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lobal] 인도 기업들의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가?

    입력 : 2011.03.28 18:43:28

  • 지난 8월12일 인도 마힌드라&마힌드라 (Mahindra&Mahindra Ltd.)가 쌍용자동차의 우선인수 협상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더욱이 예비협상 대상자도 인도의 루이아(Luia) 그룹. 바야흐로 ‘인디아 쇼크’가 현실화하고 있는 것일까?

    최근 인도 기업들의 행보를 보면 마치 ‘물 만난 물고기’마냥 신이 난 것 같다. 이런 인도 기업들이 만들어내는 탑 헤드라인 뉴스를 볼 때마다 깜짝 놀란다. 120억 달러를 주고 유럽 2위 철강사 인수, 세계 최저가 승용차 자체 개발에 성공, 세계 10대 갑부 중 4명이 인도인 등등. 이제 인도 기업들의 역량과 그들의 영향력은 세계 경제에서 무시 못 할 존재가 되었고 우리 기업들에게는 위협적으로까지 보인다. 이런 인도 기업들의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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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성장 실적으로 낙관적 성장 전망 인도 기업들의 ‘숨어 있던’ 역량은 최근 인도가 이룩한 놀라운 경제성장 실적으로 살아나는 것 같다. 인도 경제는 2005년부터 3년간 9%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글로벌 금융위기 영향하에서도 2008년에는 6.7%, 2009년에는 7.4%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또한 인도로 들어오는 외국인 직접투자 유입액도 최근 3년간 연간 3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불과 7~8년 전만 해도 50억 달러 수준이었다. 따라서 이제 인도 경제는 몇 년 전 상황과도 완전히 다른 모습이며,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인도를 생각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인도 기업들도 이러한 높은 경제 실적 속에서 사업이 급성장하는 경험을 했다. 앞으로도 이런 경제성장이 지속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 속에 투자를 확대하고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과거 모든 것이 불투명할 때는 인도 기업들이 ‘돌다리도 두들겨 가는 식’의 안전하고 단계적인 사업 확장 방식을 보여 왔다. 그러나 이제는 시장 성장을 확신하고 처음부터 규모의 경제를 고려하며 대규모 투자까지 주저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한국 기업들을 놀라게 하는 것은 국내에서도 미약해 보이는 인도 기업들이 자신의 덩치보다 몇 배나 큰 서구 선진국 기업들을 과감하게 인수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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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개방 위협이 경쟁력 제고 계기 이처럼 인도 기업들이 최근 들어 잘 나가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인도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과 무관하지 않다. 1991년 말 2개월 치의 수입대금밖에 없을 정도로 심각한 외환위기를 맞았던 인도 정부는 그 동안 걸어 잠가두었던 빗장을 열 수밖에 없었다. ‘규제왕국(License Raj)’으로 불렸을 만큼 모든 산업이 허가제였으나 점차 대부분의 업종에서 신규 진출 규제를 풀었다. 이를 통해 타타자동차가 승용차 분야에 진출할 수 있었으며, 진달 그룹, 에사르 그룹이 철강 공장을 신규로 건설할 수 있었다. 외국인 투자 규제도 대폭 완화해 현재 대부분의 업종에서 자동승인제도하에 100% 지분까지 투자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점은 중국과 다른 점으로, 결과적으로 인도 민간기업들의 경쟁력을 강하게 키우는 기반이 되었다. 왜냐하면 인도 정부가 할 수 없이 빗장을 열자 인도 재벌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선진기술과 자본, 마케팅력으로 무장한 외국 기업이 물밀 듯이 밀려올 것이 예상되자 인도 기업들은 방만하게 운영되던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정비했다. 타타 그룹의 경우에도 전략 사업군을 7개로 정하고 기존 300개 이상의 그룹사의 수를 90여 개로 줄였다. 라탄 타타 회장은 잭 웰치 GE 회장의 방침과 마찬가지로 세계 톱 3에 들 수 있는 능력, 글로벌 경쟁력, 수익력을 기준으로 평가해 비핵심 사업과 경쟁이 치열한 사업은 퇴출시키고 관련회사들을 통폐합했다. 마힌드라 그룹의 경우도 1994년 자동차, 농기계, 인프라, 무역 및 금융 서비스, IT, 시스템 기술 등 6개 전략사업군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조조정했다.

