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강 중국국민경제연구소 소장 | 서둘러 구조조정 나선 중국경제 연착륙 단계

    입력 : 2014.10.31 18: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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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경제가 중대한 변곡점을 맞고 있다. 지난 30년간 중국의 고도성장을 이끌어온 성장 동력이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중국 사회 안정을 위한 경제성장률 마지노선인 연 7% 사수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한다. 중국 경제에 대한 성장 전망치가 날로 낮아지고 있는 가운데 시진핑 주석 취임 후 중국 정부는 ‘신성장 전략’을 통해 경제 활성화에 시동을 걸었다. 내수 중심 경제로의 변화, 공기업 민영화 등 각종 개혁 정책을 통해 중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엔진을 찾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중국 지방자치단체와 기업들의 과잉 부채, 제조업 경쟁력 하락, 지나친 관료주의 문화의 폐해 등 구조적인 문제로 추락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지난 10월 14~16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15회 세계지식포럼’도 이 같은 중국 경제 전망을 주요 이슈 중 한 가지로 잡았다. 그래서 중국 경제 상황을 그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판강 중국국민경제연구소(NERI) 소장을 초청해 현지 사정과 전망을 자세히 인터뷰했다.



    먼저 판 소장은 현재 중국 경기 부진의 원인을 설명했다. 그는 “최근 두 차례 경기 과열을 경험한 중국 정부가 버블을 없애려고 긴축책을 썼기 때문”이라며 “전환기에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중국 경기 하강세가 완연하다고 분석한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올해 3분기 중국 경제성장률이 7.2%일 것으로 분석했다. 전 분기의 7.5%에서 위축된 데다 지난 2009년 1분기 이후 최악의 수치다. 특히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최근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여러 지표들도 경기 둔화세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판 소장이 밝힌 두 차례 과열 중 첫 번째는 2004~2007년이다. 당시 내수 부양 효과와 미국 부동산 호황 등 외부 영향으로 경기 과열 양상이 전개됐다. 두 번째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려 부양책을 썼던 2009~2010년이다. 이 두 시기를 거치며 기업들의 과잉 투자, 지방자치단체의 과잉 지출(과잉 차입) 부작용이 나타났다.

    판 소장은 이를 두고 “여러 가지 부양책들이 중국 경제의 ‘판도라 상자’를 열었던 것”이라고 표현하며 “그 폐해가 현재의 경기 부진을 초래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중국 중앙정부가 부양책을 추진하자 지방자치단체들은 재정 지출을 경쟁적으로 늘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재원이 모자랐고 차입을 통해 새로운 자금을 조달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부채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파산 위기를 맞는 지방자치단체가 나타났다.

    같은 시기 기업들도 부양책을 믿고 설비 투자에 적극 나섰다. 이 때문에 생산설비는 큰 폭으로 늘었지만 수요 증가세는 생각만큼 빠르지 않았다. 결국 기업들은 과잉 설비투자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부양책 덕분에 ‘판도라 상자’가 열리면서 시중에 자금이 넘쳐나자 지방자치단체와 기업들이 흥청망청 돈을 써대면서 중국 경제에 버블이 만들어졌고, 그 버블이 터지면서 현재의 경기 둔화세가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판 소장은 “특히 철강산업 등이 과잉 설비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하지만 중국 정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4년째 긴축책을 쓰고 있어 앞으로는 나아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중국경제는 연착륙 중 올해 성장률 7.3~7.4% 예상 중국 경제가 경착륙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판 소장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세계 각국 중 경기 부양책을 가장 먼저 종결한 나라가 중국”이라며 “두 번째 과열 기간에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중국 정부가 2010년부터 부양책을 종결하고 4년째 긴축정책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버블이 있었지만 너무 커지지는 않았다. 이정도 버블은 경착륙을 꼭 겪어야만 하는 수준은 아니다”라며 “지난 4년간 연착륙 과정이 계속되고 있다. 이로 인해 경제성장률은 약간 둔화되면서 안정화되고 있다. 과잉 설비 문제의 경우 철강을 제외한 자동차, 기계 등 주요 산업은 이미 극복했다”고 주장했다.

    판 소장은 경제 속도 조절을 어느 정도 끝낸 중국 정부가 앞으로는 엄격한 규제 정책을 완화시킬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2010년 이후 중국 정부가 규제 정책을 너무 엄격하게 추진했다”며 “이를 통해 과열 문제를 해소시키려 했기 때문인데 이제는 조금씩 완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표적으로 중국 시중은행들의 지급준비율은 그동안 20%대로 높게 규제됐는데 지난해 소폭 완화됐다고 판 소장은 설명했다.

