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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세 낭비하는 공공기관 앱 사라질까?
입력 : 2015.06.12 14: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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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중앙기관에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개발 바람이 불었던 것은 2012년도였다. 정부중앙기관의 58.4%가 2012년과 2013년 사이에 181개의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다.
문제는 다수의 앱이 유명무실하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살펴보면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육개발원이 학교 현장 관련 통계 앱은 매년 하나씩 늘어난다. 한 앱에서 연도별 메뉴로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나 해마다 새로운 앱을 만들어 비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강원도가 개발한 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관광 앱으로 통합해 운영하는 것이 효율적이나 현재 맛집, 숙박, 특산품 등을 모두 따로 만들어 놨다. 강원도청은 독특하게 독자적으로 ‘토스트 맛집’앱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국민안전처의 경우도 안전디딤돌과 119신고 등 공식 앱만 4개다. 긴급번호는 통합돼 있지만 앱의 경우 범죄신고 와 화재신고를 따로 하도록 되어 있다.
수요가 확인되지 않은 채 양산되는 앱들도 다수다. 현재 공공기관이 제작한 앱의 이용현황을 살펴본 결과 1만회 미만인 경우가 80%에 육박한다. 보통 애플리케이션 산업에서 다운로드 1만회는 편의성과 시장성의 바로미터로 본다. 5000회 미만인 것이 70%, 1000회 미만도 절반 가까이 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7600만원을 투입해 ‘식품이력추적관리앱’을 개발했지만 다운로드 수는 700회에 그치고 있다. 환경부가 만든 한 어린이 관련 앱은 최근 3년간 고작 20여 명이 내려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외에도 각 시·군·구청 홍보 앱이나 이미 완료됐지만 삭제하지 않아 방치되고 있는 앱들도 다수다.
문제는 이러한 ‘유령앱’을 개발 유지하는 데 혈세가 낭비된다는 사실이다. 통상 앱 하나를 만들어 유지하는 데에는 평균 1개당 개발비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이 소요된다. 연간 유지비도 수백만원이 소요된다.
바른사회시민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까지 가장 많은 비용을 들여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한 미래창조과학부는 총 17개의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고 여기에만 88억3580만원을 들인 것으로 조사됐다. 앱 1개를 개발하는 데 5억원 넘게 든 셈이다.
애플리케이션을 가장 많이 개발한 정부기관은 28개를 개발해 보유하고 있는 교육부로 나타났다. 단일 앱당 비싼 개발비를 지불한 곳으로 법원행정처를 빼놓을 수 없다. 단 3개의 앱을 개발하는 데 7억여 원을 투입했다. 개당 2억원이 넘는 가격이 책정됐다. 앞서 가장 많은 앱을 개발한 것으로 지적했던 교육부는 개당 5천만원 정도의 개발비가 들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 정부기관 교육관련 앱 유지 담당자는 “지금도 일선 부서들은 경쟁적으로 앱을 만들어내려고 하는 분위기”라며 “예산을 따내기 쉽고 앱개발 자체가 실적과 연관되기 때문에 부서장으로서는 개발 실적이 없으면 승진 등에 밀릴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가지게 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행자부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공무원들이 앱을 만들어 보여주며 성과를 표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스마트폰 시대로 접어든 이후 유행처럼 앱을 개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제약이 전혀 없었다”며 시인했다.
허술한 예산관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 공공기관이 1억원이 넘는 정보화 사업에 대해서는 안전행정부와 사전협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앱 개발 사업은 그 이하의 예산을 신청하기 때문에 공공기관이 직접 기획재정부에 예산만 신청하면 가능했다. 안행부가 지난 2011년 ‘모바일 서비스 관리지침’을 발표해 앱 개발 사업은 모바일 전자정부지원센터와 협의해 진행토록 했지만 이 역시 가이드라인에 불과해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각 기관에서 앱을 만든다고 해도 이를 검증하고 평가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었다”며 “사용자 편의와 무관하게 만들어지는 앱을 개발단계부터 막기 위한 제도를 만들 것이며, 효용가치가 떨어지는 앱에 대해서도 통합, 폐기 작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먼저 정부는 내려받기 실적이 저조해 다운로드 건수가 1000건 이하인 모바일 앱을 퇴출시키기로 결정했다. 이용이 많은 인기 서비스라도 민간 시장이 충분히 활성화된 분야의 경우 단계적으로 없애거나 기본 서비스에만 집중하고 부가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계획이다.
