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뮬러E, 고성능 전기차 레이싱 대회… 내년 5월 잠실 도심서 ‘조용한 전쟁’이 열린다

    입력 : 2019.07.26 16:45:36

  • 지난 6월 22일(현지시간) 토요일 스위스 수도 베른. 고색창연한 중세 구도심을 감싸고 도는 아레강 너머 베른 엑스포 인근이 이른 아침부터 인파로 북적였다. 도심 전기차 경주대회 포뮬러E를 보기 위해 취리히 바젤 제네바 등 스위스뿐 아니라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영국 등 유럽 각지에서 몰려든 관람객들이었다. 이들은 주택가와 도심 곳곳을 막아 설치한 2.75㎞ 구간 곳곳에 서둘러 자리를 잡았다. 박진감 넘치는 포뮬러 머신의 질주를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보려는 관람객들은 삼삼오오 도로 옆에 모여 앉았다. 출발지점과 주요 포인트에 설치된 철제 스탠드는 값비싼 티켓 구매자의 몫이었다. 베른 구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관광명소 로젠가르텐(장미공원)의 대형 중계 스크린 앞은 피크닉을 겸해 아이들과 나온 가족들의 차지였다. 누군가는 탄성을 쏟아내고, 누군가는 맥주를 한 손에 든 채 웃음소리 가득한, 이날 베른 시내는 한바탕 축제를 즐기는 분위기였다. 이윽고 포뮬러E 레이싱카의 질주가 시작됐다. 곳곳에서 탄성이 나왔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 나오는 스포츠 캐스터의 독일어 중계 목소리는 박진감을 더했다. 포뮬러E는 바로 옆 목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굉음을 쏟아내는 전통적인 포뮬러 경주와는 사뭇 다른 흥미로운 경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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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뮬러E 레이싱카 동력은 전기 배터리

    포뮬러E 레이싱카는 동력원이 전기 배터리다. 레이싱카가 달릴 때마다 ‘위이잉’ 전기모터 소리와 바람을 가르는 ‘슁’ 소리가 뒤섞인 기계음이 귓가를 스친다. 천둥소리를 내며 질주하는 기존 내연기관 엔진 포뮬러 경주가 지극히 남성적이라면 포뮬러E는 여성스럽다. 그렇다고 긴장감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최고 시속 280㎞의 머신이 바람을 가르며 직선도로를 질주하거나 ‘끼이익’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아슬아슬하게 코너를 돌고 추월을 노리는 광경은 영락없이 TV에서 봤던 도심 포뮬러 경주와 닮았다.

    베른 대회에는 11개 팀 22명의 드라이버가 참여해 승부를 겨뤘다. 저녁 해가 뉘엿뉘엿 기울기 시작할 때쯤 시작된 결승전은 이날 경기의 하이라이트였다. 포뮬러E는 도시를 바꿔가며 하루 동안 예선과 결승을 모두 치르는데, 오후 늦게 벌어지는 결승전 경기에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린다. 결승전에선 출발신호와 동시에 앞다퉈 달려 나간 레이싱카들이 앞뒤로 줄줄이 충돌하면서 본격적인 속도를 내기도 전에 경기가 30분가량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다. 실격(1명)과 포기(4명)를 뺀 17명의 드라이버가 경기에 나서 마지막 진검승부를 겨뤘다.

    이날 하루 종일 펼쳐진 베른 대회는 PSA그룹의 프리미엄 브랜드 DS오토모빌의 레이싱팀 ‘DS테치타’의 장 에릭 베르뉴(Jean-Eric Vergne)가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베른 경기는 시즌5(2018~2019년)의 11번째 레이스였다. 작년 12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드 디리야(Ad Diriyah)에서 스타트를 끊은 이후 산티아고, 멕시코시티, 홍콩, 로마, 파리, 베를린 등 세계 각국 주요 도시에서 레이스를 벌여왔다. 시즌5의 마지막 경기는 7월 중순 세계 금융의 중심지 뉴욕 브루클린에서 펼쳐졌다.

