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곰부터 현무까지…미사일 强國에 도전

    입력 : 2015.02.06 16:4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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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프전쟁(1990년 8월 2일~1991년 2월 28일)으로 명명된 이 전쟁은 그야말로 첨단 무기와 재래식 무기의 전쟁이었다. 아무리 대규모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 해도 최첨단 무기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 전쟁이었다. 또한 첨단 유도 무기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 사건이기도 했다. 이 전쟁 이후 동아시아 방위 지도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북한이 대포동 1호로 불리는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태평양을 향해 발사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역시 미사일을 비롯한 첨단 유도 전략 무기의 중요성을 깨닫고, 다시 한 번 신형 미사일 개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전역을 사정권에 포함시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현무 미사일’도 이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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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탄생한 ‘백곰’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나라 군사력을 논할 때 보유하고 있는 병력과 전차, 비행기, 군함 등을 비교한다. 이렇게 분석된 전력으로 우리 군의 전투력이 북한은 물론, 아시아 다른 국가들에 비해 낮은 수준이라고 판단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이 비교는 기준 자제가 잘못됐다. 앞서 밝힌 것처럼 현대전에서 가장 중요한 공격 수단인 미사일과 유도 무기들이 배제됐기 때문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해 “현대전에서 군사력의 단순 비교는 무의미하다”며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미사일 개발 능력을 보유한 군사 강국”이라고 말한다. 실제 우리나라는 사거리 1500km의 순항미사일을 이미 실전 배치한 상태다. 서울에서 북한 전역은 물론, 일본과 중국의 연안까지 모두 타격할 수 있는 강력한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미사일은 언제 이렇게 소리 없는 발전을 이룩했을까. 우리나라가 독자적인 미사일 개발을 시작한 것은 1972년부터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평양을 공격할 수 있는 사거리 200km급의 지대지 미사일 개발을 비밀리에 지시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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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대통령은 왜 우방인 미국도 모르게 미사일 개발에 나섰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우리나라 정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북한은 1960년대부터 강화해온 4대 군사노선 정책으로 군사력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청와대 기습 침투는 물론 울진-삼척 공비 침투 사건 같은 대남 도발을 벌였다. 반면 미국은 괌 독트린이라는 새로운 아시아 정책을 펼치면서 중국과의 외교 관계 복원을 시도하는 동시에 휴전선을 방어하고 있던 미 육군 7사단의 철수를 추진했다. 이런 긴박한 상황 속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기술 주권에 의한 자주 국방’이란 비전을 세우고 평양을 비롯한 북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만들라는 지시를 국방과학연구소(ADD)에 내렸다. 이에 ADD 연구원들은 1차로 1976년까지 사거리 200km급의 탄도 미사일을 개발하고, 이후 미군이 전술용으로 실전 배치한 퍼싱-1급과 같은 사거리 500km급의 탄도 미사일을 개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비밀리에 추진된 만큼 개발 계획 역시 ‘항공 공업 계획’이라는 애매모호한 명칭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당시 국내 기술력으로는 첨단 기술의 요체인 미사일을 만들 수 없었다. 결국 기존 미사일을 모방 생산하는 방식으로 기본 기술을 확보한 후, 500km급 미사일은 자체 개발한다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모방 생산할 미사일 모델은 당시 국내에 배치됐던 미군의 나이키허큘러스 미사일(이하 나이키)을 선정했다.

    당시 나이키는 진공관 전자회로를 사용했다. ADD는 이를 반도체로 교체하고 추진체는 물론 다양한 유도 장치를 연결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국내 첫 미사일인 NHK-1 또는 K-1으로 불렸던 ‘백곰’이다. 당시 백곰은 나이키와 똑같이 4기의 허큘리스 엔진으로 본체를 만들었다. 이후 이 4개의 엔진을 하나로 통합하고 관성 항법 장치를 탑재해 정밀도를 높인 것이 바로 NHK-2 또는 K-2로 불리는 ‘현무’ 미사일이다. 이후 ADD는 사거리를 300km로 늘린 K-3와 500km급인 K-5를 개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이 핵무장을 위해 미사일 개발에 나선다고 오해했고, 기술 이전도 거부했다. 이에 우리 군은 “미군이 나이키를 현역에서 퇴역시키고 있어 부품 수급 및 운용 유지에 어려움이 예상돼 이를 현대화하고 개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치고 나서 미국은 우리 군에 나이키 미사일의 기술 이전을 허용했다. 단 나이키의 최대 사거리를 180km 이하로 제한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이 조건은 이후 한국이 탄도 미사일의 사거리를 300km로 연장하면서 ‘한-미 미사일 협정’이 된다. 이 협정은 2012년 10월이 돼서야 최대 사거리를 800km로 늘리는 것으로 개정된다. 현재 우리 군은 500km급 탄도 미사일 발사에 성공했으며, 800km급 탄도 미사일을 개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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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군부 들어서며 위기 맞기도 미사일 협정을 맺은 후 미사일 개발 계획은 탄력을 받았다. 미국은 먼저 한국 연구원들을 레드스톤 미 육군 미사일연구소로 데려가 연수를 시켰다. 이곳에서는 기본적인 연구개발에 필요한 자료를 받았다. 또 폐업을 앞둔 LPC 고체 추진제 제조공장 설비도 인수해야 했다. 이 밖에도 미사일에 들어가는 주요 전자 부품과 소량 생산되는 일부 추진제 원료는 미국에서 수입했다.

