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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가락’ 트럼프 관세 전쟁 PartⅠ] ① 트럼프 관세는 도대체 몇%?
입력 : 2025.04.28 17:5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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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층 겨냥한 고비용 무역전쟁 반복
규제완화·혁신 통한 산업 구조개편 필수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 정책의 파장이 만만치 않다. 세계 경제를 불확실성 속으로 밀어 넣는 것도 모자라 제2의 대공황에 대한 우려까지 불러일으키는 실정이다.
미 국채 금리의 폭락 등 시장의 반발에 잠시 물러서고는 있지만, 미 제조업의 부활을 외치는 트럼프 대통령이 고(高)관세 정책을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트럼프의 ‘오락가락’ 관세 정책으로 글로벌 시장 전체가 그야말로 우왕좌왕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왜 트럼프는 이처럼 고비용의 무역전쟁을 반복적으로 선택하는가. 표면적으로는 제조업 회귀와 무역적자 해소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국내 지지층 결집 등 복합적 의도가 얽혀 있다.
이를 위해 트럼프는 군사·기술·경제 전 분야에서 대중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관세는 그중에서도 ‘경제 전쟁’의 일환이다. 이는 단순한 무역 갈등을 넘어, 미국과 중국이 오랜 시간에 걸쳐 구축해온 상호의존적 무역 시스템을 해체하려는 시도다. 나아가 트럼프는 EU, 한국, 일본 등 전통적 동맹국들도 압박하면서 ‘미국의 동맹이라도 이제 공짜는 없다‘는 신호를 던지고 있다. 이를 통해 미국 중심의 ‘양자적 거래 질서’를 구축하려고 한다. 트럼프 ‘관세 전쟁‘은 표면적으로 제조업 회귀라는 정치적 명분이 있다. 하지만 이는 실물경제에 리스크를 증가시키고 있다.
한·EU·日 전통적 동맹국도 압박트럼프발(發) 관세 전쟁은 말 그대로 오락가락이다. 당초 미국의 고질적인 무역적자 해소를 명분으로 예고했던 국가별 상호관세가 지난 4월 9일(현지 시간) 발효돼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가나 싶었다. 한국은 25% 관세 대상에 포함됐고 베트남(46%), 태국(36%), 대만(32%), 인도(26%), 일본(24%), EU(20%) 등도 고율 관세를 부과 받았다. 중국은 이보다 훨씬 높은 104%의 관세가 적용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중국에 34%의 상호관세를 부과했지만 중국이 보복 조치를 취하자 추가로 50%포인트를 올리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여기에 앞서 부과된 ‘펜타닐 유입 차단 미협조’ 명분의 20% 관세까지 더해졌다. 중국은 곧장 맞대응에 나섰다. 4월 10일부터 미국산 수입품에 총 84%의 ‘맞불 관세’를 부과했다. 미국이 중국에 104%에 달하는 관세를 물리자 기존 관세율(34%)에 50%포인트를 덧붙였다. 중국은 미국 군수 기업 16곳에 군수용과 민간용으로 함께 쓸 수 있는 ‘이중 용도’ 물품 수출을 금지하는 제재 조치도 내놨다. 희토류 수출 역시 통제하기로 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입장을 바꿨다. 중국 관세는 125%로 올리면서 중국을 뺀 다른 국가에는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하고 10%의 기본 관세만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중국에 대한 관세율을 104%에서 21%포인트 더 높이는 대신, 협상에 나선 한국을 비롯한 70여 개국에 대해서는 한시적이지만 관세율을 전격 낮춘 것. 이에 따라 한국 상호관세율도 90일간은 기존 25%에서 10%로 낮아졌다. 다만 철강, 자동차 등에 대한 25% 품목별 관세는 그대로 유지된다.
하지만 일방적인 관세정책이 동맹국들의 등을 돌리고, 미국 주식과 채권 값이 요동치자 트럼프 대통령은 또다시 관세정책 ‘후퇴’를 시사하는 발언을 내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일시적 관세 면제와 관련해 “자동차 업체 일부를 돕기 위한 무언가를 검토하고 있다”면서 “(자동차 회사들이)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생산되던 부품을 이곳에서 만들기 위해 (생산을) 전환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엔진, 변속기, 파워트레인 등 자동차 부품에 대한 25% 관세를 다음달 5월 3일 이전에 발효하기로 했지만 이를 유예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애플 제품이나 스마트폰 등이 관세 예외 대상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도 “내 마음을 바꾸진 않았지만, 나는 매우 유연한 사람”이라면서 “어쩌면 뭔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 상무부는 반도체·의약품 수입을 국가안보 차원에서 제한할 필요가 있는지 결정하기 위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이날 관보에 게재했지만, 이 역시 불확실성에 빠져 있다.
