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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걸 기자의 Blue House Diary] 존댓말 쓰는 김기춘에서 반말 쓰는 이병기로
입력 : 2015.04.03 15: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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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댓말 쓴 김기춘, 반말 쓰는 이병기
지난 2월 27일 청와대 비서실장 교체 이후, 이병기 실장의 청와대는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극에서 극으로 변한 것 같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이다. 최근 한 수석비서관이 김 전 실장 당시 하던 대로 보고서를 들고 실장방에 들어가 보고했다. 직통라인인 비서실장을 통해 대통령에게 보고하려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 실장은 대뜸 “당신이 직접 대통령께 (보고)해”라고 했다고 한다. 해당 수석비서관이 시키는 대로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한 후 돌아오자 이 실장은 “별 문제없이 잘 보고했지?”라고 물은 뒤 “앞으론 그렇게 (직접 대통령에게) 보고해. 왜 자네 스스로 소통에 장벽을 치나”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들이 변하는 청와대의 분위기를 대변해 준다. 직원들은 물론 외부와도 격의 없이 열려 있는 이 실장의 모습은 분위기를 바꿨다.
며칠 전엔 청와대가 민방위 훈련을 할 때 이 실장이 직접 나서 직원들 앞에서 심폐소생술을 하기도 했다. 자진한 것은 아니었으나 훈련교관이 맨 앞줄에 있던 김 실장에게 ‘나와서 한번 해보시겠냐’고 하자 흔쾌히 나가서 의식 확인, 가슴 압박, 인공호흡 등의 시범을 직접 보였다. 이 자리에서 이 실장은 “시간이 되는 대로 청와대의 모든 행정관들과 적어도 식사는 한 번씩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실장의 화두는 결국 ‘소통’으로 정리된다. 다른 건 몰라도 소통 행보 하나는 확실히 인상을 남겼다.
부임 직후 “내 방은 항상 열려 있다. 비서관이든 행정관이든 언제든 들어와서 말하라”고 했다고 한다. 김기춘 전 실장 때는 주로 수석들이 비서실장에게 보고하고 비서관과 행정관은 수석에게 보고하는 위계질서가 확실했지만 이 실장은 “내 방은 수석들만 들락거리라고 만들어놓은 방이 아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특히 수석비서관의 대통령 대면보고를 늘리기 위해 “(대통령께 수석비서관들) 보고를 막(마구) 올려 보내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실제 수석들은 이 실장 부임 이후 직접 보고하거나 두세 명씩 올라가서 함께 대통령과 토론을 하는 일이 잦아졌다고 한다. 이는 올초 신년 기자회견에서 논란이 됐던 ‘대면보고가 없다’는 논란을 신경 쓴 처사로도 보인다.
▶사람들 시선 피할 정도로 몸 낮춰
소통은 분명히 훨씬 활발해졌지만 이 실장이 본인의 몸을 낮추는 것은 철저하다. 언론과의 잦은 접촉에도 불구하고 임명 직후 본인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자 청와대 직원들에게 “원래 비서(실장) 기사는 손바닥만 하게만 나와야 하는데”라고 부담스러워했다고 한다. 최근 이 실장은 대통령을 대신해 한 호텔에서 열린 공개행사에 참석했는데 고위 공무원 등 각계 참석자들이 모두 차를 타고 문 앞에서 내려 들어오는데 이 실장은 비서 한 명만 대동한 채 호텔 정문 한참 전에서 내려 사람들 눈에 안 띄게 조용히 옆으로 돌아 들어왔다. 정문 앞에 몰려 있는 영접 인파를 피하려는 것이었다.
지난 3월 17일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간 첫 3자회동은 소통을 강조해온 이 실장의 진가가 드러난 현장이었다. 3인 회동은 103분간 진행됐지만 이병기 비서실장이 남아 2시간 가까이 양당 대표들을 붙잡아놓고 합의문을 조율한 이례적인 풍경이 노출됐다.
결국 합의문은 여야와 청와대 명의로 함께 발표됐다. 이 실장은 김무성 대표가 사석에선 ‘형님’이라고 부르고 만나면 수시로 귓속말을 주고받는 사이다. 2002년 한나라당 이회창 대선후보 캠프에서 이 실장은 정치특보, 김 대표는 비서실장이었다.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엔 김 대표가 사무총장, 이 실장은 여의도연구소 고문이었고 2007년 대선 때는 이 실장이 박근혜 캠프 선거대책 부위원장, 김 대표가 조직총괄본부장이었다. 오랫동안 쌓여온 두터운 믿음이 2시간을 끌며 결국 합의문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이 실장이 취임 직후인 지난 3월 초 국회로 김 대표를 찾아갔을 때 김 대표는 환한 표정을 지었다. 김 대표는 “흔히들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고 하지만 이번엔 장고 끝에 홈런을 친 것 같아 마음이 참 푸근하다”고 환영의 뜻을 밝힌 바 있다.
