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wyer]미국·일본선 안통해! 전관예우

    입력 : 2013.04.08 15: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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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병(火病)’은 옥스포드 등 영어사전에도 ‘Hwabyung’으로 표기될 만큼 한국인에게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의 정신질환이다. 강한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해소하지 못하고 참고 인내하는 데서 오는 가슴이 답답한 증세를 가리킨다. 결코 바람직한 정신 상태는 아니다. 가뜩이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살기가 팍팍한 대한민국에서 최근 국회 청문회 과정을 지켜보면서 화병이 도질 대로 도진 사람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몇 년을 꼬박 모아야 1억원을 손에 쥘까 말까 한데 한 달에 1억원을 손에 거머쥔 사람이 한 나라의 장관이 되겠다고 청문회장에 서는 것을 보고 속에서 열불이 나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아마도 조만간 ‘전관예우’라는 단어도 영어사전에 등재될 날이 올 것으로 보인다. 전관예우는 대한민국에서만 사용되는 대표적인 단어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독일은 물론 이웃나라인 일본에서도 전관예우는 통용되지 않는다. 법조계도 그렇고 경제부처나 공직 전반에서 전관예우 현상이 심하지 않다는 게 정설이다.

    일본 도쿄
    일본 도쿄
    일본… 공증인 자격 줘 일정 수입보장 전관예우의 원조는 19세기 말 제국주의 일본이다. ‘젠칸레이구’, 즉 뚜렷한 업적을 남긴 고관대작에게 퇴임 후에도 현직과 같은 대우를 해준 관행이 있었다. 하지만 현대 일본에서는 전관예우라는 단어가 사어(死語)가 됐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활개를 치고 있으니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와 사법시스템이 비슷한 일본은 전관예우를 막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어 사회문제로 부각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고위공직자가 정년 전에 퇴직할 경우 주위의 시선이 좋지 않아서 웬만해선 나오지 않는 문화가 있다. 국가가 국민을 위해 봉사하라는 의미에서 공무원 직의 정년을 보장하고, 공무원 연금으로 노후를 보장해주는 것이다. 일본은 고위직 출신 판검사 퇴직자들에게는 공증인 자격을 부여해 일정한 수입을 보장해준다. 법적으로 공증 업무에만 종사하도록 하면서 정부에서 준연금제도 비슷하게 일정 수입을 보장하고 있다.

    인사제도상 퇴임 시 60세가 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롭다는 점도 전관예우가 싹트지 않는 여건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최고재판소 재판관의 정년은 70세다. 고등재판소와 지방재판소 또는 가정재판소의 재판관은 65세, 간이재판소의 재판관은 70세에 달한 때에 퇴임한다. 대법관의 전관예우도 사실상 없다. 일본 대법관은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는 게 확고한 전통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전관예우가 없는 이유는 확실하게 소득을 보장해주는 데 있다. 실제로 일본의 판검사들 임금은 일반 대기업보다 많다. 일본 대기업에 종사하는 50대 근로자의 임금은 월평균 50만엔으로 알려져 있다. 비슷한 연배의 판검사들의 임금은 120만엔이다.

    노명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판검사들의 임금 자체가 높기 때문에 로펌 등 다른 기관에 이직할 이유가 없다”며 “특히 고위직 출신들은 후배들의 업무에 방해된다는 인식이 강해 로펌 등으로의 취업은 생각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 주 대법원 청사
    미국 뉴욕 주 대법원 청사
    미국… 지방검사장도 선거직·윤리기준 엄격 미국은 전관예우를 막기 위한 문화가 일찌감치 자리매김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19세기 남북전쟁 당시 무기판매업자가 남쪽과 북쪽에 모두 무기를 공급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해충돌 방지법’을 제정했다. 미국은 이때부터 한 사람이 이해가 충돌하는 양측을 모두 대변하는 것을 금지해 왔다. 그러한 행위가 공공의 입장에서 피해를 끼친다는 것이다. 이런 전통 속에 미국의 고위공직자는 자신의 공직과 긴밀히 연결된 일에는 영구적으로 취업이 금지된다. 그리고 그 외의 다른 일에는 업무 연관성에 따라 2년 제한, 1년 제한, 적용 제외로 차등 적용받는다.