한편 ‘중국에만 적용된’ 상호관세와 관련해 트럼프 행정부는 ‘자가당착’에 빠진 상태다.
미국과 중국이 ‘보복의 악순환’을 거듭하면서 어느새 미국의 대중 관세는 상호관세 125%와 ‘펜타닐 관세’ 20%를 포함한 145%까지 치솟은 상태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미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시행에 들어간 철강·알루미늄, 자동차에 대한 관세가 25%라는 점을 감안하면 반도체나 의약품에 대한 관세도 비슷한 수준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관세가 145%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보니 중국산 반도체나 전자제품은 오히려 관세를 ‘할인’해주는 형국이 된 셈이다. 그렇다고 반도체·전자제품에 대한 관세를 대중 관세 수준에 맞춘다면 한국·대만·일본 등지에서 수입되는 제품에 대한 사실상의 ‘금수조치’에 나서게 되는 셈이어서 미국 내 공급망이 마비될 수 있다.
관세전쟁, 무역전쟁이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명약관화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수출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6.6%로, 주요 20개국 중 셋째로 높았다. 내수 침체 상황에서 관세 리스크까지 불거지며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줄줄이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낮추고 있다. 골드만삭스, JP모건에 이어 최근 모건스탠리도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5%에서 1.0%로 낮췄다.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정책과 범위 대상 등을 자주 바꾸면서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관세에 따른 수입 원가 계산부터 제조 시설 이전 검토안까지 덩달아 자주 바뀌면서 연말 실적 전망부터 중장기 투자비 책정 등을 수십 가지 이상 버전으로 만들어야 해서다. 일부 기업들은 “일부 신규 사업은 접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냉정하게 현실을 인식한 후 미국과 상호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25% 상호관세는 미국의 일방적 통보가 아니라 협상의 시작점일 가능성이 크다”며 “트럼프 행정부는 과거에도 협상에서 최대치를 제시한 뒤 조정하는 전략을 써왔다”고 분석했다.
그는 “기업들이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급하게 대응하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다”며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허윤 교수는 “정부가 FTA 상대국임을 강조하며 협상력을 높이고, 한국 기업이 미국 기술 생태계에서 핵심 파트너로 자리잡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상호관세 협상 이후 미국이 수출 확대를 위해 달러 가치를 낮추는 ‘제2의 플라자 합의’ 시도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장은 “트럼프 정부가 한국을 ‘환율관찰대상국’으로 보고 외환 시장 개입을 제한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며 “정부의 달러 매각 등 환율 안정 조치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역시 “환율 불안은 외국인 자금 유출과 증시 변동성 확대 등 경제 전반에 충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外 시장 찾아나서야생존 전략으로 전문가들은 생산기지 다변화를 강조한다. 이와 관련해 구교훈 회장은 “국내 생산, 미국 현지 생산, 우회 수출국 생산을 조합해 물동량을 분산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며 “이와 별도로 정부 차원에서 주한미군 방위비 협상 등과 연계한 ‘원샷 협상’으로 비관세 장벽을 해소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적인 대안은 결국 산업 구조 고도화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관세 사태는 한국의 수출 주도형 구조의 취약성을 보여준다. 한국이 대기업 중심의 중화학공업 구조에서 벗어나 지식재산권, 문화예술, 관광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대종 교수는 구체적 로드맵으로 “1단계는 소재·부품의 기술 자립화와 국산화, 2단계는 AI·빅데이터 기반 신산업 육성과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3단계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맞춘 다국적 생산 거점 확보와 디지털 통상 인프라 구축”을 제시하며 “정부의 세제 지원과 정책 금융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규제 개혁이 필수적이다. 허윤 교수는 “노동 시장 유연성 확보 등 규제 완화 없이는 산업 구조 개편이나 공급망 국산화가 불가능하다”며 “기업이 혁신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관세 폭풍 속 생존의 기반”이라고 강조했다.
[김병수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6호 (2025년 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