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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구효서 | “문단 데뷔 30주년, 그럼에도 어려운 걸 쉽게 말할 방법은 없습니다”
입력 : 2017.01.10 14: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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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구효서는 매일 아침 9시에 서울 중계동 집에서 공릉동 집필실로 출근한다. 그렇게 매일 글쓰기에 몰두한다. 1987년에 등단했으니 올해로 문단에 데뷔한 지 30년. 그는 오로지 창작으로만 생활을 유지해왔다.
“해가 없으면 힘을 못 쓰는 주간형이자 아침형 인간이라서 야근은 못합니다. 오후 6시 땡 친다고 퇴근하는 건 아니고 어쨌든 그날 하는 일은 일단락하고 나오죠. 단락을 쓰다가 나올 순 없잖아요.”
그동안 완성한 장편소설만 20편, 작품집에 수필까지 더하면 매년 1권 이상의 책을 내는 그는 굵직한 문학상에 언제나 이름을 올리는 단골 후보다(그는 효석문학상, 황순원문학상, 한무숙문학상, 대산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과연 스스로 출퇴근하며 자유롭게 일하는 생활은 어떤지 궁금해 대뜸 작가로서의 삶은 행복하냐고 물었더니 “글을 쓴다는 건 밑도 끝도 없는 막막한 일”이라며 “베스트셀러 작가나 대중작가도 아니기 때문에 매번 먹고사는 게 걱정”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어쩌면 겸손한 답이 돌아왔다.
매일 글을 쓰며 그 글을 쓰기 위해 끊임없이 관찰하고 사유한다는 구효서 작가가 2017년 1월호부터에 칼럼을 연재한다. 그는 “일상의 단상을 쓰려고 한다”며 작가로서의 작은 바람을 전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작가가 하는 일은 매일 똑같고 변함이 없어요. 작품만 달라지죠.(웃음) 생활패턴은 똑같습니다.
▷오전 9시에 집필실로 출근해서 글을 쓴다고 들었습니다. 직장생활과 별반 다를 게 없다던데요.
거의 글을 쓰죠. 오전 9시에 집필실에 가서 오후 6시 땡 치면 나와야 하는데 그러진 못하고. 어쨌든 그날 하는 일이 일단락돼야 나옵니다. 그렇다고 야근하는 건 아니에요. 자유롭고자 택한 일인데 뭘 야근까지. 또 워낙에 자연광이 없어지면 맥을 못 춰요. 주간형이고 아침형이죠.
▷2017년은 문단에 데뷔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전업 작가로 한 세대를 보냈는데, 어떠십니까.
글을 쓴다는 건 밑도 끝도 없는 막막한 일이고, 무엇 하나 보장된 것도 없잖아요. 예술가들을 위한 4대보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퇴직금이나 연금도 없고 게다가 베스트셀러 작가도 아니니 매번 먹고사는 게 걱정이에요.(웃음) 돈으로부터 자유스러울 수 없음에도 우리 일이란 건 돈과 결부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거든요. 예를 들어 하루 8시간 일하고 일당 10만원을 받는다면 우리에게 그 돈은 24시간 일하고 받는 일당이에요. 그러니 경제적인 계산이 안 되는 직업이죠. 그렇다고 원고료 장당 얼마 줄 테니 써 달라 하면 사실 고료보다 취재하며 투자하는 돈이 더 많으니 이것도 비경제적이에요. 그러니 아예 돈 생각을 하면 못하는 일이지요. 미치지.(웃음)
▷그럼에도 행복해 보이는 이유는 뭘까요.
아예 돈 생각을 접고 나선 직업이죠. 기질적으로 그렇지 않으면 버티기 힘든 직업이기도 하고. 행복하다는 건 여기서 나와요. 지금까지 돈 걱정 안 하고 일했으니 그런 의미에선 행복하죠. 부자라는 말과는 전혀 다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것보다 행복할 수 있을까요.
▷책이 잘 팔려서 돈 걱정 안 하고 일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아니죠.(웃음) 저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고요. 다만 문단에서 비중 있는 작가 정도로 취급받고 있는데, 그래서 그 정도의 비중과 관심에 비례되는 수입이 없다곤 할 수 없어요. 그러나 다른 직업군과 비교한다면 아무래도 비교할 만하진 못하죠.
