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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vate Information]누군가 내 돈을 훔쳐보고 있다
입력 : 2013.04.08 15: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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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금융실명제법과 신용정보보호법의 예외가 인정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의심거래와 고액현금거래는 FIU라는 금융정보분석원에 보고해야 하는 규정이다. 은행 보험 카드사뿐만 아니라 저축은행 캐피탈 등 모든 금융회사에 해당되는 의무다.
먼저 의심거래가 성립하는 경우를 보자. 의심거래는 전적으로 은행이나 보험사 카드사 등 창구 직원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결정된다. 거의 노숙자에 가까운 옷을 입고 온 사람이 수백만원의 현금 다발을 입금한다면 수상한 느낌이 들 수 있다. 다소 불량스러워 보이는 낯선 청소년이 고액을 입금할 때도 마찬가지다. 동전과 1000원짜리 등 엉망으로 뒤섞여 채워진 커다란 가방을 들고 와서 깨끗한 5만원권 신권으로 교환을 요구할 때도 의심스러울 수 있다. 매일 10만원씩 꼬박꼬박 입금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입금한 돈을 한꺼번에 다 찾아달라고 한다든가 하는 경우에도 ‘혹시 돈세탁’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금융회사 창구에서는 이런 사례들을 접할 때마다 누가 언제 어떤 거래를 했는지 소상히 기록했다가 FIU에 보고한다. 물론 금융회사 창구 직원의 의심이 적어서 안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FIU가 어느 정도의 실적을 요구하기 때문에 각 금융회사 영업점에서는 상대적으로 의심의 정도가 짙은 경우를 골라서라도 보고를 하게 된다. 이렇게 보고된 의심거래는 연간 30만 건이 넘는다. 지난 2007년에만 하더라도 5만2400여건에 불과했지만 20011년에는 32만9400건을 넘어섰다.
또 하나, 고액현금거래.
고액현금거래는 말 그대로 고액의 현금을 거래하면 수상하다거나 의심스럽다거나 하는 주관적 판단의 개입 없이 무조건 FIU에 보고된다. 고액현금의 기준은 하루 2000만원이다. 현금을 입금하거나 출금하거나 송금하는 것이 주로 해당되고 수표를 바꾼다거나 소액권을 고액권으로 또는 고액권을 소액권으로 바꾸는 것도 현금거래다. 계좌에서 계좌로 이체하는 것은 해당사항이 없다.
보통의 사람들은 ‘내가 2000만원 이상 현금거래를 할 일이 있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대다수 필부필부가 FIU 자료에 들어가 있다.
지방에서 결혼식이 있었다. 너무 멀어서 직접 찾아가 축하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 흔히 혼주 계좌로 축의금을 송금한다. 혼주 입장에서 이렇게 입금된 돈이 2000만원을 넘기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축의금 10만원씩, 200명이면 2000만원이다. 이런 경우 이유 불문하고 그날의 현금거래는 FIU에 자동으로 신고된다.
평범한 사람이 동문회 총무를 맡고 있다는 이유로 동문회비를 자신의 계좌로 받을 수도 있다. 물론 계좌이체를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가까운 자동입출금기를 찾아 회비를 송금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동문회비 납부 마감일에 총무의 통장에 현금으로 입금되는 돈이 2000만원을 넘는다면 곧바로 FIU에 정보가 전달된다.
자녀 결혼과도 무관하고 동문회 총무를 맡을 일도 없다고 안심할 수 없다. 2000만원 이상 현금을 계좌로 입금 받은 혼주만 FIU에 신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날 혼주에게 송금한 모든 사람의 정보가 FIU에 전해진다. 2000만원 이상 고액현금거래의 상대방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마침 그날 축의금과 상관없이 다른 이유로 현금을 송금한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도 FIU 신고 대상이다.
동문회비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의 계좌로 입금 받은 동문회 총무뿐만 아니라 당일 회비를 보낸 모든 동문들의 거래 정보가 FIU에 전달된다. 하필 동문회비 납부 마감일에 2000만원 이상을 입금 받은 총무가 부모님께 생활비를 현금으로 보내드렸다면 부모님까지 고액현금거래 상대자로서 FIU에 보고된다.
이런 식으로 FIU에 접수된 고액현금거래 금액은 지난 2011년 210조원을 넘어섰다.
이 정도면 의심거래와 고액현금거래로 FIU에 보고되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평범한 사람들 대다수가 해당된다. FIU는 왜 이런 정보를 모으고 있을까. 9.11 테러 직후 세계 주요국들이 모여 국제적으로 테러와 밀수 마약 탈세 등을 방지하기 위해 FIU라는 것을 각 나라별로 설치하고 정보를 공유하기로 약속했다. 이 국제협약에 의해 우리나라도 FIU를 만들고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FIU로 집중된 거래정보 중 탈세가 의심되는 정보만 전달받던 국세청이 모든 거래정보를 조회하겠다고 나서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국세청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하경제 양성화에 부응하겠다는 취지에서 주장하고 있지만 FIU는 개인 사생활 침해와 금융실명제법, 신용정보보호법 등의 위반소지가 있다고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물론 국세청은 개인의 금융거래 정보 외에 스스로 습득한 재산과 소득 정보를 모두 갖고 있다.
은행에 예금 적금을 하고 이자를 받아도 이자소득세를 떼면서 국세청에 관련 정보가 전해진다. 개인사업자라면 사업소득을 신고하는 등 종합소득을 신고하기 때문에 소득에 대한 각종 정보는 국세청이 꿰뚫고 있다. FIU가 수집하는 정보 외에도 개인의 금융정보가 노출되기도 한다. 금융실명제법과 신용정보보호법의 상위법이 규정하고 있는 경우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당사자의 서면동의가 있고 나서 정보가 제공된다. 당사자의 서면동의 없이 이뤄질 때도 있는데 이는 당사자가 사망했거나 물리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상속인 또는 법정대리인이 동의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법원에서 발부한 판사의 영장이 있다면 당사자 동의 없이 금융거래 관련 정보가 제공된다.
[이진명 매일경제 금융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1호(2013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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