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샤넬까지 접수한 인도계 CEO들이 뜨는 이유는

    입력 : 2022.01.05 14:50:46

  •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어도비, IBM.

    위 기업들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전 세계 혁신을 이끌어가는 글로벌 IT 기업이라고 누구나 쉽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기업을 묶는 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인도 출신 경영진이 이끄는 기업인 것이다.

    전 세계 혁신을 주도하는 미국을 대표하는 IT 기업들을 인도계 출신이 장악하고 있다. 막연히 인도 출신이라 하면 가지고 있는 똑똑하고 머리가 좋다는 선입견 외에 이들은 어떤 매력과 실력을 갖추었기에 이처럼 인도 출신 CEO 카르텔이라 불릴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갖추게 됐을까.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
    ▶구글과 MS, 인도계가 이끌어 인도계 출신 CEO로 대표되는 기업은 미국에서도 그 규모와 시장 영향력이 가장 큰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가 대표적이다.

    구글을 이끌고 있는 순다르 피차이 CEO는 2015년부터 구글의 CEO를 맡은 후 2019년 모기업 알파벳의 CEO로도 재직하며 구글 왕국을 이끄는 핵심 멤버이다. 인도 타밀나두주 마두라이 출신인 그는 인도 공과대학 카라그푸르 캠퍼스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하고 스탠퍼드 대학에서 재료과학 석사를,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전공했다. 특히 재료공학 전공이지만 미국 유학길에 오르고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빠져 본격적인 컴퓨터 공학을 공부했다. 2002년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앤드컴퍼니 입사 후 2004년 구글로 이직해 본격적인 IT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피차이 CEO는 구글 크롬을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익스플로러 독점 시대를 끝내고 본격적인 인터넷 전국시대를 연 주인공이다. 그 성과에 힘입어 2011년 구글 크롬 수석부사장을 역임한 피차이는 2014년 구글 수석부사장에 이어 2015년 구글 CEO 자리에 오르며 지금의 입지를 다지게 된다.

    2019년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가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서며 그를 대신해 구글뿐 아니라 지주회사 격인 알파벳까지 이끌게 된 피차이의 연봉은 200만달러, 재산은 13억달러에 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돈으로 자그마치 1조5000억원에 달하는 돈이다. 그가 구글을 이끈 뒤 구글의 시가총액은 3배가량 상승했고 직원 수는 7만 명에서 14만 명으로 2배가량 늘어났다. 인도계 출신의 아메리칸드림을 대표하는 인물이 바로 피차이인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구글이 오기까지 크롬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라며 “그러한 크롬을 사실상 만들고 지금의 구글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그에게 합당한 자리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사티아 나델라 취임 후, MS 주가 고공행진 피차이와 함께 인도계 출신 CEO를 대표하는 인물이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의 CEO, 사티아 나델라다. 인도 안드라프라데시주 하이데라바드 출신인 나델라는 마니팔 공과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뒤 시카고 대학교에서 MBA를 마쳤다.

    미국에서 공학과 경영학 MBA 코스를 밟았다는 점이 피차이와 유사하다. MBA 수료 후 1992년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해 클라우팅 컴퓨팅 전문가로 활약했다. 그 성과를 인정받아 빌 게이츠, 스티브 발머에 이어 마이크로소프트의 제3대 CEO로 2014년 취임한다.

    컴퓨터 OS 1위 업체이자 사실상 독점기업이던 마이크로소프트의 폐쇄성을 개방적으로 바꾸고 클라우딩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도입해 회사의 정체성을 완전히 뒤바꾸는 작업을 주도했다. 이를 통해 애플, 구글, 아마존 등 후발 인터넷 공룡기업과 다시 자웅을 겨루고 혁신을 이어갈 수 있도록 회사의 체질 개선을 이끌었다는 업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나델라가 CEO를 맡은 뒤 마이크로소프트는 세계 최초로 시가총액 1조달러를 넘기는 등 제국의 역습을 주도해왔다. 현재 시가총액만 2조5800억달러에 달하는 마이크로소프트 현재를 구축했다는 평가다. 특히 혁신에 뒤처지며 위기를 겪었던 MS주가 나델라 CEO가 취임한 후 고공행진을 이어오며 모든 투자자들을 미소 짓게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진설명
    ▶미국 테크 기업 내 인도계 파워 막강 미국을 이끌어가는 혁신기업의 인도계 CEO는 셀 수 없이 많다. 어도비의 샨타누 나라옌, IBM의 아르비드 크리슈나, 마이크론의 산제이 메로트라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CEO직을 내려놓은 트위터의 잭 도시는 본인의 후임으로 빅데이터 전문가 퍼라그 아그라왈 CTO를 낙점했다.