    미국뿐 아니라 다른 국가들에게도 기술을 요청했다. 그 결과 프랑스로부터 추진제 관련 기술을 획득했으며, 미국이 판매를 거부했던 관성 항법 장치 관련 기술은 영국에서 도입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ADD는 1978년 9월 우리나라 최초의 미사일인 ‘백곰’이 탄생했다. 주목할 점은 나이키를 기반으로 만든 백곰을 국산화했다는 점이다.

    사실 나이키는 1950년대 개발된 미사일이다. 그래서 대폭적인 성능 개량이 필요했다. 사거리 연장을 위해 복합 추진제를 사용했으며, 진공관 회로 대신 반도체를 사용했다. 또 아날로그 시스템인 유도 신호 처리도 컴퓨터화했으며, 기체도 완전히 재설계했다. 이를 위해 금성정밀(본체), 한화(탄두), 삼성항공(추진기관), 대우중공업(발사대), 대우전자-금성사(추적-탐지장치) 등이 참여했다. 이렇게 탄생한 백곰은 초기 생산 물량을 시험 운용 포대에 배치했지만, 곧바로 일어난 10·26사태와 12·12 사태로 인해 양산되지 못했다. 게다가 정권을 잡은 신군부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독자적인 탄도탄 개발 계획을 포기하게 된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나이키에 페인트를 칠한 것을 국산 미사일이라고 사기 쳤다”며 백곰을 폄하했다. 개발에 참여했던 ADD 연구원 1000여 명 이상을 해고했으며, 미사일 개발 조직을 아예 해산시켜 버렸다. 미국의 눈치를 보며 어렵사리 확보한 미사일 개발 능력이 한순간에 사라진 셈이었다. 그러나 1983년 미얀마에서 아웅산 테러 사건이 터지면서 상황이 다시 반전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미사일 개발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백곰 개발에 참여했던 연구원들은 다시 미사일 개발 계획을 수립했다. 이때 개발에 들어간 것이 백곰을 개량한 ‘현무(현무-1) 미사일’이다. 그러나 1988년 서울올림픽 이전에 개발을 완료하라는 지시로 현무는 새로운 외형 설계를 할 수 없었다.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이다. 결국 나이키 외형을 그대로 사용했다.

    대신 추진 유도 방식은 완전히 바꿨다. 허큘리스 엔진을 하나로 통합해 대형 1단 로켓을 채택한 것이다. 이렇게 개발된 현무의 탄두는 500kg급이다. 표적에 따라서 단일 고폭탄이나 클러스터 탄을 바꿀 수 있어 목적에 따라 유연성도 높아졌다. 게다가 개발을 완료하고도 양산하지 못했던 백곰과 달리 현무 미사일은 200여 기 이상 생산돼 운용됐다. 나이키를 운용하던 강화 진지에 배치됐으며, 상당수는 차량용 발사대에 장착됐다. 하지만 현재는 현무-2에 임무를 넘기고 퇴역돼 예비 전력으로 보관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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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전역이 사정권 현무-2 블록B 백곰과 현무가 나이키 미사일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현무-2는 완전히 새로운 정밀 타격용 미사일로 개발됐다. 1990년대 중반 러시아에서 획득한 SS-21 지대지 미사일의 기술 정보가 현무-2 설계에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북한의 은하-3호 발사에 대응해 2012년 4월 19일 현무-2 발사 시험 동영상을 전격 공개했다. 이를 통해 현무-2의 크기와 외형이 처음 확인됐다. 길이 6m, 직경 80cm의 현무-2는 사거리 300km, 발사 중량 3톤 내외로 개발 초기에는 공산 오차(CEP)가 100m급이었다. 하지만 유도 장치를 개량해 공산 오차를 30m급으로 낮췄다. 공개된 영상에 따르면 현무-2는 매우 정확하게 표적에 명중했는데, 이는 탄착 정밀도가 매우 높은 수준임을 보여준다. 이 정도 정밀도라면 탄두 위력을 고려할 때, 적의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까지 충분히 파괴가 가능하다.

