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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ute]무더기 퇴사 통보 파워게임 희생양?…삼정KPMG 골 깊어지는 분란
입력 : 2013.03.07 15:5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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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김교태 대표, (오른쪽) 윤영각 전 회장
그러나 퇴사 통보를 받은 측에서는 억울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이들은 이번 구조조정이 단순히 경기 불황에 따른 경영정상화 차원을 넘어 윤영각 전 회장과 김교태 현 대표 간 권력 다툼에 희생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회사 측 퇴사 통보조치에 끝까지 저항하겠다는 결연한 목소리도 들린다. 그동안 회계업계에서 윤 전 회장과 김 대표 간 갈등설은 어느 정도 알려져 왔다.
어쩌면 어느 기업에서나 있는 내부 파워게임 양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회계법인은 그 성격상 수많은 국내 기업들의 회계감사를 맡는 등 공익적 성격이 강하다. 그만큼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둘러싸고 일반인들의 관심은 여느 회사보다 높다는 얘기다.
삼정KPMG가 그동안 주인이 교체되는 과정과 그 이후 어떤 일을 겪었는지 따라가 보자.
EY한영과 합병 불발 분란의 시작? 지난 2010년 5월 19일, 서울 역삼동 강남파이낸스센터에 위치한 삼정KPMG 본사. 당시 윤영각 삼정KPMG 대표이사 겸 회장은 오후 9시가 넘어 긴급 임원회의를 소집했다. 다음날 새벽 5시를 넘겨 끝난 마라톤 회의 안건은 성사 직전에 놓인 언스트앤영(EY) 한영회계법인과의 합병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삼정 측은 2000년부터 파트너십 관계를 맺은 KPMG 측이 2010년 들어 원 펌(One Firm) 관계를 요구하며 경영권 간섭 움직임을 보이자 대항마를 찾게 됐고, 마침 EY한영 측 합병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해왔다. 세계 굴지의 컨설팅·회계법인인 EY는 한영만으로는 한국 시장에서 파이를 키우기가 어렵다고 판단해 삼정과 파트너십을 열렬히 추진했다.
이에 삼정 측은 인사권 등 독자경영을 보장하는 현행 멤버 펌(Member Firm) 형태를 고수하면서 KPMG 인터내셔널에 EY 측과 손잡을 수도 있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만일 EY한영과 합병이 성사되면 회계사만 3400여명에 달해 딜로이트안진을 제치고 삼일회계법인에 이어 국내 2위로 뛰어오를 수 있었다.
당시 삼정KPMG에서 한영과 협상과정에 참여했던 한 파트너급 회계사는 “내부에서 KPMG 인터내셔널과 결별하고 EY와 손을 잡는데 대해 파트너들간 이견이 있었다”면서 “하지만 KPMG가 원 펌 형태를 고수하고 EY가 막대한 지원을 한다면 제휴 파트너십을 갈아탈 수도 있다는 분위기가 강했다”고 말했다.
윤 회장 역시 KPMG가 인사권과 경영권을 차지하려는데 대해 강력히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회장은 삼정을 세운 뒤 KPMG와 파트너십을 맺어 전 세계 KPMG 인터내셔널의 해외 오피스(44곳) 중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키워온 데 대해 자부심이 강했다. 2000년대 회사 매출성장률은 연평균 13%에 달해 KPMG 인터내셔널에 속한 해외 사업장 중에서 최고였다. 윤 회장으로서는 이렇게 잘 키워놓은 삼정을 KPMG 인터내셔널의 지시와 감독 하에 놓이게 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당시 국내 회계업계는 이런 배경에서 삼정과 EY 간 합병 가능성을 점치고 있었다.
