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걸 기자의 Blue House Diary] 1월 12일 朴 신년 기자회견의 재구성

    입력 : 2015.02.06 16:4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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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로 보던 시청자들은 아마 보지 못했을 것 같다. 기자회견의 중계 화면은 주로 상체만 비추기 때문이다. 오전 11시 11분이 되자 박근혜 대통령은 오른쪽 다리를 굽히고 연설대에 상체를 기댔다. 10시 1분에 기자회견을 시작했으니 70분 동안 꼿꼿하게 서 있었던 것이다. 힘들만도 했다. 박 대통령은 회견 전반부에서 25분간 신년 구상을 밝힌 직후, 기자들로부터 “정윤회 문건과 관련해 인적쇄신 계획은 없느냐”는 강공을 받아야 했다.

    시작부터 머리칼이 곤두서는 질문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40여 분간 시달려서인지 이제 환갑을 훌쩍 넘은 박 대통령(1952년 2월생, 우리 나이로 63세)은 그 즈음부터 이른바 ‘짝다리’로 오른쪽 왼쪽 다리를 번갈아 지탱하며 연설대에 기댄 채 질의응답을 이어갔다.

    지난 1월 12일 열린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은 박 대통령이 취임 이후 두 번째 갖는 기자회견이었다. 특히 첫해와 달리 ‘까칠한’ 질문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대통령이 연설대에 기대는 순간, 김기춘 비서실장이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김 실장은 대통령을 수행하고 회견장에 들어와 정좌한 후 90분 내내 단 한 번도 시야를 돌리지 않고 정면을 응시했다. 2미터 앞의 기자단과 단 한 차례도 눈을 마주치거나 흔들리기조차 하지 않았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 잠깐의 순간 초점이 흔들렸다. 모든 주파수가 대통령에게 맞춰져 있는 게 느껴졌다.

    ▶朴 ‘쌍방향 소통’ 2년 중 오직 두 번

    박 대통령이 이 같은 ‘리얼’한 ‘쌍방향 소통’을 한 것은 취임 이후 2년간 단 두 번뿐이다. 그런데 첫해 기자회견은 질문을 거의 파악해 답변을 준비했다. 그러니 질문을 미리 공개하지 않은 이날은 상당히 긴장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내용을 떠나 분위기로만 보자면 기자회견은 의외로 성공적이었다.

    일단 초반부터 기자들의 질문 공세를 받으면서도 김기춘 실장과 비서관 3인에 대한 해명 등 할 말은 다했다. 말을 약간 더듬긴 했지만 회견 내내 특유의 카리스마를 충분히 발휘해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심지어는 질문한 기자에게 “출입기자가 그것도 모르냐”는 농담조 핀잔까지 하면서 주도권을 놓치지 않았다. 기자단은 어색한 웃음으로 화답했지만 공개적인 핀잔을 당한 순간 이미 기싸움에서 밀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박 대통령은 노련하게 민감한 질문은 최대한 피하거나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기자단은 두 번째 질문에서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회장’에 대해 분명히 질문했으나 대통령은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 기자의 산케이보도 등 언론 상황에 대한 질문도 통진당 해산 등 보안법 관련 답변에 묻어버리고 그냥 넘어갔다.

    물론 깜박 놓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상당 부분 의도적이고 노련한 대응으로 분석된다. 실제 박 대통령은 회견을 마친 후 중앙기자실을 찾아 환담하던 중 한 기자가 “본인이 평가한 소통 점수를 여쭤봤는데 대답을 안 하셨다. 몇 점이나 주시겠냐”고 묻자 웃으며 “그런 거는 그냥 그렇게 모호하게 답하고 끝내는 거다. 모호하게”라고 답했다. 박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왜 세월호 유족을 만나지 않았나.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질문이 나오는 동안 내내 어색한 쓴웃음을 짓다가 “본인의 소통 점수는 몇 점이냐”고 묻자 기분 나쁜 듯 아예 대답을 하지 않고 넘어갔었다. 프라이버시가 관련되는 대답 등엔 굳이 대답하지 않겠다는 나름의 ‘전략(?)’이 느껴진다.

    ▶靑 일각 “인적쇄신 답했다” 강조 요청도

    청와대 참모들이나 내각 인사들도 회견 이후 “기대보다 잘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문제는 분위기가 아니라 답변 내용이었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답변은 국민들의 평가와는 간극이 있었다. 청와대는 회견 직후 직원들을 통해 기자단의 평가를 일일이 받아보더니 오후엔 분위기가 급변했다.

