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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출간한 소설가 한수산 | “과거史는 과거가 아니라 오늘로 반복해야 합니다”
입력 : 2016.07.04 10:4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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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세에 단편으로, 이듬해 장편으로 문단에 데뷔한 한수산은 실로 한 세대에 이르는 세월을 ‘군함도’에 매달렸다. 그 시작은 ‘한수산 필화사건’. 그 일련의 사건을 겪은 후 일본으로 건너갔고, 그곳의 한 서점에서 오카 마사하루 목사의 <원폭과 조선인>이란 책을 접하곤 군함도에 있던 하시마 탄광의 조선인 강제징용과 나가사키 원폭 피해를 소설화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2003년 5권 분량의 대하소설 <까마귀>가 세상에 나오게 된다. 그러니까 이번에 출간한 <군함도>는 전작인 <까마귀>를 거의 다시 쓰다시피 해 2권으로 압축한 결정판이다. 과연 어떠한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 하나의 주제를 이토록 오래도록 간직하게 했을까? 그는 “인간은 살기 위해 태어나지만 자신이 책임져야 할 몫이 아닌 국가 혹은 역사가 뒤엉킨 거대한 불행, 끊임없는 불평등과 압제를 감내하며 살아선 안 된다”며 말문을 열었다.
* 한수산 필화사건
1981년 5월, 한 일간지에 1년간 연재 중이던 한수산의 장편소설 <욕망의 거리>로 인해 관련자들이 국군보안사령부(사령관 노태우)로 끌려가 고문을 당한 사건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군인,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에 대한 묘사가 당시 군부정권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이후 한수산은 글쓰기를 중단하고 일본으로 떠나 여러 해 동안 머물렀다. ▶나이 칠십, 전혀 두렵진 않습니다
▷오랜만에 새 책이 나왔습니다.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지난해 3월부터 이 작업에 들어갔는데, 15개월이나 걸렸네요. 5권짜리 <까마귀>를 다시 고친다고 했더니 주위에서 다 말리더군요. 오랫동안 사귄 주치의가 있는데 1년간 볼일 없을 거라고 했더니 아주 신신당부를 하면서 망가뜨리지나 말라고.(웃음) 어떤 친구는 그럽디다. 나이 칠십에 뭐가 되겠냐고. 다들 왜 그런 헛된 일을 하냐고 했어요. 새로 쓰는 것도 아니고 써놓은 걸 다시 쓰겠다니, 잘된다는 보장이 어디 있냐고. 덕분에 정말 칩거했습니다. 만난 사람이 10명도 안돼요. 다 끊고 군함도에 다녀오고 피폭자 2세들 만나러 합천에 간 걸 빼면 서울을 벗어난 일이 거의 없었어요. ▷그러고 보니 올해 고희가 되셨습니다.
지난해가 광복 70주년이었는데, 해방된 다음해에 태어났어요. 나이 칠십이란 게 그렇게 두렵진 않더라고. 못해본 거 아쉬운 거, 뭐 그런 것도 없고.(웃음) 아주 묘한데, 그간 그래도 잘 살지 않았나 싶은 게, 겁나는 건 없었어요. 주변에선 괜히 1년간 헛일 하는 거 아니냐고 걱정했는데, 뭐 안 되면 망하기밖에 더하겠어요. 어떤 의미에선 불가능한 일에 대들었는데, 그럼 또 어떠랴 싶었고. 일하는 시간을 따로 정해 논 게 아니라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몸이 하라는 대로 했습니다. 정신이 맑으면 새벽에라도 집 앞에 얻어 논 오피스텔로 갔어요. 먹고 쓰고 자고만 반복했지요. 8월쯤 되니 길이 보이더군요. 가을이 되니까 되겠다 싶더라고. 그래서 밀고 나갔어요. 칠십에도 두려울 게 없구나 싶었지.
▷집필하실 때면 원래 칩거하시는지요.
연재할 땐 그렇진 않은데, 이렇게 들어앉아서 쓴 작품이 종종 있긴 해요. <부초>도 대학노트 16권에 연필로 썼으니까. 그땐 석 달 열흘이 걸렸지요. 연재를 할 때도 필사하고선 다시 타이핑하면서 재구성하는 스타일이에요. 사서 고생하는 것이죠. 이 작품은… 좀 특별했어요. 나이 들어 이런 작업을 한다는 게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고.(웃음)
사실… 누가 읽겠나 싶었어요. 즐겁고 행복한 일을 쓴 것도 아니고 1943년 일제강점기에 어둡고… 이게 정말 개고생한 얘기잖아요. 지난해에 모 방송국에서 드라마로 검토한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책임PD가 그러더군요. 자체 결론이 났는데, 첫째 로맨스가 없고 둘째 희망이 없다고. 아니 징용 끌려간 게 관광 간 것도 아니고.(웃음) 그럼에도 독자 분들이 이런 소설을 써줘서 고맙다고 메시지를 주세요. 지금까지 받아보지 못했던 반응입니다. 아주 특이한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27년을 한 사건에 주목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겁니까.
