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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권 광주요 그룹 회장 | 온고지신으로 문화보국 이루는 게 저의 숙명입니다
입력 : 2016.08.05 17: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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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권 광주요 그룹 회장(68)의 인생은 파란만장하다. 도자기 사업을 하던 고 조소수 광주요 창업주의 6남매 중 막내였던 그는 부친의 사업이 한창 부침을 겪을 때 사춘기를 맞으면서 방황하는 세월을 보낸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그는 어머니의 지지와 도움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미주리 주립대 경영학과를 주경야독 끝에 3년 반 만에 조기졸업한다. 대우에 입사한 그는 당시 글로벌 경영인으로 세계를 누비던 김우중 회장의 총애를 받으며 30대 초반에 그리스 지사장을 맡을 정도로 성공가도를 걷는다. 100여 개 국가를 넘나들며 앞만 보고 달리던 그는 자기 사업에 대한 열망을 갖게 되었고, 지난 8년간 섬유부터 자동차·군장비 등 특수 물자를 다뤄본 해외비지니스 경험이 그의 독립에 든든한 배경이 되어줬다.
사업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남다른 사업 감각, 통 큰 배포와 실천력으로 부를 거머쥐게 된 것이다. 나날이 사업이 번창하고 있을 때 어머니의 부름이 있었다. “우리 집안에서 사업을 하는 건 너뿐이고 잘하고 있으니 가업인 도자기 회사를 맡아 달라”는 간절한 요청이었다. 그때가 1988년이었고 지금껏 광주요를 맡아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2003년에는 고급 술회사인 화요를 설립했다. 현재는 외식사업체인 가온소사이어티까지 도자기와 고급 술 그리고 외식업체, 세 개의 트라이앵글 구조로 그룹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돌이켜 보면 가업인 도자기와 고급 한식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게 저의 운명으로 프로그램화 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태권 회장의 말이다. 이전의 글로벌한 경험들이 결국은 광주요를 통한 한식 세계화를 추진하는 원동력이자 밑그림으로 작용했다는 의미다. 회사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자란 사춘기는 그에게 성공의 의지를 불태우게 했으며, 언어가 통하지 않았던 낯선 땅 미국에서의 힘든 유학시절은 우물 안에서 벗어나 처음 만나는 큰 세계였다. 서구 유럽과 아프리카 등 대륙을 넘나들며 각국의 고위층과 부호들을 만나 교류하며 비즈니스를 해본 경험도 부의 힘과 고급 문화에 대한 안목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됐다.
애국심을 한껏 고취시킨 사건도 있었다. 조 회장은 “한번은 바이어 초청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가게 됐습니다. 리츠칼튼 고급호텔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화이트 온니(백인만 출입가능)’라며 호텔관계자가 저를 막아섰고, 일행인 바이어가 ‘히즈 오케이. 재패니즈(일본인이라서 괜찮아)’ 하는 거예요. 인종차별이 있던 그곳에서는 일본인들만 출입이 허용되는 겁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고 우리나라가 국력을 키우는 데 일조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조태권 회장은 광주요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문화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한국에서 만드는 도자기는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하기 위해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 ‘일본 사람들이 찾고 일본에서는 대접받는 한국 도자기가 왜 정작 자국에서는 외면받고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도자기 연구에 몰두했다. 1992년경이다. 그는 “세계적으로 도자기가 유명한 나라들은 그들의 음식도 알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요. 일본·중국·영국·이탈리아· 덴마크·스페인 등 대부분 제국주의를 경험한 나라들이란 사실도요. 음식이 유명하니 술과 식당도 함께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깨달은 것은 세상의 원리라는 게 있는데 근본은 먹거리부터 시작된다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문화가 단절되는 시대적 아픔을 겪은 터라 도자기를 비롯한 전통의 음식 문화가 이어오지 못했다. 그래서 조회장이 찾은 해결방법은 “새로 다시 시작하자”였다. 그는 “우리 도자기를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게 만들려면 그 수준에 맞도록 고급스럽게 다시 만들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울러 그 그릇에 담을 수 있도록 한식을 고급스럽게 만들고, 음식과 어울리도록 만든 술이 화요입니다”라고 설명한다. 2005년 출시된 화요는 10년 만인 지난해 흑자전환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뤘다.
