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강대국 미국에 생필품이 부족하다고요?

    입력 : 2021.09.29 17:55:23

  • 미국 경제가 재고 부족과의 전쟁으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델타 변이를 타고 재확산되는 가운데 집, 자동차 등 생활필수재들이 재고 부족으로 가파른 가격 상승세를 보이는 상황이다. 심지어 일상생활에 쓰이는 생필품들의 품귀 현상으로 실물경제에 미칠 영향을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장기화로 집을 새로 짓거나 리모델링하려는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미국 뉴저지주의 한 주택이 새로 지어지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장기화로 집을 새로 짓거나 리모델링하려는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미국 뉴저지주의 한 주택이 새로 지어지고 있다.
    ▶주택 중심으로 의식주 가격 가파른 상승세 가장 먼저 의식주의 한 축인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지난 14일 발표된 8월 소비자물가지수에 따르면 주택 임대료는 8월에 0.3% 증가해 4개월 연속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집값 상승이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지며 실거주자들의 거주 안정성을 해치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CNBC 보도에 따르면 주택 구입 설문조사 결과 세입자의 절반에 가까운 48%가 평생 집을 사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실제 지난 6월 전국 주택가격 지수 역시 1년 전보다 무려 18.6% 상승해 1987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심지어 현재 미국의 집값은 과거 부동산 호황기였던 2006년보다도 40% 이상 오른 상태다.

    이처럼 미국의 부동산 가격이 오른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 탓이 크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상시화되고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대폭 늘어나며 집 구매에 대한 관심 또한 덩달아 높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1년 새 이러한 분위기는 더욱 확산되며 집 공급 부족 사태가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직접적 영향 외에도 제로금리 시대를 맞아 모기지 대출이 용이하고 금리가 낮은 점 역시 이러한 주택 수요 확대의 원인으로 꼽힌다. 결국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앞으로 3년간 주택 공급을 10만 가구가량 늘린다는 계획을 발표하는 등 즉각적인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집값 상승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더욱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부동산 컨설팅업체 나이트 프랭크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세계 집값 자체가 전반적인 상승 국면을 맞이한 것으로 분석된다. 작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1년간 전 세계 55개국 집값 평균은 9.2% 상승했다. 특히 미국은 명목 상승률이 15%를 상회하며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최근 몇 년간 한국의 집값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와중에 미국 집값은 상대적으로 크게 오르지 못하며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1~2년 새 미국, 특히 뉴욕 맨해튼주를 중심으로 한 동부 중심부 집값이 꿈틀대며 관심도가 급증하고 있다. 국내 투자에서 재미를 보지 못한 투자자들까지 미국 투자에 뛰어드는 등 글로벌 자금이 맨해튼 같은 미국 도심으로 몰리며 이러한 집값 밀어올리기에 일조하고 있는 분위기까지 감지되고 있다.

    미국 뉴욕시 맨해튼 길가를 따라 자동차들이 길게 주차돼 있다.
    미국 뉴욕시 맨해튼 길가를 따라 자동차들이 길게 주차돼 있다.
    ▶코로나로 건설 수요 늘었는데 자재는 부족하고 인력난까지 주택 수요 증가와 더불어 건설 수요가 늘어난 것에 비해 자재 부족과 인력난으로 인한 공급 부족은 나날이 심해지는 분위기다. 실제 신규 건축뿐 아니라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집 수리 및 리모델링에 나선 수요까지 함께 급증하면서 자재 회사와 건설 관련 기업들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전반적인 수요와 공급을 따져봤을 때는 늘어나는 수요에 걸맞은 공급이 확보돼야지만 현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우세한 전망이다. 결국 시장에 맡겨서 해소가 되지 않는다면 정부 차원의 정책이 나와야 이러한 주택 공급 부족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주택 시장이야말로 다른 변수의 개입보다는 수요와 공급의 원리대로 움직이는 대표적인 실물경제 분야다”라며 “지금처럼 내 집 마련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투자용 매수자까지 늘어난다면 결국 심각한 주택난으로 실물경제를 흔들게 하는 큰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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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고차 가격이 신차 넘어서기도 집과 더불어 주민들의 발이 되어주는 자동차 품귀 현상 역시 주목해볼 만하다. 한국과 달리 자동차의 생활 밀접성이 훨씬 더 큰 미국에서 자동차 재고 수급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은 굉장히 유의미한 신호다. 특히 중고거래가 빈번한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공급 부족이 불러일으키는 나비효과는 꽤 파급력이 큰 편이다. 자동차 부족의 제1원인은 슈퍼사이클이라 불리는 반도체 수급 문제로부터 기인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동차 산업이 더 이상 전통적 제조업 분야가 아니라 최첨단 신기술 경쟁의 장이 됐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주행 편의, 안전, 친환경 등 자동차에 기대하고 요구하는 가치를 제공하기 위한 기술을 만들기 위해 최근 들어 자동차 내 반도체 사용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단순히 자동차뿐 아니라 모든 산업 분야에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즉 폭발적인 반도체 수요의 증가는 반도체 수급 부족으로 이어졌고 이는 자연스럽게 자동차 생산 일정에 차질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한 개의 부품이라도 없으면 완성할 수 없는 자동차 생산 특성상 반도체 부품 하나만 수급에 문제가 생겨도 차를 생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21년 현재, 이러한 반도체 부족 현상은 신규 자동차 공급 부족으로 이어지며 자동차 재고 부족 사태를 불러일으킨 셈이다. 신규 자동차 생산이 더뎌지면서 신차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이는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극복하고 일상생활에 복귀해 오프라인 업무에 되돌아가려는 수요의 증가와 맞물려 더욱 심각한 공급 부족 문제를 야기한 상태다.

