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지혜 에임(AIM) 대표 | 월가의 ‘퀀트(계량분석) 여제(女帝)’가 만든 로보어드바이저 기대되지 않으세요?

    입력 : 2016.09.02 17:30:20

  • 피도 눈물도 없고 있더라도 이마저 사고판다는 뉴욕 월스트리트. 세계에서 가장 고도화된 금융공학의

    중심지에서 애널리스트이자 트레이더로 일한다는 것은 많은 이들의 꿈이다. 30대 직장인이 꿈꾸기 힘든

    고액 연봉에 창창하게 보장된 미래까지 퇴직서 한 장에 내려놓고 스타트업 라인에 선 이가 있으니 이지혜 에임 대표다.

    “미쳤다!”는 회사 동료들의 만류에도 꿈쩍하지 않고 화려한 뉴요커의 삶을 뒤로한 채 귀국해 묵묵히 사업 준비를 해온 이 대표는 정식투자자문서비스를 앞두고 로보어드바이저 통해 국내 투자 패러다임을 혁신적으로 바꾸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이지혜 대표는 로보어드바이저 전문업체 에임을 창업하기 직전 월스트리트에도 귀하다는 퀀트(계량분석) 투자 트레이더로 활동했다. 월가에서도 손꼽히는 전문가 20명만이 근무하는 헤지펀드 아카디안(Acadian asset management)이 운용하는 자금은 대한민국의 1년 살림(2016년 기준예산 약386조)의 4분의 1이 넘는 100조 가량이다. 10억원이 넘는 연봉을 박차고 나온 이 대표의 변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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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운 가정환경 딛고 금융스페셜리스트로

    “금융 안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분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적이지만 훌륭한 자산운용 시스템을 통해서 자산이 부족한 사람들을 돕는 금융서비스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 대표는 금융서비스를 통해 일반 서민들의 투자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이 사업목표라고 밝혔다. 멋들어진 비전이나 일반적으로는 쉽게 공감하기 어렵지 않을까. 개인사를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1990년대 말 고등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어요. 그 후에 부모님이 운영하던 회사가 재정위기로 파산하고 어렵게 차린 식당도 망했어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니던 대학(쿠퍼유니온대)은 닷컴 버블이 한창이던 때 투자를 잘못해서 재정 위기에 빠졌죠. 160년간 장학금으로 운영해온 대학이 하루아침에 재정난을 겪는 것을 보면서 ‘금융이 많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세련된 외모 탓에 평탄한 인생사를 보냈으리라는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이 대표는 다소 불운한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했다. 낮에 공부하고 밤에는 부모님이 하시는 식당에서 접시를 나르며 도왔지만 금융위기의 여파는 학생 신분으로 어찌하기 힘들었다. 토마스 에디슨, 러셀 헐스 등이 졸업한 명문 쿠퍼유니언대학 공대에 진학해 발명가를 꿈꾸던 이 대표의 생각은 이러한 이유로 바뀐다.

    “처음 미국으로 건너간 곳이 실리콘밸리였어요. ‘캘리포니아 프리몬트’라는 동네였는데 주변에 야후, 마이크로소프트가 있었고, 스티브잡스처럼 창고에 사무실을 차려 창업하는 동네 사람들도 많았어요.(웃음) 저도 어릴 적부터 발명가가 꿈이었는데 이때 더(꿈을) 굳히고 공대에 진학했죠. 그러다 집안사정이 어려워져 무엇을 해야 도움이 될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경영학이었다. 2학년 때 교환학생을 통해 서울대 경영대에서 재무를 배우기로 결정했다. 이 대표는 이 시기에 자본의 흐름을 배우며 금융에 대해서도 처음 접하게 됐다. 다시 미국에 돌아와 대학을 졸업한 2003년 첫 직장은 씨티그룹 에셋매니지먼트였다.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와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 것 같아요. 재무를 처음 접하기도 했고, 시간을 쪼개 (배우 김)태희 씨와 (아나운서 오)정현 씨랑 동아리를 통해서 스키도 같이타고…(웃음). 미국에 돌아와서 졸업을 앞두고는 걱정이 조금 생겼습니다. 운용사들이 학부 출신은 잘 뽑지 않았거든요. 다행히 현재 피델리티운용 CIO로 계신 학교선배가 추천장을 잘 써주셔서 운 좋게 퀀트팀에 빈자리가 나서 일을 배우게 됐어요. 그런데 출근 첫날 제게 1조 짜리 이머징마켓 펀드를 던져주는 거예요. 물론 제가 직접투자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아닌 시스템을 감시하는 정도였지만 내심 깜짝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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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 자산 관리하던 최고의 알고리즘

    로보어드바이저로 대중화시킬 것

    2006년 재직하던 회사가 팔리자 이 대표는 퀀트 전문 헤지펀드인 아카디안(Acadian Asset Management)으로 직장을 옮겼다.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자동화 시스템을 통해 전 세계 자산에 투자하는 회사였다. 아카디안이 현재도 사용하고 있는 M&A 이후 기업에 대한 투자 의사결정 자동화 솔루션이 이 대표의 작품이다.