▶부하직원 ‘압도’…취임 후 크게 질책도
이 실장은 이런 유연한 스타일이지만 부임 직후 하루 만에 청와대 비서실을 ‘꽉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기춘 전 실장이 검찰총장-법무부 장관에 3선 의원이라는 화려한 경력을 바탕으로 국정기획-민정-정무를 아우르는 카리스마를 발휘했다면, 이 실장은 역시 정치권의 오랜 경력과 주일대사-국정원장까지 지낸 경험으로 정무-외교-통일-민정을 장악했다는 평이 나온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라든가 ‘권한위임으로 자율성을 높였다’는 등 수천 가지 분석이 나오지만 결국 이유는 단 하나다. 그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이다. 그건 김 전 실장 때나 다름없는 포인트다.
청와대와 가까운 한 여권 관계자는 “이병기 비서실장 인선이 잘됐다고 평가하는 이유는 소통이나 업무에 관한 점만은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박 대통령에게 신임을 받는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아무리 능력이 출중하더라도 박 대통령과 스킨십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이미 또 ‘문고리 3인방에게 밀렸다’거나 ‘알력이 있다’는 얘기가 나왔을 것이다. 그런 소문을 잠재우는 건 무엇보다 이 실장 본인이 박 대통령과 막역하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미 많이 알려졌다시피 이 실장은 박 대통령과 25년 이상 인연을 맺고 있다. 노태우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의전비서관-의전수석까지 지냈던 그는 1988년 당시 노 전 대통령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 유족을 돌보시라”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 전 대통령이 박 대통령을 청와대로 불러 위로했고 이 실장이 청와대 안내를 맡아서 했다. 이후 설이나 추석 명절 때마다 대통령을 대신해 인사를 전하며 관계를 유지해왔다. 박 대통령은 이후 정치를 시작했고 2002년엔 이 실장을 찾아 조언자 역할을 부탁하면서 본격적인 참모 역할을 하게 된다. 지난 2004년 당 대표 선거 때 ‘차떼기당’ 오명을 쓴 한나라당 대표를 맡은 박 대통령에게 ‘천막당사로 옮기자’는 아이디어를 냈던 것도 그였다.
사실 웬만한 사람들은 이른바 ‘3인방’으로 불리는 이재만 총무, 정호성 1부속, 안봉근 국정홍보 비서관과의 인연을 능가할 수 없다. 이들은 박 대통령이 1998년 실시된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에서부터 시작해 17년 동안 동고동락한 사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정윤회 문건유출 파동’과 같은 난맥상이 등장했다는 분석이 있다. 훌륭한 인사가 오더라도 3인방이나 정윤회 씨보다 박 대통령과 가까워질 순 없다고 대중들이 쉽게 생각해버리기 때문이란 것이다. ‘물리적인 시간의 깊이’를 고려한다면 그런 생각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실장은 사실 이들보다도 박 대통령과 더 긴 인연을 맺고 있으니 그런 의혹의 여지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직언하는 참모’ 역할 할까
이 실장이 소통에만 능한 것이 아니다. 참모로서 직언이 가능한 사람이란 분석은 눈에 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지난 2012년 10월 대권경쟁이 절정일 때 인혁당·정수장학회와 관련된 박 대통령의 발언이 논란이 되자 ‘두 문제는 확실히 매듭을 짓고 가야 한다’고 진언한 참모가 바로 이병기 실장이었다”고 말했다.
잘못된 일을 지적할 때는 불같이 화를 내는 구석도 있다고 한다. 최근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된 직후 이 실장은 국정원장 시절 인사문제 등을 ‘꼬이게’ 만들었다고 알려진 한 청와대 인사를 박살냈다고 한다. 이 인사는 청와대 내에서는 박 대통령의 신임이 각별하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이 실장은 국정원장에 재임하던 7개월 동안 예기치 않았던 주요 보직 국장 교체와 기조실장 사퇴와 번복의 해프닝 등 3~4차례의 커다란 인사파동으로 애를 먹었다. 일각에선 ‘이병기 국정원장은 허수아비고 청와대의 신임을 못 받는다’는 식의 소문이 국정원에 돌 정도였다.
이 실장은 당시의 난맥상에 대해 지적하고 크게 질책했으나 마지막엔 “단지 나는 지나간 일은 잊어버릴 테니 구애받지 말고 엄정하고 똑바로 일처리를 하도록 하라”며 사실상 사면하고 신임을 줬다고 한다. 이 모습을 지켜본 청와대에선 이 실장의 ‘대인배’적 풍모에 놀랐다는 반응도 나왔다.
※ 55호에서 계속... [사진 김재훈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5호(2015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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