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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 | “글로벌 협동조합금융그룹 도약 디딤돌 놓겠다” 현지은행 지분투자·인수로 현지시장 파고들 것
입력 : 2015.06.05 14: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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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의, 농민에 의한, 농민을 위한’ 금융그룹인 농협금융지주가 글로벌 금융그룹이 되겠다고? 분명 어려운 과제지만 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이라면 도전해볼 만한 시나리오다.
김용환 신임 회장은 지난 2011년부터 3년 동안 수출입은행장으로 일하면서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업무를 도맡았다. 관료 시절부터 국제 금융통으로 잘 알려진 김 회장이 보기에 농협금융의 100% 대주주인 농협중앙회는 해외 진출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줄 훌륭한 동반자다. 농협금융은 국내 금융지주사 중에서 유일하게 100% 민족 자본으로 이뤄졌다. 농협경제, 축산경제, 상호금융이 든든하게 뒤를 받치고 있는 것이다.
김 회장은 “경제 지주와 같은 범농협 인프라를 갖춘 농협금융에게 해외 시장은 아주 큰 기회”라고 강조했다. 농협금융의 강점을 해외 시장에서 충분히 활용하겠다는 생각이다.
일례로 농협중앙회 축산경제는 지난해 말 중국 신시왕 그룹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농협이 생산하는 ‘목우촌 우유’ 브랜드를 중국에 수출하기로 했다. 이에 대한 금융 자문과 지원은 당연히 농협금융이 도맡게 된다.
이 밖에도 농협중앙회의 유통 경제 부문이 금융 부문과 동반 진출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김 회장은 “동남아뿐 아니라 아프리카, 중동에 범농협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프로젝트 기회를 개척하겠다”며 “농협이 글로벌 협동조합 금융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디딤돌을 놓겠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농협금융은 다른 금융 지주회사에 비해 해외진출에 소극적이었다. 농협은행의 해외 점포는 미국 뉴욕지점 하나뿐이며, 중국 베이징과 베트남 하노이 두 곳에 사무소가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한계는 김용환 회장에게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 오히려 점포 몇 개를 더 늘려봤자 국내 교포들 상대로 장사한다면 수익성 향상에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강조했다.
김용환 회장은 “해외 점포 숫자를 늘리는 것은 수익성에 별 도움이 안 된다”며 “쓸 만한 현지 은행에 지분 투자하거나 인수해 진짜 현지 영업을 해야 제대로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법인 인수나 지분투자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해외 진출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농협금융 도약 책임질 관료 출신 CEO 김 회장이 농협금융지주 회장으로 선임되기까지 과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임종룡 전임 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지난 3월 금융위원장에 갑작스럽게 발탁되면서 회장 자리가 공석이 됐다. 임 전 회장이 우리투자증권 인수를 비롯해 굵직한 성과를 내고 좋은 평가를 받은 터라 후임 인선을 두고 농협금융 내부의 고민이 깊어졌다.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이 직접 “임종룡 전 회장만큼 뛰어난 사람을 구하라”고 특명을 내리기도 했다. 농협 내부 출신보다 외부의 유능한 관료 출신에 무게 중심이 쏠렸다. 하지만 공무원들은 퇴임 후 2~3년간 유관기업 취업을 제한한 공직자윤리법 때문에 마땅한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수출입은행을 나온 지 2년이 안된 김용환 회장도 공직자 윤리위원회 취업 심사 대상이었다. 때마침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로 ‘성완종 게이트’ 파문이 커졌다. 수출입은행을 포함한 금융권이 경남기업에 특혜 지원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접촉한 금융업계 인사 리스트에 김 회장 이름이 언급됐다. 공직자 윤리위원회 심사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할 요소였다.
하지만 김 회장은 세간의 부정적인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당당한 입장이었다. 민감한 사안에 오히려 정면 돌파하며 스스럼없이 기자들과 주변 인사들에게 항변했다. 경남기업에 대한 수출입은행의 5000억원이 넘는 대규모 대출 건은 특혜성이 전혀 없었다는 설명이다.
김 회장은 “수출입은행 채권 대부분은 대출이 아닌 이행 보증으로 해외 건설에 적정 규모로 제공하고 공사 진행상황에 따라 한도가 줄었다 내렸다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같은 채권이 전부 손실이 나는 일은 경남기업 공사가 중단되는 최악의 경우에 벌어지는 일로 아직 베트남 랜드마크 빌딩 매각 등 사업이 진행 중인 만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성 전 회장을 만난 것을 인정하면서도 특혜 의혹은 전면 부인했다.
