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경영 성공비결과 혁신방향 | 스피드·사람 중심·도전정신… 경쟁력의 원천, 글로벌 강자 부상 한국 기업 ‘히든카드’ 살려라
입력 : 2021.01.27 15:58:30
-
2020년 한국 경제의 기틀을 닦은 재계 거목들이 잇달아 세상을 뜨며 1·2세대 기업인들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지난해 10월 25일 별세했다. 이건희 회장은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고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이병철 회장이 타계한 이후 1987년 12월 삼성그룹 회장 자리에 올랐다. 이후 반도체 사업 등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글로벌 무대에선 다소 뒤처지던 삼성전자를 명실상부한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키워냈다.
이에 앞서 지난해 1월 19일에는 한국 재계의 마지막 1세대 경영인이자,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이 타계했다. 신 명예회장은 창업 1세대 기업인으로 선구적인 안목과 헌신을 통해 롯데를 국내 최고 유통·식품 회사로 성장시켰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서비스·관광·석유화학 분야로 사업 범위를 넓히며 다양한 영역에서 대한민국 산업의 기틀을 닦았다.
왼쪽부터 김연성 인하대 경영학과 교수,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장, 김성회 숙명여대 겸임교수, 유규창 한양대 경영대학장, 홍기영 매일경제 월간국장, 문형남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주임교수.
국내 주요 그룹의 역사는 대부분 반세기가 넘으며, 이들은 1960년대 이후 세계 최빈국이었던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오르는 격동의 성장 시기를 함께해왔다. 이처럼 한국 경제의 고도 성장기 ‘한강의 기적’을 선두에서 이끌고 산업계의 기틀을 닦은 재계 1·2세 세대가 퇴장하면서 이들의 기업 경영 방식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소위 한국형 기업 성장 방식인 K경영이다. 과거 문어발 확장, 정경유착 등 비판의 단골 소재였던 한국 대기업의 경영 방식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높았다면, 최근에는 발 빠른 의사결정과 디지털 전환 성공 등이 주목받는 모양새다.
<매경LUXMEN>에선 3월호부터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등 주요 대기업들의 경영성과와 과제를 짚어보는 K경영 시리즈를 준비 중이다. 이번호에선 시리즈 시작에 앞서 주요 필진들이 참석하는 좌담회를 기획했다. 좌담회는 더 진솔한 이야기를 이끌어내기 위해 격식을 배제한 편안한 분위기에서 홍기영 국장 주재로 진행됐다.
▷김기찬 교수 : K경영은 상품성이 있다. 수년 전 싱가포르 난양공대에 갔을 때다. 삼성과 현대차 그룹의 경영 방식에 대해 스탠퍼드대 학생들에게 강의했다. 다양한 학생들이 한국 기업의 경영에 관심이 많았다. 2018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돈을 많이 번 민간 기업은 애플이고, 2등이 삼성전자다. 한국 기업이 어떻게 많은 수익을 내는지 설명해줘야 한다. 우리가 흔히 삼성에 대해 얘기할 때 가장 큰 경쟁력이 ‘빨리빨리’를 강조하는 스피드 경영이다.
K경영의 본격적 출발점 중 하나는 1983년 한국 반도체 사업의 시작이다. 반도체의 시작과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반도체에 대한 선제적 투자가 중요했다. 누가 빨리 투자하느냐의 싸움에서 한국이 일본보다 빨랐고, 결국 반도체 사업 역전에 이르렀다. 한국의 경영학은 미국에서 들여와서인지 외부에서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정작 가르치지 않고 있다.
▷김연성 교수 : 2019~2020년 우리 10대 대기업에 대해 나온 책을 살펴봤다. 삼성, 현대차 등 다 합쳐도 미디어 추천도서가 11권에 불과했다. 그나마 기업경영에 관해 본격적으로 다룬 책들도 아니다. 상품성이 있는 한국 경영에 관한 책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형 경영의 확립이 중요한 이유다. 바닥에서 출발해서 특정분야에서 글로벌 1등 내지는 근접한 실적을 내는 기업들에 대해 학문적, 역사적 관점에서 어떠한 위기를 극복했는지, 미래사업과 신규시장을 어떻게 개척해 나가는지 등 키워드를 꼽아봐야 할 때다.
