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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대화] (3) <검사내전>의 저자 김웅 대검 부장검사 “일찍 퇴근하고 월세 걱정 안하는 게 직장인 꿈 아닌가요? 저도 똑같아요”
입력 : 2019.03.04 14: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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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하고 있습니다. 그런 공명심에 빠지면 수사할 때 위험하거든요. 예를 들어 사건 수사는 담당이 아니라 차장검사 이름으로 발표합니다. 검사 개인이 주목받게 되면 그 환호에 취해 매몰되는 게 아닌지, 돌아보고 있습니다.
▶책에 대한 검찰 내부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다행히 후배들도 그렇고 검사장급, 총장님이 좋아하십니다. 요즘은 왜 통 안나오냐고.(웃음) 저와 비슷한 기수나 동기들에겐 좀 미안합니다. 훨씬 열심히 일 하는 분들이 많은데 어쩌다 저만 이렇게 이름이 나오니.
▶후배들에겐 새로운 롤모델이 된 겁니까.
▷그런 것 보단, 늘 형사부 검사고 간부보다 평검사 입장이라고 평소에 포니셔닝을 잘했죠. 좀 전략적인가?(웃음) 후배들은 계속 들어오지만 간부는 점점 없어지잖아요.
▶책에는 ‘부장검사라는 지위는 후배들에게 길을 비춰주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지는 자라리는 걸 알게 됐다’고 했는데, 막상 부장검사가 되니 어떤지요.
▷수평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건 쉽지는 않은데, 작은 것부터 바꿔보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밥 먹으러 갔을 때 앉는 순서라든지, 같이 걸어갈 때 중앙에 서지 않고 뒤에 서는. 회식을 할 때도 굳이 앉은 자리를 따지지 않으려고 하죠. 구두 대신 운동화 신고 옷도 자연스럽게 입으려고 하고.
▶그러게요. 일반적인 검사 스타일과는 전혀 다릅니다. 지금도 구두대신 스니커즈(밑창이 고무로 된 운동화)를 신고 있는데.
▷언젠가 박재갑 국립암센터 원장님, 지금은 석좌교수님이신데, 그 분이 오셔서 강연을 하셨는데, 소주 마시지 말고 담배 피우지 말고 운동화 신고 다니라고 하더군요. 소주 빼곤 다 지키고 있어요.(웃음) 운동화를 신으면 더 많이 걷게 되잖아요. 어지간한 거리는 그냥 걸어 다닙니다.
▶분명 내부에선 다른 시각도 있을 것 같은데요.
▷아이고, 저도 총장님께 보고 드리러 갈 땐 갈아 신고 가죠. 그런데 간혹 왜 운동화 안 신고 다니냐고 물어 보시곤 합니다.
▶초임검사 시절부터 회식자리에 안 가기로 유명한 ‘또라이’였다고 하던데, 부장검사가 되면 회식도 마다할 수 없나 봅니다.
▷인사이동처럼 특별한 때에 한 번씩 합니다. 맛집에 가거나 독특한 식당에서 모이죠. 그래야 참여율도 높고 피곤하지도 않으니까요. 지금은 여성검사 비율이 높아져서 예전 같은 회식 문화는 자연스럽게 사라졌어요. 2차요? 카페 가서 커피 마시며 케이크 먹죠. 단 회식 때는 부장이 와인 한 병 정도는 들고 가야 합니다.(웃음)
검사내전 김웅 지음 | 부키 2018년 1월 19일 출간
후배들에게 진심이 전달돼 다행 ▶현재 맡은 직무는 어떤 일입니까.
▷미래기획·형사정책 단장이에요. 미래기획단과 형사정책단이 합쳐진 겁니다. 양쪽 모두 아직 정식 직제가 아니라서 하나로 합치고 있는데, 미래기획은 검찰의 미래, 달라지고 있는 수사 환경이나 사법 환경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연구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휴대폰 앱을 이용해서 조사를 받는다든지, 아직은 그런 부분을 구상하고 고민하는 단계입니다.
