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네라이(PANERAI)의 트레이드마크는 이탈리아 디자인과 스위스 시계 장인정신의 독특한 결합에서 찾을 수 있다. 가족 기업으로 시작한 파네라이는 전 세계에 수많은 ‘파네리스티’(파네라이 시계 애호가)를 양산하며 매년 새로운 컬렉션을 발표하고 있다.
혁신의 아이콘! 1930년대까지 이탈리아 왕립 해군에 심해용 손전등이나 수심계, 나침반 등의 기기를 공급하던 오피치네 파네라이(OFFICINE PANERAI)는 사업가이자 시계 장인이던 지오바니 파네라이(Giovanni Panerai)가 1860년에 첫 시계제작소를 설립하며 155년 역사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1936년 해군의 주문으로 시계 제작에 나선 파네라이는 ‘라디오미르(Radiomir)’를 탄생시켰고, 당시 이 제품은 47㎜ 케이스와 방수 스크루다운 크라운, 야광 다이얼과 인덱스, 잠수복 위에 착용할 수 있는 긴 가죽 스트랩 등 실용적인 면이 돋보였다. 1940년대 이후 러그(케이스와 시계 줄을 잇는 부분)를 케이스와 일체형으로 만드는 등 내구성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시도가 이어진다. 1950년에는 라디오미르보다 사이즈가 크고, 크라운에 가드를 감싼 ‘루미노르(Luminor)’를 선보였는데, 모두 발광 물질의 이름에서 따온 모델명이었다.
1956년에는 이집트 해군을 위한 수중 라디오미르 ‘이집션(Egyptian)’을 개발했고, 같은 해 루미노르의 상징이 된 크라운 잠금 브리지를 특허출원했는데 당시만 해도 파네라이는 군용 시계라는 인식이 강했다. 브랜드 인지도가 대중화된 건 1972년 창립자의 증손자 주세페 파네라이가 세상을 떠나고 엔지니어였던 디노 제이(Dino Zei)가 회사를 인수, 1993년부터 일반인용 시계를 한정 생산하면서다. 당시는 냉전 장벽이 무너지고 군사용 시계 수요가 줄면서 변화가 필요했던 시기였다. 이후 1997년 현 리치몬트 그룹의 전신인 방돔 그룹에 인수된 파네라이는 이듬해 세계로 진출하며 2002년 스위스 뉘샤텔 지방에 생산시설을 설립하게 된다. 2005년부터 자체 개발한 무브먼트를 출시했고, 현재 후속작을 발표하며 자사 무브먼트의 비중을 끌어올리고 있다.
사실 파네라이는 라디오미르와 루미노르 컬렉션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간혹 스페셜에디션이 마니아들의 가슴을 뒤흔들지만 단 2개의 컬렉션이 브랜드를 대표하고 있다. 물론 매년 새로운 소재와 컬러, 무브먼트와 기능이 탑재되며 업그레이드되는데, 언뜻 같지만 다른 모델의 출현이 파네리스티를 양산하는 이유이자 강점이다.
루미노르 1950 3 데이즈 크로노 플라이백 오토매틱 세라미카·44㎜ 산화지르코늄 기반의 블랙 매트 세라믹으로 만들어진 자동 칼리버 P.9100이 장착됐다. 파네라이 플라이백크로노그래프의 새로운 모델이다. (02)3449-5922
파네리스티:파네라이 시계 마니아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커뮤니티를 일컫는 말이다. 2000년부터 형성된 이 커뮤니티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지역별로 간간이 오프라인 모임도 진행된다. 공식적으로 회원 수가 집계되진 않았지만 전 세계에 수만 명이 활동 중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국내에도 적지 않은 파네리스티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