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한효주 | “봄이라서 그런가요? 잠들었던 연애세포가 깨어나요”

    입력 : 2016.05.13 17:28:14

  • 올여름 무더위를 예고하듯 기온이 점점 올라간다. 하지만 아직은 그 엄청나게 짜증스러운 손님은 먼발치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다행히 여름보다 먼저 찾아온 봄은 적당히 기분 좋은 바람과 함께 살랑거리며 다가왔다. 황사와 미세먼지라는 불청객도 있었지만, 반가운 노래 손님이 찾아왔다. 올봄에도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 또 유행일 줄 알았는데, 십센치의 ‘봄이 좋냐??’가 전파를 타고 흘러 귀에 착 달라붙었다. 연인들을 바라보는 질투 섞인 시각과 귀여운 노랫말은 많은 이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4월 초 만난 배우 한효주(29)도 요즘 즐겨듣는 노래로 ‘봄이 좋냐??’를 꼽았다. 그는 “귀엽고 재미있는 노래”라며 “봄이라서 그런가요? 잠자고 있는 연애세포들이 깨어난다니까요”라며 노래를 즐기는 듯했다. 그러면서 “봄이 좋냐. 멍청이들아. 망해라. 망해라. (벚꽃) 떨어져. 몽땅”이라고 노래 한소절을 흥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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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기만큼 노래를 좋아하는 여배우

    한효주는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좋아했다. 소질이 있다기보다 좋아하는 걸 하니 즐거웠다. 실력을 뽐낼 정도는 아니지만 작사·작곡해 노래를 ‘제대로’ 즐기는 취미도 있다. 그는 “노래를 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며 “큰 소리 낼 일도 없는 직업인데 노래를 하면 소리가 밖으로 나가니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다”고 했다. ‘이등병의 편지’, ‘사랑했지만’ 등 故 김광석 씨의 노래도 그의 노래방 애창곡이다.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와는 프로젝트 앨범 <숨바꼭질>을 발매한 바 있고, 지난 2010년 GMF(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레이디로 선정돼 활동하기도 했다. 최근 출연작인 영화 <해어화>에서도 그는 노래를 즐겼다. 일반 대중가요가 아닌 정가(전통 성악의 한 갈래)였으나 그 재미가 쏠쏠했다. 촬영을 준비하며 4개월 동안 1주일에 3번 정가를 배웠다. 그는 “정가를 배우면서 심리적으로 도움이 된 것 같다”며 “여러 가지로 힘들었을 때였는데 안정적이라고 해야 할까? 힐링이 됐다. 또 새로운 걸 배운다는 즐거움도 있었다”고 좋아했다. 에피소드도 있다. “한창 정가를 배울 때 와인바에서 와인을 마시면서 (극 중 등장하는) ‘사랑, 거짓말’을 불렀어요. 지인이 ‘너 요즘 뭐 하냐’고 물어서 ‘영화 준비하는데요? 정가 배워요’라고 했죠. ‘그게 뭐냐?’고 묻기에 (추임새가 독특하게 느껴지는) ‘사~랑’이라는 가사가 툭 튀어나오더라고요. 최근까지 저는 찌르면 훅하고 나오는 자동판매기 같았다니까요. 물론 술집에서 약간 취해 있던 상태기도 했지만요.”



    ▶스크린에서 더 빛나는 미모

    배역에 몰입해 ‘자동판매기’가 되길 주저하지 않았던 때문일까. 영화 <해어화>에서도 한효주는 예쁘게 등장한다. 그를 사랑하는 영화감독들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형사로 나온 <감시자들>에서도 그랬고, 의사로 나온 <반창꼬>, 시각장애를 가진 인물로 나온 <오직 대만>에서도 미모가 뛰어났다. 전작인 <뷰티인사이드> 홍보를 위해 만났을 때 그는 “감독님의 욕심이었다”고 했는데, <해어화>를 보니 스크린에서 빛나는 미모는 감독만의 잘못(?)은 아니었던 듯하다. 심지어 <해어화>는 제작사 대표부터 촬영감독, PD, 의상감독 등 여자들이 많았다. 질투심을 불러올 수도 있을 텐데 일이라서 그런지 암묵적으로 ‘한효주 예쁘게 보이기’ 프로젝트가 구동된 듯하다. 예뻐 보인다는 이야기가 배우로서 달가운 일만은 아닐 수도 있다. “이번에는 예쁘게 나와야 하는 기생 캐릭터라서 예뻐 보여야 하죠. 예쁘지 않게 나와야 하는 캐릭터를 해야 한다면 신경을 더 쓸 거예요. 매력적으로, 예쁘게 보인다고 하신다면 그저 감사할 뿐이죠. 제가 뭐 다른 어떤 말을 할 수 있겠나요? 하지만 전 모든 작품에서 예쁘게 나와야 한다는 생각은 안해요. 예쁘게 보이려고 했으면 정말 재수 없었을 걸요?”

