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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 새로운 희망 조코위 인도네시아의 변신을 기획한다
입력 : 2015.01.08 15: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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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0일 ‘새로운 희망(A New Hope)’, 인도네시아 첫 문민대통령 조코 위도도(조코위)가 취임했다. 미국 타임스는 그를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이 같은 제목을 달았다. 조코위는 문자 그대로 새로운 희망이다. 세계 최대 이슬람 인구 국가이자 세계 10번째 경제 대국인 인도네시아에서 첫 직선제 정권교체를 이뤄냈다는 점이 그렇다. 그는 인도네시아 정권을 장악해온 군부 출신도, 기성 정치인도 아니다. 평범한 가정서 태어나 가구상을 하며 자수성가한 조코위가 10년이 채 못 되는 짧은 정치 생활 뒤에 2억5000만명의 대통령이 된 성공스토리는 세상을 열광시켰다.
한때 조코위가 불참할 거란 소문도 돌았다. 애간장을 태운 끝에 지난 12월 11일 오후 4시 45분, 부산 해운대 그랜드 호텔에서 마침내 그와 만났다. 첫인상은 ‘오바마와 정말 닮았다!’였다. 인도네시아의 오바마라는 별명처럼 생김새부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비슷했다. 훤칠한 키, 까무잡잡하고 갸름한 얼굴, 마른 몸매. 악수를 청할 때 짓는 미소도 꼭 오바마 같았다. 더 놀랐던 건 그가 인터뷰 중간중간, 참모진들이 발언하는 걸 즐겼다는 점이다. 참여와 소통이 이뤄지는 ‘팀(team)조코위’ 내각을 단적으로 보여준 모습이었다. 같이 방한한 딸에게 한국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의 CD 선물을 전달하려 했을 때, 참모진들은 앉아 있고 조코위가 벌떡 일어나 딸을 데리러 갔다. 소탈한 보스(boss)이자 천상 ‘딸 바보’ 아빠였다.
조코위는 흔히 친(親)기업과 친(親)서민 이미지로 정의된다. 얼핏 보면 두 가치는 모순되는 듯 하지만 조코위의 그랜드 플랜에는 두 마리 토끼가 모두 있었다. 조코위의 정책을 들여다보면 우리 경제인, 정치인, 기업가들에게도 적잖은 시사점이 있다.
친기업 경제 대통령… 해양개발정책, 인프라, IT투자 나설 것 조코위 정부는 2016년까지 경제성장률을 5%에서 7%로 올리고 물류비용을 5년 안에 20% 줄이겠다는 국가계획을 발표했다. 이런 개혁을 진행하려면 적어도 5500억달러(약 615조원)의 투자가 필요할 전망이다. 경제성장을 위해 그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일까.
조코위 대통령은 매일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인프라 건설이 제1경제 목표”라고 천명했다. 낙후된 인프라스트럭처를 개선하지 않고선 경제가 성장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특히나 수천 개의 섬으로 이뤄진 인도네시아는 물리적으로 서로 연결하는 것이 필수다. 도로망 등이 잘 구축돼야 사업하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는 “바다로 둘러싸인 인도네시아는 해양 정책이 핵심”이라며 인도네시아를 글로벌 해양 축(Global Maritime Axis)으로 만들어 물류비용을 줄이고 유통에 걸리는 시간을 절약하고 싶다고 했다. 향후 5년간 24개의 심해 항구를 인도네시아에 건설하는 일도 그중 하나다.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는 화물 하적 비용을 50%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조코위는 “내년엔 4개 항만을 건설할 예정이며 항만 한 곳을 건설하는데 약 58억원이 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인도네시아의 해양 축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한국 기업이 많이 참여해주기를 요청했다. 항만 근처에 발전소를 세우고 인접 산업단지도 개발할 계획이어서 한국 기업의 사업 기회는 열려 있다. 조코위 대통령은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인프라 개발에 외국기업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한국이 교통망 건설, 항구 조성 등 인프라 기술이 매우 발달했다는 점을 들면서 한국 기업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등이 수혜를 볼 수 있을 만한 기업이다.
해외 자본을 유치하자면 투자 절차 간소화는 필수다. 이를 위해 조코위 대통령은 원스톱(one stop) 국가사무소를 올해 1월 중 열겠다고 공언했다. 원스톱 국가 사무소가 생기면 몇 주씩 걸리던 허가 기간도 단축될 전망이다. 이는 조코위가 가구 수출을 할 때 몸소 고충을 겪으며 우러나온 시책이다. 조코위는 각 부처 장관들에게는 신규 투자자를 위한 세금 우대정책을 새로 연구해줄 것을 요청했다. 왜 인도네시아에 투자해야 하는지, 그 이유와 인센티브를 확실히 알려줘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현재 철광석 등 원자재가 전체 수출의 절반인 인도네시아 경제를 다변화해 고부가가치 산업을 키우려는 게 조코위 표 경제 개혁이다.
