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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덕의 풍경을 걸고
입력 : 2022.03.29 10:3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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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은 파란 하늘에서 노란 땅으로 떨어진다. 풍년을 맞은 황금빛 농지, 그 위에 떠 있는 청명한 하늘. 우크라이나 국기는 그렇게 디자인됐다. 파랑과 노랑 두 가지 색으로.
유럽의 빵 바구니라는 별명이 따라붙는 우크라이나 흑토(黑土)지대. 이곳은 밀밭 천지다. 밀은 수확시기가 짧은 농산물이다. 겨울에 심어 봄에 거두는 밀이 최상급이다. 밀이 익을 때 노랗게 변하는 땅을 고흐가 화폭에 담았다. 하늘을 나는 까마귀 떼와 함께.
전라도 남쪽 순천에 유채꽃이 피었다. 상사호 물줄기를 따라 환하게 웃는 꽃들. 꽃길을 거닐며 아이들은 셀카를 찍는다. 거기엔 폭탄도 없고, 피 흘리는 아이도 없고, 울음소리도 없다. 유채꽃밭에 떠 있는 파란 하늘. 여기는 우크라이나가 아니다.
엄마 따라 유채꽃 구경 온 노란 모자 아이들. 세상의 시름은 아이들 몫은 아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도 언젠가는 우크라이나의 비극을 알게 되겠지. 꽤나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는.
[글 손현덕 매일경제 주필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9호 (2022년 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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