김기찬 가톨릭대 교수, 김성회 숙명여대 겸임교수, 김연성 인하대 교수
▷김성회 교수 : 한국형 경영의 특징으로는 리더의 주(主: 장기성과와 신속한 의사결정의 주도성), 관리자의 전문성과 열정을 다하는 충(忠), 일의 흥(興), 공동체의 정(情), 조직의 빠른 습(習)으로 요약된다. 산업화 이전 세대만 해도 한국적인 것에 대해 후지고 열등하다는 의식이 강했다면 산업화 세대는 열등감을 국수주의적인 포장으로 덮었다. 하지만 밀레니얼 세대에서 불고 있는 소위 K바람을 보면 애국심이나 열등감을 넘어서는 자존감, 명품의식, 국가 브랜드로 이어지고 있다. K경영이 어떤 DNA의 변화를 거치면서 현재에 이르렀는가를 살펴보는 게 의미가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유교 자본주의가 한 축이라고 본다. 유교 자본주의의 철학과 경영자들의 빠른 의사결정, 군자경영의 철학, 장사꾼이 아니라 사업가나 기업가가 돼야 한다는 의식 등이다. 삼성반도체가 초기에는 돈 먹는 하마였지만, 장기적 비전을 생각한 선행투자로 성공을 거뒀다. 오너 경영의 장점이다. 당장이 아니라 10년 후를 내다보고, 단순한 수치보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 가치를 생각하는 업의 본질을 따지는 게 K경영이다.
▷김기찬 교수 : 삼성을 예로 들면 임파워먼트(권한 부여)가 K경영의 대표적 속성이다. 이병철 회장이나 이건희 회장이나 “사람을 믿지 않으면 쓰지 말고, 쓰면 믿으라”고 강조했다. 임파워먼트를 잘한 덕분에 기업 경영에 속도가 난다. 믿고 맡기면 일을 재밌게 한다. 이것을 흥으로 얘기해도 좋다. 사람들은 2가지 경우, 급할 때와 재밌을 때 열심히 하게 된다. 재밌게 만들어주는 메커니즘이 한국에 있다. K경영은 이런 점에서 사람 중심이다. 한국 경영학 때문에 사람들이 행복해졌느냐가 중요하다. 사람을 희생하는 기업도 있지만, 사람들과 함께하는 기업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게 의미가 있다.
▷서용구 교수 :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0년부터 2020년 사이에 디지털 문명 문화를 따라잡은 빨리빨리 한국의 유목 문화가 디지털 전환기에 맞아 떨어졌다. 디지털 문명을 가능하게 하는 반도체, IT 인프라가 한국에서 빨리 자리 잡았다. 이 과정에서 전자상거래 세계 1위, 디지털 문명국으로의 전환이 한국에서 발생했다. 신선식품 당일배송, <기생충>, BTS가 가능했던 데에는 1970년대 이후 태어난 X세대가 주역으로 부상한 배경이 있다. 방시혁 대표나 봉준호 감독이 대표적이다. 세계에서 가장 세련된 디지털 생산물을 만들어 내지 않나. 한국의 X세대 이하는 우월감을 갖는다. 물적토대 변화는 삼성으로 대변되는 대기업들이 제공한 셈이다. K경영의 비밀을 풀어보는 작업은 한국 성공의 이면을 알아보는 열쇠가 된다.서용구 숙명여대 교수, 유규창 한양대 교수, 정연승 단국대 교수
▷김성회 교수 : 최근 기업경영과 자본시장에서 자주 회자되는 ESG와 연결성이 있다. 이병철 회장은 사업보국, 이건희 회장은 인류에 기여하자는 경영방침이나 윤리경영, 앞서 유교 자본주의는 환경, 사회적 책임 등을 따지는 ESG와 이어질 수 있다. 기업을 할 때 단순히 수익성에 치우치기보다 멀리 바라볼 필요가 있는데 이 역시 오너 경영과 상관관계가 있다. 얼마나 벌 것인가보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늘 생각하는 게 K경영의 핵심이다. 오너 경영, 유교 자본주의의 역기능을 없애면서 발전시킬 방법, 장점을 긍정적으로 발현시키는가가 미래 K경영의 과제다.
▷김기찬 교수 : 예전에는 혁신과 모방이 따로 있었다. 빨리 하면 혁신, 늦게 하면 모방이다. 결국 먼저 하는 싸움이 기업가 정신에서 중요했다. 이제는 모방과 혁신의 정의가 달라져야 한다. 시대를 앞서가는 전환적 기업가는 꿈을 따라간다. 최근에는 기업 경영에서 ‘꿈’이란 단어가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기업가는 꿈과 비전을 줘야 한다.
매경LUXMEN에선 3월호부터 삼성·현대차·SK·LG·롯데·포스코·네이버·카카오 등 한국형 성공 기업과 창업자들을 경영학적, 역사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K경영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독자들의 성원 부탁드립니다.
[대담 홍기영 국장 정리 김병수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5호 (2021년 2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