    그는 또 “현재 중국 정부는 추가적인 부양책을 원하지 않는 상태”라며 “이미 경제가 연착륙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그동안의 긴축책을 풀어 다시 정상으로 돌리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상 상태로 돌아가면 중국 경제성장률이 연 7%대를 꾸준히 기록할 것”이라며 “중국 경제성장률은 올해 7.3~7.4%를 기록한 뒤 내년에도 7%대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과거처럼 두 자릿수에 이르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판 소장은 “사실 두 자릿수 성장률이 비정상적”이라며 “이로 인해 심각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등 폐해도 경험했다. 7~8%가 중국에게 정상적인 성장률”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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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사회 구조개혁 성공해야 안정적 성장 실현 중국 경제의 잠재력이 엄청나다는 점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하지만 경제·사회적으로 불합리한 부분을 개혁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안정적 성장을 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최근의 중국 경기 둔화 배경에 수십 년째 누적된 구조적 원인이 있기 때문에 연착륙을 쉽게 낙관할 수 없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판 소장과 함께 이번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했던 쉬청강 홍콩대 교수는 “구조적 문제의 핵심은 민간 부문의 성장 부진”이라며 “특히 불합리한 제도적 문제들이 민간 부문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꼬집었다.

    쉬 교수는 제도적 문제로 △민간 재산권 보호에 미흡한 사법제도 △사법권의 독립성 부재 △민간 부문을 차별하는 금융시스템 △정부의 민간 부문 차별 등 4가지로 특정 지었다. 그는 특히 “중국의 민간기업은 정부와 친해야 법적 리스크를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국유기업이 가지고 있는 진입장벽과 독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만약 중국 정부가 제도적 문제를 해소하지 않고 오류를 범한다면 경제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며 “제도적 개혁을 철저히 이뤄내면 중국은 앞으로 수십 년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는 개혁안 실행을 크게 낙관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의견에 대해 판 소장은 “민간기업이 어렵다고 했는데 요즘 잘나가는 화웨이 등은 어떻게 설명한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며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에 쉬 교수는 “2002년부터 공산당 헌장이 개정되면서 당에 가입한 민간기업은 자본 보조 등의 혜택을 받았다”며 “당과 좋은 관계를 형성한 민간기업은 성과가 좋다”고 받아쳤다.

    판 소장은 중국에 제도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는 “물론 중국 경제에 여전히 많은 문제가 있기 때문에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 중국 지도부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다”며 “그래서 부패 척결 등에 적극 나섰고 지금껏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 내 사법부의 독립이 추진될 예정이어서 민간 부문에 긍정적 영향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는 “10월 말 열리는 중국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에서 사법권 이슈를 다룰 것”이라며 “사법부의 독립성 문제가 논의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일단 중앙정부 차원은 아니고 지방자치단체 차원일 것으로 보이지만 이것만 이뤄져도 분명한 개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사법권 외에 토지 개혁도 추진되고 있다”며 “토지 소유권 거래 등이 허용되면 중국의 도시화가 더 탄력을 받을 것이다. 아울러 농업 부문의 생산 규모와 생산성도 향상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민간 부문을 배려하는 정책적 개선도 이미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판 소장은 “최근 알리바바 등이 성공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정부가 민간 부문에 관심을 높이고 있다”며 “총리가 주재하는 정책협의회가 있다. 과거에는 국유기업 최고경영자(CEO)만 초청했는데 이제는 매번 두 명의 민간 기업가를 초청해 민간 부문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 국유기업 개혁도 추진하고 있다”며 “어쨌든 변화가 분명히 진행되고 있다. 현 중국 정부는 ‘개혁 정부’를 지향했고 이를 반드시 이루겠다고 약속했다”고 덧붙였다.

    판강 소장 판강 중국국민경제연구소(NERI) 소장은 중국 최초 경제 싱크탱크인 중국개혁재단(CASS) 의장, 베이징대 경제학 교수로 활약하고 있다.

    1988년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오랜 기간 연구활동을 해 서방 세계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1995년 스위스 다보스포럼의 ‘차세대 지도자’, 2010년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의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100명의 지식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중국 정부 부처와 세계은행(WB) 등 여러 국제기구의 조언자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중국 경제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중국 내 3대 경제석학으로 꼽히는 판 소장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중국 인민은행 통화정책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그는 시장경제가 성숙될 때까지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중국 내 수요를 촉진시키기 위해 재정을 확장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오재현 매일경제 경제경영연구소 기자 사진 김재훈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0호(2014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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