    포뮬러E는 포인트를 종합해 시즌 최종 우승자를 결정하는데, 베른 대회 우승을 차지했던 DS테치타가 뉴욕 대회까지 모두 합한 최종 성적에서 222점으로 시즌5 우승팀으로 결정됐다. DS테치타의 장 에릭 베르뉴는 종합성적 136점으로 지난 시즌에 이어 챔피언 자리를 지켰다. 초기 단계지만 포뮬러E 역사상 최초의 2연승 드라이버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포뮬러E는 2014년 시작됐다. 100년 넘는 자동차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 해온 전통적인 포뮬러 경주 대회와 비교하면 이제 막 걸음마를 뗀 것이나 다름없다.

    피터 보저 ABB 회장(좌), 타락 메타 ABB 부회장(우)
    피터 보저 ABB 회장(좌), 타락 메타 ABB 부회장(우)
    ▶전기차 성능 좋아지면서 포뮬러와 접목

    포뮬러E의 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알레한드로 아각은 전기차 성능이 날로 향상되고 있는 만큼 자동차 레이스의 최고봉인 포뮬러와 접목해도 높은 관심을 끌 것으로 보고 대회를 창설했다. 포뮬러E가 첫 선을 보인지 불과 5년밖에 안됐지만 그의 예상대로 전기차 기술 진화에 힘입어 경기 수준과 인기는 하루가 다르게 높아졌다.

    2018~2019시즌에는 새로운 몸체와 배터리 파워를 장착한 2세대 차량 Gen2가 등장하면서 포뮬러E 경기의 수준을 한 차원 높였다는 평가다. Gen2는 최고 출력 250kW, 최고속도는 280㎞/h(174mph)에 달하는 혁신적인 전기차 모델이다. 시속 100㎞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2.8초에 불과하다. 기존 1세대 경주차의 최고속도가 225㎞/h에 불과하고, 최고 출력도 200kW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진보다. 전기차 배터리 성능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던 초기 경주에서는 풀코스 완주를 위해 차량을 바꿔 타야 했지만, 배터리 기술이 날로 진화하면서 이제는 차량 교체없이 45분간의 경기를 완주할 수 있게 됐다.

    신형 차량의 차체는 탄소섬유와 알루미늄으로 제작했다. Gen2의 드라이버 포함 최소 중량은 900㎏(배터리 무게 385㎏)이다.

    물론 배터리 성능이 내연기관과 비교하면 여전히 뒤져 있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엔진과 다름없는 배터리 성능이 제한적이라는 점은 자동차 경주대회에서 상당한 약점이지만 주최 측은 이를 흥행을 위한 요소로 탈바꿈시키는 발상의 전환을 했다. 생소하지만 알고 보면 재미있는 포뮬러E의 ‘어택 모드’와 ‘팬 부스트’라는 규정이 탄생한 배경이다. 포뮬러E에 참가한 경주차의 최고 출력은 250kW지만, 경기중에는 200kW까지만 낼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어택 모드’와 ‘팬 부스트’라는 규정을 통해 각각 25kW의 추가 출력을 제공해 추월 등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베른 경기의 경우 2.75㎞의 레이스 구간 중 특정 구간은 ‘어택 모드’로 지정돼 있다. 이 구간을 통과할 때 레이싱카는 25kW의 출력을 추가로 얻게 된다. 배터리 출력을 추가로 얻는다는 것은 그만큼 가속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각 팀은 어택 모드를 적절히 활용하며 필승 전략을 세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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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 부스트(Fan Boost)는 팬 투표에서 상위 5위 안에 드는 드라이버에게 어드밴티지를 주는 것이다. 관람객과 열성팬들의 참여를 유도해 포뮬러E의 대중화를 확산시키려는 의도에서 고안한 것이다. 포뮬러E 홈페이지와 트위터, 앱 등에 마련된 팬 부스트에서 좋아하는 드라이버에 투표를 하면 간단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해놨다. 상위 5위에 포함된 드라이버에는 레이스 후반부에 5초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25kW의 출력을 추가로 받게 된다. 이 역시 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어드밴티지를 주는 것을 의미한다.

    맹수처럼 추월하고 내달리는 기존 포뮬러1 대회와는 달리 게임과 같은 아기자기한 요소를 곳곳에 넣은 것이다.

