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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용 동양물산기업 회장 | “소비자 무서운 줄 알아야 기업이 살 수 있습니다”
입력 : 2015.07.06 16: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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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용 동양물산기업 회장을 만났다. 서울 강남의 아담한 빌딩에 둥지를 튼 본사 사무실은 강남스타일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집무실과 접견실이 한 공간에 있는 회장실에는 여기저기 책이 수북했고, 작은 선풍기가 저속으로 돌며 손님을 맞았다. 사무실도 그렇지만 회장실도 꼭 필요한 것들로만 속을 채운 듯 실용적이었다.
트랙터와 콤바인, 이양기 등 농기계와 담배필터를 생산하는 동양물산기업은 내수시장 판매보다 해외수출이 더 많은 중견기업이다. 지난해 매출은 약 3437억원. 국내 농기계 시장의 매출이 확연히 줄어 최근 해외수출 비중을 더 높이고 있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이하 중견련) 통일경제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 회장은 재계에선 벽산그룹 창업주 고 김인득 명예회장의 차남으로 알려졌다. 1997년 창업주가 떠난 후 형인 김희철 회장은 벽산그룹을, 김 회장은 동양물산기업을 맡아 독자적인 성장을 일궜다. 정치권에선 박근혜 대통령의 ‘사촌형부’로 알려지며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부인 박설자 씨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형인 박상희 씨의 막내딸이다.
그런 이유로 정권 초기엔 ‘대통령 테마주’라 불렸다. 혹 덕본 게 있냐고 조심스럽게 묻자 “대통령도 취임한 후에 순방에서 뵀다”며 “오히려 남보다 선 하나는 더 지키고 살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인터뷰 내내 쩌렁한 목소리가 당당했다.
사무실이 사랑방처럼 푸근합니다. 좀 너부러져 있지요.(웃음) 책이 많아서 그런데, 이렇게 깔려 있어야 편해요.(김 회장은 재계의 이름난 책벌레다. 신혼여행 때도 짐 가방에 책만 잔뜩 챙겼을 만큼 읽는 걸 좋아한다.)
늘 바쁘다고 들었습니다. 항상 그렇지요. 기업하는 사람들이 쉬는 날 있으면 그게 잘못된 것 아닌가요. 공장이 돌아야 하는데 문 닫고 휴가 떠나는 게 이상한 일이죠.
농기계 내수시장의 침체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온도가 다를 것 같은데요. 국내는 이미 포화상태예요. 있어도 대체수요 정도죠. 그래서 수출에 나섰습니다. 근래에 아프리카 르완다에 약 800만달러어치를 수출했어요. 앞으로 계속 나갈 겁니다. 미국이나 유럽시장은 이미 할 만큼 했고, 이제 남은 지역이 아프리카와 남미, 중동입니다. 그런데 이 지역은 대량 주문이 들어오는 곳은 아니에요. 성에 차진 않죠. 국제 파이낸싱까지 엮어주고 거래해야 합니다.
중견기업에서 파이낸싱까지 관여하기가 쉽진 않을 텐데요. 맞아요.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우리 정부나 금융기관이 글로벌 파이낸싱 분야에서 넘버10이에요. 넘버1이 세계 수준이니, 떨어져도 한참 떨어집니다. 큰물에 파이프를 연결해야 물이 콸콸 나오는데 그걸 못하니 답답할 때가 있어요.
최근엔 세계상공회의소 총회에 한국대표단으로 참석했습니다. 혹 성과를 묻는 거라면…. 총회나 협회 등의 일에 참석하면 주된 업무가 관광입니다. 혈세 날리는 일이지요. 열흘 일정이었는데 전 1박2일간 다녀왔습니다. 날아가서 회의 참석하고 밤 비행기로 돌아왔어요. 한 달 전쯤엔 미국에 다녀왔는데, 그땐 무박 3일이었어요. 오후 3시 비행기로 떠나서 오전 10시에 LA에 도착해 은행가 일보고 비즈니스 미팅하고 저녁 비행기로 돌아왔습니다. 사업차 가는 건데 관광이나 쇼핑할 게 뭐 있습니까. 상공회의소에도 세계 상공인들과 모일 게 아니라 아시아권만 모이자고 제의했습니다. 그럼 우리가 주도권을 잡을 수 있거든요. 그럴 수 있는 세 나라 중에 하나 아닙니까. 비행기 타는 시간도 반에 반이고…. 어떻게 될 진 모르겠습니다.