    이러한 체질 정비 후 인도 재벌 기업들은 2000년대 들어 ‘글로벌 전략’으로 도약해 나갔다. 기업들의 니즈에 맞추어 인도 정부도 기업들이 해외에서 자금 조달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외환 위기 이후 엄격하게 관리했던 제도를 완화하고, 해외 기업 인수도 용이하게 제도를 정비했다. 이를 통해 타타 그룹의 경우 타타티(Tata Tea)가 2000년 자신보다 세 배나 규모가 큰 영국 티틀리(Tetley)를 4억3500만 달러에 인수해 일거에 세계 2위 업체로 부상했다. 타타자동차는 2004년 한국의 대우상용차를 인수했으며, 2008년에는 고급 자동차의 대명사인 재규어와 랜드로버까지 인수했다. 또한 연산 450만 톤 생산능력을 보유한 타타스틸은 2007년 약 2000만 톤 능력을 가진 영국과 네덜란드 철강사인 코러스를 인수했다. 인도 최대의 기업 그룹인 타타 그룹의 글로벌 전략은 당연히 마힌드라 그룹과 같은 다른 재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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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인계급 등 유산(legacy)이 결정적 말콤 글래드웰이 쓴 <아웃라이어>에 성공하는 데 있어 ‘유산(legacy)’의 중요성이 나온다. 현재 인도 재벌들은 아버지, 할아버지, 삼촌 등에서부터 시작한 기업을 물려받았으며, 어렸을 때부터 현장에서 경영수업을 받으며 자랐기 때문에 나이가 어려도 성숙하며 경영을 잘 한다. 세계 최대 철강사인 아르셀로 미탈의 CFO인 아디트야 미탈은 현재 36살에 불과하지만 10년 전부터 기업 성장과정에서 결정적인 기업인수를 책임지고 추진했다. 2006년 아르셀로미탈의 CFO를 맡을 당시 주위의 우려에도 지금까지 훌륭히 역할을 해내고 있어, 머지않아 그가 CEO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디트야 비를라 그룹(인도 재계 4위)의 쿠마르 M. 비를라 회장도 그룹 경영을 넘겨받을 당시 29살이었다. 14년이 지난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경영해 오고 있다. 아난드 마힌드라 부회장이 42살에 CEO로 취임했고, 라탄 타타 회장이 54살에 그룹 회장에 취임한 것을 보면 인도의 재벌 기업 경영진이 점차 젊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인도에도 ‘기업가 정신’ 하나로 IT 분야 등에서 새로 창업하여 성공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인도 경제는 가족 중심의 재벌 그룹들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인도에 가족 중심 재벌이 많은 이유는 우리나라가 1960~1980년대 산업화 과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재벌 기업들이 성장한 배경과 비슷하다. 즉, 정책이나 제도가 미비하고 자본, 기술, 인력 등이 모두 열악한 상황에서 재벌 내 그룹사 간에 협력하는 것은 강력한 경쟁 우위가 될 수 있다.

    더욱이 인도 재벌들은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오는 ‘상인 DNA’를 가진 바이샤(상인 카스트) 가문인 경우가 많다. 이런 바이샤들은 같은 커뮤니티 내에서는 자금을 조달해 주고, 사람을 소개해 주며, 경험과 사업 노하우를 알려주는 등 서로 도와준다. 이런 대표적인 상인 커뮤니티로는 라자스탄 주 마르와리(Marwari)를 들 수 있는, 아르셀로미탈, 바르티 에어텔, 아디트야비를라 그룹, 에사르 그룹, 진달 그룹, 힌두자 그룹, 베단다 그룹, 바자즈 그룹 등이 이 커뮤니티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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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진경영 기법 도입 등 우수한 경영능력 마힌드라가 단지 ‘인도 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쌍용차를 인수해 경영할 능력이 있느냐며 무시하고 의심했던 언론이 마힌드라 경영진의 화려한 학력에 조용해졌다. 케셥 마힌드라 그룹 회장은 미국 와튼경영대학원 출신이며, 아난드 마힌드라 그룹 부회장 겸 CEO는 미국 하버드경영대학원을 졸업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동차ㆍ농업 부문 파완 고엔카 사장은 미국 코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하버드경영대학원의 최고경영자 과정을 마쳤다.

