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 | “한국의 중견기업은 미래의 글로벌 전문 기업입니다”

    입력 : 2016.03.30 14:45:26

  • 걸걸한 목소리가 쩌렁했다. 한 가지 질문에 세심하게 답변한 후 입을 크게 벌려 웃는 품이 당당했다. 지난 2월 중견기업연합회(이하 중견련) 회장 연임에 성공한 강호갑 신영그룹 회장을 만났다. 강 회장은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려면 중소기업 아니면 대기업이란 이분법적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며 중견기업에 대한 지원과 규제완화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지난 1992년 한국경제인동호회로 출발한 중견련은 1998년에 현재의 이름을 갖고 2014년 7월 22일 ‘중견기업 성장촉진 및 경쟁력 강화에 관한 특별법’(이하 중견기업특별법)이 만들어지며 법정단체가 됐다. 2013년에 중견련 회장이 된 강호갑 회장에 대한 기대가 여전히 높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강 회장은 “중견기업은 법인세 33조원 중 8조원을 부담할 만큼 경제적 위상이 높지만 합리적인 법제와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온전히 성장할 수 없다”며 “향후 3년간 정부, 국회, 기관 등을 상대로 토론회, 간담회 등 필요한 조치를 총동원하겠다”고 목표를 밝혔다.



    사진설명


    ▶“중견기업은 대기업이 아닙니다”

    우선 연임 축하드립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고마운데, 개인적으론 힘든 결정이었습니다.(웃음) 중견기업특별법이 만들어지고 법정 단체가 되다 보니 회원사들의 기대가 높아졌어요. 법령 개정 등이 풀리지 않으니 그 기대가 무겁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제 능력이 모자란 부분도 있지만 관련 부처나 단체들의 시스템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모든 관계 부처가 아직도 중소기업 아니면 대기업으로 기업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걸 빨리 고쳐야 하는데….

    현재 가장 시급한 부분은 법령 개정입니까. 중견기업특별법 제정 이후 후속조치가 아쉬운 상황입니다. 중견기업특별법은 법령 개정이 돼야 예산 확대, 특례조항 신설 등이 이뤄지는데 그게 안 되니 지원도 없고 완화도 없습니다. 정부나 국회에선 법 개정이 4년, 5년, 8년씩 걸리는 걸 다반사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기업인들은 그렇지 않거든요.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회장이 그러더군요. 이제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시대는 지나갔고 빠른 물고기가 느린 물고기를 잡아먹는 시대라고요. 얼마나 피부에 와 닿는 말인지 모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문제인 겁니까. 중견련은 2014년 7월에 중견기업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법정단체가 됐습니다. 벌써 1년 반이나 시간이 지났거든요. 전 그 시간이면 모든 지원이나 규제에 관한 부분이 해결되는 줄 알았습니다. 특별법 만들어놓고 한 달이면 다 고쳐지는 줄 알았어요.(웃음) 정부에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데, 애로사항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부처별로 협의해야 할 복잡한 문제들이 있나 보더군요. 중견기업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기여도는 높은데, 정책적 지원은 여전히 미흡한 수준입니다. 공정거래, 조세, 판로 같은 관련 규제 문제들 역시 모두 해당되지요. 이러한 제약들이 중소기업→중견기업→대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어요. 대기업이 중심이 된 기존 성장전략의 한계인데, 정책의 패러다임을 과감히 전환해야 합니다.

    사진설명


    중견련의 역할도 있을 텐데요. 현재 법안소위를 통과한 중견기업특별법 개정안이 특례조항을 통해 중소기업청 소관 법률에 반영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중·장기적으로 산업부, 미래부 등 정부부처 소관 법률에 반영될 중견기업 법령 개정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중견기업특별법 제정 이후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요.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더 먼 것 같습니다. 여전히 중견기업을 대기업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대기업이 아니라서 중견기업특별법을 만든 건데… 근본적인 방법을 찾아야겠지요. 중견기업특별법에 아예 중견기업의 범위가 정해져 있습니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나 언론사, 금융기관은 빼고 제조업의 경우 매출액 1500억원 이상, 자산 규모 5조원 미만이에요. 나열하면 많을 것 같지만 국내 기업의 0.1%, 고작 3000여 개에 불과합니다. 적어도 1%, 10배는 늘어야죠.



    ▶“전 세계 히든챔피언과 붙어보고 싶습니다”

    지난해 전체적인 수출 감소에도 중견기업의 수출은 오히려 늘었습니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 경제가 규모를 확대하기 위해선 수출과 무역이 필수예요. 이건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공통된 과제입니다. 산업통산자원부에서 나온 자료를 보면 지난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수출이 각각 11.1%, 6.6% 감소했습니다. 유일하게 중견기업만 3.2% 늘었어요. 제9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주형환 산업통산자원부 장관이 중견기업을 수출주도형 기업군으로 집중 육성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중견기업특별법의 큰 맥이 두 가지예요.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에서 글로벌 대기업으로 선순환 사다리를 만들어주자는 큰 취지가 하나요, 글로벌 전문기업으로 키워나가자는 게 또 하나입니다. 중견기업들은 한 분야에서 독보적인 전문성이 있거든요. 한국콜마나 서울반도체, 패션그룹형지를 보세요. 당연히 그렇게 육성해가야죠. 우리나라 중견기업들은 세계 수준의 기술력에 특화된 제품과 서비스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비좁은 내수시장을 벗어나서 세계시장을 선도할 전문 기업으로 성장해갈 잠재력이 정말 높아요.

