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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발림에 김새는 부하직원 공(功)은 내가 과(過)는 네가
입력 : 2013.07.15 09:2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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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지칠 때면 그때 그 연설을 떠올리곤 했던 김 대리의 충성은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부서 프로젝트를 사장단에 보고하기 3일 전, 그동안 작성한 보고자료를 챙기던 윤 상무는 비서에게 모든 파일을 리워딩시켰다. 그러려니 했던 팀원들이 당황했던 건 보고 당일. 프레젠테이션에 나선 윤 상무가 프로젝터로 돌린 파일에는 모든 챕터에 자신의 이름이 버티고 섰고, 그 뒤로 뜬소문인 줄만 알았던 몇몇 라인들의 이름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김 대리의 머릿속에는 “단 한 명도 내 뒤에 남겨두지 않는다”던 윤 상무의 일성과 결사항전에 자신만 쏙 빠져나간 그의 뒷모습이 연상됐다. 요즘 김 대리를 비롯한 비 라인들은 윤 상무의 말 한마디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한마디 던질 때 긴장하고 ‘하는 척’하면 하루가 편하다는 진리(?)를 깨우쳤기 때문이다.
재무관료 출신으로 부임 초기 ‘낙하산 CEO’라 불리기도 했던 박 전 사장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경영혁신을 통해 적자에 허덕이던 회사를 전 세계 13위, 아시아 1위 재보험사로 끌어올렸다. 업계에선 그의 솔선수범이 파산 직전에 몰렸던 회사를 1등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고 평가하고 있다.
‘용장(勇將) 아래 약졸(弱卒) 없다’는 격언이 있다. 전쟁 시 장군(리더)의 용기와 의지가 그를 바라보고 있는 장병들을 전쟁터로 이끈다는 뜻이다. 한 대기업 퇴직 임원은 “CEO나 임원은 한번도 검증되지 않은 미지의 길을 간다”며 “반면에 부하직원들은 리더가 이미 검증한 길을 간다. 그래서 리더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 위험을 부하직원에게 전가해선 안 된다. 그래서 리더의 자리는 위험을 감수한 대가라고들 한다”고 이야기했다.
솔선수범 덕목은 국내 대기업들의 임원 코칭에서도 늘 회자되는 부분이다. 올 초 허창수 GS 회장이 신임 임원 워크숍에서 강조한 말도 솔선수범이었다. 허 회장은 지난 2월 신임임원 18명과 제주도에서 가진 워크숍에서 “솔선수범이야말로 가장 쉬운 리더십의 방법”이라며 “지위가 높을수록 동료에게 더욱 헌신하고 부하직원에게 먼저 다가서야 한다. 그 동료들이 여러분을 이 자리에 있게 했다는 점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 회장은 또 “경영자는 타인의 업무 성과에 의해 자신의 업적을 평가받는 사람”이라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끌어내는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최근 불거진 대기업의 갑을관계 문제가 이러한 분위기에 불을 지피고 있다. 늘 강조되던 ‘솔선수범의 자세’를 도드라지게 만든 것이다. 한 대기업 홍보담당자는 “경제민주화와 갑을관계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각 기업들이 다시한번 솔선수범을 외치고 있다”며 “사내 분위기도 달라졌다. 하다못해 사내 흡연자들도 솔선해서 담배를 끊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로 ‘갑을관계 리스크 관리’에 나선 기업들은 고객과 협력사에 대한 직원들의 행동과 규정에 제대로 신경 쓰는 모습이다. 한발 앞선 곳은 LG그룹이다. 이미 10여 년 전 ‘LG 웨이’란 매뉴얼에 임직원들이 지향해야 할 가치와 지켜야 할 규범을 명문화했다. 올 초에는 경조사 관련 규정을 강화했고 협력업체에서 경조금이나 승진축하 선물 등 금전거래를 없앴다. 임원 자녀 결혼식을 사내 게시판에 공지하는 것도 전면 금지했다. 전무 이상 고위 경영진은 검소하게 결혼식을 치르는 ‘작은 결혼식’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최근 사내게시판과 방송을 통해 바른말 쓰기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남을 배려하는 태도와 말씨가 몸에 배어야 밖에서도 실수가 없다는 것이다. 폭언과 관련한 기사도 스크랩해 임직원들에게 배포하고 있다.
두산그룹은 임직원을 대상으로 협력사와 협력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다. 두산은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취임 이후 ‘두산 웨이’를 임직원 행동의 지침으로 삼고 있다. 6~7년간 연구를 통해 두산그룹이 지켜온 가치와 철학을 담았다. 모두 솔선수범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되로 주고 말로 받을 수도 “흔히 부전자전이라고 하잖아요. 아들이 아무리 아버지를 부정해도 이상하리만치 아버지의 버릇을 그대로 따라합니다. 그건 함께 한 날이 그만큼 많기 때문에 저절로 따라하게 되는 것이지요.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전하전(上傳下傳)입니다. 오랜 기간 같이 근무하다보면 부하직원은 자신도 모르게 상사를 닮아갑니다. 능력 없는 상사라고 아무리 씹어도 어느 순간 돌아보면 그 상사처럼 돼 있어요. 그래서 상사가, 임원이, CEO가 솔선수범해야 기업이 제대로 돌아갑니다.”