그러나 긴급 임원회의가 열리기 직전 KPMG 인터내셔널은 윤 회장에게 원 펌 요구를 철회하고 삼정KPMG에 연간 4500만달러를 투자하겠다는 의향을 내비쳤다. 몽골 사무소에 대한 관할권도 중국이 아니라 삼정KPMG에 주고, KPMG 인터내셔널 이사회 의석 중 하나를 한국 측에 내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도 했다. KPMG로서는 성과가 뛰어난 삼정이 EY와 손잡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윤 회장이 부랴부랴 임원회의를 소집해 EY한영과의 합병을 보류키로 결정한 것은 KPMG 측이 EY 제안을 뛰어넘는 큰 당근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삼정 측은 KPMG와 EY한영 사이를 저울질하며 최대의 이익을 뽑아낸 셈이다.
윤 전 회장-김 대표 간 갈등의 싹 그러나 이후 삼정KPMG 내부는 평탄하지 않았다. 1년도 안 돼 윤 회장이 사임하는 등 긴박하게 돌아갔다.
삼정KPMG 부대표 중 한 명은 “KPMG 인터내셔널이 삼정 측에 마지못해 뜻을 굽혔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윤 회장에 대해 가졌던 신뢰가 반감했다”고 밝혔다. 윤 회장이 EY와 협상을 명분으로 KPMG 인터내셔널과 결별의사까지 내비쳤던 기억 때문에 KPMG 측은 윤 회장에 대해 섭섭한 마음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김교태 대표와의 갈등설도 이때부터 싹텄다는 설명도 나온다. 김 대표는 산동회계법인 출신으로 2000년 대우그룹 분식회계 사건으로 산동이 해체돼 삼정에 흡수되면서 삼정 창업주인 윤 회장과 인연을 맺었다. EY 측과 합병 논의가 한창일 당시 김 대표는 처음에는 윤 회장 뜻을 따랐다가 이후 KPMG와 결별을 반대하는 주도세력으로 돌아섰다. 그의 주장은 오랜 파트너십을 갖고 상호발전해온 KPMG와 떨어져서는 미래가 없고, 한영의 경쟁력으로 볼 때 한영과 합병시너지가 크지 않다는 것이었다. 일각에서는 윤 회장이 EY와 협상이 긴밀히 돌아가자 KPMG 인터내셔널 최고경영진이 방한해 당근책을 제시했는데 이때부터 김 대표가 EY와의 협상 반대파로 돌아섰다고 지적한다. 김 대표는 이후 회사에도 나오지 않는 등 윤 회장의 애를 태웠다고 한다. 김 대표 측 인사도 “EY한영과 합병을 진지하게 검토했던 윤 회장과 김 대표 간 불화는 이때부터 싹텄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삼정과 EY한영 간 협상은 물 건너가고 KPMG와 파트너십을 지속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자 KPMG와 결별 불가를 외쳐온 김 대표 입지가 단단해졌다.
그러나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질 것을 우려한 주주파트너들은 “왜 외부에서 온 회장단이 이사회에 참석하느냐”며 거세게 반발했다. 당시 윤 회장 최측근 파트너까지 나서 “윤 회장이 장기 집권을 꾀하고 있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메일을 직원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윤 회장 측 관계자는 “윤 회장이 창업 때부터 함께 해온 자들까지 나서 반대가 거세지자 입장이 난처해졌다”고 털어놨다. 더욱이 그해 여름 정기 건강검진에서 심혈관 질환이 악화돼 휴식 권고까지 받은 터라 윤 회장은 대표직 사임 의사를 굳혔다.