그가 민생경제에 중요하다고 꼽은 분야는 농업, 수산업, 에너지, 교육, 헬스케어다. 그는 임기 내에 30개의 댐을 새로 짓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돼 관개가 용이해진다면 인도네시아는 3년 내로 상당량의 곡식을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인도네시아를 세계 최대 수산물 수출국가로 만들겠다는 목표도 갖고 있다. 그는 한국기업에 당부도 잊지 않았다. 특히 인도네시아 동부 지역에 사업 기회가 많다고 강조했다. 동부 자바는 인도네시아 제2의 도시 수라바야를 중심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현재 서부 자바는 진출한 기업이 많아 포화 상태인 데다 임금 상승 등 기업 할 여건이 악화되고 있어 상대적으로 여건이 나은 동부 자바로 눈을 돌리라는 권고였다.
IT에도 관심이 많은 조코위는 “인도네시아의 IT 인프라를 구축하고 개선해줄 한국 기업을 환영한다”고 전했다. 인도네시아 2억5000만명 중 약 70%는 인터넷 사용자이기 때문에 전자상거래 시장 잠재력이 크다는 것이다.
조코위는 중부 자바 솔로에서 목재 판매·가구 제조를 하던 부친(2000년 별세)과 자애로운 모친 사이에서 1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마음에 학용품을 사고 싶어 아버지의 작은 가구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한 그는 1985년 명문 가자마다대학교(UGM) 임학과를 졸업한 뒤 아버지를 따라 가구상을 했다. 자애롭고 강직한 성격의 어머니는 그가 솔로 시장 출마 당시 “돈을 위해서라면 출마하지 말라”며 출마를 만류하기도 했다. 조코위는 당시를 회상하며 “어머니를 존경한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상의할 수 있는 분”이라 했다. 평범하고 소박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조코위는 자연스럽게 서민의 삶을 체득했고 함께 사는 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의 할아버지는 30년간 중부 자바주 크라간 마을의 이장을 지냈다. 어쩌면 이런 배경이 조코위에게 행정가의 피를 흐르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
조코위의 친서민 정책은 파괴적 혁신에 가까운 정책으로 나타났다. 대통령 취임 한 달째 열린 전국 주지사 회의에서 그의 일성은 “각 부처의 외유성 출장에서 낭비되는 예산의 40%를 줄이라”는 지시였다. 그는 해당 예산 34억달러 중 절감한 13억달러는 사회간접자본 개발에 쓰겠다고 했다. 예산 절감 관련 규정은 대통령령으로 정하고 위반자는 엄중히 조치하겠다고도 했다. 본인도 예산 절감에 앞장섰다. 싱가포르에서 유학 중인 막내아들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코노미석을 탄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사적 용무라는 이유로 개인비용으로 계산한 건 물론이다. 그는 내각을 꾸릴 때도 34개의 장관직을 온라인상에 공개한 채 국민들의 의견을 웹상에서 받는 ‘파격’을 보여줬다. 그가 가는 곳마다 관료주의가 팽배했던 공무원 사회에는 긴장감과 일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솔로시 시장(2005~2012년)과 자카르타 주지사(2012~2014년) 시절부터 그의 개혁 행보는 유명했다. 1000여 개의 노점상이 밀집해 있는 솔로시 반자르사리 노점 이전 과정에선 시장 관저로 노점상들을 초대해 6개월간 50번 넘게 오찬 미팅을 가지면서 결국 노점상들의 동의를 받았다. 끈기가 거둔 열매였다. 전통시장도 살리면서 현대화에도 성공한 솔로시는 범죄가 만연하던 도시에서 변신해 세계문화유산 도시로 선정되는 영광을 얻었다. 2009년 그는 인도네시아 최고 시장으로 선정됐고 2010년 91%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자카르타 주지사 시절엔 홍수조절 보(洑) 등을 정상화했고 고질적인 교통체증 개선을 위해 버스 1000대를 증설하는 인프라 개선에도 나섰다.
여소야대, 유가보조금 감축… 남은 과제들 작은 기적을 쌓아 큰 기적을 일궈낸 조코위지만 그의 앞날은 결코 꽃길이 아니다. 오히려 가시밭길에 가깝다. 현재 인도네시아 의회는 대통령 선거에서 조코위에게 패배한 프라보워 수비안토를 지지한 정당이 전체 의석의 60%다. 전형적인 여소야대 상황에서 조코위를 견제하는 세력도 만만찮다. 취임 후에도 야권의 등쌀에 조코위가 기를 펴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또 하나의 복병은 유가 보조금 감축이다. 조코위 정부는 최근 보조금을 지급하는 석유제품 가격을 평균 33% 인상해 총 정부예산의 9%인 115억달러를 절감했다. 절감한 예산을 인프라 구축, 중소기업 육성, 농어업 진흥, 교육, 헬스케어 등에 쓰겠다며 국민들을 설득하고 나섰지만 자카르타에서는 수천 명의 근로자들이 연료 보조금 축소에 따른 연료값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전례를 비춰볼 때, 유가 보조금 감축안을 내놨던 역대 대통령들은 전부 역풍을 맞았다. 조코위가 과연 첫 번째 예외가 될 수 있을까.
[서유진 매일경제 국제부 기자 사진 김재훈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2호(2015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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