    “5년 동안 신나게 일했는데 고객들은 수천억원의 자신을 맡긴 기관투자자들이 전부였어요. 업무 역시 시스템 개발 이후에는 컴퓨터가 자동으로 반복하며 수행하는 형태라 어느 정도 권태도 있었던 것 같아요. ‘공부를 더 해보자’라는 생각과 MBA를 하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하버드 대학원에서 계량경제학 특별과정을 수학한 후, 뉴욕대에서 MBA를 이수하며 이 대표는 스타트업에 관심이 생겼다고 한다. 바로 행동에 옮겼다. 글로벌 엑셀러레이터인 테크스타스에서 일하며 창업에 대한 프로세스를 익히고 한국에 들어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1년간 컨설턴트로 일한 후 더 벤처스에서 스타트업을 도와가며 창업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이 과정에서 핀터레스트 첫 투자자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하고, 허핑턴포스트의 커뮤니티디렉터를 영입하는 등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더 벤처스에서 커뮤니티 플랫폼 ‘빙글’을 컨설팅하며 많은 것을 느꼈어요. 월가에서 쌓은 경험을 살려 창업해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아이템을 고민했어요. 바로 로보어드바이저였죠.”

    퀀트전문가인 이 대표가 꺼내든 첫 번째 알고리즘은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주요국가의 유동성·고용 등 수십 가지의 선행지표를 조합해 적절한 투자처를 찾는다. 투자 대상은 전 세계 2500개의 ETF(상장지수펀드)로 투자성향에 맞춰 분산투자 전략을 짜준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로 국내는 로봇하면 AI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은데요. 실상 로보어드바이저는 자동화 기술을 기반으로 사람이 만든 알고리즘(연산규칙)으로 데이터를 정리해서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즉 알고리즘을 어떻게 구성하는가 하는 것이 로보어드바이저 업체의 핵심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죠. 7년간 자동화 알고리즘을 만들어 운영해본 경험과 노하우는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수와 연동하는 ETF에 분산투자하는 만큼 리스크는 여타 투자 상품에 비해 줄어든다고 하나 위험성은 상존한다. 지난 8월 19일 기준으로 올 초 대비 국내 ETF 펀드 중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펀드가 40% 가까이 되며 -40% 이상 손실을 기록한 경우도 있다. 로보어드바이저 업체별로 알고리즘이 달라 ETF를 투자대상으로 삼더라도 수익률은 전혀 다르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아카디안에서 운용했던 우수한 알고리즘을 단순화시켜 1천억원 이상 기관 자금만 운용했던 것을 몇백만원, 몇천만원을 투자하는 개인투자자에게 적합하게 만드는 작업을 했습니다. 미국 월가에서는 우수한 알고리즘 시스템 개발을 위해 많은 돈을 들이는데 에임은 그 부분을 줄여 비용과 수수료를 최대한 줄였습니다.”

    기존 국내 로보어드바이저 업체들이 내놓은 상품은 대부분 신탁이나 일임 형태로 출시됐다. 현재 자본시장법상 신탁이나 일임상품은 온라인 비대면 가입이 불가능해 은행이나 증권사에 1% 안팎의 판매수수료를 내야 한다. 고객들은 선·후취 수수료를 합하면 총 2.5~3%대까지 수수료를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박스피를 면치 못하는 지수에 기존 로보어드바이저 업체들이 내놓았던 상품의 수익도 답보에 그치며 고객입장에서는 실질적으로 남는 게 없었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하루빨리 서비스를 내놓고 알려야 하는 게 맞지만 수수료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조금 기간이 걸렸습니다. 판매수수료를 없애고 거래 수수료도 낮춰서 자문수수료인 0.5% 수준으로 떨어뜨릴 수 있었습니다.”

    에임은 오는 9월 정식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1년간 목표 운용액 2000억원, 0.5% 자문수수료 가정 시 매출은 10억 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로보어드바이저의 비대면 일임 서비스 자격을 획득하기 위한 절차인 테스트베드 통과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서비스 준비 과정에서 고객들이 제일 바라는 것에 대해 물었을 때 결국 답은 ‘꾸준하고 안정적인 수익’이었습니다. 투자자들에게 최대한 안정감을 주기 위해 서비스를 개선하고 수익률에 대해 풀이해주고 성과가 좋지 않았다면 뭘 잘못했는지 소통해 나갈 예정입니다. 월급을 쪼개 투자하는 직장인들도 맘 편히 안정적인 투자소득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에임(AIM)의 목표입니다.”

    [박지훈 기자 사진 류준희]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72호 (2016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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