    포뮬러E 경기 중계 화면에는 각 차량의 배터리가 얼마나 남았는지를 보여준다. 마지막 바퀴에 접어들어 파이널 지점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차량의 배터리는 2~3% 정도만 남아있다. 배터리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해 경주를 하느냐가 중요한 전략 가운데 하나다.

    포뮬러E 조직위는 대회 기간 동안 베른 엑스포에서 이번 대회 참여 레이싱카의 정비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이벤트도 마련했다. 관람객들이 포뮬러 레이싱카의 분해 정비 과정을 지켜보면서 전기차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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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차 메이커들이 참여하는 중요 이벤트로 자리 잡아

    포뮬러E는 전통적인 포뮬러 경주와 비교하면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낯선 경기지만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에게는 반드시 참여해야 할 중요한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시작된 지 5년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단기간 내에 비약적인 성장이다.

    2018~2019시즌에는 아우디, BMW, 마힌드라, 재규어, 닛산 등 쟁쟁한 글로벌 자동차 기업이 상당수 참여했다. 올해 하반기에 시작하는 시즌6(2019~2020년)에는 메르세데스 벤츠와 포르쉐가 합류해 명실상부한 글로벌 대회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포뮬러E의 드라이버 역시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포뮬러1에서 활약한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 꽤 있다. 그만큼 인기가 높아지고 있고, 앞으로 더 성장할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느끼고 있다는 의미다. 이처럼 전 세계 각 도시를 순회하며 전기차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포뮬러E 경기를 내년에는 서울에서도 직접 관람할 수 있다.

    포뮬러E 코리아는 내년 5월 3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6번째 시즌의 10라운드 대회를 열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시즌6에는 4개 대륙 12개 도시에서 모두 14번의 경주가 진행되는데, 이 가운데 10번째 대회 장소로 서울이 선정된 것이다.

    시즌6는 올 11월에 사우디아라비아를 시작으로 칠레 멕시코 홍콩 로마 파리 서울 등을 돌며 진행된다. 포뮬러E 대회는 전 세계 모터스포츠 팬들에게 중계되는 빅이벤트이기 때문에 서울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포뮬러E 서울대회 조직위원장에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을 역임했던 이희범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맡았다.

    이희범 위원장은 최근 포뮬러E 서울대회를 알리는 행사에서 포뮬러E 경기를 통해서 미세먼지 등 환경 파괴 예방과 전기차 산업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의미를 전했다. 아울러 일본과 중국의 골든위크 휴가기간 내 한국에서 포뮬러E 행사를 개최해 외국인 관광객 유치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내다봤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포뮬러E 서울대회 개최로 일자리 효과는 물론 4000억원 이상의 경제효과가 창출될 것으로 추산했다.

    포뮬러E의 인기는 대회를 스폰서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면면에서도 드러난다. 대회의 공식파트너에는 보쉬 BMW와 같은 자동차 관련 기업뿐 아니라 태그호이어(TAGHeuer), DHL, 하이네켄, 알리안츠 등이 참여하고 있다. 스위스 대표기업인 ABB는 지난해부터 이 대회의 타이틀 스폰서를 맡고 있다. 포뮬러E 경기의 정식 명칭은 ‘ABB 포뮬러E 챔피언십’이다. ABB가 막대한 돈을 투입해 포뮬러E 스폰서로 나선 것은 e모빌리티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것이다. 전체 매출의 4분의 1가량을 차지하던 알짜사업인 송배전 사업까지 일본 히타치에 매각한 ABB는 산업자동화, 모션, 로봇, 전기화 등 4가지 분야를 미래 e모빌리티를 이끌 핵심으로 보고 전사적인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특히 전기차 인프라의 핵심인 충전 인프라 시장에서 ABB는 이미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스위스 베른에는 일반 버스가 정류장에 정차하는 동안 버스 지붕을 통해 3~4분 만에 급속 충전을 하는 ABB의 충전 인프라가 상용화돼 운영되고 있다.

    ABB는 또 포르쉐 최초의 순수전기차인 타이칸의 인프라를 제공하기 위한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포르쉐는 지난 7월 중순 뉴욕에서 열린 포뮬러E 최종 대회에서 타이칸 프로토타입의 마지막 시험 주행을 실시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스위스 베른 = 황형규 매일경제 산업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7호 (2019년 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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