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은옥 퍼스트그룹 회장 | 국내 최초 여성 보디가드 한국의 ‘셜록홈즈’ 꿈꾼다

    입력 : 2014.12.05 16:2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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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권도 5단, 용무도 4단, 경호무술 4단에 주짓수 경력까지. UFC프로선수도 이만한 단수를 채우기란 쉽지 않다. 어둑한 밤길에 눈이라도 마주치면 본능적으로 고개가 떨궈지는 험상궂은 ‘덩치’는 더더욱 아니다. 그 많은 무술경력을 자랑하는 주인공은 세련된 커트머리에 170cm가 넘는 늘씬한 키에 모델이라 해도 손색없는 몸매를 자랑하며 해맑게 웃는 여성이었다.

    “오늘 11월 7일이 저희 회사 창립 11주년입니다. 수능 마치고 바로 경호업계에 뛰어들었으니 벌써 17년이나 됐네요. 그만큼 나이도 들어 슬퍼지네요.(웃음)”

    20대 중반의 나이에 국내 최초 여성 경호법인을 설립해 10년 넘게 운영하고 있는 퍼스트그룹의 고은옥 회장(37)은 첫인상부터 반전이었다. 새누리당 대표시절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고르바초프 전 러시아 대통령, 라이스 전 미국 국무장관 등 많은 정·재계 인사와 톱스타들의 신변보호를 담당한 경호원의 모습이라기보다 스마트한 커리어 우먼에 가까웠다. 그러나 지난 인생사와 창업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수록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던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아르바이트를 찾다가 경호를 시작하게 됐어요. 중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이 어려웠거든요. 딸만 셋인지라 집안에 남자도 없었는데 제가 어렸을 때부터 운동에 소질이 있다 보니 가장이라는 남모르는 책임감을 느낀 것 같아요.”

    어린 시절부터 운동신경이 뛰어났던 고 회장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학교 때까지 태권도 선수로 활동했다. 육상에도 소질을 보여 학교대표로 단거리 종목과 투창 종목에 출전하기도 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선배들의 취업 방향이 사범이나 교사로 한정되는 것을 보고 운동을 그만뒀다. 3년간 학업에 매진한 결과 명지대 경영학과에 진학했지만 가정형편은 여전히 녹록지 않았다.

    “어머님의 원칙이 세 딸에게 모두 첫 등록금만 내주시고 자력으로 학업을 마치게 하는 것이었어요. 편의점이나 커피전문점에서 일해서는 학비 마련이 힘들어서 적성에 맞춰 경호업계에 뛰어들었습니다.”

    고 회장은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일이 이내 천직이라는 걸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정식 취업을 하려 할 때마다 ‘여자라는 이유’로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오기가 발동한 고 회장은 25살이 되자 7년 동안 모아온 적금을 깬다.

    “꼭 하고 싶었던 일이었고 여성이 꼭 필요한 분야라고 생각해 직접 회사를 차리기로 마음먹었어요. 우선 제가 모아 놓은 돈과 당시 여성가족부에 수차례 찾아가 끈질기게 설득해 창업지원금을 받아냈습니다. 그래도 부족했어요. 별 수 없이 어머니와 언니 보증으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 필요한 1억원을 채웠어요. 갈 데가 없었어요. 절실한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화장실·탈의실에서도 밀착경호 업계에서는 반신반의했지만 최초의 여성전문 경호업체를 찾는 사람들은 늘어났다. 특히 여성 의뢰인의 경우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남자 경호원의 출입이 힘든 개인적인 공간에서도 밀착경호가 가능하다는 장점도 부각됐다. 같은 시기에 영화 <보디가드>가상영돼 흥행하며 신문이나 방송의 관심도도 높아졌다. 고 회장은 “유명한 경제인이나 톱스타의 경호를 맡으면서 신문이나 방송에 ‘정우성 보디가드’ ‘이정재 경호원’이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나간 후에 회사에 의뢰도 많이 늘어났어요. 2004년에는 홈쇼핑에 경호상품권을 판매했는데 2억원의 매출이 날 정도로 반응도 좋았습니다”라며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경호업이 대중화되면서 사업 반경은 점차 넓어졌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주부, 스토커 때문에 은둔생활을 하는 20대 여성, 학교에서 따돌림을 심하게 당하는 여학생, 상속권 분쟁으로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막내딸 등 최근 들어 퍼스트그룹을 찾는 의뢰인은 다양해졌다.