지난겨울 중견기업에서 퇴직한 한 임원의 한 마디다. 그는 “상사의 착각 중 하나는 부하직원이 맹목적으로 복종할 것이란 생각인데, 자신의 행동을 그대로 보고 생활한 직원들에게 언젠가 큰 코 다칠 일이 생긴다”며 “자신의 행동이 부메랑이 돼 돌아오는 상황은 굉장히 뼈아픈 일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하직원과의 관계에서 되로 주고 말로 받을 수도 있다는 일종의 경고다.
지금은 CEO지식나눔 이사로 재직 중인 민경조 전 코오롱 그룹 부회장의 리더십은 그런 면에서 솔선수범의 확실한 이유로 꼽힌다. 논어를 1000번 이상 읽어 재계에서 ‘논어 경영인’으로 알려진 민 전 부회장은 한 특강에서 ‘지도자의 처신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이행하지만, 처신이 바르지 못하면 비록 명령해도 따르지 않는다’라는 논어 자로편을 인용하며 “리더가 솔선해야 한다는 것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다. 먼저 스스로 당당하고 떳떳한 리더가 돼라”고 이야기했다. 또 “리더가 모든 일을 혼자 움켜쥐면 부하직원은 시키는 일만 하게 되고, 실패해도 책임지지 않게 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조직의 생산력을 저하시킬 뿐”이라고 강조했다.
민 전 부회장은 1999년 자신의 사장 취임식 당시를 소개하기도 했다. 취임식을 마치고 돌아온 사무실에 ‘부디 성공하는 CEO가 되십시오’라는 메일이 도착했길래 ‘성공하는 회사의 CEO가 되겠다’라는 답장을 보냈다는 것이다. 솔선수범하는 훌륭한 리더가 아니라 성공하는 조직의 솔선수범하는 리더가 되겠다는 다짐을 표현한 것이다.
Talk Talk 1. 나를 따르라? 너만 쏙! 두어 달 전 A 부장은 근 20여년 직장생활에 가장 큰 낭패감을 맛봤다. 외부에서 스카우트 된 나이 어린 B 전무가 상사로 부임한 것까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보다 스펙도 좋고 글로벌 기업에서 쌓은 경력도 화려했던 탓에 하나라도 배울 점이 있겠다고 생각했다. 첫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B 전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직원들과 함께 회의하는 자리에선 전 직장과 다른 시스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런 경우가 하나둘 쌓이다보니 직원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잦은 야근에 주말 근무가 이어지는데 지원이 형편없다” “전무가 나서서 불만을 지적하는데 우리가 힘을 합하면 건의사항이 받아들여질 것이다” 등 의견이 이어졌다. 결국 직원들이 의기투합해 B전무를 응원하기로 했다. 직원들의 의견은 당연히 A 부장이 B 전무에게 전달했다. 전무 방에서 나오고 두어 시간이 지난 후 A 부장은 사장실로 불려 올라갔다. 얼굴 발개진 사장이 최대한 자제하며 A 부장에게 물었다.
“A 부장. 회사에 건의사항이나 개선사안이 있으면 개인적으로 건의해야지 왜 직원까지 동요하게 하는 겁니까. 새로 전무도 오셨는데, 회사 분위기 적응하기도 전에 깜짝 놀랐다고 하던데. 도대체 이유가 뭡니까?”
그날 A 부장은 B 전무에게 한 수 제대로 배웠다. 앞에선 강경파인척 몰고 가다 구실을 붙여 도망가는, 범죄적 솔선수범을 제대로 경험했다.
Talk Talk 2. 달콤한 사탕발림, 힘이 쏙! 1년 전 임원이 된 C 이사는 최근 직원들과의 회식자리를 대폭 줄이기 시작했다. 건강이나 윤리적인 이유가 아니라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하고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하기 위해서다. 처음 임원이 되고선 생각이 많았다. 우선 직원들과 정을 쌓고 뭐든지 솔선수범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직원들의 반응도 괜찮았다.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던가. 잦은 회식이 문제였다. 딴에는 자주 어울리면 서로 소통할 기회가 많아질 거라 생각했다. 직원들도 “이런 이사님 밑에서 일한다는 건 축복입니다” “제대로 소통하는 법을 알고 계십니다” 등등 ‘최고’ ‘베스트’란 수식어를 동원해 찬사를 던졌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이 2주일에 한 번, 어느 땐 일주일에 한 번으로 텀이 줄자 “솔선수범이나 소통도 좋은데 가정부터 솔선해서 지켜야하는 것 아니냐”는 글이 올라왔다. 글 아래 동의하는 댓글을 읽는 심경은 참담했다. C 이사는 요즘 솔선수범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고 있다. 그리고 시 한편을 컴퓨터 바탕화면에 띄웠다.
“결국, 나의 천적은 나였던 거다.” -조병화 <천적>(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가장 높은 점수를 차지한 항목으로는 ‘일의 의미’(61.4점). ‘회사 긍정지수’(60.6점) ‘개인 성장’(59.2점) ‘조직원으로서 자부심’(58.8점) 항목이 뒤를 이었다. ‘임직원에 대한 신뢰도’(52.9%) 항목은 평균점수가 가장 낮았다. 기업 형태별로는 ‘외국계 기업’(59.2점)의 만족도가 가장 높았고, ‘중소기업’(58.7점) ‘대기업’(58.4점) ‘공기업’(57.7점) 순이었다.
직장인 58%, 직장 상사에게 욕설 들어 봤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4호(2013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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