우리나라의 수사구조나 환경은 다분히 권위적이거든요. 여타 국가에선 경찰이 직접 찾아가 인터뷰를 하는데 우리는 경찰, 검찰, 법원 모두 불러서 조사하잖아요. 이건 낡은 시스템이자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우려가 높아요. 변화하는 인권의식이나 사회에 수사기관이 따라가지 못하면 한순간에 확 찢어져 버립니다. 따라가야죠. 그걸 고민하는 게 미래기획이고, 형사정책은 수사권조정 대응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암울하죠.(웃음) 검찰이 기존에 안 좋은 이미지도 있고 실제로 과거에 잘못도 있었고, 현재도 관행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들이 있어서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런 이유로 검찰의 말 자체를 듣지 않으려는, 거부감이 있어요. 우리 스스로 문제가 많은 거죠.
▶일단 워라밸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올해 검사 20년차인데, 지금 가장 바쁜 것 같습니다. 워라밸을 논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고, 그렇다고 평생 이렇게 살아온 건 아니니 지금은 일할 때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단장님의 출퇴근 시간은 어떻게 됩니까.
▷일찍 출근하는 건 아닙니다. 8시 반쯤. 너무 일찍 나오면 연구관들 눈치가 보여서.(웃음) 저녁은 약속이 없으면 대부분 10시, 11시까지는 사무실에 있고, 주말에는… 집에 있으면 또… 주말은 부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그래서 사무실에 나와서 조용히 정리합니다.
▶그럼 결국 월화수목금금금 아닙니까.
▷아니 그게, 집보단 밖이 편한 것도 있고, 집에선 부장검사 대접도 못 받으니.(웃음) 나와서 책도 보고 합니다.
▶스스로 조직부적응자라고 했는데, 현재 직책만 놓고 보면 요직으로만 다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진 않습니다. 전 널뛰기를 많이 했거든요. 검찰이, 그러니까 전혀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데 조직에 대한 애정이나 책임감 때문에 나오는 소리라면 기회를 꼭 주는 것 같아요. 이런 식으로 말했으니 그럼 이런 일도 한번 해봐, 그렇게 비판적이니 관련된 일도 한번 해봐, 이런 식으로. 그래서 그런 자리에서 일하다 기대에 못 미쳐 미끄러지기도 하고.(웃음) 전 오히려 요직보다는 남들 보기에 좋지 않은 자리가 잘 맞는 것 같은데, 낯 간지러운 얘기지만 후배들한테 어느 정도 진심이 전달되는 것 같아요. 후배들에게 부끄럽진 않아야겠다는, 의연한 선배로 남고 싶은 생각을 늘 합니다.
▶흔히 직장 상사들의 고민 중 하나가 ‘나는 꼰대인가’라던데, 그건 아닌가 봅니다.
▷크게 걱정해본 적은 없어요. 꼰대라도 원칙이 있는 꼰대라면 따르는 것 같아요. 인천지검에 있을 때 모신 검사장님은 스스로를 꼰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바꿀 생각도 없고 맞출 생각도 없다고 했지만 후배들이 굉장히 따르는 선배였어요. 자기 원칙이 확고했고 한 번도 그 원칙에 반하는 사건처리나 개인생활이 없었거든요.
▶그럼 나름의 원칙이 있다는 겁니까.
▷원칙보다는 뭐든지 한번 깨보자고 하죠. 검사는 왜 꼭 넥타이를 매야하고 정해진 말만 해야하냐, 사건 처리의 기준은 왜 늘 같아야 하냐, 시각을 좀 달리 보려합니다. 물론 그렇게 말하면서 생활이 다르다면 꼰대라 하겠죠.(웃음)
▶일반 직장과 검사들의 생각이 크게 다르진 않네요.
▷우리도 검찰을 회사라 표현합니다. 검사장은 사장님으로.(웃음) 하는 일이 다르긴 하지만 사는 건 어차피 똑같잖아요. 뭔가 다르겠지 생각하셨다면 실망하시겠지만.