▷수년간 출판계가 위기란 말이 돌고 있는데요.
비유가 적절할진 모르겠지만 없는 사람이 어떻게 더 없을 수 있겠냐는 배짱…. 실제로 그렇거든요. 우리는 수입에 대해서 관심이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애당초 굉장히 적었어요.
오랫동안 그런 것과 무관한 삶을 유지하다 보니 매번 문화계 위기란 말이 나와도 애면글면 살아왔고 무책임하게도 어떻게 되겠지, 설마 죽기야 하겠어, 이런 자세였죠. 그러니 출판시장이 안 좋아졌다, 독자가 줄어들었다, 이런 걸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바보 같은 피부를 갖고 있어요.
▷아이러니하지만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작가를 키우는 토양은 척박하기만 합니다.
요즘 인문학이 굉장히 붐이지요. 뭐랄까 저 나름대로 말하자면 소설도 순수소설이 있고 대중소설이 있듯이 인문학도 순수와 대중으로 나뉘는 것 같아요. 인문학 수요자들의 수요욕구가 있는데, 그 동기들이 다 달라요.
그런데 그 욕구가 순수인문학은 아닌 것 같아요. 일종의 교양 차원인데, 그렇다고 그게 인문학이 아니다라고 말할 순 없는 것이죠. 경계가 있어요. 제가 문단에선 알려졌지만 대중들에겐 그렇지 않은 갭이 있듯이.(웃음) 인문학의 요체와 인문학 붐은 따지고 보면 거리가 먼 것 같아요. 소설도 그래요. 서점에 진열된 소설책들을 보면 좀 낯설죠. 동료들, 그러니까 우리들의 소설이 없어요.
▷그럼에도 출판시장 입장에선 바람직한 현상이란 의견도 있습니다.
바람직하다는 관점이 다를 수 있겠죠. 사실 우리나라가 지나치게 문학이나 인문학에 대해서 지사적인 태도를 요구해온 측면이 있어요.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되고 또 전쟁이 일어나는 격동 속에서 어떻게 지조를 갖고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가 우릴 압박했잖아요. 진정성이나 진지함에 대한 강요가 있었어요. 예술이나 문학도 거기에 부응해왔죠. 좀 지나치게 근엄하고 엄숙하고 딱딱한 부분이 있거든요. 그것이 대중과 만나면서 풀어지고 가까이 가야 한다는 면에선 좋은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여기에 자본이 끼어들었어요. 그동안 자본은 문학이나 인문학에 조심스럽게 접근했는데 이젠 그러지 않아요. 매우 공격적으로 다가옵니다. 우리(작가들이)가 이건 너무 급작스럽고 이런 방식은 곤란하지 않겠냐고 거부하는 사이에 그 자본은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켜 줄 생산자와 손을 잡아요. 그렇게 생산된 작품이란 것이 우리가 볼 땐 매우 걱정스러워요. 아무리 돈과 담쌓고 산다고 해도 어느 정도 타협하는 게 현실인데, 어쩌면 그런 차이겠지요. 그런 입장의 차이를 매일 느끼면서 요즘 유행어인 자괴감을 느끼고 있습니다.(웃음) 아마도 어쩔 수 없음과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라는 갈등은 이 분야에 종사하는 분이 아니라면 느끼지 못할 겁니다.
▷독자 입장에서 작가에게 바람이 있듯 작가도 독자들에게 바람이 있을 것 같은데요.
