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전불패 ‘전관예우’ 신화 깨진다

    입력 : 2013.08.09 17: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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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짝퉁 명품가방을 전문적으로 판매한 혐의로 남편이 수감되자 부인 김영희(45, 가명) 씨는 지인의 소개로 관할검찰청 부장검사 출신 A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김씨는 이미 여러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 ‘실형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였다. A변호사 역시 같은 요지의 이야기를 해줬지만 분위기는 달랐다. 담당인 B검사가 자신의 직속 후배라 친분이 깊다는 점과 이를 바탕으로 불구속 수사가 가능하며 운이 좋을 경우 실형도 피할 수 있다는 분위기를 은연중에 풍겼다. 타 변호사에 비해 2배 이상의 수임료를 요구한 점과 좀처럼 A변호사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아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 돌아서자 한마디가 들려온다. “대한민국에서 내가 안되면 누구도 안 될 겁니다.”



    # 황철수(가명) 씨는 몇 해 전 20년 넘게 근무한 법원을 떠나 C로펌에 입사했다. 황씨의 ‘파워’를 기대하고 C로펌을 찾는 기업·개인고객들은 상당히 늘었다. 덕분에 황씨는 기본급여에 실적수당이 더해져 한 달에 수 천만 원의 수입을 챙길 수 있었다. 2년여가 지난 시점, 황씨는 몸담았던 기관의 고위직으로 컴백했다. C로펌은 황씨가 있을 때보다 고객들이 더욱 늘어 유례없던 특수를 맞았다.



    위 두 사례는 이른바 대한민국 법조계의 고질적인 병폐로 알려진 ‘전관예우’의 대표적인 유형이다. 판·검사를 하다가 물러나 변호사를 갓 개업한 사람에게 법원이나 검찰에서 유리한 판결이나 처분을 내려주는 이른바 ‘전관예우’ 관행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전관’의 범위가 넓어져 판·검사뿐 아니라 금융감독원, 국세청, 특허청,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근무했던 고위 공직자들이 퇴임 후 대형로펌 등 유관기관에 근무하면서 특혜를 받는 ‘신’ 전관예우도 생겨났다.

    각계각층의 지속적인 문제제기와 비판에도 여전히 전관예우 논란은 사그라질 줄 모르고 오히려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새 정부 인선과정에서 목격한 바와 같이 퇴직 후 로펌 등에 입사해 거액의 연봉으로 부를 쌓은 뒤 다시 공직으로 돌아오는 이른바 ‘회전문 인사’에 대한 비판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러나 대형로펌 관계자들과 현직에 있는 일부 판·검사들은 “청탁 등을 통해 사건의 결론이 달라질 우려가 있는 전관예우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대법원이 양형기준을 마련해 시행한 이후 법관들의 재량권이 대폭 줄어들었고 판·검사로 퇴직한 경우 1년 동안 마지막 근무지의 법원·검찰청의 사건을 맡을 수 없도록 한 ‘전관예우금지법’으로 인해 전직 판·검사들이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가 현저히 줄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조계 종사자 다수의 의견은 이와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지난 5월 28일부터 9일간 소속 회원 761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90.7%가 전관예우가 존재한다고 답했다. 그중 법원·검찰 출신 변호사 104명 중 67.3%에 해당하는 70명도 전관예우가 존재한다고 응답했다.

    구체적으로 전관예우가 가장 심하게 발생한다고 생각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단계(37.0%), 형사 하급심 재판단계(23.7%) 등을 가장 많이 꼽았다.

    전관예우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공직자들의 자기 식구 챙기기(26.7%), 한국사회 특유의 온정주의 문화(21.9%), 전관예우에 대한 의뢰인들의 기대(15.8%), 공직자들에게 주어지는 과도한 재량(13.5%), 공직자들의 준법의식 부재(9.5%) 등의 순으로 응답했다.

    고위공직자가 대형로펌에 취직했다가 다시 고위공직으로 복귀하는 소위 ‘회전문 인사’에 대해서는 과거 근무했던 대형로펌에 특혜를 줄 우려가 있으므로 반드시 금지돼야 한다(51.5%), 유능한 인재를 활용한다는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으나 적절치는 않다(39.3%) 등의 부정적 견해가 다수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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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甲’된 로펌들 전관 통해 후광효과 노려 전관예우의 병폐가 지속적인 사회문제로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한켠에서는 ‘추위에 떠는’ 전관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불패신화를 자랑하던 전관 출신들도 점차 수가 늘어가며 양극화 현상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배후에는 국내 로펌들의 급격한 성장이 자리하고 있다.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신의 이름을 걸고 개업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전관 출신 변호사의 이름만 보고 의뢰인이 알아서 찾아왔기 때문에 굳이 로펌에 소속돼 이익을 나눌 이유가 없었다. 당시 부장급 판·검사의 경우 개업 후 2~3년 동안 수십억 원을 벌어들이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는 것이 많은 법조 관계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들어서 변호사들 사이에 경쟁이 치열해지고 개인 변호사들의 세금관리 등이 논란이 되면서 소위 ‘잘나가는’ 몇몇 판·검사를 제외하고는 단독 개업으로 사건을 유치하기가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씩 몸집을 불려온 로펌들은 퇴직을 앞둔 고위 법관들의 스카우트를 활발하게 진행했다.

