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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의 약속> 열연 탤런트 오윤아 ‘악바리 연기파’ 배우의 재탄생
입력 : 2019.03.04 14:4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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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싱모델에서 배우로 전향해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지 어언 15년. 그동안 <공부의 신> <아테나:전쟁의 여신> <무자식 상팔자> <앵그리맘> <사임당, 빛의 일기> <훈남정음>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수의 작품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여온 오윤아는 언제부턴가 ‘연기 곧잘 하는 배우’로 통했지만 최근 종영한 MBC 주말드라마 <신과의 약속>을 통해 명실상부 ‘연기파’로 발돋움했다. 지난여름, MBC <진짜사나이 300>(이하 <진짜사나이>)을 통해 ‘악바리 여전사’로 거듭난 그는 곧바로 이어진 드라마에서도 군기가 ‘바짝’ 들어있었다. ‘안 되는 건 없다’는 걸 몸소 체험하고 돌아온 만큼, 본업인 연기 활동에서도 또 한 번의 도전을 통해 전례 없던 ‘악역’을 완성했다. 극중 우나경은 흙수저 출신의 변호사이자 서지영(한채영 분)의 여고 동창. 뛰어난 머리로 전교1등, 최고대학 법대생, 사법고시 패스 등 천지건설 법무실장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흙수저 신분을 뛰어넘은 성공을 위해 천지건설 회장의 아들 김재욱(배수빈 분)을 남편으로 만든 그는 불임 판정을 받아 아이를 낳지 못하지만, 재욱과 지영의 아들 준서(남기원 분)를 데려와 키우면서 누구보다 강한 모성애를 발휘한다. 자신의 욕망이 강해질수록 악녀 본능을 드러내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우나경은 누구보다 확실한 악역이었어요. 물론 이렇게까지 될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지만, 그 속사정까지 다 보여줄 순 없기 때문에 ‘내가 잘 그려낼 수 있을까’에 대한 부담이 없지 않았죠.”
실제 극중 우나경의 악행은 천륜을 넘어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극악했다. 도를 넘어선 악행은 이를 연기하는 오윤아로서도 난감할 때가 많았다고. 그는 “항상 내 역할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게 마지막일 거야’라고 생각하고 불태워 연기하곤 하는데 그러고 나면 더 심한 게 나오곤 하더라”며 “대본을 받고 나면 마음이 무거웠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역시나 드라마는, 진실함을 잘 보여주면 캐릭터가 잘 살아남는다고 생각한다. 단 한 번의 장면이라도 인물의 감정을 더 진실하게 그려내려 하자 처음에는 욕하는 사람들만 있었는데 중반 이후엔 연민의 감정으로 봐주시는 분도 계시더라”고 말했다.
인물에 대한 진심 어린 접근과 열연 덕분에 ‘오윤아표’ 우나경은 마지막까지 펄펄 살아 숨 쉬었다. 권선징악으로 막을 내린 만큼 아이를 볼모로 한 진실게임에서 우나경은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무릎을 꿇었지만, 오윤아는 우나경을 통해 ‘인생 캐릭터’를 경신했다는 호평을 받으며 인기리에 종영한 <신과의 약속>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엄연히 <신과의 약속>은 서지영(한채영 분)의 모성애를 중심으로 극이 전개됐지만 우나경 역시 또 다른 엄마였다. ‘낳은 정’과 ‘키운 정’ 사이 후자도 전자 못지않게 짙었다. 특히 우나경의 성장 배경을 감안하면, 그는 누구보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던 터다. “우나경이라는 여자는, 어쩌면 자신의 친자식이 아니기 때문에 더 끔찍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 거죠. 나경은 사생아에, 부모에게 버림받고 오로지 혼자 힘으로 여기까지 온 사람이에요. 아주 사소하고 평범한 행복도 받아보지 못한 인물이죠. 그러니까 얼마나 더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갖고 싶겠어요. 결국 모든 걸 버리고 재욱을 만나 결혼했는데 유산하고, 또 폐경이 와서 아이는 못 낳고… 자기 자식을 낳아도 애지중지 했을 텐데 자기 자식도 아니고, 그런데 또 재욱이 사랑하는 아이니까. 그 아이를 키우는 사람의 마음에서 그리고 아이를 못 갖는 입장에서 더 집착하는, 복합적인 마음이 있었을 것 같아요. 실제로 배 아파 낳은 부모보다도 더, 상상 이상의 사랑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고, 그런 마음으로 연기를 했어요.”