    특히 37세에 불과한 아그라왈은 뉴욕증시 S&P 500 지수에 포함된 주요 기업 CEO 중 가장 어리다. 아그라왈 역시 인도 공과대학에서 컴퓨터 과학을 전공한 뒤 스탠퍼드대학에서 컴퓨터 공학 박사학위를 따고 빅데이터 전문가로 활약했다. 아그라왈의 합류로 미국 테크기업 내 인도계 파워는 더욱 확장성을 가지게 됐다는 평가다.

    이번 트위터의 CEO 선임으로 미국 내 주요 기업에서 활약 중인 인도계 CEO의 숫자는 10명을 훌쩍 넘어선 상태다. 지난 6월 클라우딩컴퓨팅 기업 VM웨어 역시 라구 라구람 CEO를 임명한 바 있다.

    미국 창업을 주도하는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인종 역시 인도계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IT 혁신기업들의 인도계 비중은 6%이며 미국 전체 인구 중 인도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1%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계가 이렇게 IT업계에서 도드라진 성과를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 메이드 인 인디아 매니저>의 저자 고팔라크리스난은 “인도인들은 검투사처럼 훈련한다”라고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그는 “출생한 뒤 입학, 취업, 사망신고까지 인도에서 자라고 생활하면서 많은 일들을 관리자처럼 직접 수행해야 한다”며 “경쟁과 혼란은 유연성을 갖춘 문제 해결 능력자로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인도계 인구 100만 명 IT, 엔지니어업계 종사 미국으로 건너온 인도인들은 대부분 고학력자로 약 70% 이상이 학사학위 이상 소유자다. 미국 전체 인구의 30%에 불과한 학사학위 비율에 비하면 확연히 높다. 또 인도계 인구 약 100만 명은 엔지니어업계 또는 과학계통에 종사하고 있으며 70% 이상이 취업비자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사실상 영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는 인도인들은 언어장벽 역시 거리낌 없는 문제다. 높은 기술수준과 전문성,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춘 인도계가 활약하는 이유다.

    미국의 이민자 정책의 변화 역시 인도계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됐다. 1960년대 미국 이민정책이 국적 할당제 대신 능력과 기술 중심으로 변경되면서 고학력 인도계 엔지니어와 과학자들이 대거 미국으로 몰리게 된 것이다. 과학, 기술, 소프트웨어라는 미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핵심 산업의 중심부에 인도계가 깊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샨타누 나라옌 어도비시스템스 CEO
    샨타누 나라옌 어도비시스템스 CEO
    ▶“관료주의 vs 혁신 사이 중심 잘 잡는다” 평가받아 인도계 출신인 CNN 디지털 뉴스 오피니언 담당 부사장 S.미트라 칼리타는 “변화와 불확실성을 수용해온 인도 문화를 통해 수용과 인내를 길렀으며 관료주의와 혁신 사이에서의 중심을 잡을 훈련을 한 점이 강점이다”라며 인도계 출신 CEO 증가 현상을 분석하기도 했다. 10억 명이 넘는 인구 가운데 수십 개의 언어, 수백 개의 신들이 뒤섞여 살아가야 하는 인도의 혼재된 문화가 더욱 나은 결과를 낳았다는 해석이다. 또 칼리타는 “다양한 인력과 리더십이 오늘날보다 더 중요했던 시점이 없었던 만큼 인종과 종교를 불문하고 회사 리더십에 적합한 것이 바로 인도계의 특징이다”라며 “실력과 포용성을 갖춘 인도계 전문가들이 계속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은 일상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카스트라는 특수신분제도가 존재하는 인도의 상황 역시 한몫하고 있다. 아예 미국 유학을 꺼리는 일본, 많은 유학생들이 존재하는 중국과 한국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극명하다는 것이다. 중국과 한국의 경우 미국에서 공부를 마친 뒤 다시 자국으로 돌아가 새로운 창업 기회나 사업 아이템을 발굴하는 회귀 현상이 거리낌이 없지만 인도의 경우 아직까지는 인도 내 인프라 구축이 여전히 기대보다는 부족한 상황이다.

    물론 최근에도 인도에서 기업가치가 10억달러가 넘는 유니콘 기업들이 하나둘 탄생하기 시작하면서 자생 시스템이 구축되는 분위기도 관측되지만 여전히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크다는 평가다.