    결정적인 부분은 ‘인적쇄신 요구’를 대통령이 딱 잘라 거절한 대목이다. 청와대 내부 평가 결과 이 답변은 지지도를 깎아내릴 것이란 분석이 대두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오후부터 청와대 일부에선 “대통령이 김기춘 실장 교체를 예고하며 인적쇄신 요구에 답을 내놨다”는 대목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특히 “김 실장이 교체될 경우 수석비서관을 포함해 교체 폭이 커질 수도 있다”는 언급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박 대통령이 인적쇄신 요구에 적극적으로 부응했다는 해석을 퍼뜨린 것이다.

    실제로 상황은 애매했다. 박 대통령이 이 대목을 언급할 때 김 실장을 교체하겠다는 의중에 비중을 둔 것일까.

    아니 오히려 김 실장에 대한 한없는 신임을 강조한 것으로 들은 사람이 많았다. 기자 역시 그렇게 들었다.

    당시 연설 기록을 찾아보자. 박 대통령은 “교체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우리 비서실장께서는 정말 드물게 보는 사심이 없는 분이고, 또 그렇기 때문에 가정에서 참 어려운 일이 있지만 자리에 연연할 이유도 없이 옆에서 도와주셨다. 또 청와대 들어오실 때도(중략) … 여러 차례 사의 표명도 했다. 그러나 지금 여러 당면한 현안들이 많아서, 그 문제들 수습을 먼저 해야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A4 용지에 기록한 분량으로 김 실장에 대한 칭찬을 7줄이나 한 후 맨 마지막에 단 한마디 “그래서 그 일들이 끝나고 나서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부분만이 교체 가능성을 아주 막연하게 언급한 부분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기자회견이 국정 운영에 악재로 작용하는 것을 막아야 했다. 박 대통령 발언에 대한 해석을 ‘적극적인 인적쇄신’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국민들의 불만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실제 지난 1월 16일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번 신년 기자회견으로 인해 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35%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취임 이후 최저고 특히 ‘콘크리트 지지율’의 기반이었던 50대마저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보다 많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청와대가 기자회견날 오후에 염려했던 시나리오가 현실화된 셈이다.

    ▶“진보 언론만 질문?” 허튼 오해 많아

    박 대통령의 실제 마음은 언론을 통해 전달되는 내용과 상당한 간극이 있을 수 있다. 진보나 보수를 막론하고 언론들은 팩트보다는 자기들의 얘기를 써댄다. 기자는 개인적으로 박 대통령과 관련돼 인터넷에 떠도는 얘기의 절반 이상은 헛소문으로 본다. 특히나 팩트보다는 신념을 따르는 몇 개 언론은 소설 같은 얘기를 지어낸다. 그게 결국 ‘정윤회 문건’을 만들고 나라를 뒤집어놓는 데 일조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기자회견 이후 한 인터넷 매체는 기자단에 항의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인사는 “국민들은 ‘세월호 7시간의 대통령 행적’을 가장 알고 싶은데 기자단이 빼먹은 것은 직무유기”라는 취지로 항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청와대 기자단은 짧게 주어진 1시간의 질의응답 동안 보편적인 국민들이 궁금해할 만한 이슈를 골라내기 위해 몇 번에 걸친 토론을 통해 질문을 정했다. 100명의 기자단 중 2~3명이 중요시하더라도 대다수가 관심이 없으면 뺐다. ‘세월호 7시간’을 다시 질문할 수도 있었겠으나 그것보다는 △문건 유출과 인적쇄신 △박지만, 정윤회 등 측근 관리 △통진당 해산 등 이념 이슈 △소통증진 방안 등 더 궁금한 사안이 많았다.

    청와대 기자단은 이처럼 근거 없는 오해를 많이 받는다. 지난해 신년 기자회견에선 매경, 연합, 동아, 세계, MBC 등이 질문을 하자 일각에선 “청와대가 보수 메이저 매체에만 질문권을 줬다”는 소설이 난무했다. 청와대 기자단이 짜고 놀았다는 주장도 많았다. 그러나 실제 이는 단순히 제비뽑기의 결과였다.

    올해는 반대였다. 진보 매체들이 상당수였고 메이저급 언론이 빠지자 이번엔 “청와대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중소 매체만 질문하게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이번 역시 제비뽑기의 결과였다. 삐뚤어진 시각에서 보면 모두 ‘정윤회 문건’처럼 ‘음모론’의 소재가 되는 곳이 청와대인 모양이다.

    ※ 53호에서 계속... [사진 김재훈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3호(2015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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