일도 좋지만 건강 생각도 해야지 않습니까. 아니, 비행기에서 내내 자잖아요. 게다가 누구 하나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고.(웃음) 버튼 하나 누르면 바로 갖다 주니 얼마나 행복해요.
김희용 회장은 미국 인디애나주립대에서 상업미술을 공부할 만큼 그림을 좋아한다. 만화에 대한 애정도 남달라 지금도 만화가협회 명예회장직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이 한국의 내로라하는 만화가들이 선물한 병풍 앞에 섰다. “가장 아끼는 보물”이라며 좋아하는 만화가로 이두호 작가를 꼽았다.
그런가하면 담배필터사업도 큰 축 중 하납니다. 담배필터는 우리가 국내 최초로 수출에 나섰습니다. 1971년에 이집트 카이로에 샘플을 싸들고 가서 미팅을 하는데 옆방에 북한 사람들이 엽연초를 사러 왔더군요.(웃음) 국내에선 필립모리스 코리아가 우리 필터만 쓰고 있습니다. 품질 면에서 자신 있습니다.
올초 담배가격 인상에 영향을 받았을 법한데요. 내수시장에만 의존하는 건 아니니… 그런데 왜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나쁘다고 취급하는지 모르겠어요. 흔히 기호품이라고 말하면서 법적으로 규제까지 하는 건… 저도 하루에 예닐곱 대 태웁니다. 자의에 맡겨야죠. 술 때문에 치고받고 음주운전에 각종 범죄까지 꽤나 시끄럽잖아요. 그런데 주세는 그대롭니다. 흡연자 입장에선 형평에 어긋나는 일이죠.(웃음)
그러고 보니 동양물산기업은 공식적인 회식이 없다고 하던데. 조찬이나 점심은 하죠. 하지만 따로 회식하는 문화는 없습니다. 상하가 어울리는데 술이 매개가 돼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거든요. 저 앞에 보이는 캐비닛에 선물 받은 좋은 술들이 많습니다. 직원들이 한 잔 한다면 들고 가라고 해요. 대신 술로 인해 사고가 나면 분명한 책임을 묻습니다. ‘사람이 술을 먹고 술이 술을 먹고 술이 사람을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용을 해야지 이용당하는 입장이 되면 안 됩니다.
2020년 매출 1조, 수출 5억달러, 영업이익 10% 달성을 목표로 ‘글로벌2020’을 수립했습니다. 구체적인 계획이 궁금합니다. 기업은 뭔가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아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비전이죠. 신제품을 꾸준히 출시할 수 있는 기초를 닦지 않으면 쓰러질 수밖에 없어요. 출시한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도 아닙니다. 성공확률이 4분의 1에 불과해요. 제품이 성공해 판매기간이 너무 길어지면 소득은 높아지지만 기업이 방만해집니다. 너무 짧으면 자극은 되지만 비용이 많이 들어가죠. 적절한 조율이 필요한데, 그건 전적으로 소비자의 몫입니다. 그래서 전 아침조회 때마다 ‘소비자 만족’을 강조합니다. 제 기술만 고집하고 있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거든요.
소비자 만족이 곧 성장의 근간이군요. 기업은 자전거예요. 페달을 돌리면 가고 멈추면 넘어집니다. 고개가 있으면 힘들고 내리막이 있으면 조금 편할 뿐이죠. 허나 끊임없이 돌려야만 앞으로 나갑니다. R&D가 곧 페달이에요. 소비자는 기업보다 한발 앞서 있어요. 보폭을 맞추지 않으면 자전거가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고객만족이 첫 번째 목표입니다.