    그렇다면 그 선순환 사다리에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입니까. 수익성이나 임금수준, 노동생산성, R&D 투자처럼 전반적인 측면에서 대기업과 중견기업 간에 격차가 있습니다. 하도급 거래구조 상에서도 원사업자 근로자 임금이 100일 때, 1차 수급 근로자의 상대임금은 52.0%, 2차 수급 근로자는 50%를 밑돌아요(49.9%). 3차 이상은 42.2%에 불과합니다. 법인세법의 경우 기업을 중소기업과 일반기업으로 분류하고 중견기업을 일반기업에 포함시키고 있는데, 대기업과 과세기준이 동일하니 형평성에 문제가 있습니다. 판로 면에서도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품 제도’의 경쟁제품으로 지정되면 중소기업 이외의 기업(중견·대기업)은 3년간 해당 제품에 대한 공공기관 입찰에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중소기업 적합 업종’도 취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역할 분담이었는데, 중견기업까지 규제 대상이 되다 보니 오히려 중견기업 성장억제 정책으로 변질되고 있어요.

    중견기업을 논할 때 독일의 강소기업이 비교대상이 되곤 합니다. 벤치마킹 대상은 역시 독일의 히든챔피언입니까. 그렇지요.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저흰 기업을 하는 사람들이니 경제시스템이나 국가의 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분명한 건 독일이 유럽연합 GDP의 3분의 1을 견인하고 있는데, 그 근간이 히든챔피언이에요. 전 그 모델이 맞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금형 분야에선 대한민국이 최고라고 자부하는데, 이젠 독일이나 일본 기업들과 겨뤄보고 싶어요. 그런데 그 와중에 규제나 불협화음이 있다면 힘이 빠집니다. 제발 기업가 정신을 떨어뜨리는 일만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각 기업들이 유행어처럼 신성장동력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혹 신영그룹은 어떠신지요. 제가 운영하는 신영은 차체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1998년 말에 부도난 회사를 인수해서 1999년 3월 1일부터 다시 시작했으니 올해 벌써 17년이나 됐네요. 매출요? 지난해 해외매출까지 1조가 넘었습니다. 차체는 현대·기아차에 납품하고 금형은 BMW, 폭스바겐, 토요타 등과 일하고 있지요. 요즘은 차체와 3D 프린터의 연관성을 찾고 있습니다. 아직 금속으로 3D 프린팅은 할 수 없는데, 안 되는 게 어디 있겠습니까. 더 이상은 말씀드릴 수 없지만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웃음)

    성공한다면 획기적인 성장동력이 될 텐데요. 뭐 굳이 신성장동력이라고 정하지 않아도 기업인들은 스스로 죽을 짓은 하지 않습니다.(웃음)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사진설명


    ▶“합리적인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장은 없습니다”

    최근 창업이 화두 중 하나입니다. 더불어 기업의 가업승계 문제도 불거지고 있는데요. 우리나라는 설립된 지 100년을 넘긴 기업이 고작 7개에 불과합니다. 독일이나 프랑스, 일본, 미국 같은 선진국과 비교하면 일천한 역사지요. 일본만 해도 200년이 넘은 기업이 3000개나 됩니다. 역사를 가진 기업이 많다는 건 국가경제가 건강하고 경쟁력이 있다는 방증이에요. 전 가업승계는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기술이나 경영 노하우 같은 무형의 자산을 전수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시 3년간의 임기가 시작됐습니다. 중점 추진 과제라면. 우선 중견기업 성장저해 규제 발굴과 경영 애로 개선활동을 대폭 강화할 겁니다. 국회나 대정부 협의체를 확대해서 중견기업 발전을 위한 합리적인 정책 수립을 마련해야지요. 둘째, 앞서도 말씀드렸던 대기업 아니면 중소기업이라는 이분법적 구도의 법령을 개선해야 합니다. 중견기업은 실질적으로 법인세 33조원 중 8조원, 전체의 25%를 부담하고 있는데, 합리적인 법제나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온전히 성장할 수 없습니다. 이번 임기 동안 집중적으로 정부, 국회, 기관 등을 상대로 토론회나 간담회처럼 필요한 조치를 총동원할 겁니다. 또 하나는 ‘중견기업 글로벌 R&D센터’를 설립하려고 합니다. 중견기업에 특화된 전용 M&A 펀드나 금융지원 서비스(산업은행)를 이끌어내기 위한 TF 활동을 강화할 계획입니다.

    개인적인 목표도 있을 텐데요. 운동하는 걸 정말 좋아하는데 한동안 못했어요. 지난해 10월에 필드에 나가보곤 여태 못 갔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데, 원 없이 운동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웃음)

    [안재형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67호(2016년 04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일경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