    인기 있는 차종의 경우 신규 차량을 인수하기 위해 권장소비자가격보다 1만달러 이상 웃돈을 얹어줘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현재 미국 내에서 신차 구입 상황은 여의치 않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매도인 우세장에서는 매도인이 갑이 되고 매수희망자가 을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렇다보니 차를 주문하고 몇 달은 기본으로 기다려야하고 이에 지친 사람들이 대안을 찾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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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이러한 신차 가격 상승이 중고차 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재고 부족으로 인한 신차 가격 상승은 자연스레 중고차 가격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 중고차 가격이 사실상 신차 가격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높아지면서 현재는 자동차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미국 뉴저지에 거주 중인 한 주민은 “새 차는 구하기가 힘들고, 중고차는 너무 비싸 부담스러워 선택을 하기 쉽지가 않다”며 “주변에 값비싼 중고차를 사느니 조금 더 보태 새 차를 기다리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고 설명했다.

    현대·기아차는 이러한 재고 부족 사태가 장기화되는 국면에서 소기의 성과를 내기도 했다. 현대·기아차는 지난 8월 미국에서 5만6200대의 차량을 판매했다. 5만8000여 대를 판매한 작년 동기 대비 감소했지만 전년 대비 3.7% 감소하는 데 그쳐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판매량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선방했다는 이유가 바로 재고 부족으로 인한 차량 공급 지연이 현재 가장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가격 상승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로는 재택근무를 끝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미국의 코로나19 극복 현황과도 연결된다. 재택근무로 인해 굳이 차량을 이용해 출퇴근하거나 이동할 필요가 없어진 가정에서 차를 처분하거나 아예 소유하지 않으며 1년여를 살아왔다. 하지만 델타 바이러스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미국 시민들이 일상적인 생활로의 복귀를 꿈꾸면서 자연스레 차량을 찾는 수요가 늘어났고 중고차 가격이 가파르게 오른 원인이 됐다. 즉 더 이상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이동을 막고 일상으로의 복귀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하루에도 10만 명이 넘는 확진자가 쏟아지는 일촉즉발의 긴장감 속에서도 코로나19 바이러스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의 의지가 엿보이는 상황이다. 백신보급이 본격화되면서 더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무언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일상 복귀를 위해 필요한 일상 재고의 부족은 여러 불편함을 주는 동시에 경제 회복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감도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미국의 한 대형마트의 매대가 재고 부족으로 텅텅 비어 있다.
    미국의 한 대형마트의 매대가 재고 부족으로 텅텅 비어 있다.
    ▶생필품 재고 부족 일상화… 입항대란 “진행중” 집과 자동차 산업의 재고 부족 문제가 심각해 보이지만 실제 미국 시장 전반적으로 재고 부족 문제는 일상화된 문제다. 우선 1년여 만에 학교 개학을 앞두고 대형마트 등 매장에서는 문구류 관련 물품이 동난 상태다. 공책, 펜, 각종 필기구류 등이 빠르게 소진되면서 가게 곳곳이 텅텅 빈 상태로 며칠째 운영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 외에도 생필품인 휴지, 물티슈, 식자재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재고 부족 문제가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면서 향후 이러한 재고 부족이 가져올 후폭풍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 지난 8월 미국 생산자물가지수(PPI)는 11년 만에 연간 최대 폭으로 상승하며 기록을 세웠다. 지난 10일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PPI는 전년 동기 대비 8.3% 상승했다. 미국 금융권 관계자는 “공급망 병목 현상이 올해 더 심각하고 오래 지속되고 있으며 노동력 부족 현상이 생산에 차질을 낳고 있다”며 “이는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반영돼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실제 반도체 부품뿐 아니라 각종 제품 생산을 위한 원자재 공급 국가에서 생산 중단 등 공급 차질이 발생하며 원자재 부족으로 인한 공급 재고의 한계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미국 주요 항구 운영사에 발생 중인 입항대란 역시 이러한 추세와 궤를 같이한다.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으로 노동력을 확보하지 못한 항구 산업계에서는 이로 인해 지연된 컨테이너 입항이 여전히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상태다.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된 입항 정체 현상이 내년까지도 이어질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지난달 미국 주요 항구에서는 237만 개에 달하는 수입 컨테이너가 입항을 앞뒀다. 이는 2002년 이후 최대 수치이며 올 한 해 동안 미국으로 수입될 컨테이너는 2590만 개로 지난해 세운 역대 최고기록(2200만 개)을 1년 만에 경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로스앤젤레스(LA) 항만청은 이번 주 물동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 다음 주에는 80%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뉴욕주에서는 백신증명서를 발급받은 사람들에게만 식당 출입을 허용 중이다.
    뉴욕주에서는 백신증명서를 발급받은 사람들에게만 식당 출입을 허용 중이다.
    ▶물가 상승 압박 우려도… 증시 “버블” vs “상승 랠리 지속” 이러한 재고 부족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계속 지속된다면 물가 상승이 불가피할 것이고 이는 자연스럽게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져 가계 부담을 급증시키는 주요한 요인이 된다는 점이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다. 특히 한국은행의 전격적인 금리 인상이 미국에서도 인상적인 뉴스로 언급될 정도로 미국 내에서도 금리 인상 시기를 놓고 투자자들의 관심이 무척 큰 상황이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역시 이러한 우려와 관련해 “물가 상승은 일시적이다”라고 선을 긋기도 했지만 미국 정부의 재정확대 정책이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다는 경제학자들의 목소리 역시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이러한 물가 상승 우려에 대해 반박하는 입장을 견지하는 전문가들 역시 적지는 않다.