    게다가 현무-2는 트럭으로 견인되는 컨테이너 박스형 발사대에서 장착돼 운영된다. 적의 기지에 빠르게 발사해 정확히 파괴하고, 자신은 재빠른 회피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렇게 개발된 현무-2는 블록A라는 추가 이름을 받고 현재 강화 진지에서 운용 중이다. 현무-2 블록A를 더욱 강화한 블록B는 2011년부터 양산을 시작했다.

    초기 시제품은 2009년부터 운용 포대에 배치된 것으로 보인다. 국회 예산 보고 자료에 따르면 현무 성능 개량 사업에 2조원가량의 예산이 투입된다고 하는데, 현무-2 블록B형의 가격이 기당 40억원이고, 매년 생산 수량이 20기 미만임을 고려하면 이 2조원에는 순항미사일인 현무-3 양산비용도 포함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현무-2는 개발 초기부터 사거리가 500km급이란 얘기가 있었다. 실제 1999년 7월 미국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은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한국도 500km급의 미사일을 개발해야 한다고 요구한 바 있다.

    어찌됐든 현무-2 블록B의 배치로 한국군은 개마고원을 비롯한 북한 내륙 깊숙한 곳까지 정밀 타격할 수 있게 됐다. 이는 북한이 핵탄두를 장착한 노동미사일을 쏘기 위해 연료를 주입할 때 이들을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음을 의미한다. 이동 중인 발사대를 명중시키기는 어렵겠지만, 위치가 확인된 발사지라면 10분 내 타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무-2 블록B 역시 한계는 있다. 블록 A의 탄두중량이 500kg인 것을 300kg으로 줄여 사거리를 연장시켰기 때문이다. 또 북한이 함경도 북부로 미사일 진지를 이동할 경우 대응 방법이 없다. 그래서 한국 정부는 미국과 합의해 사거리를 800km로 늘린 상태다. 북한 전 지역은 물론, 동아시아 일대가 현무-2의 사정권 안에 들어와 있는 셈이다.

    다연장부터 순항 미사일까지 개발 완료 이 밖에도 다양한 미사일이 1990년대 이후 동시 다발적으로 개발됐다. 세계에서 5번째로 개발에 성공한 ‘신궁(휴대용 SAM)’도 이때 만들어졌다. 1995년 ADD 주도로 8년간 7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개발한 신궁은 저고도로 침투하는 항공기, 헬기, 무인 비행체 등에 대한 방공 임무를 지원하는 무기로 명중률과 휴대성을 갖춘 뛰어난 장점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적외선 호밍(Homing) 유도 방식을 채택해 별도의 조준이 필요 없고, 목표물을 정확히 명중시킬 수 있는 2색 탐색 장치를 갖췄다. 또한 720개의 파편으로 폭발하는 근접 신관 기능까지 있어 항공기 엔진까지 관통시킬 정도의 강력한 위력을 자랑한다. 여기에 피아 식별기, 야간 조준기까지 장착해 다양한 작전 활용성을 보유하고 있다.

    공군 방공부대에서 운용 중인 ‘천궁’은 대공 유도 무기인 호크(HAWK) 미사일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된 지대공 미사일이다. 중거리 방공 무기로 전차에 탑재돼 운용되기 때문에 강력한 성능과 회피 기동이 용이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특히 대전자전 능력까지 갖추고 있어 첨단전자전에 최적화된 무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 해군이 운용 중인 순항 미사일인 ‘해성’은 우여곡절 끝에 탄생됐다. 1980년대 ‘해룡’이란 이름으로 순항 미사일을 개발했으나, 명중률이 낮아 폐기된 후 1990년대 중반 다시 개발에 들어가 완성됐다. 현재 윤영하함과 같은 유도탄 고속함은 물론 대조영함 급의 구축함과 세종대왕함 급의 이지스함까지 다양하게 탑재됐다.

    [서종열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3호(2015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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