    미국은 법조 일원화가 완벽하게 이뤄져 있어 전관예우가 들어설 여지가 없다. 법조 일원화란 변호사 중에서 판사와 검사를 임용하는 것으로, 미국에서는 변호사 자격시험에 합격한 뒤 대부분 변호사로서 일을 시작한다. 이후 지방검찰청에서 검사에 대한 수요가 있으면 지원해 검사로서 일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10~15년 법률지식과 실무를 익힌 뒤 판사로 진출하는 시스템이다. 지방검사장도 주민 선거에 의해 선출되기 때문에 책임 있게 검찰 조직을 관장할 수 있다. 법조인 양성 방식도 법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각 주에서 관장하는 자격시험을 치르는 형태다.

    지연·학연에 사법시험 선후배를 따지는 우리 법조인 문화와는 다르다. 미국 법조인들은 학교나 고향선배라고 봐주는 것이 없고, 내가 지금 선배를 봐주면 내 후배가 나중에 나를 봐줄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

    이는 구속 기준과 양형 기준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현직 판검사가 전관 변호사를 식당에서 우연히 만나도 합석하지 않을 뿐 아니라 마주친 사실까지 상급자에게 보고해야 할 만큼 윤리 기준이 엄격하다. 시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것과 양형기준법이 정비돼 있는 것도 수사와 재판 단계에서 누군가의 개입을 제도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미국 대법관은 종신직이어서 전관예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미국은 아울러 로비스트를 인정해 일부 공직자 출신 인사들이 로비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불법이나 음성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방치하는 게 아니라 로비를 제도화해 로비스트로 등록토록 하고 이들을 감시하고 있다. 미국 로비스트는 고객명단, 영향력을 행사한 법인과 정책, 로비 활동내용, 로비자금, 소득을 6개월에 한 번씩 신고한다. 초강력 입법으로 전직 고관 로비스트들을 규제하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고위공직자 임용 전에 230개가 넘는 검증 과정을 거쳐 전관예우 공직자를 걸러낸다. 특히 법무부 공직자의 경우는 종교, 소득, 통장 잔고 등 갖가지 개인정보를 상원에 제출해야 한다. 또한 청문회 과정에서 불법이나 편법이 발견되면 여지없이 낙마시킨다.

    유럽… 법관 종신제·공직자 재취업땐 연금 몰수 영국의 경우도 대법관은 종신이며 일반 법관은 정년이 70세로 정해져 있다. 고위 법관의 눈치를 볼 것 없이 양심에 의해 판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독일도 법관이 한 번 임용되면 30~40년 동안 종신제로 있다.

    독일이나 영국에서는 판·검사를 포함한 고위공직자가 담당 업무와 관련된 기업에 취업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으며, 심지어 로펌 등의 자문역으로 간다 하더라도 공직 시절의 업무와 관련되면 취업이 금지되고 있다.

    프랑스, 독일 등은 퇴임 공무원들이 공직과 관련된 업체에 재취업하면 연금까지 빼앗는다. 전관예우는 꿈도 못 꾸게 한다. 공직으로 돌아오는 일도 없다. 뉴질랜드에서는 판사는 진급도 없고, 전출도 없다. 한번 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되면 은퇴할 때까지 그 지방법원의 판사로 있다가 그만두는 것이다. 고등법원 판사 자리가 빈다고 지방법원 판사들 가운데 승진시키는 것이 아니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새로 뽑는다. 또 일단 판사로 임용되면 은퇴할 때까지 판사로 머문다. 다만 1992년 뉴질랜드에서 연금제도가 없어지면서 이러한 분위기가 퇴색되고 있다.

    [장원주 매일경제 사회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1호(2013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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