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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철 아시아발전재단 상임이사| 베트남 다문화자녀 현지大가면 장학금… ‘多민족국가’ 대비해 가교형 인재양성
입력 : 2019.07.29 11: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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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철 아시아발전재단 상임이사
“한국은 1945년에 독립한 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성취를 이룬 국가입니다. 이 과정에서 다른 나라들의 도움도 컸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성과를 나눠야 할 때입니다. 전 세계를 다 도와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고, 우리와 가까운 아시아를 중심으로 돕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게 현재의 아시아발전재단(이사장 김준일)입니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아시아발전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조남철 상임이사(67)의 일성에선 사명감과 진정성이 느껴졌다. 아시아발전재단은 아시아 각국의 상호이해와 교류 협력 증진을 목표로 하는 비영리 재단이다. 김준일 이사장(전 락앤락 회장)이 기금을 출연, 2016년에 출범했다.
재단 살림을 책임지는 조남철 상임이사는 방송통신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김준일 이사장이 방송대를 다니고 학교 발전 후원회장을 지낸 게 인연이 됐다. 조 상임이사는 “좋은 만남이 좋은 뜻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재단명이 ‘아시아발전재단’입니다. 이름만 봐선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언뜻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떤 취지로 만들어진 재단인지 궁금합니다.
▷기본적인 출발은 김준일 이사장의 사회공헌 의지에서 시작됐습니다. (김 이사장은) 처음 사업 시작할 때부터 나중에 성공하게 되면 재단을 만들어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김 이사장이 만들어 키운 ‘락앤락’은 해외 매출 비중이 높은 회사입니다. 그래서 아시아를 중심으로 돕는 재단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했죠. 처음 재단 만들 때 첫째, 동북아 쪽 우리민족을 위해서 조선족, 고려인, 재일동포를 돕자. 둘째, 국내에선 다문화 가정에 도움을 주자. 셋째, 동남아 여러 나라들에 우리의 경험을 전수해 그들을 더 빠르게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하자고 했습니다.
▶우리 동포를 돕는 일이야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만, 다문화 가정에 집중하게 된 배경에 관심이 쏠립니다.
▷오늘날 다문화 가정이나 청소년들은 근대기 재외동포들과 유사한 입장에 놓여있어요. 한국재외 동포들도 현지에선 ‘다문화’ 아닙니까. 한국사회의 다문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한다면 이들을 같이 가는 이웃으로 만드는 게 세계 12위 경제국으로서 마땅한 품격이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만약 이들을 제대로 품지 못한다면 기본적으로 다문화는 한국사회 갈등의 화약고가 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우리 사회 일원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죠. 이를 위해 하나는 학술대회 등을 통해서 정책 제안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가 이중 언어 문제입니다.
한국은 다문화 가정이나 이주민 아이들에 대해 “한국인이 되어서 살라”라는 생각이 강합니다. 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돌려보면 이주민 아이들은 반은 한국인 반은 그 나라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베트남 이주민 학생이 있다면 이들을 한국인이자 베트남인으로서 살 수 있게 해야 합니다. 한국이 그런 면에서는 많이 부족하죠. 이런 문제점에 착안, 아시아문화재단은 독특한 사업을 여럿 진행 중입니다. 이주민들 아이들에게 모국어를 배우게 하는 이중 언어 교실 지원 사업이 대표적입니다. 이주민 학생들이 자라 자신들의 모국 대학에 진학하면 장학금을 지급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어요. 얼마 전 호치민 한국학교를 다녀왔어요. 거기에도 한-베 다문화 학생들이 많아요. 전체 1900명 중 다문화 가정 출신이 420명 정도입니다. 그 중에서 베트남 대학에 진학하고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일단 명단을 요청해 놓은 상태예요.
▶이주민 가정 혹은 이주민과 한국인이 결혼해 태어난 아이들이 모국 혹은 아버지나 어머니 나라의 대학에 진학하면 장학금을 준다는 아이디어가 재밌습니다.