    2011년 일명 전관예우금지법이 제정되면서 판·검사들의 로펌행은 더욱 활발하게 진행됐다. 로펌에 들어가면 개인 이름 없이 회사의 일원이 되어 활동하기 때문에 1년 수임제한은 무의미해진다. 의뢰인은 전관 출신 변호사를 보고 찾아가지만 수임은 로펌이 하고 전관은 사건별 상여금을 챙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전관 변호사는 수임제한을 피하고 로펌은 수익을 올리는 윈-윈 관계가 형성된다.

    임지봉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검사장이나 고등법원 부장판사급 전관들이 로펌에서 연봉으로 약 6억~12억원을 받는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로펌이 맡게 될 큰 사건들에서 전관들이 발휘해 줄 전관예우의 위력에 일종의 투자를 하는 것으로 봐야 하며 소송가액이 수십억, 수백억인 사건들에서 전관예우의 위력이 한 건만 통해도 전관에 대한 투자는 본전을 뽑고도 남는다”고 지적했다.

    전관의 위력은 사건 수임 외에 수사와 재판단계에까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한 로펌 변호사는 “검찰이나 법원에 아는 사람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다”며 “전관들이 힘을 써주느냐 아니냐가 수사와 재판의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한편 회전문 인사를 통해 전관 변호사가 공직으로 복귀할 경우 해당 로펌에 사건이 몰려 상당한 수혜를 입는 것이 현실이다. 로펌 입장에서는 전관 출신 변호사 영입은 수임에 득을 보는 외에 ‘후광효과’까지 노려볼 수 있는 카드인 것이다.

    다수의 고위 공직자를 배출한 한 로펌 관계자는 “공직으로 복귀하는 전관들이 많아지면서 현직들이 전관 출신과 해당 로펌을 괄시하지 못하게 되는 효과가 생겼다”며 “전관 파워가 세지면서 몸값도 많이 올라갔다”고 설명했다.

    인선 당시 회전문 인사 논란의 중심에 섰던 황교안 법무부 장관, 정홍원 국무총리, 김병관 전 국방부 장관 후보(왼쪽부터). 김병관 후보는 결국 낙마했다
    인선 당시 회전문 인사 논란의 중심에 섰던 황교안 법무부 장관, 정홍원 국무총리, 김병관 전 국방부 장관 후보(왼쪽부터). 김병관 후보는 결국 낙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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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발’ 떨어진 전관판사 월급 ‘1만원’ 굴욕 현직에 있는 법원과 검찰조직 역시 인사적체로 판·검사들의 로펌행이 늘어나면서 전관들의 대우도 차별화되기 시작했다.

    한 대형로펌 관계자는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로펌행을 택하는 판·검사들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3~4년차 주니어급부터 부장급, 법원·검사장급 등 로펌행을 원하는 판·검사들이 상당히 늘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전관 출신 변호사의 급여가 예전에는 철저하게 비밀에 싸여 있었지만 그 숫자가 늘어나며 ‘시세’가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귀띔했다.

    그는 “판·검사의 대우가 다르고 수임에 따른 인센티브 등에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법원장, 검사장 이상인 경우 15억~30억원의 사이의 연봉을 받는다”며 “고법 부장판사·지검장의 경우 월 1억원 이상 그 이하의 경우 연차와 직급에 따라 1000만~1억원 사이의 연봉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고 답했다.

    문제는 전관으로서 ‘약발’이 떨어지는 약 1년 후다. 대부분 이 기간이 지나면 법원·검사장급이라도 대부분 연봉은 1억~2억원대로 떨어지고 그 이하는 1000만∼3000만원대까지 추락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펌 입장에서는 매해 ‘싱싱한’ 전관들이 나타나는 마당에 사건 수임에 도움이 되지 않는 ‘낡은’ 무기에 돈을 쓸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한 대형로펌 관계자는 “한 3~4년차 판사 출신 변호사의 경우 1년 이후부터는 실적급을 받는 조건으로 로펌에 입사했는데 사건을 가져오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라며 “1년이 지나 급여통장에는 2만원 다음달에는 1만원이 입금됐다고 하는데 결국 회사를 떠났다”라고 말했다.

    또한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전관 출신 변호사의 경우 초기 높은 연봉을 주는 이유는 안정적인 대우를 해주면서 변호사의 업무에 적응하라는 의미”라며 “이 기간 동안 완벽하게 업무에 동화되지 못해 실적을 올리지 못한 경우 이미 받은 연봉을 회수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다수의 로펌 관계자들은 1~2년 후부터는 사건을 직접 유치하거나 해결한 사건 수에 따라 급여가 정해지는 ‘별산제’로 적용하는 방식이 로펌에 적응하지 못하는 전관들을 밀어내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한 수도권 지역 중견 검사는 “로펌들이 점차 ‘득이 되는’ 전관에 자본과 노력을 집중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며 “전관들 사이의 연봉 격차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이고 차후 공직에 복귀할 가능성이 크거나 지속적으로 법원 검찰과의 끈을 유지할 수 있는 판·검사가 좋은 대우를 받을 것”이라 전망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5호(2013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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