    미국 상무부의 지난달 발표에 따르면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 무역 서비스를 뺀 생산자 물가는 0.3% 상승에 그쳐 지난해 11월 이후 가장 적은 상승률을 보이고 있는 상태다. 즉 실질적으로 물가 상승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개량해 확인해보면 눈에 보이는 숫자보다는 물가 상승에 대한 위험이 높지 않다는 뜻이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테이퍼링을 앞두고 미국 주식 시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주식 시장에 큰 타격을 입히지는 못하고 있다”며 “결국 물가 상승 압박 역시 당장은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더라도 실질적으로 시장 전체를 엎어버릴 정도로 큰 파급력이 예상되지는 않는다”고 전망했다. 마찬가지로 물가 오름세가 더 확대되지 않으면서 미국 내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정점을 통과하고 있다는 분석도 유효하다.

    향후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경기 둔화에 영향을 미치면 수요 측면에서의 물가 압력도 다소 완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JP모건은 “미국의 8월 비행기, 호텔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지는 점을 봤을 때 델타 변이 확산이 주요 하방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특히 현재 미국 주식 시장이 물가 상승 등 여러 부정적인 우려에도 불구하고 계속 역대 최고가 경신 행진을 이어가면서 과연 이러한 상승 랠리가 언제까지 어이질 것인가에 대한 의견 역시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다. 실적과 성장 중심으로 시장을 바라보는 상승론자들은 현재 주가를 과거의 관점에서 바라볼 게 아니라 혁신과 미래가치를 중심으로 다시 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상태다. 반면 과거의 사례와 현재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지금의 주식 시장은 거대한 구름 속에 감춰진 버블일 수 있다는 하락론자들의 목소리 역시 커지고 있는 만큼 시장의 향방에 대한 귀추가 주목될 수밖에 없는 상태다.

    박세익 체슬리투자자문 전무는 “미국 주식 시장의 움직임은 미국 내뿐 아니라 한국 등 글로벌 주식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며 “미국 투자자뿐 아니라 국내 주식 투자자들도 이러한 미국 주식의 향방과 재고 부족발 물가 상승 압력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둔다면 투자에서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조언했다.

    [추동훈 매일경제 뉴욕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3호 (2021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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