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병오 패션그룹 형지 회장 | “겸손, 배려, 도전, 그 중 성공의 첫 덕목은 겸손입니다”

    입력 : 2015.06.05 14: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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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색 싱글 차림에 활짝 웃는 표정이 썩 잘 어울렸다. 테라스 정원에서 불어온 바람이 사무실을 한 바퀴 휘돌아 나가자 한바탕 이어진 웃음소리의 색이 짙어졌다. 패션그룹 형지의 최병오 회장을 만났다. 부산 국제시장의 자그마한 페인트 가게 점원으로 시작해 빵집사장, 동대문 옷가게 사장을 거쳐 패션그룹 형지(7개 계열사, 16개 브랜드)를 일으킨 최 회장은 최근 4년간 국내 패션업계에서 무서운 기세로 영토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남성복 전문기업 우성I&C, 패션몰 바우하우스, 여성복 캐리스노트, 학생복 에리트베이직, 여성 아웃도어 와이드로즈, 골프웨어 까스텔바쟉, 이탈리아 라이선스 스테파넬, 베트남 C&M 공장 등이 그 주인공. 최근엔 계열사 에리트베이직을 통해 에스콰이어 브랜드로 유명한 EFC와 인수 계약을 하며 다시 한 번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인수 절차가 마무리되면 형지는 의류에서 구두, 핸드백 등 패션잡화까지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종합 패션기업으로 도약하게 된다. 과연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최 회장은 “기회는 준비된 이에게 오는 운”이라며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브랜드 가치가 떨어져 잡은 기회, EFC 오늘 오전부터 마라톤회의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월초에 해야 하는 조회를 오늘 했습니다. 대통령 해외순방에 동행하고선 일정이 바빴거든요. 손익 회의가 바로 이어져서 할 말이 많았어요. 책상도 좀 치고 그랬습니다.

    직원들에게 싫은 소리도 하십니까. 아이구, 말도 못하죠. 잘한 일은 박수 쳐 주고 못했을 땐 막 쏴붙입니다.(웃음)

    최근 EFC와의 인수·합병이 화제였습니다. 에스콰이어는 제가 동대문에서 장사하면서 전철 타고 성수동을 지날 때마다 봤던 빌딩이었어요. 당시에는 그 동네 랜드마크였는데, 얼마전에 가서 봤더니 아주 초라하더군요. 그때는 구둣방 하는 사람이 저런 건물을 짓다니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난 언제 저런 건물 지어보나 했습니다. 그런 회사가 법정관리를 받는다고 해서 제겐 기회다 싶었지요. 행운도 따랐어요. 운이란 게 참 중요합니다.

    예전부터 동경하던 브랜드였나 봅니다.

    에스콰이어는 무려 54년이나 된 브랜드예요. 제가 브랜드를 참 좋아합니다.(웃음) 세계적인 브랜드는 키우지 못했지만 20년 가까이 남성복과 여성복 브랜드를 잘 관리해 왔잖아요. 30년 전에 동대문에서도 꼭 브랜드를 키우겠다고 다짐했었는데, 그건 어린 시절부터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체험에서 얻게 된 결론이었어요. 가령 19살에 부산에서 페인트 장사를 할 땐 독수리표, 학표, 제비표, 서울의 노루표, 별표가 유명했어요. 물론 사제 브랜드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제는 영업하기도 힘들고 담보도 필요했지요. 그런 경험 덕분에 브랜드의 중요성을 실감했습니다.

    EFC의 인수 절차가 마무리되면 패션그룹 형지는 제화와 잡화 브랜드까지 보유한 종합 패션 유통기업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사업의 다각화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제화와 패션은 불가분의 관계지요. 지금은 해외 수출에 나서고 있지만 국내 사업은 한두 가지 아이템만으론 매출이 커질 수가 없습니다. 결국은 라인을 확장할 수밖에 없어요. 여성복, 남성복, 골프웨어, 아웃도어 여기에 자연스럽게 제화도 포함되면서 유통업과 연결되겠지요.

