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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늪에서 피어나는 연꽃기업] (8) 승률 100% 전직 펀드매니저 인수한 뷰티회사 얼트루, 끈적이지 않는 ‘기능성 세럼’ 입소문타고 대박행진
입력 : 2019.10.31 10:2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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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금융투자업계에서 소성현 이름 석자는 ‘괴짜’로 통한다. 2008년 입사 당시에는 업계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생명공학을 전공해 증권맨 생활을 시작한 소 대표는 ‘남다른 감’을 선보이며 승승장구했다. 그를 눈여겨본 사수들과 함께 몇 차례 이직을 거치며 2012년 펀드매니저 생활을 마치는 동안 그가 기록한 승률은 100%에 가까웠다. 소 대표가 스스로 꼽은 뛰어난 수익률의 비결은 두 가지다. 첫째는 투자할 회사의 사소한 세간살이까지 파고드는 집요한 분석, 두 번째는 ‘선점’이다.
대성할 기미가 보이는 회사를 초기에 알아보고 투자하는 것이다. 이러한 투자성향을 살려 소 대표는 2012년 펀드매니저 자리를 미련 없이 박차고 나와 엔젤투자를 시작했다. 7년간 카카오, 바디프렌드 등 걸출한 성공을 거둔 기업들의 초기 투자로 알려지며 엔젤투자업계에서도 유명세를 떨쳤지만 소 대표가 지금까지 투자한 기업은 총 200개가 넘고 투입된 자금은 150억원에 이른다.
펀드매니저에서 엔젤 투자자로, 다시 뷰티회사 CEO로 변신 수많은 실패와 성공을 경험한 소 대표는 돌연 2017년 ‘쉽게 마르지 않는’ 젤리 마스크팩으로 업계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던 뷰티업체 얼트루를 인수했다. ‘뛰어난 기술력에 비해 부족한 마케팅과 유통채널.’ 엔젤투자자에 그치지 않고 창업 2년차 스타트업 CEO로 변신을 꾀한 소 대표의 변은 역시나 ‘저평가’였다. ‘맥주팩’, ‘담배팩’ 등 독특한 패키지를 선보이는 얼트루의 마스크팩은 보통 1장당 20㎖ 정도 주입하는 에센스를 33㎖까지 증량해 120시간을 공기 중에 노출시켜도 팩이 쉽게 마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패착(敗着)’에 가까워 보였다. 마스크팩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며 마진율이 급격하게 줄어들어 매출이 늘어갔지만 영업이익은 계속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소 대표는 “오랜 기간 매달 3000만~4000만원씩 자비를 투입해 회사를 이어나가야만 했다”고 회고했다.
‘성능 좋은 제품은 결국 시장에 통할 것’이란 믿음으로 상품기획을 지속한 얼트루는 최근 예상치 못한 대박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앰플 제품인 ‘릴랙싱 앰플’이 지난 8월 한 뷰티전문 방송에서 2019년 최고제품으로 선정되며 매진 행렬을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상품이 유명세를 타자 국내는 물론 중국, 중동 등에서도 앰플과 마스크팩을 구매하겠다는 주문이 밀려 소성현 대표는 그 어느 때보다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서울 서대문에 위치한 얼트루 본사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전까지 크게 의미 있는 판매가 이뤄지지 않았고 (방송 이후) 처음 한 달에는 재고가 없어서 못 팔았어요. 다음달에는 4만 개를 만들어 다 판매했는데 아직도 공급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재고를 늘렸는데도 직원들끼리 자신의 거래처에 보낼 물량을 서로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뷰티방송에서 1위 제품으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협찬이나 제품공급에 대한 요구는 없었나요?