김 회장은 “성완종 전 회장은 당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으로 만난 것일 뿐, 대출 관련 얘기는 전혀 안 했다”고 선을 그었다.
김용환 농협금융회장(오른쪽)과 장대환 매경미디어그룹 회장(오른쪽에서 네번째)이 매경 머니쇼 농협금융 부스에서 농협의 모델인 류현진 선수의 다저스 유니폼을 들고 있다.
출범한 지 올해 3주년을 맞은 농협금융지주는 외형상 총자산은 올해 1분기 기준 389조원 규모로 국내 3위권에 해당된다. 덩치는 커졌지만 갈 길은 아직 멀다. 당기 순이익은 국내 금융지주사 중 꼴찌 수준이기 때문이다.
김 회장도 수차례에 걸쳐 수익성 제고가 최우선 목표라고 강조했다. 그는 “저금리 추세가 강화되면서 은행마다 순이자마진(NIM)이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는 등 위기를 겪고 있다”며 “저금리 극복을 위한 수익성 강화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자회사 간 시너지 창출에 신경 쓸 생각이다. 김 회장은 “범농협카드 활성화, 복합점포 확대, 대표 투자상품 올셋 안착 등 3대 시너지 사업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김 회장은 자회사 간 시너지 창출에 전력을 다할 생각이다. 최근 자회사 보고를 받으면서 김 회장은 자회사 CEO들에게 “뭐든 필요한 것을 추진하라. 내가 다 조정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고 한다. 그는 “농협금융이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지주는 전략적 방향을 제시하고, 시너지 컨트롤 타워로의 역할 수행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보험, 증권 등 금융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업무 현안 파악과 추진이 빠르게 진행된다는 전언이다.
농협금융지주 자회사 중에서도 특히 NH투자증권과 NH자산운용의 수익성을 높이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김 회장은 “퇴직연금 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자산운용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라며 “높은 수익률로 기업 고객들을 적극 유치하겠다”고 말했다.
은행의 건전성을 높이는 데도 특별히 신경 쓸 방침이다. 김 회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구조조정 전문가다. 그는 내년까지 기업 경기가 안 좋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 회장은 “기업 여신의 내실을 다져야 할 때”라며 “기업에 유동성이 부족한지, 사업의 기본이 부족한 건지 정확히 따져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농협은행은 주채권은행은 아니지만 조선, 해운, 건설과 같은 부실업종 기업에 상당한 양의 여신이 물려 있다. 기업여신 체계를 꼼꼼히 점검해볼 생각이다.
농협중앙회와 협력 강화 농협중앙회와의 협력도 강조했다.
김 회장은 “중앙회와 농협경제가 서로 협력해서 할 수 있는 사업을 발굴하겠다”며 “광범위한 농협의 인프라를 적극 이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외부의 부당한 경영 간섭에는 단호히 대처하되, 중요한 의사결정은 대주주인 중앙회와 긴밀한 협의를 통해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 가겠다”고 덧붙였다. 노조에서도 김 회장이 농협금융과 농협중앙회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했다.
김 회장은 농협금융의 경쟁력을 키우려면 조직 역량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농협금융의 운영체계 전반에 대해 명확하고 투명한 프로세스를 확립시켜 조직의 역량을 끌어 올려야 한다”며 “효율성과 전문성을 겸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일을 중심으로 평가하고 보상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효율성 높은 조직을 지향하겠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형식과 관행에 얽매이지 않고 일을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성과 보상시스템을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
관료 시절 금융계의 굵직한 현안을 해결해 대내외적으로 업무 추진력을 인정받았다.
감독정책2국장과 증선위 상임위원 시절에 국내 최초로 생명보험사 상장 문제를 처리했다. 또 금감원 수석부원장을 맡으면서 선제적 기업구조조정을 직접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공보관으로 활동하면서 홍보 감각을 익혔으며 대내외적으로 인맥도 넓다.
2011년 2월부터 3년간 수출입은행장 역임 당시에는 해외PF에 대한 자문을 담당하는 금융자문부를 설립해 많은 수출기업의 해외진출 길을 열어줬다. 수출입은행 자본금을 8조원에서 15조원으로 확대하는 데 성공해 수출금융의 역량을 키우기도 했다.
금융권에서는 경제 전반에 대한 식견이 넓고 업무 감각이 뛰어난 김 회장이 농협금융에 취임해 많은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평소 업무 처리할 때 배려와 친화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 조직 내부에서도 두터운 신망을 얻고 있다.
[배미정 매일경제 금융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7호(2015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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