    일각에선 에스콰이어의 브랜드 가치가 많이 떨어진 상황에서 앞으로 투자 비용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있습니다. 브랜드가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에 제게 기회가 온 겁니다. 안 그랬다면 경쟁이 어마어마하게 치열했겠지요. 또, 제대로 브랜드를 살려놔야 최병오가 정말 잘하는구나 할 것 아닙니까. 전 자신 있습니다. 더 이상 내려갈 데도 없잖아요.(웃음) 물론, 그것 때문에 회사의 리스크가 높아질 순 있겠지요. 그래서 더 철저하게 꼼꼼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전략이 궁금한데요. 현재의 우리 회사는 에스콰이어를 키울 수 있는 역량이 됩니다. 사실 과거에는 그러질 못했어요. 지금은 인재가 많습니다. 우선 CFO(강수호 전무)가 EFC의 대표이사로 갈 예정입니다. 영업도 해보고 지방본부장도 해본, 경험이 많은 분이죠. 물론 숫자에도 밝습니다. 잘될 겁니다. 1600~1700개의 대리점을 활용하면 굉장한 대박감이라고 전 믿습니다. 게다가 브랜드가 아직 100% 사그라들지 않았어요. 100점 기준에서 65점은 됩니다. 역사가 54년이나 된 메이저 회사예요.

    꼭 하고 싶은 핸드백, 시몬느와 함께하고 싶다 그럼 대리점 영업이 주가 되는 건가요. 노우~. 에스콰이어는 무조건 백화점에서 가장 고급으로 진행할 겁니다. 핸드백 브랜드인 소노비는 꼭 하고 싶었던 분야인데, 그래서 세계적인 ODM 회사에 부탁하려고 합니다.

    혹시 시몬느를 염두에 두신 건지요. 시몬느의 박은관 회장님과는 같이 강연하면서 알게 됐는데, 내일 아침에도 함께 강연에 나설 겁니다. 그런 인연으로 시몬느에 견학을 갔는데 그때 ‘아, 이 집에 부탁해야겠구나’ 했어요. 사실 기존 브랜드로 한 번 부탁을 드렸더니 거절하시더군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겠습니까.(웃음)

    기업 인수의 기준은 회사의 장래 2012년 이후 패션그룹 형지의 굵직한 인수합병이 이어졌습니다. 대기업이라면 모를까 저처럼 중견 기업으로 막 올라선… 그럼에도 공격적으로 나선 건 제가 봐도 기록적입니다. 한편으로 뿌듯하기도 하고 또 굉장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기업을 인수할 때 기준이 있습니까.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회사의 장래성을 봅니다. 고로 브랜드지요. 여성 아웃도어 와일드로즈를 인수한 것도 그 브랜드가 세계 최초 여성 아웃도어였기 때문이에요. 캐리스노트는 백화점 매장이 탄탄했습니다. 우성I&C는 무척 사랑한 회사지요. 예작이란 셔츠가 매우 좋았습니다. 학생복 에리트베이직은 말할 것도 없어요. 인수를 하고선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어느 브랜드 하나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2012년 우성I&C를 인수할 땐 코스닥 상장 기업이었기 때문에 그룹의 상장을 점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혹시 상장 계획이 있으신지요. 형지의 상장이요? 안 합니다. 하지만 회사의 미래를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오늘 아침 조회에서도 직원들에게 말했는데, 내가 언제 침몰할지 모르니 여러분이 도와줘야 한다고, 그래서 좋은 기업으로 거듭나자고 했습니다. 4개월 전엔 조회 때 사장이 그러더군요. 3년 후에 패션회사 삼성처럼 만들어보겠다고. 그때 그 말이 매우 기뻐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만들어 달라고 신신당부하고 있습니다.

    미래는 확신할 수 없지만 목표는 확실해 보입니다. 목표는 늘 크게 잡습니다. 하지만 절대 무리하지 않지요. 해서도 안 되고요. 저를 아끼는 주변 분들도 천천히 내실을 기하라고 조언하곤 합니다. 그래서 회사 앞에 크게 내실을 기하자고 써 붙였습니다. 아침 조회 때 단상에서 우리 직원들을 바라보면 눈빛이 초롱초롱해요. 아, 우리 회사가 잘되겠구나 생각하지요. 오랫동안 사업을 하면 그걸 느낄 수가 있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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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형지는 눈에 띄게 성장할 겁니다 짧은 기간 인수합병을 통한 영역 확장에 그룹의 성장통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습니다. 성장통은 이미 한 번 겪었습니다. 과거에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땐 그런 기억이 전혀 없다고 했어요. 매년 성장을 해왔으니 그럴 겨를이 없었지요. 그런데 브랜드가 많으니 한순간 누수가 생기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게 많아지더군요. 그게 성장통이지 뭐겠습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현재의 시스템으로 회사가 두서너 배 커질 때까지 제대로 성장할 거라고 자신합니다.

    올해 목표가 궁금합니다. 올 매출 목표는 약 1조2000억원으로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를 잘 견뎌야 해요. 그러면 내년에는 눈에 띄게 성장할 겁니다. 굉장할 거예요.(웃음) 그동안 잠재됐던 프로젝트들이 많습니다. 우선 부산에 새로운 유통 채널을 준공할 예정이고, 까스텔바작이 안정될 겁니다. 분위기가 매우 좋아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중국 시장도 자신 있습니다. 올해 우성I&C가 중국 내 백화점 30여 개에 매장을 낼 텐데, 그 이상은 절대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한순간에 탁 펼치자고. 한 300개까지 생각하고 있는데, 그 시기가 내년 쯤 될 겁니다.

