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정부 통일 대박론, 어디까지 왔나?

    입력 : 2014.11.07 17: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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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 관계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급변하고 있다. 지난 10월 4일, 별안간 북한 내 권력 실세 3인방이 아시안게임 폐막을 앞두고 인천을 찾아와 “통일의 대통로를 놓자”고 하더니, 평양에 돌아가서는 다른 소리를 한다. 북한의 이런 오락가락, 갈팡질팡 행동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북한과 어떤 식으로든 대화의 끈을 이어가고 싶어 하는 분위기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NLL 침범과 대북 전단 총격 직후 개최된 통일준비위원회 2차 회의에서 “5·24 문제를 대화를 통해 해결하자”는 입장을 밝혔다. 사실 누구보다 ‘원칙’을 강조해왔고 또 그 원칙을 지킴으로써 대통령 자리에 오른 박근혜 대통령의 이 같은 변화는 올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처음 제기했던 ‘통일 대박론’에서 시작됐다. 예측 불가능한 북한의 대남 정책 변화에도, 우리 정부가 인내심을 시험하면서까지 북한과의 대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 역시, 통일 대박론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은 어떻게 시작됐고, 어디까지 왔으며, 또 어떤 과정을 거쳐 북한을 상대해 나갈 수 있을까.

    “통일은 비용 아니라 투자” 통일 대박론은 지난 1월,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공론화됐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통일이 되면 우리 경제는 굉장히 도약할 수 있다”고 말해 통일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처음 통일 대박론이라는 대통령의 ‘워딩(wording)’이 나왔을 때만 해도 통일에 대한 시너지 효과를 언급한 정도만 여겨졌을 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나 기고, 독일 방문과 드레스덴 선언 등을 통해 박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은 확대 재생산됐고, 이제 현 정부의 통일 정책을 대표하는 슬로건이 됐다.

    사실 통일 대박론은 민족통일연구소 초대 소장을 지낸 중앙대 신창민 교수가 2012년 출간한 책 제목 <통일은 대박이다>(2012년, 한우리통일출판)와 완전히 같다. 박 대통령이 통일 대박론을 이 책에서 처음 접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큰 줄기의 의미와 표현은 일맥상통한다. 신 교수는 이 책에서 “통일은 비용을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 성장을 통해 이익을 얻는 경제”임을 주장했다. 또 우리의 과도한 국방비 지출과 징병제 등 이른바 ‘분단 비용’이 통일 과정에서 소요되는 비용보다 크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성장 동력을 상실해 가는 한국이 북한 개발이라는 새로운 동력을 통해 경제 성장률을 끌어 올릴 수 있고, 북한은 식량 부족에 따른 기아 상태에서 벗어나 소득 향상이 가능할 것이라는 게 책의 주요 내용이다. 신 교수는 “통일 후 10년 동안 남북 간 소득 구조조정을 통해 매년 11% 내외의 경제 성장을 이룩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매일경제신문이 지난해 발간한 <다가오는 대동강의 기적>(2013년, 매경출판) 역시 2050년 통일 한국이 세계 중심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음을 예측하고 있다. 통일 한국은 2050년 인구 7350만명으로 세계 26위(2013년 현재 41위), 명목 GDP(국내총생산) 6조560억달러로 세계 8위 경제 규모의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현재 GDP 대비 2.7%인 국방비 지출을 독일 수준인 GDP 대비 1.4%로 줄여나갈 경우, 국방비 절감 효과만으로도 2조달러에 가까운 비용을 투자로 전환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 같은 분석은 결국 통일에 따른 경제적 효과가 현재와 같은 분단 유지비용을 압도할 뿐 아니라, 그동안 연구됐던 통일 비용이 과대 평가됐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박세일 한반도평화재단 이사장은 “통일 비용은 연구 기관이나 방법에 따라 적게는 500억달러, 많게는 5조달러로 100배 차이가 난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통일 비용은 크게 의미가 없다”고 단언한다. 대신 “비용을 투자로 생각하고, 저개발 상태의 북한 경제 개발이 한반도 전체의 고성장을 다시 가져올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은 통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 중요한 터닝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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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층에 통일 대박론 공감대 확산 박 대통령이 통일 대박론을 주창한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나온다. 우선, 북한 정권의 불확실성이 높아져 불시에 통일이 찾아올 수 있고, 이 경우 흡수통일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가정해야 한다는 현실론이다.

    이 같은 단기간 내 흡수통일은 우리 경제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데, 박 대통령은 그런 인식을 깨고 우리 사회의 통일 공감대 형성을 위해 통일 대박론을 꺼내 들었다. 실제 상당한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통일 대박론이 우리 경제의 저성장에 절망하면서도 통일에는 무관심했던 청년 계층의 통일 의식을 높이는 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에 다소 비판적인 진보 진영에서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남북한 통일에 대해 다소 ‘미온적’이거나 혹은 ‘비판적 관망’에 머물고 있는 주변국들을 겨냥한 설득 메시지라는 해석도 있다. 한반도 통일은 단순하게 남과 북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과 중국으로 대표되는 세계 초강대국의 ‘핵심 이익’이 한반도에 집중돼 있을 뿐 아니라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물려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이들에게 남북통일이 남과 북만이 아니라 세계 평화와 주변국들의 경제 번영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을 수도 있다.

    북한 외면에 통일 대박론 ‘공전’ 그렇다면, 앞으로 통일 대박론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통일 대박론으로 국내 통일 여론을 환기하고 통일에 대한 주변국들의 이해를 높였다는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녹록지 않다. 긍정적인 평가와는 달리 통일의 파트너이자 대상인 북한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기 때문이다.

    북한은 박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통일 대박론이 북한 체제의 붕괴와 흡수통일을 전제로 한 통일 정책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통일 대박론 이후 통일 과정을 구체화시킨 ‘드레스덴 선언’에 대해서도 북한은 노이로제에 가까운 과민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통일 대박론은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이후 10여 개월이 다 가도록 이렇다 할 성과를 내고 있지 못하다. 청와대는 통일준비위원회를 구성해 통일 대박론을 구체화하고, 연내에 중장기 통일 비전과 통일 헌장을 마련하기로 했지만 ‘실체’가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어쩌면, 통일 대박론은 다시 ‘핵 보유를 통한 체제 보장’을 희망하는 북한의 원칙론이라는 벽에 필연적으로 부딪혀 좌초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통일 대박론이 통일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높이고, 통일의 당위성을 확산해 통일 에너지를 폭발시킬 수 있는 도화선이 될 가능성 역시 충분하다.

    *드레스덴 선언 박근혜 대통령은 독일 드레스덴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구상’을 주제로 연설했다. 박 대통령은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위한 3대 제안을 발표했는데 ▲남북한 주민 인도적 문제 해결 ▲공동 번영을 위한 인프라 구축 ▲남북 주민 간 동질성 회복 등으로, 이를 위해 남북교류협력사무소 설치를 제의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0호(2014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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