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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아부다비 유전 확보의 의미
입력 : 2011.06.23 16: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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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다비 전경
이와 함께 우리나라는 3개 미개발 유전에 대한 독점적 개발권한을 보장하는 HOT(Head Of Term) 계약도 체결했다. HOT는 신속한 계약 진행을 위해 먼저 주요 조건만 선정해 체결하는 계약형태다.
아부다비 유전 계약으로 최소 12억 배럴 원유 확보 이번에 개발권을 보장받은 세 곳의 광구는 육상유전이 두 곳, 해상유전이 한 곳인데 한국석유공사 측에 따르면 비록 미개발 광구라 해도 원시부존량이 5억7000만 배럴로 확인된 상태며 이 중 적어도 1억5000만∼3억4000만 배럴은 생산이 가능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로써 이번 아부다비 측과의 계약에서 우리나라는 최소 약 12억 배럴의 원유를 확보한 셈이다. 작년 우리나라의 석유소비량이 7억9000배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에 확보한 원유가 얼마나 큰 규모인지 알 수 있다(물론 이번에 확보한 원유는 한 해에 모두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시차를 두고 10∼20년에 거쳐 생산될 것이다).
정부는 2010년 10.8%였던 우리나라의 자주개발률이 이번 유전 계약으로 인해 15%까지 상승할 것으로 추정했다. 자주개발률은 한 해에 우리나라 기업이 해외 광구에서 생산한 원유와 천연가스의 양을 한 해 우리나라에 도입한 원유와 천연가스 양으로 나눈 것이다. 따라서 이 수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우리나라 기업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자원의 양이 그만큼 많아져 자원 공급의 안정성이 강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주요 석유수입국의 자주개발률을 보면 일본의 경우 23%이며 이탈리아·스페인이 50% 수준, 프랑스가 93%에 달한다. 우리 정부는 2019년까지 자주개발률 30%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이번 아부다비 유전 계약으로 자주개발률이 약 5%포인트 상승했다. 그만큼 이번 계약 규모가 얼마나 큰지 짐작케 한다.
이번 아부다비 유전 계약은 원유 확보 측면에서 그 규모 이상의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해외자원개발 사업의 후발주자로서 기술력과 협상력이 뛰어난 강대국 메이저 기업들에 밀려 양질의 유전을 확보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UAE는 세계 6위의 석유매장지역이면서 평균 석유생산 단가가 배럴당 1.5달러로 세계 평균(18달러)의 12분의 1, 중동 평균(6달러)의 4분의 1에 불과한 지역이다. 지금까지 UAE에서 유전 개발에 참여한 국가들은 미국과 영국, 프랑스, 일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이와 같이 양질의 유전지대에 우리나라가 생산과 개발의 주도권을 확보했다는 것은 세계에 자원개발 역량에 대한 우리나라의 ‘브랜드’를 그만큼 높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대형 유전의 경우 외국 기업이 유전 보유국 정부로부터 개발권을 확보하고 우리나라는 이들이 확보한 유전에 프리미엄을 주고 단순 지분 참여 형태로 투자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번 아부다비 유전은 우리나라가 생산과 개발 권한을 직접 아부다비 정부로부터 확보했다는 데 더욱 큰 의미가 있다.
전략적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성과UAE를 순방 중인 이명박 대통령과 칼리파 빈 자이드 알 나흐얀 대통령이 배석한 가운데 3월13일 아부다비 시내 알-무슈리프궁에서 열린 원유개발 MOU서명식장에서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왼쪽)과 칼둔 아부다비 행정청장이 협정서명서에 서명하고 있다.
또한 UAE는 자원개발의 투자환경 측면에서도 전략지역으로 심화시켜 나가야 할 곳이다. 중동과 그 주변 이슬람권 지역인 북아프리카는 세계 최대의 석유 매장지역이지만 이곳 대부분의 국가들이 튀니지에서 촉발된 시민혁명 운동의 확산, 내부 종족간의 갈등 그리고 이란과 같이 핵문제로 인한 서방국가들과 대립 등으로 높은 정정 불안의 우려를 안고 있다. 반면 UAE는 친 서방정책을 지속하면서 외국인 노동자를 포함해 1인당 국민소득이 3만5000달러에 달하고 세계에서 모범적으로 경제개발을 추진하는 왕정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가 높아 중동에서도 드물게 정정 불안 요소를 갖고 있지 않는 나라 중 하나다. 이와 함께 앞에서 언급한 풍부한 매장량, 낮은 생산비는 물론 다른 자원부국에서는 보기 힘든 잘 정비된 자원개발 인프라와 외국인 투자에 대한 투명한 법·제도를 갖추고 있다.
