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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브리그>의 배우 박소진 ‘데뷔 10주년’ 걸스데이 넘어설 ‘배우 인생 2막’
입력 : 2020.03.02 10:5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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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소진(34)이 인기리에 막을 내린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극본 이신화/연출 정동윤)를 통해 가수에서 배우로, 성공적으로 변신했다. 걸그룹 걸스데이로 데뷔한 지 10년 만에 선 두 번째 출발선에서, 과하지 않게 꼭 제 몫을 다 해주면서 <스토브리그>와 윈윈(winwin)했다. 입춘을 지난 절기가 무색하게 늦겨울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2월의 어느 날, 서울 효자동의 한옥 카페에서 박소진을 만났다. <스토브리그> 종영 소감을 묻자 그는 “행운이었다”고 반색하며 “배우 박소진으로서 사실상 첫 드라마인데, 시작하는 걸음에 이렇게 많이 사랑 받는 작품을 했다는 것에 굉장히 감사하다”고 웃으며 말했다. <스토브리그>는 국내 야구팀 ‘드림즈’ 프런트들의 치열한 일터와 피, 땀, 눈물이 뒤섞인 고군분투를 생동감 있게 펼쳐내는 돌직구 오피스 드라마로 시청률 19.1%를 기록하며 인기리에 종영했다. <스토브리그>는 야구를 소재로 한 스포츠드라마의 외연을 띠고 있지만 그 안에서 각 캐릭터들의 인생과 직장 생활에서의 지침을 유려하게 풀어내며 많은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다. 출연 배우이자 시청자로서 박소진이 느낀 <스토브리그>만의 매력을 묻자 그는 제일 먼저 단장 백승수 캐릭터를 꼽았다. “사실 우리 삶에서, 꼭 직책이 단장이라거나 그런 직업이 아니더라도, 그런 사람을, 리더를 내심 원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마음은 뜨겁지만 머리는 냉철하고. 세상을 살면서 마음(감성)과 이성이 다르게 선택하는 과정이 있잖아요. 그 속에서도 보통의 꿈꾸는 것들을 이뤄가는 걸 보면서 캐릭터를 응원하기도 하고, (캐릭터에) 바라기도 하는 재미가 컸던 것 같아요. 또 다른 캐릭터도 하나하나 주변에 진짜 있을 법한 사람들이잖아요. 그런 것을 보면서 공감도 위로도 많이 되셨을 것 같아요.”
박소진은 <스토브리그>에서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열혈 스포츠 아나운서 김영채 역을 맡았다. 극중 영채는 저널리스트로 성공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대담함으로 첫 등장부터 화제를 모았다. 그는 길창주(이용우 분)와의 인터뷰를 ‘악마의 편집’으로 조작, 악의적인 보도로 ‘드림즈’ 운영팀에 위기감을 조성하며 극의 갈등과 긴장감을 조율하는 핵심 인물로 활약했다. <스토브리그>를 만난 건 오디션을 통해서였다. “영채의 대사가 주어졌는데, 대개 캐릭터의 직업에 대해 생각하고 오디션을 준비하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저는 그것보다는 이 아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했어요. 툭툭 물어보는 것에 대해 듣는 사람이 더 강렬하게 느끼기도 하니까요. 제 리딩을 보신 감독님이 ‘어떻게 해석을 하면 그렇게 대본을 읽지?’ 하며 재미있어하셨어요. 제 해석을 설명해드리고, 다시 한 번 읽어본 뒤 ‘나중에 연락 드릴게요’라고 하셔서, ‘오늘도 그냥 좋은 경험이었나’ 하는 마음으로 돌아갔는데 같이 하게 됐다는 회신을 받았죠.” 박소진은 영채 캐릭터를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보다 디테일한 고민과 준비를 거듭했다.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스포츠 아나운서 역할인 만큼 그는 각종 뉴스 채널을 섭렵하고, 내로라하는 스포츠 아나운서들의 모니터링도 수차례 했다.
“사실 저널리즘을 가진 스포츠 아나운서라는 게 조합하기 쉽지 않기도 했어요. 이런저런 자료들을 참고하고 분석하면서 나만의 것을 만들게 된 것 같아요. 중립적인 듯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궁금한 것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내고 싶고, 열심히 일해 최고가 되고 싶은 열정도 있는 인물이었죠.”
하지만 용병으로 돌아온 길창주를 코너로 모는 에피소드나, 백승수 단장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등의 설정으로 인해 <스토브리그> 시청자들로부터 ‘밉상’으로 공인되기도 했다. 일부 시청자들 사이엔 연기에 대한 쓴소리도 있었다. 이에 대해 박소진은 “저도 사람인지라 아프긴 하더라”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물론 시청자들이 화를 많이 내실 거라 생각은 했지만, 아프긴 아프더라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게 내 최선인가? 내 최선일 리가 없잖아, 나는 이제 시작인거고, 이 이상의 것을 당연히 해낼 수 있을 거잖아’라는 생각이 들었죠. 내가 처음부터 어떤 배우가 되고 싶고, 어떻게 준비했는지, 그런 걸 (시청자들이) 다 알아주기에는 작품 안에서 캐릭터만의 스토리를 보여주기 쉽지 않기도 했거든요. 시간이 지날수록 담담해졌어요.”
“처음 촬영 갔을 때, 감독님께선 ‘백승수와 에너지가 비등비등해보였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대부분 야구팀들이 주를 이루는 드라마니까, 단장님을 대하는 태도가 있잖아요. 단장님을 존중하는 면이 있지만, 에너지는 비슷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죠.”
쉽지 않은 주문이었다. 박소진은 “무작정 세게 한다고 좋은 것도 아니라 고민이 있었는데, 남궁민 선배님께서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좋겠다’고 해주셨다. 그리고 몇 번씩 리허설을 시도해주시면서, 중간을 찾아갔던 것 같다”고 말했다.