▷뒤집어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미국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한국인 학생들이 모국어를 잘 하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베트남 여성이 한국에 시집와 태어난 아이가 있다면, 베트남 외가 쪽 친척들은 모국어와 모국문화를 이해하기를 바랄 거예요. 그런데 지난해 이 사업에서 지원자를 1명밖에 못 구했고, 올해에 겨우 1명이 더 늘었습니다. 모국 대학에 진학해 장학금을 받을 만큼의 언어실력이 안 돼서 그래요. 한국사회에선 다문화 가정 학생들이 모국어를 배우는 데 반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문화를 장려하는 배려가 너무 부족합니다.
이중언어 교육에 대해서는 정부 정책에도 아쉬움을 표했다. 아시아발전재단은 현재 세종시 다문화센터와 협업해 방과 후 학교에서 이중언어 교육을 지원한다. 조 상임이사는 이런 사업이 공교육 체계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시아발전재단의 장학사업 프로그램은 다양하다. 국내 다문화 가정 학생들을 위해 매년 각 지역 교육청으로부터 추천받은 고교 1학년 학생들을 선발해 졸업할 때까지 연 2회 장학금을 지급하는 ‘ADF 드림 장학사업’ 수혜자만 고등학생 80명, 대학생 60명 등 140명에 이른다. ‘Gift for Motherland’ 프로그램은 다문화 가정 학생이 어머니 나라의 대학에서 수학을 희망하는 학생에게 4년간 장학금과 생활비를 지급한다. 해외 장학사업도 활발하다. 한·아시아 간 차세대 엘리트 지원을 통한 미래 우호관계 구축을 위해 베트남과 캄보디아에 대학생들을 선발해 일정 성적 유지 시 4년간 장학금을 지원한다. 2018년과 올해에 걸쳐 160명이 선발됐다. 해외동포를 위한 사업으로는 ‘연변대 글로벌리더십기금’이 있다. 앞서 김준일 이사장이 연변지역 우리 민족 인재지원을 위해 매년 50만위안을 내놓으며 시작한 사업이다.
▶일본은 ODA 사업을 통해 친일파를 키운다고 합니다. 단순히 장학금을 주는 것 외에도 재단에서 할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
▷개개인에 대한 투자가 곧 한국에 대한 투자예요. 한국에 와있는 베트남 유학생 통계를 보니까 한국에서 유학해 한국서 취업한 비율이 5%에 미치지 못합니다. 일본은 15% 정도예요.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유학한 기간이 길면 반감도 커진다는 조사 결과도 있어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사업이 세종학당, 태권도진흥재단과 손잡고 만든 ‘K-스테이’입니다.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 문화 체험 프로그램인데, 전북 무주의 태권도원에서 진행됩니다. 해외에서 유학 온 학생들이 2박3일간 한식, 태권도, 한글 캘리그라피 등 우리 문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체험하는 행사입니다. 베트남 중국 태국서 유학 온 학생들은 그 나라에서 엘리트로서 성장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들이 한국을 제대로 이해해야 양국은 물론 나아가 아시아 평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시아발전재단은 유학생 취업과 관련 여러 문제제기와 정책 등을 포럼을 통해 제안하고 있다. 동시에 세종학당재단을 통해 한국에 유학 온 학생 200명에게 500만원씩 1억원의 장학금도 지급한다. 조 상임이사는 이런 사업들을 통해 단순히 장학금을 주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네트워킹을 구상 중이다. 가칭 ACE(ADF Scholarship Community Elite) 팀을 만들어 봉사활동을 할 수 있으면 재단에서 지원에 나서겠다는 복안이다.