실제 초등학생 아들을 둔 ‘엄마’이기도 한 오윤아는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사랑도 담담하게 털어놨다. 아들이 발달장애를 갖고 있기에 ‘워킹맘’으로서 갖게 되는 미안함과 애틋함은 남달랐다.
“저는 정말 바쁜 엄마예요. 항상 (아이에게) 죄스러운 마음으로 살고 있죠. 좋은 엄마일 수가 없거든요. 아이가 고학년이 되면서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같이 있을 때 최대한 많은 사랑을 주려 하지만 아이에게는 부족할 거예요.”
‘아들맘’인 만큼, 오윤아에게 최근 출연한 <진짜사나이>는 특히 더 남다른 경험이기도 했다. <진짜사나이>를 통해 아들보다 먼저 군대의 매운 맛을 경험하고 온 셈이기 때문. 그는 “아들이 아파서 군대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 아들도 군대에 지원한다면 정말 응원하고 싶다”고 했다.
<진짜사나이> 관련 에피소드는 밤을 새워 이야기해도 끝나지 않을 정도였다. 끝없이 이어지는 군대 스토리로 주어진 인터뷰 시간의 절반가량을 <진짜사나이> 이야기에 할애한 그는 “남자들이 왜 군대 얘기를 계속 하는지 알게 됐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실제 오윤아가 출연한 <진짜사나이>는 MBC 최초의 시즌제 예능인 만큼, 시즌1에 비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훈련 강도를 자랑했다. 고된 훈련에 출연자들은 그 자신조차 본 적 없는 ‘나’를 마주하게 됐다고. 그는 육군 3사관학교 편부터 특전사 편까지 낙오 없이 모든 훈련을 마쳤지만 “차라리 죽여라 하는 마음이 들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정도로 힘들 줄 상상을 못 했어요. 3사관학교가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갔는데,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어렵고 힘들었죠. 특히 특전사 편 촬영은 한 달 전부터 스케줄이 꽉 찬 상태에서 곧바로 들어가게 돼 체력적으로 버거웠어요. 시청자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몸이 안 따라주니까 눈물이 계속 나더라고요.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안 나요. 진짜… 특전사 훈련은 왜 아무나 하는 게 아닌지 알겠더군요. 도망치고 싶을 정도였고, 억지로 깡으로 하긴 하는데 몸은 안 따라주고. 계속 눈물만 났죠.”
심지어 “특전사 훈련을 다녀온 뒤엔 악몽을 서너 번이나 꿨다”는 오윤아. 그는 “체력이 안 되는 상태에서 훈련을 받으니 멘탈이 걷잡을 수 없이 나갔다. 체력 이상으로 훈련을 하니 몸이 붓는데, 그 부기가 한 달 정도 갔다”고 말했다.
“진통제 3알을 먹고 훈련에 참여를 했어요. 실전격투 훈련도 실제로는 4시간 정도 했는데 방송으로 보니까 0.1%도 안 나오더라고요. 그 때 죽을 것 같이 힘들었는데 끝까지 버티는 제 모습을 보면서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방송에는 손톱만큼 나와서 안타깝더라고요. (웃음) 정말 많은 경험을 했어요. 제가 군대를 체험할 기회가 없었잖아요. <진짜 사나이>는 리얼이더라고요. 그런 것이 방송에 다 나오면 좋겠는데 그렇게까지 힘든 줄은 몰랐어요.” 제일 한계라고 느꼈던 훈련으로는 “눈앞에 별이 보이더라”는 술회와 함께 산악행군을 꼽았다. “식은땀 정도가 아니라, 머리가 띵했어요. 그런데 그분들에게는 너무 기초훈련이고 ‘너만 힘든 거 아니’라고, ’너만 지치는 거 아니’라고 하시니까. 더 울분에 찼어요. 아, 한계구나 싶었죠. 도망가고 싶었어요. 원래 제가 엄살을 싫어하는 사람인데, 발목이 약해서 산악행군이 더 힘들었어요.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데, 와… 그런 감정 처음이었어요. 악에 받치니까 소리가 계속 나오는데, 내가 내려고 하는 게 아니라 본능적으로 나오는 소리였어요. 체력이 안 되는데 계속 다음, 또 다음 훈련을 해야 되고… 잠은 못 자고. 너덜너덜해졌죠.”