방송 일주일 전에 해당사실을 전화로 통보받았는데 사실 믿지를 않았어요. 독립적인 연구소에서 제품을 비교한 결과 1위로 선정됐다는 요지였는데 제가 금융을 하다보니 워낙 의심이 많기도 하고 광고나 협찬에 응할 마음도 여력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고 모른 척하고 있었어요.(웃음) 직원들과 방송을 같이 보며 진짜 1위 사실을 확인했어요. 선정 이후에 제품에 1위 라벨을 사용하는 데 드는 비용 외에 선정 이전에 요구는 전혀 없었습니다.
▶이전까지 회사상황이 좋지 않았다고 하던데?
▷창피한 이야기지만 제대로 된 흑자를 내지 못했어요. 사비를 계속 회사에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매출은 계속 늘어났지만 문제는 마진이었어요. 저희 마스크팩은 원가를 높여 성능을 높여놨는데 마스크팩 시장 경쟁이 워낙 치열해 이윤이 줄었어요. 제가 인수할 당시만 해도 마스크팩 한 장당 2500~3000원 하던 시기라서 마케팅 비용을 지출하면서도 이윤이 나는 구조였는데 대형사가 저가공세를 통해 마스크팩 장당 800원씩에 판매하기도 하니 시장이 무너지게 된거죠. 마진율이 점점 떨어지고 조금 더 비용을 들여 차별화된 상품을 내놓기 힘든 시장이 되었어요.
▶마스크팩 제품원가를 낮추거나 펀딩을 받아 자금을 확대하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요?
▷청년창업펀드에서 지원을 받으라는 주변의 조언도 많았어요. 10억원에서 15억원 정도는 쉽게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인수제안도 있었는데 모두 거절했습니다. 투자가 들어오면 빠른 수익환수를 위해 원가를 낮추라는 등 간섭이 심해질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렇게 제품단가를 낮춰 가격경쟁을 하다보면 회사 정체성도 사라지고 정직하지 못한 제품을 고객들에게 팔아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앰플이 뒤늦게 빛을 발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회사에 마케팅할 돈도 크게 없었지만(웃음) 무엇보다 제품에 대한 확신이 있어서 광고를 일절 하지 않았어요. 일반적으로 앰플은 사용자들에게 끈적한 농도가 품질 수준으로 인식되어 있어서 제조사들이 일부러 끈적거리는 점증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저희는 과감히 점증제를 빼고 보습력을 높이는 데 치중했습니다. 사용해보시면 알겠지만 앰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묽어 보여요. 전문가들이나 사용자들이 그 점을 높이 샀던 것 같습니다.
▶방송과는 무관하게 해외 판매실적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데?
▷해외진출도 사실 의도하지 않았습니다.(웃음) 작년에는 한 중국의 왕홍이 제품을 중국에서 판매하고 싶다고 찾아왔는데 처음에는 제가 누군지 모르니 가시라고 했어요. 다시 요청이 있어 그러면 ‘우리 중국 상해지사에 재고가 20만 장 있으니 가져다 팔아보라’고 했어요. 잊지도 못해요. 작년 6월 1일에 위챗으로 ‘지금부터 시작한다’라고 하더라고요. 10분 만에 다 판거예요. 20만 장을. 그래서 바로 ‘몰라봐서 미안하다’고 문자를 보냈어요.(웃음) 중동의 대형 인플루언서 그룹도 저희를 먼저 찾아와 지금까지 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150개 유망기업에 투자 中, 엔젤투자 계속할 것 소성현 대표는 대부분의 시간을 얼트루에 쏟고 있지만 현재도 150여 개 기업에 투자하며 엔젤투자자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일주일에 2~3개 회사의 사업보고서를 검토하고 각 회사당 2시간씩 미팅을 통해 창업자들을 만난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중간에도 퀵으로 투자계약서가 도착했다.
