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 스마트 시대, 당신이 실천해야 할 세 가지 일상
입력 : 2015.05.08 14:29:45
-
신세계그룹의 인문학 중흥사업인 ‘2015 지식향연’ 프로젝트의 첫 번째 강연자로 정용진 부회장이 무대에 올랐다. 정 부회장은 스마트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위기 극복과 행복한 대한민국의 꿈을 이루기 위한 방안을 제언했다. 강연 내내 객석을 가득 메운 대학생들의 이목이 단 한곳에 집중됐다.
사고력 퇴화와 비판적 사고 결여가 스마트 시대 위기 무대에 오르기 전에 일찍 도착해서 교정을 둘러봤는데 확실히 사무실과는 공기가 다르더군요. 마치 신입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아이고, 그건 너무했나요? 복학생으로 하죠.(웃음)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제가 학교에 다닐 때와는 달리 많이 힘들어 보입니다. 그래서 이 지식향연이 정신없이 바쁜 대학생들이 일상을 되돌아보는 휴식시간이 되길 바라고 있어요. 자 그럼 얘기를 시작해 볼까요?
‘지식향연’은 지난해 첫 테이프를 끊었는데요. 지난해에만 10개 대학에서 1만명의 청년들과 만났습니다. 그리고 인문학 캠프를 열었는데, 이때 만난 한 대학생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학생 말이 요즘 학교에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얘기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인문학 캠프에 와 보니 이상한 사람들만 모여 있었다고. 삶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논의하고 글로 정의해 보기도 하는 과정 속에서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 고민했다더군요. 이 얘기를 듣는데, 기분이 참 좋았어요.
여러분, 우린 지금 어떤 시대를 살고 있을까요. 정보화 시대? 경제 불황의 시대? 저는 스마트폰의 시대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요즘 시대에 가장 두려운 게 뭘까요? 스마트폰 배터리가 나가는 것이죠.(웃음) 전 그야말로 패닉 상태가 됩니다. 농담 같이 한 말이지만 생각해 보자고요. 예전엔 약속할 때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자’고 했는데 요즘은 일단 뭉뚱그려서 정한 뒤 나중에 통화합니다. 강남역에서 만나자고 하고선 일단 강남역으로 가요. 그런데 가던 중에 배터리가 떨어진다면? 게다가 그게 애인과의 첫 데이트라면? 이보다 난감할 수 없겠죠. 그만큼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각종 스마트기기가 우리 생활에 일부가 됐어요. 예전보다 불가능했던 게 가능해졌지만 과연 여기에 긍정적인 면만 있을까요.
디지털 치매, 일종의 빨간 경고등 이 시간에는 축복이자 재앙이 될 수도 있는 스마트폰 시대에 대해 얘기하려고 합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가 한 유명한 말이 있지요. “나는 사고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존재 가치라고 말하죠. 하지만 요즘은 인간의 사고 능력이 갈수록 퇴화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만든 스마트폰 때문인데요. 지난해 국립국어원에 의미심장한 단어가 등장했는데, 바로 ‘디지털 치매증후군’이에요. 디지털기기에 지나치게 의존해서 기억력이나 사고력이 감퇴되는 것이죠. 여기서 한 연인의 문자메시지 대화를 볼까요.
A : 제가 오늘 휴대폰이 초기화됐습니다. 죄송하지만 누구시죠?
B : 헐, 당신 여자친구요.
A : 헐, 대박.
지금 외우고 있는 전화번호가 몇 개 정도 되세요? 저도 피처폰을 쓸 때만 해도 70~80개는 늘 외우고 다녔는데 요즘에는 제 전화번호도 가끔 기억이 안 납니다. 집 전화번호도 모르죠. 알 필요가 없잖아요. 그런데 신기하게 20년 전에 살던 집 전화번호, 처음 썼던 휴대전화 번호는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걸 보면 나이가 들어서 기억력이 약해진 건 아니에요. 사람은 시간에 따라 기억력이 진화하기도 퇴화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억력이 쇠퇴하는 게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하는 힘은 기억이라고 부르는 정보의 집합에서 나오거든요. 따라서 기억이 퇴화됐다는 건 생각하는 힘도 떨어졌다는 의미죠. 더욱 안타까운 건 여러분이 디지털 치매증후군에 가장 취약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건 떨어져 나간 기억들이 우리에게 보내는 ‘빨간 경고등’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결정장애’란 말도 들어봤을 텐데, 올리버 예게스가 오늘날의 20~30대를 분석하며 발표한 표현이에요. 우리는 매일 선택을 하죠. 또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지만 요즈음 선택의 순간이 주어졌을 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사람이 눈에 띕니다. ‘No Thinking Just Asking’. 인생의 중요한 문제들까지 검색하고 인터넷에 묻고 있어요. 요즘 배달앱이 많은데 일부 배달앱에 ‘아무거나’라는 버튼이 있습니다. 그날 가장 잘 팔리고 인기 있는 메뉴가 배달되는 건데, 의외로 인기가 많다고 해요.
