아이패드와는 달리 7인치 화면을 갖춘 갤럭시탭은 스마트폰보다는 덩치가 크지만 양복 안주머니는 물론 바지 뒷주머니에도 들어갈 정도로 휴대성에서 아이패드를 앞선다. 두께도 11.98㎜로 아이패드(13.4㎜)보다 얇다. 무게도 380g으로 아이패드의 절반 수준이다. 아이패드가 외부보다는 주로 집안, 특히 소파나 침대, 식탁 등에서 편하게 앉아 두 손으로 사용할 수 있는 멀티미디어 콘텐츠 뷰어라면 갤럭시탭은 이동 중에 한 손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휴대성에 초점을 맞춘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갤럭시탭의 7인치 화면은 동영상 등 멀티미디어 콘텐츠보다는 눈으로 보고 읽는 ‘텍스트’ 콘텐츠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영화감상에는 널찍한 아이패드가 좋겠지만 손으로 들고 다니며 책을 보고 신문을 보기엔 부담스럽다. e북이나 신문 역할엔 아이패드보단 갤럭시탭이 강점을 갖는다. 아이패드가 우리나라에서 갤럭시탭보다 먼저 출시돼 인기를 끈다 하더라도 갤럭시탭이 나름의 시장을 형성하고 수요를 확보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이 때문이다. OS 측면에서는 아이패드에 탑재된 iOS나 갤럭시탭에 탑재된 구글 안드로이드2.2(프로요)의 성능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사용자가 생각하는 태블릿PC의 용도에 따라 각각 다른 시장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일단 태블릿PC가 국내에 출시되고나면 기존 산업계, 특히 콘텐츠업계에 큰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우선 디지털 콘텐츠 소비가 크게 증가할 것이다. 기존의 PC·노트북·넷북 등이 키보드나 마우스 같은 입력장치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면, 아이패드나 갤럭시탭은 근본적으휴대전화보다 훨씬 큰 화면으로 사진·동영상·게임·e북 등의 콘텐츠를 쉽게 소비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태블릿PC에 달려있는 터치스크린 입력장치는 사실 사용하기도 쉽지 않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기능일 뿐이다.언제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 환경 역시 디지털 콘텐츠 소비에 불을 지피게 될 것이다. 3G와 무선랜을 통해 이동 중에도 양질, 대용량의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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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비 증가할 콘텐츠들 그렇다면 다음에 생각해 볼 것은 과연 어떤 콘텐츠의 소비가 늘어날 것이냐다. MP3플레이어, 휴대전화에서는 음악 콘텐츠의 소비가 많았지만 충분한 크기와 선명한 디스플레이를 갖춘 태블릿PC에선 음악보다는 e북이나 신문류와 같은 텍스트 콘텐츠나 음악과 영상이 합쳐진 멀티미디어 동영상 콘텐츠를 소비하는 경우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이패드의 경우엔 이미 아이튠즈에서 구입한 음악 콘텐츠를 그대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음악보다는 e북, 동영상 콘텐츠의 소비 증가가 전망된다. 동영상 콘텐츠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아이패드에서 소비하는 게 더 낫기 때문에 아이패드의 인기가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동영상 콘텐츠 소비 증가 추이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아이패드의 주 사용용도를 살펴보면 이 점을 더 확실하게 살펴볼 수 있다. 애플인사이더(Apple Insider)가 조사한 아이패드의 주사용용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동영상이 24%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용도는 웹서핑, 이메일이 더 많지만 방송사나 인터넷 동영상 사업자가 태블릿PC에서의 시청에 최적화된 동영상 콘텐츠 공급을 늘리면 동영상 사용 비중도 계속 늘어나게 될 것이다.

