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2기] US 스틸문제로 반발하는 일본 | 美 철강기업 인수 트럼프 정부에서도 성사 가능성 낮아

    입력 : 2025.01.31 17:27:36

  • 미국과 일본은 전통적인 동맹국 관계다.

    일본이 미국에 자국 방위를 크게 의존하는 가운데 일본은 미국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한다. 미국 쪽 요구가 조금 거칠더라도 그동안 일본 정·관계나 재계 등에서는 큰 불만이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문제를 키우지 않고 조용히 정리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양국 관계에 최근 작은 균열이 발생했다. 지난 1월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철강기업 US스틸에 대한 일본제철의 인수를 불허한 데 대해 일본제철뿐 아니라 정·관계 모두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그동안 관례를 볼 때 이러한 일본의 반응은 다소 이례적이라는 분석이다. 일본제철은 왜 US스틸을 인수하려고 했고, 인수 불허 결정에 왜 격하게 반발하고 나서는 것일까.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US스틸 공장.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US스틸 공장.

    해외사업 강화 나선 일본제철

    일본제철은 지난 2023년 12월 총 149억달러(약 21조7000억원)를 투자해 US스틸을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2023년 조강 생산량 순위에서 일본제철은 세계 4위, US스틸은 24위였다. 일본제철은 US스틸을 인수해 미국 시장에 본격 진입하고 세계 조강 순위도 3위로 끌어올릴 방침이었다.

    US스틸은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의 혼이 실린 곳이다. 1901년 창업해 미국의 근대화를 함께 한 기업이다.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크라이슬러 등이 모두 US스틸의 철강을 받아 자동차를 만들었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포함한 미국 마천루 대부분의 속살은 US스틸 제품으로 채워져 있다.

    US스틸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최대의 철강 회사였지만, 그 후에는 일본이나 유럽, 한국, 중국 등에서 값싸고 품질 좋은 제품이 쏟아지면서 경쟁력을 잃고 말았다. 미국 내에서도 뉴코아와 클리블랜드 클리퍼스에 이어 조강 능력에서 3위에 그친다.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는 전통의 철강 강자 간 합병이자, 과거 글로벌 철강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두 주역의 만남으로 주목받았다. 일본제철은 US스틸 인수를 통해 해외사업을 강화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철강 수요의 절반가량이 건축용 수요인데, 미국은 이러한 수요가 탄탄한 곳으로 꼽힌다. 여기에 전기자동차용 철강재 생산도 확대해 연간 조강생산능력 1억톤의 회사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는 발표 직후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미국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 지역의 정치권을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쏟아진 것이다.

    전미철강노동종합(USW)을 중심으로 반대 투쟁이 시작됐고, 지난해 미국 대선 기간에는 표심을 의식한 바이든과 트럼프 모두 매각 반대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 이를 받아 바이든 전대통령은 지난 1월 “US스틸은 미국인이 소유하고 노동조합에 소속된 미국인 철강 노동자가 운영하는 세계 최고의 자랑스러운 미국 기업으로 남을 것”이라며 US스틸 매각 불허 결정을 발표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불허 결정에 대해 일본도 가만있지 않았다. 당사자인 일본제철은 물론 정·관계가 모두 우려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하시모토 에이지 일본제철 회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바이든 대통령의 위법한 정치 개입으로 심사가 적절하지 않았으므로 (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그는 이어 미 정부 심사의 무효를 요구하는 불복 소송 등을 냈다며 “승소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정부의 인수 불허 결정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사진 연합뉴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사진 연합뉴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도 “일본 산업계에서 미·일 간 투자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아무리 동맹국이라도(이번 사안과 관련해) 미국 정부에 제대로 된 설명을 강하게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제철의 반발 배경에는 우선 꺼져가는 성장 동력을 되살리기 위한 돌파구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주요 선진국에서 유일하게 수요가 늘고 있는 미국 시장에 대해 일본제철이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특히 보호무역주의가 치열해지는 가운데 미·일이 동맹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US스틸 인수는 일본제철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제철이 주목하는 친환경 철강업으로의 전환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도 US스틸은 필요하다.

    철강업은 제조업 가운데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가장 많다. 탈탄소 기술과 관련해 앞서 있는 일본제철은 이를 US스틸에 접목할 경우 친환경 철강업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전기차 모터에 필수 철강 제품인 무방향성 전자강판 생산과 관련해 일본제철의 기술력은 높다. 최근 US스틸도 관련 공장을 가동했지만 일본제철을 통해 기술력을 높일 경우 미국 자동차업체 등에 대한 판매가 늘어날 것으로 본 것이다. 철강업 특성상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데 신재생에너지가 풍부한 미국에서 사업을 전개할 경우 여기에도 도움이 된다. 당장 일본은 원전 가동 중단으로 전력난에 시달리고 있는데, 미국은 반대로 신재생에너지가 넘쳐나는 상황이다. 또 US스틸이 보유한 미네소타 철광석 광산도 일본제철이 탐낼 만한 자산이다. US스틸은 이곳에서 팰릿을 생산할 예정인데, 이는 친환경 고로로 불리는 전기로와 수소환원제철 등에 꼭 필요한 요소로 꼽힌다. 일본제철의 소송 배경에는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반전을 노리는 의도도 있다. 소송전을 시작해 매각 중지 명령의 효력을 중단시킨 뒤, 트럼프와의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어내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바꾸게 하려면 지난해 일본제철이 밝힌 27억달러(약 3조9600억원)를 넘어서는 추가 설비 투자 등을 제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US스틸 인수를 위해 149억달러(약 21조7000억원)를 지출해야 하는 일본제철로서는 추가 투자는 재무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은 1월 초 소셜미디어(SNS)에 “관세가 더 수익성이 있고 가치가 있는 회사로 만들어줄 텐데 왜 지금 그들은 US스틸을 팔기를 원하느냐”며 재차 반대의 뜻을 나타냈다. 기존 입장을 완전히 번복하도록 해야 하므로 US스틸의 설득이 먹힐지는 미지수다. 위약금 부담을 덜기 위한 소송이라는 관측도 있다. 일본제철은 오는 6월까지 인수가 성사되지 않을 경우 US스틸에 5억 6500만달러(약 8300억원)의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일본제철로서는 이 금액을 순순히 물어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승훈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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