    하긴 예쁘게만 보이고 싶었으면 <해어화>에서 직접 노인 분장을 하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나이를 거스를 수 없지만 굳이 예측해 주름살을 그려 넣고, 순탄하지 않은 삶을 산 노년의 얼굴을 큰 스크린에 내보였을까. 이번에도 한효주가 출연했던 영화 <쎄시봉>처럼 다른 배우가 그의 장년 시절로 나와도 됐다. 하지만 한효주는 “그 좋은 걸 그때는 왜 몰랐을까요?”라는 대사를 통해 감독의 요구에 응했다. <감시자들>에서 호흡을 맞췄던 설경구의 도움도 컸다. “정말 고민을 많이 했었을 때인 건 맞아요. 영화를 잘 만들기 위해 고생해서 왔는데 ‘노인 분장으로 인해 영화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죠. <감시자들> 회식 자리에서도 그 고민을 털어놨는데 설경구 선배가 ‘배우는 끝까지 책임지는 거야’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그런가? 그렇게 해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도 작용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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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대, 이젠 알 거 다 아는 나이

    큰 스크린뿐 아니라 KBS2 예능 프로그램 <해피선데이-1박2일>에서도 자연스럽게 미모를 뽐냈다. <1박2일> 멤버들이 그토록 출연을 원하고 바랐던 한효주는 최근 실제로 깜짝 등장해 예능 감각도 선보였다. 제작진과 짜고 ‘한효주 표 소금커피’로 멤버들을 골려줬다. “지금이 아니면 못할 것 같아서”라고 출연을 결심한 이유를 밝혔지만 나이도 한몫했다. 성숙함이 전하는 긍정적인 힘이란 이런 게 아닐까. 한효주는 설경구의 조언을 소개할 때 목소리를 깔고 대선배 흉내를 내며 말했다. 나이도 들고 예능을 경험해서 추임새와 몸짓이 늘어난 듯했다. 풋풋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 어울리는 배우인 줄로만 알았는데 한효주는 “알 거 다 아는 나이”라며 “그래서 <해어화>에서 소율 캐릭터를 연기하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사랑 때문에 변화하는 과정보다 순수했을 때 연기를 더 고민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드니 머릿속 일정 부분을 지워 소녀처럼 행동해야 하는 게 진짜 어렵더라고요. 내 눈앞에 있는 것들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려고, 느끼려고 노력했어요.” 누구에게나 있는 질투심을 떠올려 보진 않았을까. 혹시 질투라는 감정을 느껴보지 못했던 건가? 한효주는 “에이~ 있죠. 섣불리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사람은 누구나 다 그런 감정 있잖아요. 자신 없어 보이고 나약해 보이니까요”라고 미소 짓는다. “저 같은 경우는 질투심이라는 게 오면 피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다른 길로 가고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고 하죠. 어떻게 보면 긍정적으로 본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게 제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안 좋은 생각이 들 때마다 스스로 다그치는 스타일인데, 다행히 어렸을 때 경험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초등학생 때 엄마가 선생님이어서 전학을 많이 다녔어요. 친구들을 엄청나게 많이 만나고 무척 주도적인 아이였는데 전학을 많이 다니면 다닐수록 한 명에게 집착하는 스타일이 됐더라고요. 정말 예전인데 그 느낌이 뭔지 아직도 알겠고, 남아 있어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알아요. 제가 좀 빨리 뭔가를 깨친 것 같아요.”

    과거의 사랑 경험도 물었다. 굳이 멀리까진 안 가도 될 것 같은데 한효주는 순수한 때를 기억하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과거를 생각해 보면 그때 연애가 더 아팠던 것 같아요. 그게 잘 안 됐으니 지금은 없겠죠? 떠올려 보면 그런 것 같아요. 처음 겪게 된 감정이 더 크게 다가오죠. 첫사랑이었느냐고요? 그때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사랑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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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년 만에 드라마 복귀

    우리 나이로 이제 30대가 된 한효주. 2014년 <감시자들>로 청룡영화제의 꽃이 된 그는 이제 30대를 대표하는 여배우 중 하나가 됐다. “연기자로서 20대를 후회 없이 보냈다”는 그는 어느새 성장했다. 연기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을까. “자신감보다는 연기하는 자체가 즐거워요. 그 제작과정 안에 제가 속해 있는 것도 좋고요. 심도 있게 캐릭터를 고민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는 것도 즐거웠죠. 푹 빠져 있을 수 있으니깐 정말 즐겁게 연기한 것 같아요. 영화를 하면 할수록 좋아하게 됐다고 할까요? 드라마 환경과는 조금 다르니까요.”

    한효주는 오는 7월 방송 예정인 MBC 수목드라마 <더블유>로 안방극장에 돌아온다. 2010년 <동이> 이후 무려 6년 만의 드라마 복귀다. 관객이 아닌 일반 대중의 사랑이 고팠던 걸까. “1부를 덮었을 때 2부를 빨리 보고 싶은 대본은 오랜만이었다”고 놀라움과 자신감을 동시에 드러냈다. 물론 아직 생방송으로 돌아가는 ‘막무가내’ 현장은 여전하다. 최근 끝난 <태양의 후예>로 사전 제작 드라마에 관심이 높아졌지만 아직 보편화되려면 멀었다. 한효주도 과거 기억이 떠올랐는지 “벌써 걱정”이라고 투정하며 코맹맹이 소리 섞인 애교를 부렸다. 예능과 나이 덕에 애교도 늘어난 걸까? “지금이 아니면 영영 못할 것 같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색하게 느껴져야 하는데 귀엽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진현철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68호 (2016년 0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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