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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피로한 요즘 ‘귀’로 듣는 시장 폭풍성장, ‘유튜브’ 동영상에 질렸나… 오디오 SNS 열풍
입력 : 2021.03.30 15: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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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 용진이 형(정용진 신세계 부회장)도 한다고 해서요.” 직장인 김정현 씨(35)는 소위 ‘클하(클럽하우스)’ 마니아다. 휴일은 물론 평일에도 ‘클럽하우스’에 접속한다. 직접 만나는 사람은 없지만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수천 명이 넘는다. 김 씨는 본인이 좋아하는 펫 관련 방이나 코미디방, 음악인들과의 소통방에 참여한다. 김 씨는 “고양이를 키우는데, 관련 방에서 고양이,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 수백명과 이야기를 나눈다. 종종 저녁에 시작한 대화방을 새벽까지 듣는다”고 전한다.
코로나19로 인해 갑갑한 일상에서 위로를 전해주는 ‘자연의 소리’가 인기를 얻고 있고, 비대면 콘텐츠에 대한 경험이 쌓여가면서 ‘소리’에 대한 이용자들의 태도도 급격하게 달라지고 있다.
실제 오디오 기반 SNS가 인기를 끄는가 하면, 오디오 유료 콘텐츠 시장도 커지고 있다. 음성인식 기반의 인공지능(AI) 스피커나 커넥티드 카 등 오디오를 즐길 수 있는 플랫폼이 다양화되면서, 비디오 시장의 높은 성장세로 주춤할 것 같던 오디오 시장이 역설적으로 되살아나는 모양새다.
향후 오디오가 문자(페이스북·트위터)나 영상(유튜브)을 대신하는 주요한 소통 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 따르면 팟캐스트 산업은 올해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 시장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반면 대표적인 SNS인 페이스북과 트위터 이용자들은 감소추세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에디슨 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2017년 12~34세 미국인의 79%가 페이스북을 사용했으나, 2018년 67%, 2019년 62%로 떨어졌다. 2017년 8200만 명을 기록했던 12~34세의 페이스북 사용자는 2019년 6100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초기 클럽하우스 붐을 이끈 건 유명인사들이다. 연예인은 물론 최태원 SK그룹 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등 다수 재계 인사가 클럽하우스에 등장했다.
정용진 부회장이나 정태영 부회장이 개설한 방에는 평균 수천 명이 몰려든다. 정용진 부회장이 야구단을 인수한 이후 클럽하우스를 통해 “우승 반지를 끼고 싶어 야구단을 인수했다” 등 야구단 인수와 관련한 뒷얘기를 털어놓은 사례는 유명하다. 정태영 부회장은 현대카드가 수년간 진행하고 있는 슈퍼콘서트 관련 이야기를 쏟아내 언론매체를 통해 회자되기도 했다.
클럽하우스가 국내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건 MZ세대(1980년대 후반~2000년대에 태어난 세대)의 선호를 공략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온라인상에서 남들이 하지 않는, 개성 있는 ‘차별화’를 선호하는 MZ세대의 성향을 클럽하우스가 만족시키고 있어서다. 가입하기 위해 초대권이 필요한 특별한 조건과 선택받은 ‘인싸(인사이더)’의 느낌을 주며 ‘FOMO(Fear of Missing Out)’를 자극한다는 평가다.
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또한 클럽하우스 인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기가 지배적이다.
네이버의 한 관계자는 “모여서 같이 잡담을 하고 수다를 떠는 등의 사회적인 활동을 1년 넘게 못 했던 사람들에게 클럽하우스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매우 매력적으로 느껴진 듯하다. 특히 스마트폰을 라디오처럼 틀어놓는 것만으로도 잡담을 하거나 전문가의 다양한 경험을 들을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라 설명했다. 실제 클럽하우스 이용자 들 중에는 출퇴근 시 차량에서 라디오처럼 듣거나 자기 전에 침대 옆에 틀어놓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팟빵
업계에 따르면 파이어사이드는 ‘토론을 통해 사회적 책임과 영향력을 발휘하는 플랫폼’을 지향하고 있다. 녹음 기능을 바탕으로 청취자들이 서로 비즈니스 조언을 하거나 사회적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파워 플랫폼’으로 키우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트위터도 최근 실시간 음성 커뮤니티 서비스인 ‘스페이스(Spaces)’를 내놓았다. 스페이스의 서비스는 클럽하우스와 유사하다. 사회자가 있고 참여자들이 대화에 참여할 수 있으며 스케줄링 기능도 있다. 트위터는 가입자들을 위한 수익화 모델을 연내 출시할 계획이다. 트위터는 최근 회사가 주최한 투자자의 날 행사 일부 계정에서 유료 구독을 제공하는 ‘슈퍼 팔로우’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슈퍼 팔로우는 이용자가 인플루언서에게 월 구독료를 내고 여러 콘텐츠를 제공 받는 신개념 서비스다. 클럽하우스 운영진도 플랫폼 유료화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이미 팔로어가 많은 이용자들에게 기업들이 간접적으로 제품이나 브랜드를 노출하는 방식으로 협찬비를 제공한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오디오 콘텐츠 생태계 진화 음성 기반 소셜미디어뿐 아니라 사양산업 취급을 받던 오디오북과 팟캐스트도 인기를 끌고 있다. 팟캐스트 역시 오디오북 못지않은 성장세다.