    ▶밀어주고 당겨주는 인도계 네트워킹 밀어주고 당겨주는 인도계 특유의 끈끈한 문화 역시 이러한 인도계 네트워킹이 더욱 공고화된 원인으로 손꼽힌다. 인도인에 대한 평가에 대해 일반적으로 뻔뻔하고 자기 고집이 강하다는 이야기가 이러한 인도계 문화를 끈끈하게 한 원동력이란 것이다. 한국계의 경우 이러한 부분에서 다소 적극성이 떨어진다고 평가되는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특히 미국의 문화 자체가 인도계의 성향에 좀 더 부합한다는 의견도 이런 부분에서 나온다. 서로 네트워킹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인도계 특유의 끈끈함이 더욱 공고하게 작용하면서 인도계의 힘을 보여준다는 분위기다.

    주요 혁신기업의 CEO를 배출해낸 인도계의 미국 내 입지 역시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인도계 CEO들은 앞다투어 코로나19 피해를 크게 입은 인도를 돕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사티아 나델라 MS CEO는 회사 자원과 기술을 활용해 인도의 열악한 코로나19 바이러스 대처 상황에 도움을 주겠다고 트위터를 통해 밝혔으며 피차이 구글 CEO 역시 개인 돈 70만달러를 포함해 1800만달러에 달하는 구호지원을 약속했다. 이들은 인도계 의원으로 구성된 인도코커스(CCI)와 힘을 합쳐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을 발휘해 모국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샤넬 글로벌 CEO로 발탁된 인도 출신 리나 나이르
    샤넬 글로벌 CEO로 발탁된 인도 출신 리나 나이르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최근 온라인으로 진행한 ‘구글 포 인디아’ 행사에서 향후 5~7년간 100억달러, 약 12조원을 인도에 투자한다는 방침을 발표하기도 했다. 인도 힌두스탄타임스에 따르면 피차이 CEO는 디지털화 펀드를 통해 돈을 마련해 디지털 생태계 구축 등을 이끌어나가겠다는 구체적인 방침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인도와 인도 디지털 경제에 대한 구글의 신뢰를 반영한 것”이라며 “인도가 다음 혁신의 물결을 이끌 수 있도록 보다 확실한 지원을 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결국 인도계 출신 CEO의 인도 재투자 계획 등이 반복되면서 투자-인력 확보의 선순환이 이어질 수 있는 기회를 창출하는 것이다.

    국내 스타트업계 한 관계자는 “인도계와 일해 보면 그들의 실력과 스마트함도 돋보이지만 같은 인종끼리 가족 같은 끈끈함과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 또한 눈에 도드라질 정도로 뚜렷하다”며 “그러한 그들의 문화가 보다 수월하게 미국 문화와 미국 스타트업 기업에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인도계 CEO의 약진은 비단 미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국내 대표 IT 기업 삼성전자 역시 인도계의 힘을 수용한 바 있다. 2020년 1981년생으로 전무로 발탁되며 화제를 모았던 프리나브 미스트리 전무가 대표적이다. 그는 과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젊은 과학자 35명에 뽑히기도 한 수재다. 미스트리 전무는 차세대 AI 프로그램인 네온 개발을 주도했으며 로보틱스 콘셉트 발굴 및 핵심기술 확보에 공을 들였다. 다만 그는 2021년 회사를 퇴사해 뉴욕에 위치한 디원 비전 매니지먼트로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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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 산업에서도 약진 인도계의 약진은 비단 기술업계로 한정되지 않는다. 전통 산업계에서 인도계 CEO를 대표하는 펩시의 전임 CEO 인드라 누이는 지난 2006년부터 펩시를 12년간 경영해왔다. 누이 전 CEO는 펩시의 5대 CEO이자 첫 여성 CEO로 각종 혁신을 주도하며 주목을 받았다. 퀘이커 오츠를 인수하거나 게토레이로 음료 시장을 흔드는 등 다각화 전략으로 2004년 코카콜라를 제치고 업계 1위를 달성하는 성과를 거둔 바 있다. 또 마스터카드의 아자이 방가 역시 비혁신기업 중 인지도 있는 인도계 CEO다.

    최근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이 역사상 최초로 비백인 여성을 CEO로 발탁한 것이 화제를 모았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인도 출신 영국인 리나 나이르다. 유니레버 최고 인사책임자 출신인 나이르는 오는 1월부터 전 세계 2만7000명의 직원을 보유한 샤넬의 총 책임자로 부임한다. 나이르는 유니레버에서도 최초의 아시아계 출신이자 최연소 최고인사책임자라는 타이틀을 가진 바 있다. 인도 컨설팅 그룹 커넥트는 이번 임명에 대해 “인도인이 명품 브랜드를 이끄는 것은 세계 최초”라며 “패션계 아웃사이더가 글로벌 명품 브랜드의 수장이 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나이르는 한 번도 패션업계에서 일을 해본 적이 없는 소비재기업 출신이다. 이는 패션업계에서 소비재 기업의 우수인력의 실력을 인정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추동훈 매일경제 뉴욕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6호 (2022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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