어쩌면 아주 우연한 계기가 손을 놓지 못하게 했어요. 필화사건 이후에 당시 보안사령관이던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는 걸 보고 저 자가 대통령이 된 기간만큼은 이 나라를 떠나 있자, 그래서 일본에 가게 됐어요. 거기서 군함도의 존재를 알게 됐는데, 그땐 국내에 전혀 알려진 게 없었어요. 자료를 수집하다 보니 제대로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에요. 그렇게 27년을 매달리게 됐습니다.
▷책 속엔 피폭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고통스러웠지만 쓸 수밖에 없었어요. 그 고통 속에서 원폭을 맞은 조선인들이 참혹하게 죽어갔으니까요. 당시 일본인들은 부상자들 가운데 “어머니”, “물 좀 주세요”라고 우리말로 신음하는 사람들은 버렸습니다. 한국 사람은 사고를 당하면 “도와주세요”가 아니라 “사람 살려”라고 소리칩니다. 자신을 제3자로 객관화시키지요. 피폭지에 구조대로 들어간 일본인들은 “사람 살려!”라고 소리치면 들것에 싣고 가다가도 전부 버렸어요. 그래서 더 많은 조선인들이 죽어갔습니다. 쓸 수밖에요.
▶전혀 성격이 다른 민족이 여전히 엇갈리고 있습니다
▷필화사건의 분노가 이 소설에도 영향을 미친 걸까요.
<군함도>는 2003년에 출간한 장편<까마귀>를 개작한 작품이다. <까마귀>는 2009년 12월 2권으로 재구성돼 일본에서 번역판이 출간되기도 했다.
아마도 점점 더 어려워질 겁니다. 양국은 시작부터 서로 엇나갔어요. 일본은 특유의 성향이 있습니다. 다 말하지 않지요. 그저 알아들을 만큼만 얘기하고 그걸 교양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린 톡 까놓고 얘기하잖아요. 민족성이 전혀 달라서 더 힘들어요. 한·일 과거사는 이렇게 지리멸렬하게 고착화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나마 일본의 양심적인 분들도 세월이 흐르다보니 지쳤어요. 이젠 문화가 그 몫을 담당해야 합니다. 과거사를 단순히 과거로 만들지 말고 살아있는 오늘, 우리들의 문제로 가져가야 해요. 끊임없이 관련 소설, 영화, 노래가 나와서 되풀이하도록 만들어야지요.
▶전략은 둘째 치고 전문가조차 없더군요
▷최근 군함도에서 광산을 개발한 미쯔비시가 강제징용과 관련해 미국과 중국에 잇따라 사죄와 배상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는데요.
그 시점에 마침 일본의 마이니치신문이 <군함도>를 쓴 작가 입장에서 이 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서면 질의서를 보내왔더군요. 화가 나서 이렇게 썼습니다. ‘당신들은 사안에 따라서 입맛에 맞는 말만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할린에서 일본이 철수할 때 4만3000명의 조선인은 배에 태우질 않았다. 그때 일본은 너희는 조선인이니 배에 태울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미쯔비시는 합병된 시기에 조선인은 없었다고 한다. 다 같은 일본인이라 보상할 필요가 없다니. 일관성도 없고, 사안에 따라 제각각이다’. 어떤 해결의 실마리가 있을까 싶어요. 우리가 전략적으로 파고들어가 싸워야 합니다. 국력이 좀 더 컸더라면 이렇게까지 나오진 않았겠지요.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군함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한동안 시끄러운 이슈였습니다.
우리 정부가 전략적이지 못했습니다. 강제노동이 있었으니 유산등재가 안 된다니, 아우슈비츠 수용소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지 않았습니까. 유네스코는 잘못된 역사도 후손에게 교훈이 된다 해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고 있거든요. 몰라도 이렇게 모를 수가 없어요. 등재하면 안 된다고 외칠게 아니라 강제된 사실이 명확하게 명시돼야 한다고 전략적으로 접근했어야 합니다. 명시 한다, 안 한다 정확한 표현도 없이 어물어물하다가 지금은 아예 무시당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최근엔 아예 나가사키 시에서 군함도가 낙원이었다고 홍보한다지요. 전략도 없지만 전문가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미 새로운 작품을 구상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기억의 3부작’이라고 붙였는데 사할린 문제, BC전범 문제, 피폭 2·3세 문제 같은 과거사를 취재한 게 벌써 오래 전이에요. 다음 작품은 이미 시작했는데, 어떤 약속을 할 수 있는 나인 아니잖아요. 일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살 수도 죽을 수도 있고. 지금은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웃음)
[안재형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장소협찬 서울역사박물관]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70호 (2016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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