    디지털 콘텐츠 소비가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유료 콘텐츠 시장도 확대될 것이다. 이미 해외에선 아이패드 출시 이후 그간 온라인에서 무료로 콘텐츠를 제공하던 뉴스 미디어들이 가장 먼저 유료화에 나서고 있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올해 3월부터 온라인 유료화를 시작했고,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 등도 온라인 유료화를 시작했다. <뉴욕타임스>도내년 1월부터 온라인 유료화를 앞두고 있다. 특히 <뉴욕타임스>는 디지털 콘텐츠로만 수익을 내기로 하고 종이신문을 폐간한다는 방침을 세우기도 했다.우리나라 뉴스 미디어들도 유료화에 대 한 고민을 하고 있다. 일부 종합일간지, 대형 경제지의 경우엔 대부분의 뉴스를 무료로 제공하되 일부 프리미엄 뉴스를 유료로 제공하는 모델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뉴스 미디어의 콘텐츠 유료화가 해외보다 훨씬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단 영어권 뉴스 미디어의 경우 <뉴욕타임스>, <파이낸셜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뉴스 콘텐츠를 판매할 수 있지만 국내 뉴스 미디어는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콘텐츠를 판매할 수밖에 없다. 규모의 경제를 만들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국내 뉴스 미디어가 일정 부분 콘텐츠 유료화를 시도할 것은 자명해 보이나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다 하겠다. 뉴스 외에 동영상 콘텐츠업체들의 유료화도 발 빠르게 이뤄지고있다. 온라인 DVD 렌탈업체인 넷플릭스(Netflix)는 월 8.99달러를 내면 아이패드용 앱으로 동영상을 무제한으로 볼 수 있게 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동안 TV 쇼와 영화를 무료로 제공해 왔던 훌루(Hulu)도 훌루 플러스(Hulu Plus)를 통해 모바일 기기, 비디오 게임 콘솔, TV, PC 등을 통해 월 9.99달러에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미 애플의 앱스토어, 구글의 안드로이드 마켓은 전체의 4분의 3가량이 유료 앱으로 채워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디스티모(distimo)에 따르면 아이폰용 앱에서는 유료 비중이 73%인데 아이패드용은 유료 앱 비중이 80%로 더 높아 태블릿PC 확산은 국내 유료 콘텐츠 시장 확대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태블릿PC의 희생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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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텐츠와는 달리 태블릿PC 때문에 타격을 입는 영역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우선 e북 전용 단말기는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국내 시장에 안착하지도 못한 상황이라 태블릿PC의 출현은 그야말로 ‘고통’일 수밖에 없다.미국 사례를 통해 국내 e북 단말기업계가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란 걸 어렵지 않게 예측해 볼 수 있다. 세계 최대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이 미국 시장에 킨들을 출시하며 e북 리더기 시장을 이끌었지만 아이패드 출시 이후 킨들의 파격적인 가격 인하를 단행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9월엔 259달러였던 킨들 가격을 189달러로 내리기도 했다.그래도 그마나 미국은 나은 편이다. 말한 대로 시장이 넓기 때문에 킨들과 같은 e북 단말기도 어느 정도의 시장성을 가져갈 수 있다. 그러나 시장 규모가 작은 우리나라에서 태블릿PC와 e북 단말기를 동시에 사용할 만한 사람의 수는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국내 e북 관련 시장은 기형적으로 만들어진 측면이 있기에 더욱 우려된다. 미국의 경우 킨들이 나오기 전에 세계 최대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이 있었기 때문에 e북 콘텐츠가 단말기보다 먼저 활성화됐다. 풍부한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단말기가 나오자 자연스럽게 소비자의 환영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국내의 e북시장은 삼성전자와 같은 단말기 제조사가 e북 리더기를 출시하면, e북 콘텐츠 제공업체가 콘텐츠 제공 사이트를 통해 e북을 제공하는 형식을 취해 왔다. 가뜩이나 e북 콘텐츠가 적은데 그걸 또 단말기업체마다 나눠서 제공하다보니 콘텐츠가 풍부해질 리가 없다. 태블릿PC가 넷북, 노트북 시장을 위축시킬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가트너는 10월15일 전 세계 PC 성장률에 관한 예비조사 결과발표를 통해 올해 3분기 세계 PC 시장 출하량이 8830만 대를 넘어 전년 동기 대비 7.6%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가트너가 앞서 내놓은 예측치인 12.7% 상승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가트너에 따르면 3분기는 전통적으로 미국 및 서유럽 시장에서 소비자 수요가 늘어나는 시기임에도 지난 2년간 강력한 성장세를 보였던 노트북 수요가 둔화됐다. 아이패드를 비롯한 태블릿PC의 등장이 PC 판매량 둔화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또 가트너는 지금 당장보다는 2012년께 태블릿PC 가격이 낮아질 때 PC시장에 더욱 큰 파장이 미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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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찬 하이더슨 가트너 수석 애널리스트는 “지금은 태블릿PC와 넷북의 가격 차이가 현저해 제한적으로 경쟁하지만 2012년경 태블릿PC 가격이 300달러까지 떨어지면 잠식효과가 일어날 것”이라며 “PC업체들은 오히려 태블릿PC와 직접 경쟁하기보다는 태블릿PC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영역에서 어떻게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이제 국내 태블릿PC 시장이 개화할 때가 임박했다. 태블릿PC는 기존 어떤 기기도 갖추지 못한 휴대성과 모바일 인터넷 접근성, 강력한 멀티미디어 기능을 바탕으로 소비자가 더 많은 콘텐츠를 소비하도록 라이프스타일을 바꾸게 할 것이다. 여기에 따라 콘텐츠업계는 물론이고 태블릿PC와 경쟁관계 또는 보완관계에 있는 하드웨어업계도 재편 될 것이다. 다만 그 변화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11월 이후 뚜껑을 열어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태블릿PC가 국내에 얼마 정도의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인지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최순욱 매일경제 모바일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호(2010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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