딜로이트는 2020년 10억달러 규모였던 전 세계 팟캐스트 시장이 2025년엔 33억달러로 5년 만에 3.3배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스마트폰과 AI 스피커 등으로 팟캐스트를 라디오처럼 쉽게 들을 수 있게 됐고, 사람들의 정치적, 사회·문화적 관심사가 다양화하면서 니치(Niche·틈새) 미디어로 인식되어 온 팟캐스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 원동력이다.
국내 최대 팟캐스트 서비스 팟빵은 1000만 명 이상이 이용하고, 연간 청취 시간이 2억 시간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네이버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인 ‘오디오클립’의 월간 방문자(MAU) 수는 370만 명으로 전년(192명) 대비 93% 증가했다. 같은 기간 재생사용자와 재생 수는 각각 161%와 137% 급증했다. 특히 10~30대 젊은 이용자들의 수요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이 기간 13~18세 재생수는 200% 뛰었고, 19~29세 재생 수는 48% 증가했다.
개인 오디오 방송 플랫폼 ‘스푼’을 운영하는 스푼라디오 역시 지난해 호실적을 기록했다. 스푼라디오의 지난해 연간 아이템 판매액은 837억원을 기록했다. 2019년 400억원 대비 70% 늘어난 것이다.
네이버 오디오클립 상위권에 오른 팟캐스트 ‘문장의 소리’ 녹음 현장
또 다른 시장 조사 기관인 그랜드 뷰 리서치(Gra nd View Research)는 2019년 전 세계 오디오북 시장이 26억7000만달러(약 3조원) 규모를 기록했고 2027년까지 연평균 24.4%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오디오북 시장도 전망이 밝다. 한국에서도 네이버 오디오클립과 팟빵, 스웨덴 스토리텔이 오디오북 서비스를 하고 있다. 시장 규모는 300억원대로 추정된다. 교육과 육아에 오디오북을 활용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오더블(Audible), 스크리브드(Scribd) 등 월 구독형 스트리밍 서비스가 인기다. 네이버 오디오클립 관계자는 “최근 오디오클립은 의미 있는 성장을 보이고 있다”며 “토크, 심리상담, 오디오북, 오디오 드라마, 교양 강연 등 다양한 콘텐츠가 많은 사용자들에게 골고루 인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오디오가 최근 젊은층에게 새로운 콘텐츠 소비 방식으로 각광받는 배경에 대해 전문가들은 최근 인공지능(AI) 스피커, 무선 이어폰 등 전자 기기의 보급과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한다. 무선기기와 블루투스 등 기술의 발달로 자유로운 오디오 콘텐츠 청취가 가능해지며 멀티태스킹이 일상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오디오 콘텐츠는 화면에 집중해야 하는 사진·영상 콘텐츠와 달리 이용자의 움직임에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 실제 지난해 네이버 오디오클립이 오디오북이나 팟캐스트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7%가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점’을 오디오 콘텐츠 선호 이유로 꼽았다. 코로나19 확산 장기화 국면도 오디오 콘텐츠 소비를 촉진하고 있다. 사람들이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단순 정보 전달부터 우울감 등 코로나 블루 해소 목적으로 오디오 콘텐츠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또한 최근의 오디오 콘텐츠는 쌍방향 소통을 지원하는 경우가 많아 기존 사진·영상 콘텐츠에 지친 이용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도 매력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은 보고서에서 클럽하우스의 인기에 대해 “뉴노멀 시대 오디오 포맷 기반의 새로운 비대면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하는 계기”라고 평가했다. 일부에선 온라인 화상회의 피로증후군으로서 ‘줌 피로(Zoom Fatigue)’ 현상이 언급되고 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이미지와 비디오 기반 소셜미디어가 포화 상태에 달한 점도 지적됐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형식의 소통에 대한 사용자 수요가 증가하면서 오디오 서비스의 잠재력이 주목받고 있다. 오디오 서비스는 동영상과 달리 들으면서도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서비스 유료화와 광고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은 “오디오 서비스는 편의성과 경제성 측면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다양한 속성 조합으로 새로운 혁신 서비스가 개발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클럽하우스는 어떤 서비스?] 초대장 받거나 기존 가입자 ‘동의’ 받아야
클럽하우스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우선 초대장을 받고 앱을 설치한 뒤 입장해야 한다. 초대장이 없는 경우엔 앱을 먼저 설치한 뒤 기존 가입자의 ‘동의’를 받으면 된다. 가입은 간단하다. 전화번호를 입력하고 받은 코드번호를 공란에 넣은 뒤 안내에 따라 프로필을 채워 넣으면 된다. 가입 과정에서 여행, 정치, 음악, 책, 영화, 종교 등 관심 있는 주제를 고르면 알고리즘이 대화방을 추천한다. 클럽하우스의 방에는 사회자(Moderator)와 소수 운영진 등 연사(Speaker)들이 있다. 사회자는 대화를 중재하기도 하고, 청중에게 발언권을 부여하는 등 주도적 역할을 한다. 연사 아래는 이들이 팔로하는 청중(Followed by the Speakers)이 있다. 청중은 화면 하단 오른쪽의 ‘손바닥’ 버튼을 눌러 발언 권한을 요청할 수 있다. 사회자의 허락이 있으면 연사의 위치로 올라와 발언 기회를 얻는다. 방을 떠나고 싶으면 화면 하단 왼쪽의 ‘손가락 브이(Leave Quietly)’ 버튼을 누르고 나온다. 대화방을 개설하고 사회자로 활동하는 등 적극적인 이용자에게는 새로운 사용자를 불러올 수 있는 초대장이 추가로 주어진다.
[김병수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7호 (2021년 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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