현재 우리 기업들이 아프리카나 중남미, 중앙아시아 등 신흥 자원부국에서 자원개발 진출을 열심히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정정이 불안하고 낙후한 인프라, 빈번히 변경되는 투자제도, 불합리한 상관습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치솟은 국제 석유와 자원가격으로 수많은 국제 기업들이 이 지역 광구들을 노리고 있어 첨예한 경쟁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이러한 지역들과 비교해볼 때 UAE가 유전 확보 측면에서 전략적 가치가 얼마나 높은 국가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번 아부다비 유전 확보는 자원개발에서 외교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보여준 사례라 하겠다. 고유가 시대로 접어들면서 이제 자원은 하나의 거래 상품이 아니라 자원부국의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담보하는 전략상품으로 변했다. 특히 대부분 자원부국이 정치적으로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갖추면서 석유자원을 정부의 통제 하에 두고 석유를 통해 오일머니를 늘리는 것뿐 아니라 석유를 외교 전략의 도구로 활용하는 경향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 간 외교가 자원 확보에 매우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면서 자원 확보 요소에 기술력과 자본력 외에 외교력이라는 것이 하나 더 붙게 됐다.
이번 아부다비 정부가 우리나라에 유전을 제공한 것은 우리나라 기업의 자원개발 역량을 평가한 것이라기보다 우리 정부의 외교적 노력의 결실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번 유전 계약 성사를 위해 정부는 대통령을 주축으로 태스크포스(TF)를 두고 1년 가까이 아부다비 당국에 집중적인 외교 공세를 전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정부의 외교력도 큰 요소로 작용 물론 자원외교만이 이번 유전 계약의 결실을 맺은 요소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UAE 측도 한국에 유전 참여를 허용한 데 따른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각적인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자원개발 역량은 낮지만 2009년 원전의 수주로 알게 된 우리나라 인프라 기술에 대한 높은 신뢰도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 순위 77위의 석유개발 기업을 가진 우리나라에 30여 년 만에 외국 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유전개발권을 확약한 것은 지도자를 중심으로 전개한 우리의 집중적인 외교공략이 아니었으면 실현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를 계기로 아부다비 유전 확보의 외교적 전개 과정을 반추해 보고 다른 지역의 자원개발 진출 때도 이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비록 자원매장의 여건이나 투자제도, 외교환경은 상이하지만 아부다비 외교 전략을 벤치마킹하면서 세계 주요 자원부국을 상대로 한 다각적인 외교방안들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이번 아부다비 측과 유전 계약은 에너지 확보 측면 뿐 아니라 UAE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심화시켰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한국은 이미 2009년 1400MW급 4기의 원자력발전을 수주해 세계에서 6번째로 원전을 수출하는 국가가 됐다. 우리나라는 원자력 뿐 아니라 정유와 가스설비에서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어 이번 아부다비 유전 계약을 계기로 UAE에서 정유공장, LNG터미널 등 에너지 설비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했으면 한다.
현재 UAE는 세계적인 석유매장국이지만 차세대 신재생에너지 메카로서 원대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아부다비에서 대규모 신재생에너지 국제전시회와 ‘제3차 세계미래에너지정상회의’를 유치했을 뿐 아니라 아부다비에 국제신재생에너지기구(IRENA) 본부를 두었다.
UAE는 아부다비 인근에 무(無)탄소 도시인 ‘마스다르 시티(Masdar City)’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2016년을 목표로 전체 6.5㎢에 달하는 면적에 태양을 비롯한 신재생에너지만을 사용하는 탄소제로 도시를 만드는 데 22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우리나라 역시 해외지역으로 신재생에너지 투자 진출을 확대시키고 있는 가운데 UAE 측과의 다각적인 협력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와 같이 UAE는 에너지 확보뿐 아니라 에너지 설비 투자 시장으로서 그 전략적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더구나 UAE는 석유의존형 경제에서 벗어나 미래에 석유 없이도 선진국으로서 경제기반을 다지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UAE의 계획은 우리나라에 플랜트, 조선, IT, 통신까지 모두 전략적 협력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이번 유전 확보 과정에서 “한국이 앞으로 100년간 UAE의 경제협력 파트너로서 임무를 다할 것”이라고 설득한 것이 주효했다는 보도는 아부다비 측도 우리의 인프라 역량에 큰 기대를 갖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아부다비 유전 확보를 기반으로 UAE와의 경제협력 파트너 관계를 더욱 심화시키는 노력들이 필요하다.
대규모 유전개발을 아부다비 측으로부터 확약 받았지만 정식 계약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아직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다. 우선 광구 매입 가격 협상이 남아 있다. 광구 매입 가격에는 본 계약 시 유가 전망이나 다양한 협상 조건들이 영향을 미칠 것이다.
가격조건이 양호할수록 우리에게 돌아오는 수익이 크다는 점에서 고도의 협상력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메이저들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이 더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면서 우리의 협상을 훼방 놓을 수도 있다.
우리 내부적으로는 유전 매입에 소요되는 대규모 재원을 조달하는 과제가 있다. 이번에 광구 제공을 약속받았지만 실제 프로젝트 착수 시기까지는 앞으로 3∼5년의 세월이 남아 있다. 그 사이에 지금까지 쌓아온 UAE와의 긴밀한 외교관계에 금이 가지 않도록 지속적인 친분관계를 유지하는 노력들도 필요하다.
그밖에도 여러 과제가 남아 있다. 하지만 지난번 원전 수주와 이번 유전 확약을 기반으로 아부다비 측과 더욱 다양한 경제협력 사업들을 발전시키면서 제2, 제3의 대형 유전들을 추가로 확보하는 쾌거를 기대해 본다.
[정우진 / 에너지경제연구원 자원개발연구실장 wjchung@keei.re.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8호(2011년 0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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