    사업적인 측면도 그렇지만, 대통령 해외순방에 경제사절단으로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것도 화제인데요. 처음 대통령을 모시고 미국(2013년 5월)과 중국(2013년 6월)에 갔을 땐 정말 기뻤습니다. 열심히 살았더니 이런 기회가 오는구나 싶었어요. 미국에선 대통령 앞에서 제 사업 역정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그런 행운이 없었어요. 저한테 돌아올 순서가 아니었는데, 패션 업계에서야 얼굴이 알려졌다지만 함께 간 기라성 같은 기업인들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기업인 아니겠습니까.

    당시 직접 손을 들어 질문할 기회를 얻었다고 들었습니다. 기회는 스스로 만들어야죠. 포럼 현장이었는데, 만약 사회자가 “질문할 분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내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준비한 게 있었어요.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고 들었는데 마침 그날 질문할 분 없냐고 묻는 거예요. 제가 나섰습니다. 그리곤 마음속에 준비했던 제 인생 역정을 얘기했습니다. 40여 년 전 사업을 시작해 20여 년 전 부도가 났고 열심히 노력해서 중견 기업가로 이 자리에 왔다. 대기업에 비하면 보잘것없지만 공채 1, 2기를 거쳐 3기를 뽑을 땐 경쟁률이 200 대 1이나 됐다. 중견 기업가로서 큰 책임을 느끼고 있다고. 대통령께서 포럼회장을 나서다 제게만 악수를 청하더군요. 그때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제게 다가와 손을 잡고 사업 잘하시라고 격려했습니다.

    이전에 대통령과 인연이 있었던 겁니까. 미국 순방 가기 열흘 전에 청와대에서 뵌 적이 있지요. 그전에는 단 한 번도 뵌 적이 없었습니다. 아마 최근 2~3년간 대통령 얼굴을 저보다 많이 본 기업인은 한 분도 없을 겁니다.(웃음)

    해외순방 경제사절단은 놓칠 수 없는 소중한 기회 그렇더라도 지속적인 경제사절단 참여에 비결이 있어 보입니다. 아니에요. 제가 가고 싶어서 계속 신청하고 있습니다. 다녀오면 함께 간 기업인들에게 좋은 정보를 얻거든요. 그곳에 가니 잠시 기다리는 순간에도 서로 좋은 정보들을 주고받더라고요. 전 그게 무척 소중했습니다. EFC를 인수할 때도 그 자리에서 법정관리 기업의 M&A에 대한 노하우를 얻을 수 있었어요. 사실 무언의 양보도 있었습니다.

    앞서 중견 기업인으로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책임인지요. 중견 기업이 나라의 허리 아닙니까. 잘돼야죠. 또 하나는, 주변의 소상공인들께서 최병오처럼 돼보겠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동대문시장, 주얼리 잡화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분들도 나도 한 번 최병오처럼 돼보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 망하면 안 됩니다.(웃음)

    직원들에게 늘 강조하는 덕목이 있다면. 오늘도 그 말을 했는데, 좋은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늘 강조합니다. 건강도 마찬가지지만 젊었을 때의 습관이 평생을 좌우하거든요. 잘된 기업을 살펴보니 교육 시스템이 잘돼 있어요. 그래서 서울 개포동에 형지비전센터라고 숙박형 연수원을 마련했습니다. 전 좋은 강연이 있으면 만사 제치고 달려갑니다. 시간이 없을 땐 녹음해 오라고 해서 차에서 듣습니다. 매일 듣습니다. 저희 연수원에서도 매일 직원들과 신규 대리점 사장님들을 대상으로 강연이 이어지고 있어요.

    직접 강연도 많이 하신다고 알고있습니다. 너무 많이 한다고 타박 듣기도 하지요.(웃음) 그래도 원하는 곳에 가서 제 노하우를 알려주고 싶습니다. 제가 골프를 치는 것도 아니고 술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닌데, 그 시간에 강연하는 게 뭐 어떻습니까. 1년에 30여 번 강연에 나섭니다.

    우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과연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까. 글쎄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첫째, 겸손해야 합니다. 둘째, 남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셋째, 도전해야죠. 그 중에서 하나만 선택한다면 겸손입니다. 전 그런 면에 욕심이 좀 있습니다.

    [안재형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7호(2015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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