국토교통부가 만든 3차원 입체 지도 서비스인 브이월드 앱이 활용률이 떨어져 폐지되는 대표적인 앱이다. 이러한 앱을 폐지하는 대신 원천데이터는 공개해 민간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기상청의 날씨 앱과 특허청 특허검색서비스 앱도 시범 폐지 대상 앱으로 꼽혔다. 행자부는 폐지 대상 앱이 300개 정도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가 다운로드 수를 평가기준으로 제시하자 몇몇 기관들은 공무원과 그 가족·학생 등을 동원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공무원 A씨는 지난 3월 관계기관이 개발한 앱을 설치하라는 지침을 받았다. 1인당 10인 이상 다운로드를 권유하고 증명을 위해 다운로드 캡처 화면을 제출해야 했으며 얼굴을 촬영해서 설치 완료를 보고하지 않으면 업무나 근무평가에 불이익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이용률이 저조한 공공기관 앱의 폐지를 우려해 가입 인원을 급하게 확대하기 위한 ‘꼼수’였다. 약 1년 전에 개발된 이 앱은 가입자 수가 1000명에 훌쩍 미치지 못했다. 울며 겨자먹기로 가입을 위해 접속한 앱은 문제투성이였다. 복잡한 인증절차는 번번이 오류가 나서 앱이 종료되기 수차례였던지라 가입을 완료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할애돼 불만이 커졌다. 결국 앱의 리뷰란과 온라인 커뮤니티엔 이를 비판하는 글이 수십 개가 게재됐다.
민간 앱 베끼기 관행 없어져야 우후죽순 늘어난 공공기관의 앱이 민간 서비스나 애플리케이션과 유사하거나 대놓고 모방했다는 논란도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10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정보센터가 문화포털 서비스 개선 작업에 나서며 일부 스타트업이 출시한 서비스와 유사한 기능을 추가하면서 마찰을 빚은 바 있다. 한국문화정보센터는 당시 ‘문화포털, 생활밀착형 맞춤 문화정보서비스’ 구축에 나섰다. 이는 지난 2011년 공공문화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문화포털’을 구축한 이후 추가 개선 작업인 꼴이었다는데 문제는 당시 개발돼 시장에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던 민간 앱들과 기능이 상당부분 겹친다는 점이었다. 센터가 개편한 ‘문화향유 공간 종합 안내 서비스’, ‘문화자원봉사, 인디, 아마추어 공연단체 지원 서비스’ 등은 ‘온오프믹스’, ‘인디스트릿’ 등 스타트업 업체들이 선보인 서비스와 별 차이가 없었다. 이 같은 내용이 페이스북과 주요 인터넷 사이트에 퍼지면서 정부와 관계단체를 비판하는 여론이 형성됐다.
이에 대해 인디스트릿 관계자는 “정부가 민간 시장에서 존재하는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건 중복투자며 예산낭비 골목 상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비판여론이 심해지자 결국 문화정보센터의 앱 개편에서 민간과 중복되는 기능은 백지화됐다.
지난해 중소기업청 산하 창업진흥원의 ‘공공·민간의 앱 중복개발 현황 및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민간 앱 개발사 179개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공공기관 앱으로 인해 향후 경영상 피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의견이 전체 응답자의 69.3%인 124명이나 됐다.
한 민간 앱 개발사 대표는 “민간위원회와 같은 전문가 집단을 구성해 공공기관이 앱을 만들 때 민간 앱과 기능이 중복되거나 시장을 침해하지는 않는지 사전에 점검할 수 있는 민관합동기관이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법제화에 나섰다. 올해 말까지 민간시장 교란을 막기 위해선 ‘공공데이터의 제공 및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공공데이터법)’을 개정해 민간침해 제한 및 유사·중복 서비스 정비 의무규정을 명시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공공기관이 소프트웨어·모바일앱을 자체 개발하는 대신 우수한 민간제품을 구매함으로써 관련 분야의 창업 촉진을 간접 지원하기로 했다.
향후 공공 앱 개발도 재난안전·복지·의료 등 공공성이 강한 분야로 최소화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공공데이터법을 개정해 공공기관들로 하여금 민간과 유사하거나 중복성이 높은 공공데이터 기반의 서비스를 자체 점검·정비하도록 의무화할 계획이다. 국가대표포럼(Korea.go.kr)에 기관별 공공앱을 등록하도록 의무화해 중복 개발을 방지하고, 3년 단위로 운영 성과를 평가해 통폐합 등 정비를 상시화하는 한편 다운로드·이용고객 등 운영 실태도 공개하도록 할 계획이다.
정종섭 행자부 장관은 “민간 창업을 촉진하기 위해 민간서비스와 유사한 정부 앱은 과감하게 정비해 나갈 것”이라면서 “국민과 기업이 필요로 하는 데이터 개방을 확대하고 창업도 적극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7호(2015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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