하지만 여러 이슈를 보는 우리의 사고는 고장 난 것 같아요. 문제의 원인과 본질을 말하기보다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해관계만을 주장하느라 평행선을 이루는 경우가 많아요. 또 논리 없이 단편적인 사실만 나열한 경우도 많습니다. 통계자료마저 한 가지 주장을 위해 아전인수 격으로 활용됩니다. 스마트폰으로 보는 것에만 익숙해지면 사고력이 떨어집니다. 문제는 스마트폰 역시 편파적인 자료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면서 사고하지 않는 선택을 강요한다는 것이죠. 이렇게 읽는 게 아닌 보는 데 익숙해진 사람은 특정 집단과 개인의 목소리에 비판적 사고 없이 동조하게 됩니다. 스마트폰 시대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것은 기술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아니에요. 다만 우리의 한계를 극복하도록 돕는 이 시대의 축복을 제대로 누려보고자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생각의 근육을 단련해야 합니다. 생각의 근육을 키우기 위한 세 가지 방법을 제안해 보겠습니다.
첫째, 인문학적 지혜가 담긴 글을 읽자 스마트폰을 통한 단편적인 정보는 이미지예요. 눈으로만 보는 정보는 휘발성이 강하죠. 이미지로만 남을 뿐 지식 체계로 편입되지 않아요. 눈이 아닌 집중된 머리로, 또 뜨거운 가슴으로 독서하시길 강력히 권합니다. 책을 읽는다는 건 단순히 단어와 문장을 해독하는 것 외에 문장에 숨어 있는 맥락을 찾고 지식 체계를 살펴봐야 합니다. 그러면 이 지식 체계는 내 지식으로 재구성되죠.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의 뇌가 단련됩니다. 그러면서 생각하는 힘이 발달하는데, 그게 바로 생각의 근육입니다.
만약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막막하다면 역사책을 읽으세요. 역사책 속에는 문학과 철학이 공존합니다. 역사적 인물들의 삶은 문학적이고 드라마틱한 서사로 가득하죠. 역사에는 그 시대를 지배하던 철학이 있고 무엇보다 역사의식을 가질 수 있어요.
최근 관심 있게 본 역사책을 소개하면 우선 <병자호란>이란 책인데,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사대부들로 인해 참혹한 전쟁을 치러야 했던 이야기예요. 당시 조선 사대부들은 실속 없는 대의명분 때문에 현실적으로 절대 불리한 전쟁을 택했죠. 하지만 대비는 전혀 하지 않았고, 그 대가는 정말 참혹했습니다. 보면서 눈물이 날 정도였어요. 쓸데없는 명분으로 전쟁을 주장하는 가운데 홀로 맞선 이가 이조판서 최명길입니다. 당시 그에 대한 사대부들의 평가는 냉정했는데, 오늘날의 역사는 그를 조선의 몰락을 막고 회복시키는 데 기여한 큰 인물로 평가하고 있어요. 병자호란이라는 역사적 사건 안에는 조선 사대부들이 인지하지 못했던 당대의 동북아 흐름이 살아 숨 쉬고 있고 최명길의 지혜가 녹아들어 있습니다. 또 하나 <설수외사>가 있습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중 북학파의 한 사람인 이희경이 국가를 윤택하게 하기 위해선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배우자는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수레, 선박, 농기구 등 생활수준 향상을 위한 선진 문물을 소개하고 조선시대의 개혁을 피력한 책인데, 혹여 대의명분에 사로잡혀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는 없는지 돌아볼 수 있는 내용이 그득합니다. 둘째, 많이 생각하고 글을 써보자 두 번째 조언은 글을 한 번 써보라는 것입니다.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인문학 사고의 과정이기도 하죠. 하버드 대학에선 신입생들에게 혹독한 글쓰기 훈련을 필수로 이수하게 합니다. 이 프로그램에서 인상적인 점은 교수가 문장뿐 아니라 사고를 확장시켜 다시 고치게 한다는 것이에요. 이를 통해 학생은 자신의 관점을 한 번 더 성찰하고 타인의 의견을 비판적으로 사고하게 됩니다. 스스로의 논리를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것이죠. 여기에서 중요한 건 많은 글을 쓰라는 게 아니라 많은 사고를 한다는 점이에요. 인터넷에 쓰는 글이라도 한 번 더 생각하고 다듬어 쓰는 게 중요합니다. 글 쓰는 게 어렵다면 우선 편지부터 도전하세요. 이메일이 아닌 손 편지를 의미하는데, 저는 가끔 씁니다. 편지를 통해 우리는 누군가와 감정을 공유하죠. 그만큼 생각을 다듬어 쓰는 게 바로 편지예요.
셋째, 토론하는 연습을 하자 마지막으로 토론하는 연습을 하세요. 안타깝게도 우리는 토론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토론은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사고력 훈련이죠. 말을 하면서 우리의 사고도 정교해집니다. 말을 듣는 동안 우리의 논리는 더 풍성해지죠. 토론을 통해 상대의 입장을 들으려는 태도 또한 중요합니다. 해마다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CEO와 함께하는 공감’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내용을 주의 깊게 듣다 보면 상대 입장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고 자신의 의견을 잘 설명하는 말에는 저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토론은 혼자 하는 게 아니에요. 상대의 의견을 존중할 때 제대로 된 토론이 이뤄진다는 걸 꼭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세 가지를 되짚어 볼까요.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훈련을 키워나가자. 그거죠. 인문학이 조금은 낯설고 어렵겠지만, 결국 삶에 대한 지식과 지혜를 누군가와 교감하고 공유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신세계그룹의 두 번째 지식향연이 막을 열었는데요. 올해 전국 10개 대학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이 인문학 중흥을 위한 시도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값진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안재형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6호(2015년 05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