    “회사를 운영하며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주부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많이 놀랐어요. 습관적인 폭력에 시달리다 차마 무서워서 경찰에 신고하지는 못하고 저희 쪽에 전화를 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같은 여자로서 형편이 어려우신 경우 이혼소송이 끝날 때까지 도네이션 개념으로 도와드리기도 해요. 그렇다고 집으로 찾아가 저희가 같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고요.(웃음) 오히려 같이 맞거나 폭언을 들을 때가 더 많아요. 이혼소송에서 법적으로 유리해지거든요.”

    이야기 속 고 회장의 모습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정갈하게 슈트를 차려입고 멋있는 역할을 도맡는 경호인들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 더 많았다. 콘서트 현장에서 수백명의 팬들이 몰려와 차에 부딪혀 손가락 신경이 끊어지는가 하면 다리 인대가 파열되는 사건도 있었다. 몸도 몸이지만 여자경호원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고 회장을 몇 번이나 좌절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경호원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등 집사처럼 부리는 몰지각한 의뢰인도 있어요. 저와 비슷한 또래의 건설회사 2세는 자신의 불륜녀를 경호하라는 의뢰도 해왔는데 사실 말이 경호이고 감시인 거죠. 가장 심했던 경우는 돈이 아주 많은 여성VIP였는데 호텔 스위트룸에 묵으면서 매일 남자를 바꿔가며 수영장에서 놀면서 경호원을 밤새 뒤에 세워놓는 거예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당신 돈이 없어도 이렇게 살 수 있나 봅시다!’라고 말하고 철수했어요. 나중에 보니 사기혐의로 구속됐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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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1호 사립탐정 노린다 퍼스트그룹을 운영하고 있는 고 회장은 지난 세월을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살아왔다고 털어놨다.

    “지난 추석 때 집안 어르신이 사고로 돌아가시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개인적인 삶을 너무 등한시하고 살아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에요. 회사의 매출액 신장도 중요하지만 결혼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공익분야에도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특히 그녀는 멘토로서 예비 청년창업가를 위해 다양한 강연과 지원활동에도 열성이다. 전국청년경제인연합회 회장을 역임하며 지속적으로 많은 청년들과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시행착오도 많이 겪으며 사업을 하다보니 저랑 비슷한 상황에 놓인 청년창업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생각이 많아요. 불합리한 일들을 겪다보니 공익적인 분야에도 관심이 많아졌어요. 특히 여성창업자를 돕기 위해 적극적으로 여러 활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회사 경영이 안정권에 접어들며 해외진출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고 회장은 10년 전 국내 상황과 유사하게 경호분야가 커지고 있는 중국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최근 그녀가 가장 역점을 두고 준비하고 있는 분야는 바로 사설탐정(민간조사원)이다. 아직 국내에는 제도가 도입되지 않았지만 영국이나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수많은 사립탐정(PI:Private Investigator)이 법의 테두리 내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영화 속 셜록홈즈처럼 경찰이 수사 도중 증거 불충분에 부닥치거나 수사 의지가 부족해 미제로 놔둔 사건에서 ‘해결사’ 역할을 한다.

    “외국의 여러 사설탐정들은 변호사 업무를 조력하거나 국민 모두에게 피해를 안겨주는 보험금 부당청구 조사, 도피자 및 국외 은닉재산 추적, 유괴자나 실종자 소재 파악 등 수사기관에 협력하는 공익적 차원으로 종사하고 있습니다. 국내에도 이러한 활동을 수행할 사립탐정이 점점 필요한 환경으로 가고 있습니다.”

    고 회장의 말과 같이 국내 역시 개인이나 사회적 권리 구제에 필요한 사실관계를 파악해줄 민간 차원의 정보·조사 서비스업의 필요하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사설탐정을 신(新)직업으로 공인·육성하겠다는 계획을 지난 3월 국무회의에 보고하고 입법을 추진 중이다.

    마지막으로 고 회장은 관련 시장에 진출해 공적인 영역에 활동하는 사립탐정이 되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라고 밝혔다.

    “유병언 추적도 검찰 경찰 쪽에서 커버하기 힘든 영역을 사설탐정이 보완했다면 보다 쉽게 해결됐을 겁니다. 사설탐정 분야를 선점하기 위해 2000년대 초반부터 준비를 마쳤습니다. 향후 일본처럼 민간조사업 제도가 시작되면 여성 1호 사립탐정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박지훈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1호(2014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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