중앙기술연구소가 독보적인 트랙터 연구센터라고 알고 있습니다. 왜요. 다른 기업들도 있지요. 다만 우리는 독립시켰어요. 앞으로 빠른 시일 내에 법인화해서 R&D주식회사를 만들 계획입니다. 우리가 부탁한 일도 비용을 받고, 다른 기업의 일도 수주해서 진행하는, 스스로 자생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혜택은 바라지도 않아, 규제가 걸림돌 중견련의 통일경제위원장이신데,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인 ‘행복한 통일시대의 기반구축’에 가장 시급한 사안을 꼽으신다면. 우선 북한이탈주민들에게 1인1기(技)를 갖게 해야죠. 정부가 직업훈련소를 만들고 기업이 도와야 합니다. 반드시 그곳을 거쳐서 직업을 구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들이 TV에 나오는 게 뭐 그리 중요한 일이겠어요. 기술 없인 진정한 정착도 없습니다. 적자인 대학이 꽤 많다고 하는데, 정부 주도로 각 지역 대학에서 직업훈련을 시키면 서로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최근 침체된 경기에 중소·중견기업이 살아나야 경제도 살아난다고들 합니다. 체감하시는지요. 중소기업을 위한 혜택은 127가지나 있습니다. 중견기업은 단 한 건도 없어요. 한국 기업의 90%가 중소기업입니다. 작은 음식점부터 제조업까지 다양하죠. 그런데 중소기업의 분야가 모호합니다. 실제로는 열댓 개 회사를 운영하면서 각각 법인을 달리한 덕에 중소기업의 혜택을 보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 건 퇴출시켜야죠. 그리고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클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분위기라면 중견기업을 위한 혜택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전혀, 스스로 노력해야죠. 아마도 정부에서 중견기업에 혜택을 주겠다고 하면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앉아만 있진 않을 겁니다. 어쩌면 혼란이 올 수도 있어요. 다만 이러저러한 정부의 규제는 제대로 짚어보고 시행돼야 합니다. 일례로 저희가 익산에 공장을 지을 때 농공단지를 구입했습니다. 비탈인데 익산시에서 평평하게 깎고 축대까지 쌓은 부지였어요. 공장을 지으려고 했더니 문화재청이 옛 부여 땅이라 문화재가 나올 수 있다고 안 된다더군요. 아니, 그런 문제는 시에서 땅을 다질 때 나왔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 덕에 우리도 그랬지만 공장을 수주한 건설사까지 피해가 있었습니다.
기업이 성장하는 데 첫 덕목으로 리더의 자질을 꼽기도 합니다. 물론 리더가 중요하죠. 기업을 경영하면서 자주 리더의 자질을 생각하게 되는데, 리더는 우선 ‘꿈’을 꿔야 합니다. 이상이 있어야죠. ‘끼’도 있어야 합니다. ‘꾀’는 기본이죠. ‘꾼’이 돼야 하고 ‘깡’도 있어야 합니다. 물고 늘어지는 고집, 오기죠. 어디 내놔도 번듯한 자신감도 필요합니다. 그건 ‘꼴’이에요. 학연, 지연 같은 ‘끈’도 필요하고. 근데 이런 걸 못 가졌다? 그럼 ‘꽝’이죠.(웃음)
<LUXMEN>이 한국중견기업연합회와 공동기획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중견기업인과의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최근 중견기업은 사회·경제적 역할이 부각되며 일자리 창출과 사회 양극화 해소를 위한 핵심 주체로 새롭게 떠올랐습니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중견기업을 결집, 현장감 있는 목소리를 대변하고 경제 한류를 주도하는 글로벌 전문기업으로 견인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LUXMEN>이 한국의 중견기업을 응원합니다. [안재형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8호 (2015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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