정말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이해되는 것이 일반적으로 품질이 좋은 제품을 비싸게 사고 품질이 낮은 제품을 싸게 사잖아요. 그런데 문학은 품질이 좋은 걸 안 사요. 품질까지 갈 것도 없고, 예를 들어 200페이지 책과 100페이지 책을 똑같이 1000원에 팔면 당연히 200페이지 책을 살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100페이지 책을 사요. 글이 빽빽한 것보다 듬성듬성한 책, 가벼운 책, 그림이 많은 책, 쉽고 이해하기 편한 책을 선호합니다. 그런데 이롭고 좋은 것이 꼭 쉽고 맛있고 재밌지만은 않거든요. 좋은 약은 쓰다는 데 쓴 약을 안 먹는 거죠.(웃음) 독자들은 인생이 고달픈 데 왜 쓴 약까지 먹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럼에도 작가들은 드십시오 할 수밖에 없어요. 어려운 건 쉽게 말할 방법이 없거든요. 그걸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쉽게만 말하라고 하는 것도 문제가 있어요.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힘들이지 않고 머리 쓰지 않고 쉽게 편하게 살아도 살아진다는 것. 또 돈만 있으면 되는데 왜 그 귀한 시 간에 골치 아픈 사유를 해야 하느냐 이 말이죠.
사회적으로 꼭 인문학이 아니더라도 인격적으로 품위 있고 교양 있고 사유가 깊고 통찰력 있는 이들이 리더로서 본보기가 된다면 모르겠는데, 지금은 그 반대로 가고 있잖아요. 머리가 차지 않은 이들이 세상을 주무르고 있어요. 그들을 비판하고 그들에게 저항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들처럼 못 돼서 그들 밑에 기꺼이 들어가려하고… 이건 정말 한심하잖아요. 이런 식으로 말하면 정신 차리라는 충고가 돌아오기도 합니다. 그런 것들에 맞서서 산다는 건 대단한 사명의식이라서가 아니라 일개 문학가로서 작은 양심과 문학가이기 때문에 가져야 할 태도 때문인데, 이걸 지켜 나가기가 굉장히 힘들어요. 아마 그래서 문학의 위기란 말이 끊이지 않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1월호부터 칼럼(‘구효서의 유념유상’)이 연재됩니다. 내용이 기대되는데요. 작가에게 칼럼을 쓰라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에요.(웃음) 장르가 완전히 다르니까 칼럼다운 칼럼을 기대하시면 안 될 것 같은데, 분량이 길지 않으니 일상에서 느끼는 단상을 쓰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일상의 언어는 어떻게 다른 겁니까.
언어라는 게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죠. 전 언어가 전부라고 말하고 싶어요. 제 생각, 감각, 신념, 시각, 청각까지 언어의 지배력을 벗어날 순 없습니다. 마침 전 언어를 다루고 있잖아요. 언어를 어떻게 다루냐에 따라 세상이 다르게 보일 수 있고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 믿음 없이는 글쓰기가 힘들고 언어에 대한 연구가 힘들겠죠. 전 그런 믿음과 신념이 있기 때문에 현실과 사회에 대한 비판보다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연원을 끊임없이 소급해 올라가려 합니다. 그렇게 사유하다 보면 현재 우리 앞에 닥친 사건의 배경과 연원이 조금씩 잡혀나갈 것이고, 이러이러해서 지금 이렇게 살고 있구나 생각하게 되겠죠.
▷시국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대중의 일상에 매번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요.
시국을 바라볼 땐 사람들 속에 들어가서 함께 먹고 마시며 얘기 나누고 집에 돌아와서 생각합니다. 왜 사람들은 저렇게 생각할까. 그것이 맞고 틀리다가 아니라 그 생각의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봅니다. 힘들지만 재밌는 과정이죠.
저도 매주 토요일마다 광화문에 나갔는데, 인원수를 보태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궁금한 건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었어요. 그들을 구경하러 나갔는데 저 같은 사람들이 많더군요.(웃음) 그렇게 현장에 나가서 현실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집으로 돌아와서 사유한 후 글쓰기를 시작합니다.
▷왠지 늘 야근할 것 같은 상황입니다.
사실 요즘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심사나 강연이 많아서 글 쓰는 시간이 많이 줄었어요. 심지어는 주례까지 서고 있습니다.(웃음)
▷2017년은 문단 데뷔 30주년인 해입니다. 어떤 작품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저는 매년 책을 냅니다. 연 평균 한 권이 넘는 분량인데 현재 쓰고 있는 것도 있고, 상반기에 작품집이 나올 것 같네요. 하반기에는 수필집이나 장편소설이 나올 것 같습니다.
[안재형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76호 (2017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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