▶한·일 역사 바로세우기나 한국 알리기 사업에도 지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반크와 업무 협약을 맺고 1억원을 지원,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이웃을 아는 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한국을 외국에 알리는 것뿐 아니라 아시아 나라를 한국에 알리는 프로그램도 같이 하자는 취지예요. 베트남 캄보디아 네팔 등 유학생들이 직접 모국을 소개할 내용을 만들면 반크를 통해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홍보하는 방식이죠. 아시아 문화를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게 아시아발전재단의 목표예요. 역사바로세우기는 왜곡된 우리 역사 일제강점기부터 식민사관 극복을 위해 홍익재단과 손잡고 재정지원을 하는 사업입니다. 잘못된 식민사관을 3·1운동 100주년 등 계기가 있는 올해에 고쳐나가는 사업을 지원하는 일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 한일 병합 후 식민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한 역사적 관점이 식민사관입니다. 사색당파나 반도 근성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잘 들여다보면 반도문화는 해양문화와 대륙문화의 조화로 볼 수 있고, 사색당파도 정쟁적 요소가 있지만 왕조 시대에 사안을 놓고 격렬하게 토론한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요. 이런 사업은 비정부단체에서 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여러 사업을 진행하시다 보면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사업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공감과 동행’이라는 캠프 프로그램이 감동적입니다. 재외교포 청년이 모여 7박8일간 같이 생활합니다. 여기에 조선족, 고려인, 재미동포, 남미, 일본 등의 교포 학생들이 참여해요. 동포 아이들이 서로를 알고 이해할 수 있도록 이주역사 알기, 독립기념관 방문, 서울시내 투어 등 네트워킹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지난해부터 탈북자 자녀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캠프가 끝나는 날 서로 붙잡고 우는 모습을 보면 보람이 느껴집니다.
▶사업을 하다보면 정부 지원이 필요한 부분도 생기지 않나요.
▷기본적으로 정부의 도움을 받으면 객관성이 흔들릴 수 있어요. 아시아발전재단은 정치, 민족, 종교와 철저하게 분리돼 있다는 점을 명시해 정관에 넣었습니다. 물론 우리 일들이 씨앗이 되어 정부 자체 변화를 이끌면 좋은 일이 되겠죠. 앞서 언급했던 이중 언어 문제는 반드시 공교육 체계에 들어와야 합니다. 지금은 방과 후 수업을 하는 학교도 소수고 이중 언어 교사가 있어야 하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다 보니 학생들이 흩어져 있어요. 이를 테면 교육권이란 측면에서 보면 모국어를 배울 권리이기도 하고 국가 입장에선 미래 인재 육성 의미입니다. 진짜 필요한 틀이 마련돼야 그 아이들이 우리 미래 인재로 클 수 있어요.
▶재단의 미래 모습이 궁금합니다.
▷김준일 이사장의 기본적인 생각은 ‘좋은 일이라면 돈을 쓰자’는 것입니다. “오래 하는 것보다 어떤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재단 출연자의 이름을 위한 재단 아니라 일을 위한 재단을 만들자는 취지죠. 현재 1년 예산이 25억원 가량인데 만약 좋은 사업이 있다면 더 키워나간다는 계획입니다. 장학사업은 대상 국가를 늘려나갈 겁니다. 네팔, 몽골, 라오스가 대상이에요. 우리 재단이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으니 다른 재단을 돕는 것도 할 일이에요. 대우세계경영연구원에서 20대 대학졸업생을 훈련시켜 베트남 태국에 취업시키는 프로그램이 있는 데 여기에 1억원을 지원한 사례가 있습니다. 모든 일을 다 잘할 수 없지만 ‘좋은 재단을 지원하는 재단’은 될 수 있죠. 여러 사업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잘할 수 있는 게 뭔지 정리해 나가는 일도 병행해 나가고 있습니다.
현재 아시아발전재단에 김준일 이사장이 출연한 금액은 250억원. 이를 500억원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김 이사장은 스스로의 일을 ‘코드 꼽는 하드웨어 역할’ 이라고 말한다.
현재 5년 계획으로 재단 건물을 별도로 마련하는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이를 통해 콘퍼런스 공간, 게스트하우스, 국내에 있는 어려운 다른 재단이나 NGO들에게 사무실을 제공한다는 목표다.
[대담 설진훈 국장 정리 김병수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7호 (2019년 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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