그의 뒤를 이어 회계법인을 맡게 된 김 대표는 이후 삼정KPMG그룹 CEO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였다. 당시 김 대표는 “회사 경영을 위해서는 윤 회장이 필요하다”며 둘 사이에 협력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해 5월 말 김 대표가 CEO로 취임하고 반대급부로 윤 회장이 이사회 의장에 취임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원래 이사회 의장은 CEO가 겸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정관 부칙개정안을 사원총회(지분을 가진 주주파트너 70여명으로 구성)에서 통과시켜 대표와 의장을 분리할 수 있도록 했다. 김 대표 측 인사는 “창업주에 대한 예우를 다하고 그가 갖고 있는 역량을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때부터 1년 동안 이들은 큰 잡음 없이 나름 돈독한 사이를 유지했다. CEO를 맡게 됐지만 당장 윤 회장에 비해 외부 네트워킹이 부족했던 김 대표가 당분간은 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회사에 왕이 둘일 수는 없는 일이다. 이들은 서로에게 아무 일 없는 듯 대했지만 강력한 기싸움을 벌였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윤 회장은 이사회 의장이자 창업주로서 회사 일에 간여하고 싶어 했고, 김 대표는 이를 불편하게 여겼다는 후문이다. 당시 삼정KPMG 부회장 중 한 명은 “둘 사이는 평탄하지가 않았다. 갈등이 잠재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양측 간 불화는 1년 뒤 이사회 의장직을 연임하는 문제에서 도화선을 탔다. 정관 규정상 중대한 의사 결정은 이사회를 거쳐 사원총회에서 3분의 2를 넘는 지분 동의를 얻어야 한다. 2012년 5월 말 열린 이사회에서 윤 회장의 이사회 의장 임기를 남은 정년까지 2년간 연장시키는 것으로 만장일치 결론이 났다. 다음 절차는 이틀 후 있을 사원총회에서 정관 부칙 개정을 확정짓는 일이었다. 1년 전 부칙 개정에서는 의장직을 1년만 맡을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기간을 연장해야 했던 것이다. 사원총회에서 표결 대신에 총의로 추대하는 형식을 취하려 했지만 투표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무기명 표결에 들어갔다. 그러나 투표 결과는 찬성이 과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반대 이유는 CEO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는 것은 일사불란한 회사경영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윤 회장 측은 이것이 김 대표가 이사회에서 통과시킨 뒤 사원총회에서 반대를 꼬드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과거 이사회 결정을 사원총회에서 한 번도 뒤집은 전례가 없었다는 점을 들어 김 대표 측이 당시 사원총회에 나온 주주파트너들을 사주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김 대표 측은 비밀전자투표로 이뤄지는 표결 성격상 어디까지나 주주파트너 각자의 자유의사에 따른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이렇게 해서 윤 전 회장은 2012년 12월 말 허울뿐인 자문계약을 해지하겠다는 통보를 하고 창업한 회사를 나왔다. 윤 전 회장 측은 “김 대표가 밖에 나가서는 윤 회장을 자문에 앉혀 창업주를 대우하고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 했다”고 말했다. 반면 김 대표 측은 “창업주를 어떻게든 대우하려고 노력을 했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못해 안타깝다”고 전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했던가. 윤 전 회장이 나가자 2013년 1월 들어 삼정KPMG의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앞서 언급했듯이 파트너급 회계사 6명과 그 밑의 직원들이 퇴출 대상으로 정해졌다. 삼정KPMG 관계자는 “컨설팅 수요가 줄면서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졌다.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 후 국내 컨설팅 시장은 1조원에 달할 정도로 호황이었지만 2011년부터 수요가 줄면서 불황이 계속돼 인원 감축이 불가피했다”고 강조했다. 실제 삼정KPMG는 컨설팅을 비롯해 회계감사, 세무 등에서 손실이 가중돼 작년 말 12월 결산에서 130억원 가량의 세전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인력 조정이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퇴사 통보를 받은 사람들은 해고 절차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퇴사 대상자를 가리려면 공감할 만한 선정 기준을 만들어야 하고, 특히 주주파트너급은 사원총회에서 3분의 2 이상 동의가 필요한데도 아무런 절차 없이 문서도 아닌 구두 통보만 받았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퇴출 대상자들이 윤 전 회장의 편에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겉으로는 김 대표와 같은 산동 출신도 포함되어 있다고 하지만 해당 인사는 윤 전 회장 쪽에 줄을 섰기 때문에 팽 당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대표 측은 “사업부 축소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거기에 몸담은 사람들에게 퇴사를 통보한 것”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반면 퇴사를 요구받은 자들은 “구조조정을 가장한 권력다툼의 희생양”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노동 관련 부처에 진정하는 등 끝까지 대응할 의사를 밝히고 있다. 양측 입장이 극명하게 달라 어느 쪽이 진실일지는 쉽게 판가름 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병호 매일경제 증권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0호(2013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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