▷아, 그건 출판사 사장님이 만들어주신 건데, 책의 콘셉트가 됐어요. 출판사 사장님과 곱창에 소주 한 잔 하는데, 검사로서의 꿈이 뭐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회사랑 집이 가까웠으면 좋겠고, 딸내미 성적이 올랐으면 좋겠고, 마이너스 통장이 줄었으면 좋겠고, 집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그럼 당신은 생활형 검사로군, 하더군요.
▶마이너스 통장?
▷아이고, 많이 씁니다. 한동안 마이너스 통장으로 살았는데 숨이 턱 막힐 즈음에 책이 잘 돼서, 행복합니다.(웃음)
▶일반적인 검사의 출세 길과는 달라보이는데.
▷다를 게 있나요. 생활형 검사도 당연히 출세하고 싶죠. 다른 사람이 부러워하는 보직으로 가고 싶은 것도 있고. 그런데 전, 나중에 검사장이 된다고 해서 뭐가 다를까. 만약 그렇게 되면 또 다른 욕심이 생길 것 같고. 높이 올라가면 조심하게 되고 눈치 보게 되고. 그렇게 사느니 이미 충분히 출세했다고 생각합니다. 사건 하나로 국민 한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도 절망을 줄 수도 있는 중요한 자리에서 일하는데 웬걸요.
▶그런 이미지 덕분인지 책이 드라마로 제작 중이라던데요.
▷제작사가 마땅히 할 게 없어서 그런 게 아닌지 굳게 믿고 있습니다.(웃음) 사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어요. 대검 내에서도 그렇고, 드라마화 된다고 아주 큰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웃음) 너무 나대는 것 같아서 안했으면 했는데, 대검에서도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덜컥 사인하긴 했습니다. 물론 돈은 받고 사인했지만, 욕심을 내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많이는… 출판사에서도 드라마를 통해서 책 한 권 더 파는 게 낫다고 하더라구요.(웃음)
▶최근 검사나 변호사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여럿인데, 그 안의 검사는 악한 아니면 정의구현에 앞장서는 인물이더군요. 정작 <검사내전>에선 정의구현이 목표가 될 수 없다고 했는데, 그건 대중의 기대와는 배치돼 보입니다. ▷법으로 정의를 구현하겠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 것 같아요. 정의라는 게 위험할 수 있는 용어잖아요. 사실 정의로 규정하면 그 안의 것만 살아남고 밖에 있는 건 없어져야 할 것들입니다. 세상일이란 게 그런 게 어디 있겠어요. 이것만 정의고 나머지는 아니다? 그런 건 없습니다.
▶요즘 화두 중 하나인 검찰개혁과도 연결고리가 있어 보이는데요.
▷결국 수사라는 건 국민의 기본권에 대해 직접적으로 불이익을 가할 수 있는 권력작용이거든요. 우리는 지금까지 이 권력작용에 대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봤는데, 그 권력을 어떻게 분산시킬지, 어떻게 통제할지가 중요한 것이죠. 사법개혁이든 수사권조정이든 가장 중요한 건 통제고 분산이에요. 어느 기관이 됐건 자기 권한을 먼저 놓고 포기해야 그 진심이 국민들에게 전해지지 않을까요. 여전히 유지한 채 진행된다면 그건 개악이겠죠.
▶인간 김웅의 꿈은 무엇입니까.
▷살면서 계획을 세워본 적은 없는데, 지금 당장, 아니면 다음 달이라도 검찰을 그만둘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년 하고 나니 충분히 많이 했다는 생각도 들고, 너무 오래할 일은 아니란 생각도 들고. 장기적으로는 와이프랑 여행을 많이 다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검사가 책으로 인기를 얻은 후 정계로 진출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던데요.
▷제 직무 중 하나가 국회에서 의원님들 만나 이해를 구하고 설명하는 일인데, 정치요? 그건 제가 할 일이 아니던데요. 아이고.
[안재형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2호 (2019년 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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