남궁민과의 호흡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백승수 단장이라는 캐릭터 자체로도 쉽지 않은 상대지만, 연기적으로도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말도 못 하기 때문. 박소진은 “맞다”며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런데 거기 집착하면, 오히려 잘하지 못했을 것 같다”고 나름의 분석을 내놨다.
“그런 (연기적인) 에너지의 비등비등함이 아니라 캐릭터의 에너지를 더 생각했어요. 내가, 영채가 무엇을 정말 말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게 뚜렷할수록, 강하게 느껴지고, 캐릭터가 보여주는 에너지가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백승수라는 캐릭터가 아닌, 남궁민이라는 배우가 전달해 준 인간적인 면모에 대해서도 밝혔다.
“정말 좋으신 선배님이에요. 대사를 하면서 선배님이 배려하고, 고려하고 계심이 느껴졌죠. 그렇다고 평소에 막 대놓고 스윗 이런 건 아니지만, 마음으로 잘 보듬어주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죠.”
걸그룹으로 시작된 연예계 생활이지만 기실 연기는, 박소진의 오랜 꿈이었다. “가수 오디션을 보기 전에도 연기자 오디션을 보기도 했었다”는 박소진인데, 연예계에서 만난 ‘제2의 길’인 연기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 건 의외로 그리 오래진 않은 일이란다.
“일단 너무도 원하던 가수의 꿈을 이뤘고, 걸스데이 활동이 바빴어요. 그렇게 지내다가 스물일고여덟 살쯤부터는 ‘아, 지금부턴 다시 오디션도 보고 시작해야지’ 하는 생각을 했죠. 그때의 마음은 ‘연기가 하고 싶다’, ‘나도 잘 하고 싶다’ 정도였던 것 같아요. 물론 그 당시에는 그 마음이 작지 않다고 느꼈지만 지금의 마음에 비하면 너무나 귀여웠죠(웃음).”
<스토브리그>와 더불어 2월 초 개막한 연극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를 병행하며 연기에 24시간을 ‘몰빵’한 박소진은 현재, 완벽한 ‘연기 홀릭’ 상태다. “너무 재미있어요. 매일 연기한다는 게 행복하고 좋아서, 연기 관련 스터디가 끝나거나 공연이 끝나거나 할 땐 그 좋은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는데 그 모습에 매니저가 웃을 정도죠. 이런 열정이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해요. 너무 감사한 일이죠. 마음의 열정이라는 게 쉽사리 생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가수를 꿈꿀 때도 음악에 대한 열정이 그만큼 컸지만 정작 가수 생활을 하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 생기면서, 내 인생이 그냥 사는 것이 목표가 되면 어쩌나 두려울 때가 있었어요. 그랬는데, 첫 연극을 하고서 열정이 확 폭발한 거였죠.”
그는 “다시는 없을 줄 알았던, 음악을 할 때보다도 더 큰 불꽃이 생긴 게 감사하다. 너무나 강렬하다. 이 마음이 오래 식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스토브리그>와 함께 산뜻하게 스타트를 끊은 2020년은 박소진에게 남다른 연도다. 2010년 걸스데이로 데뷔하며 연예계에 발을 디딘 그의 데뷔 10주년이 되는 해인 것. 데뷔 10주년을 맞은 소회를 묻자 그는 “치열했다”고 운을 떼며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정말 치열했어요. 다시 스무살 때로 돌아가라고 하면, 못 돌아갈 것 같아요. 그만큼 다시 열심히 살 수 있을지, 사실 확신을 못 하겠어요. 처음이라서, 그 모든 것에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렸던 것 같아요.”
오랜 시간 선망해왔던 가수의 꿈을 이뤘고, 치열한 걸그룹 대전에서도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아 일정 궤도에 올라섰지만 꿈을 이룬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공허함이 박소진을 잠식했던 순간도 있었다.
“너무 힘들어서라기보다는, 아마도 다음 스텝에 대한 공허함이랄까요? 인생이 늘 순탄하지만은 않을 테니까. 그래도, 그런데도 다행히 잘 버틴 것 같아요. 걸스데이가 조금 늦게 잘 된 게 도움됐을 수도 있을 것 같고요. 그냥 누군가에게는 너무 더디고, 느리고, 흑역사도 있고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느림이 여러 면에서 오히려 좋았던 것 같아요.”
지난 10년이 박소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은 걸스데이 멤버들이다. 그는 “걸스데이를, 우리 멤버들을 만난 건 내 인생의 가장 큰 복이다. 정말 하늘에 감사해야 할 일”이라며 “우린 우리가 전부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크고, 의지도 많이 한다. 정말 가족 같은, 커다란 집”이라고 말했다.
10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을 ‘연예인’으로 보낸 박소진이지만, 앞으로 걸어갈 배우로서의 긴 여정을 떠올리면 어쩌면 박소진은 이제 본격적인 출발선에 섰을 뿐이다. 부딪치고, 깨지고, 울고 웃는 경험들을 켜켜이 쌓아가다 보면 언젠가 더 좋은 배우가 되는 건 필연일 터다.
“<스토브리그>가 잘된 건 정말 감사하죠. 하지만 무엇을 하더라도 저에게는 다른 미래를 가져올 테니, 그게 부정적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혹시나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결코 그러지(부정적이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그냥 저는 끊임없이 알아가고 싶은 게 많은 배우이고 싶어요. 연기도 예술의 일부니까 변화가 분명히 있을 테고, 다만 분명히 내가 더 알아가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굳어 있지 않기를 감히 바랍니다.” [박세연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사진제공 눈컴퍼니]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4호 (2020년 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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