김재화, 산다라박, 모모랜드 주이 등 동고동락한 동기들에 대해서는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김)재화도 힘이 많이 됐어요. 동갑인 데다 같은 아이엄마 입장이라 공감대가 많았죠. 재화가 목소리는 에이스였는데 겁이 많은 친구더라고요. 훈련할 땐 몰랐는데 나중에 방송을 보니 무서워하는 게 보이더라고요. 주이는 나이도 어리고 원래 운동도 해서 그런지 체력이 확실히 좋더군요. 정말 대단한 건 산다라박이었어요. 진짜 못 할 것 같았거든요. 본인 몸무게만한 군장을 메고 행군하는데, 다들 쓰러질 거라고 예상했는데 해내는 걸 보고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누구나에게 그러하겠듯이, <진짜 사나이>는 오윤아에게도 강인한 정신력을 남겼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안 되는 게 없구나, 어떻게든 다 되고, 다 사는구나 하는 걸 느꼈다. 좌절할 필요 없다, 일어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등의 감정을 느꼈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위 사람 누구에게도 결코 추천하고 싶진 않다며 혀를 내둘렀다. 오윤아는 “평생 할 수 없는, 돈을 내고도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하고 온 것 같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며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편견과 싸워온 지난날, 터닝포인트를 맞다
연기 외길을 걸어온 ‘정통파’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많은 관심과, 한편으론 꾸준히 편견과 싸워온 오윤아. 지난 시간에 대해 그는 “힘들게 온 건 사실이지만 감사한 부분이 많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어찌 보면 저는 무명생활이 없던 사람 중 하나이기에 정말 감사한 부분이 많아요. 힘들게 여기까지 온 건 사실이지만, 다른 분들에 비하면 고생이 아닐 수도 있어요. 연기를 시작한 후로 감사한 마음으로 여기까지 달려왔어요.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연기를 열심히 했어요. 어떻게든 잘 해내고 싶었고, 편견도 깨고 싶었고, 시청자들께도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데 터닝포인트를 잡지 못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런 시기에 드라마 <언니는 살아있다>를 만났고, 편안한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했죠. 잘 됐는지 모르겠지만 저를 좋게 생각해주셨고, 그 때 팬도 많이 생겼어요. 팬들이 저한테 다가온다는 느낌을 받았고, 소통하고 싶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어요.” 그런 오윤아에게 지난 2018년은 터닝포인트였다. 예능과 연기 분야를 쉼 없이 달리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덕분이다. 예능을 통해 인간적인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스스로를 단련시킨 그는 <신과의 약속>에서 보여준 열연을 통해 기존 연기의 한계를 스스로 깨냈다. 쏟아지는 호평에도 불구, 본인은 자신의 연기에 대해 손사래를 쳤다. “저는 정말, 한 번도 연기 잘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물론 ‘이 장면에서 이건 잘 표현한 것 같다’ 생각한 적은 있지만 부족한 게 많다고 생각해요. 아직 멀었죠. 차근차근 공부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항상 대충 하지 않고 집중해서 하려는 편이고, 그런 게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사실 연기자라는 직업은 끝이 없고, 항상 시작만 있는 직업인 것 같아요. 늘 새로운 작품, 새로운 캐릭터에 도전해야 하는 일이다 보니, 만족이라는 건 평생 못 할 것 같아요. 강부자, 박근형 선생님도 ‘한 번도 본인의 연기에 만족한 적이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감히 저 같은 사람이? 제 연기에 대해 좋다 안 좋다 말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끊임없이 고민이 있어요. 그저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지 하는 마음뿐입니다.”
‘센 캐(릭터)’를 정복한 오윤아가 새롭게 꿈꾸는 캐릭터는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사람냄새 나는 작품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
편안한 연기를 통해 공감을 줄 수 있는 인물.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런 역을 계속 기다리고 있고, 그런 편안한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눈을 반짝였다.
[박세연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사진제공 폴라리스엔터테인먼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2호 (2019년 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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