▶美 나파밸리서 1인당 320만원 만찬 화제
광주요에서는 한식 고급화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아름다운 식탁 전시전’을 시작했고, 성북동 자택에서 10일에 한 번씩 내로라하는 저명인사 600명을 초대해 자체 개발한 최고급 한식을 대접했다. 서서히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항간에서는 ‘성북동 조회장의 만찬에 초대되지 못하면 상류층이 아니다’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까다로운 상류층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고급 한식의 가능성을 확인한 그는 드디어 최고급 한식당 ‘가온’을 열게 된다.
가온은 국내 한식당 최초로 주방을 외부에 공개하는 오픈 키친으로 큰 화제를 모았고, 윤정진 셰프를 비롯 김병진, 방기수 등 스타 셰프들을 양성하게 된다.
조태권 회장은 2007년 한식 세계화에 불을 붙인 대형 프로젝트를 감행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서 유명 와이너리 대표를 비롯 60명의 세계 저명인사를 초대하고, 1인당 320만원짜리 최고급 한식을 제공하는 만찬을 연 것. 메뉴는 물론 음식에 어울리는 도자기와 후식용 막걸리 칵테일까지 2년간 준비한 자리였다. 만찬이 끝나고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일본 음식보다 낫다”는 외국 참석자들의 극찬 속에 행사는 대서특필됐고 이때부터 한식 세계화의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올 초 미식가들의 성서로 불리는 ‘미슐랭’이 서울편 발간 확정을 발표했다. 평가의 엄격성과 정보의 신뢰도에 힘입어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미슐랭’이 잠행 순례에 들어갔다는 소식에 서울 한식당들이 기대와 함께 잔뜩 긴장하는 분위기다. 조 회장은 “서울 한식당들 중에서 최고점인 별 셋이나 둘 혹은 하나라도 받는 곳이 나온다면 처음으로 우리 식생활 문화가 세계적 문화로 확산될 수 있는 선례가 만들어지는 겁니다”라고 말한다.
주세, 종가세를 종량세로 바꾸는 제도 개선 시급
현재 국내 외식 시장 규모는 약 70조원으로 추정된다. 조태권 회장은 올해 미슐랭가이드 서울판이 나오면 시장 전반에서 고급화가 이뤄져 5년 안에 시장 규모가 2배 이상 커질 거라 예상하고 있다. 그때 우리 도자기와 음식, 술이 세계로 뻗어나가려면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 주세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는 것. 그는 “현재 술은 생산량과 알코올 도수(종량세)가 아닌, 생산원가에 세금이 매겨지는 ‘종가세’가 적용되는데, 이는 좋은 술을 만들기 힘든 환경을 조성하고 있습니다”고 말한다. 제품이 안 팔려도 출고할 때 100% 세금을 내야 하고, 술병에도 세금이 매겨지기 때문에 종가세 환경에선 자금 압박이 심하다는 얘기다.
▶필생의 소원은 온고지신 통한 문화보국
조태권 회장은 필생의 꿈이 있다고 한다. 이병철 회장이 사업보국을 외쳤듯이, 조회장은 문화보국을 이루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친다. 그는 “우리 문화를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온고지신(溫故知新), 즉 옛것을 알면서 새것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전통에 해답이 있는데, 외국 것을 모방하다면 우리의 것을 잃어버리게 될 겁니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은 후 문화단절로 인해 우리의 것을 비하하고 천시하는 태도를 이제는 버려야 하며,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것들을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발전시켜 세계에서 인정받도록 국력을 키워 나가자고 강조한다.
He is~ *1948년 부산 출생
-1966년 일본 외국인학교 졸업
-1973년 미국 미주리 주립대학 공업경영학과 졸업
-1973~1974년 도쿄 마루이치상사 근무
-1974~1982년 대우 근무
-1988년~현재 광주요 대표이사
-2003년~현재 화요 대표이사
-2007년 미국 나파밸리서 ‘나파 디너 파티’ 주최
-2009년~ 현재 성북문화원 원장
-2013년 조태권의 문화보국 출간
[김지미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71호 (2016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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