▶현재도 투자는 하고 계시나요? 펀드매니저 시절과 성공률이 다를 것 같은데.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7년 동안 약 200개 넘게 투자한 것 같고 150억원 정도 투입했습니다. 처음 4년간 투자한 회사들은 거의 망하거나 연명하고 있는 수준이에요. 지금도 150여 개는 살아 있는데 굳이 성공률을 따지자면 10개 투자해 0.5개 정도 수익을 보고 있어요. 5% 정도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래도 엑시트에 성공한 사례들이 실패한 투자금을 훨씬 넘어서죠. 그럴 때마다 ‘이게 엔젤투자의 매력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카카오, 바디프렌드 초기투자자로 유명세를 탔는데?
▷첫 번째 호텔나우 엑시트에 성공하고 카카오는 주주가 50명도 안될 때 투자했고 바디프렌드도 낮은 가격에 들어갔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소문으로 퍼지며 사람들이 제가 투자한 종목에 관심을 가지면서 무서운 생각도 들더라고요. 엔젤투자라는 게 실패사례도 많이 나오기 마련인데… 특히 옐로모바일의 경우 제가 투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모르는 분들이 길거리에서 말을 걸거나 식사자리에 찾아오기도 하셨거든요.
▶밖에서 보기에는 갑작스럽게 회사를 인수하셨는데 이유가 있었을까요?
▷투자를 하던 회사 대표분이 먼저 제안을 하셨어요. ‘기술력이 뛰어난 회사가 있는데 마케팅이나 유통이 부족하다’는 내용이었는데, 그전까지 얼굴에 화장품 한 번 제대로 바른적이 없는 제가 보기에도 상당히 본질에 근접한 솔루션을 가지고 있는 회사라고 생각했어요. 마스크팩은 마르는 순간 피부에 있는 수분을 팩이 가져가는데 사람들은 얼굴에 흡수됐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러한 점에서 ‘쉽게 마르지 않는 마스크팩’은 상당한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카피를 통해 유사품도 많이 있었을 것 같은데?
▷비슷하게 저희 제품을 흉내낸 업체들이 몇몇 있었는데 거의 다 사라졌어요. 젤리마스크를 담배팩으로 접하신 분들은 대명사로 인식을 그렇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선점효과도 있었고 퀄리티 면에서도 아무래도 차이가 나니 다시 돌아오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투자자에서 경영자로 신분이 바뀌었는데 힘든 점은 없었나요?
▷재작년에 한 세미나에 참석해 “모든 창업자를 존경합니다!”라고 말했어요. 대표가 이렇게 결정을 많은 결정을 해야하는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웃음) 초기에는 커피 하나 구매하는 데도 대표의 결정이 필요하더라고요. 이전까지 투자자로서 참견을 하는 입장이었는데 대표가 되어보니 엄청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반성도 많이 했습니다.
▶특별하게 중요하게 여기는 경영전략이 있다면?
▷가격관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무분별한 할인이나 유통채널을 늘려 가격이 망가지면서 브랜드가 같이 쓰러지는 경우를 많이 봤거든요. 이번 성공을 계기로 앰플 연계상품 몇 가지를 더 낼 생각입니다. 추후에 성장을 이어갈 경우 플래그숍 개념으로 오프라인 매장을 하나정도 낼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투자자 입장이라면 객관적으로 얼트루의 성장가능성은 어느 정도로 평가하시나요?
▷매출은 150억원까지 충분히 성장할 수 있고 정체성을 유지해갈 수 있는 회사라고 생각해요. 앰플의 성공으로 추가적인 라인업의 성장 동력을 갖췄기 때문에 순환해서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추가적인 얼트루의 성장은 초기 직원들의 성장과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제 네트워크를 쏟아 부어야 할 시기이지만 추후에는 장기적으로 회사가 성장하면 초기 직원들 중에 대표가 나왔으면 좋겠고 그렇게 회사의 가치가 늘어나면 지분도 초기 멤버들과 나눌 생각입니다. 그 이후에는 제가 잘하는 엔젤투자에 더 힘을 쏟을 생각입니다.
[박지훈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0호 (2019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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