    라탄 타타 회장은 비록 건축학과이지만 미국 코넬 대학을 나왔으며, 쿠마르 M. 비를라 회장은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에서 MBA를 했다. 이처럼 대부분의 인도 재벌 자녀들은 영국 아니면 미국에서 교육을 받는다. 더욱이 이들은 유치원부터 유수 사립학교에서 100% 영어로 교육을 받으며 테니스, 크리켓, 승마, 요트, 비행기 조종까지 마치 영국 왕실가문과 같은 교육을 받는다. 따라서 이들이 서구 기업과 사업을 할 때도 전혀 기가 죽지 않으며 의사소통과 사교문화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처럼 최소한 ‘기업 경영’ 측면에서는 서구화되어 있고 정보수용 능력(영어 능력)이 강한 인도 기업들이 글로벌 경제와 기업환경이 어떻게 변하고 있고 선진국의 최신 경영기법을 모를 리 없다. 최근 들어 교통통신이 급속히 발달하고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의 발달로 인해 거의 실시간으로 서구 선진기업들을 좇아간다. 아난드 마힌드라 부회장의 경우도 트위터를 즐겨 사용하고 있다. 이렇듯 인도 기업들은 경영전략, 투자, 재무, 회계, 마케팅, IT 면에서 서구 경영기법을 도입하고 있으며 CSR(기업사회적책임) 경영 등은 한국 기업들보다 앞서 있다.

    ‘주가드’가 경영혁신 동력으로 작용 최근 미국 컨설팅 업계와 경영학계에서는 인도 기업들의 성공요인을 분석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도 기업들이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문제점을 개선하고 해결책을 찾는’ 주가드(Jugaad) 능력이 있음을 주목하고 있다. 힌디어로 주가드는 ‘독창적인 임기응변의 해결책’이라는 의미인데 이제 일본의 ‘카이젠(완벽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개선에 개선을 거듭하는 경영기법)’과 같이 경영학의 혁신기법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도의 작은 시골마을에서는 낡은 지프의 강판과 나무판자를 이어 붙여 차대를 만들고 엔진은 양수기 모터로 대신해 만든 ‘주가드 차’가 운행된다. 이 차는 400달러도 되지 않지만 1만 달러가 넘는 승용차와 기능(탈 것)은 같다. 이러한 인도의 특수한 환경하에서 타타자동차가 세계 최저가 승용차인 ‘나노’를 개발해 생산할 수 있었고 인포시스, 와이프로와 같은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최근 들어 중국에서 임금, 근로조건, 복지 등 노동자들의 요구수준이 높아지면서 중국 정부도 정책적으로 보호하고 있어 ‘세계 공장’으로서의 역할이 축소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인도가 중국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인가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인도에서 고질적인 숱한 사회적인 문제들의 개선이 쉽지 않고 민간 중심의 경제체제로 인해 중국과 같이 단시간 안에 대규모 생산규모에 의한 저렴한 생산구조를 구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주가드’와 같은 유연하고 혁신적인 생각으로 저원가 생산체제를 모색함으로써 부분적으로는 중국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도 기업의 경쟁력은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강하다. 상인을 중시해온 훌륭한 유산이 있으며 유창한 영어와 높은 교육수준 등 준비가 잘 되어 있다. 더욱이 인도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어 ‘기회’가 바로 그들 앞에 와 있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에게 ‘인디아 쇼크’는 더욱 리얼하게 다가올 것이다. 우리 기업들은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는가.

    [임정성 포스코경영연구소 수석연구위원 jsimm@posri.re.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호(2010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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