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민화 카이스트 초빙교수 | 창조경제 막는 금융위·공정위 개혁해야

    입력 : 2014.10.31 18: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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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화. 누가 뭐래도 한국 벤처의 대부다. 한국 최초의 벤처기업 메디슨을 창업했고 한때 40여 기업을 거느리며 벤처연방제까지 내세웠던 그다. 창업한 지 얼마 안돼 국내 진단기 시장에서 삼성과 GE의 합작사 삼성GE를 눌렀을 뿐 아니라 오스트리아 크레츠테크닉을 인수한 뒤 세계 최초로 3차원 초음파 진단기를 개발해 세계 의료기기 시장의 기린아로 떠올랐다. 그런데 세계적 기업으로 커가던 회사는 IT버블이 꺼질 때 영업이익을 내는 상황에서 부도처리 됐다. 돈줄이 말라 크레츠테크닉은 GE에 넘겼고 메디슨은 삼성의 품으로 들어갔으니 인연치고는 대단하다. 부도 이후 그는 집까지 넘겨주고 월세로 살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한국 벤처의 거목이다. 직전 정부는 그에게 차관급 기업호민관 자리를 주었고 카이스트(KAIST)는 벤처발전에 기여한 공을 기려 ‘이민화홀’을 만들고 초빙교수 자리까지 줬다.

    이 교수는 지금도 많은 직함을 갖고 있다. 유라시안 네트워크 이사장, 창조경제연구회 회장, 한국디지털병원수출조합 이사장 등…. 벤처환경 개선과 한국의 미래를 위해 뛰는 그를 만나기 위해 도곡동 카이스트 소프트웨어 연구센터로 찾아갔다. 이 교수는 남들이 출근하기 훨씬 전 연구실에 나와 직접 커피를 뽑아주며 기자를 맞았다.



    먼저 기업가였던 그가 유라시안네트워크를 열어 역사인문학 공개강좌를 시작한 게 궁금했다.

    “사실 유라시안네트워크는 창조경제 연구보다 먼저 시작했으나 계기는 같다. 한국이 새로운 계기를 개척해야 한다고 할 때 경제적 관점에서 본 게 창조경제이고 인문사회학적 관점에서 한 게 유라시안네트워크다. 남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새로운 길을 가는 방법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한국은 도전하고 개척해야 하기 때문이다.”

    2008년 유라시안네트워크를 사단법인으로 발족해 꾸준히 활동을 해왔으나 다만 강연회만 이번에 새로 시작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유라시안 대륙 사람들을 네트워크로 엮어 연결망을 갖추자는 것이다. 여기에 뜻있는 분들이 있고 이제 때가 무르익은 듯하다. 이것은 창조경제와 맥락이 같다. 창조경제는 기술만으로는 안 된다. 남들이 안하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려면 인문사회학적 가치가 들어올 수밖에 없다. 스티브 잡스가 얘기했듯이 리버럴 아트(liberal art)가 결합돼야 한다. 그렇지만 서양철학이나 중국철학 이런 걸로는 안 된다. 이를 대체할 유라시안 인문학이 필요하다.”

    옛날 것을 바탕으로 미래를 개척하려면 시공간의 지평과 역사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다른 나라들은 이미 상당히 연구가 진전됐는데 한국만 제일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터키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은 우리와 이웃사촌이라고 인식한다. 그들은 문화적 동질성에 대해 생각이 많다. 우즈베키스탄의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나 돈황의 벽화들을 보면 교역 근거가 나온다. 그런 연결망을 갖추면 엄청난 자산이 된다.”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 교수는 이것은 경제처럼 바로 효과가 나타나는 게 아니고 연결망 자체에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가들이 남들보다 가까워지려면 문화와 역사 철학 천지인을 공유하면 된다. 이 연결망이 가까워지면 네트워크가 힘을 발휘하게 된다. 예를 들어 카자흐스탄에도 선녀와 나무꾼 전설이 있고 3조선이 일치된다. 그런 네트워크가 연결되면 다른 일하기가 좋아진다.”

    글로벌 시대지만 끼리끼리 친해 그게 왜 필요한지는 에이펙(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에만 나가 봐도 알 수 있다고 했다. “나라마다 인너서클이 있어 끼리끼리 모인다. 중국과 홍콩, 싱가포르가 어울리고 앵글로색슨은 또 그들끼리 어울리며 아세안도 따로 모인다. 한국만 외톨이다. 그러니 몽골이나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터키, 헝가리, 멕시코 등과 네트워크를 만들어 교류하며 서로 도우면 우리도 가까워질 수 있다.”

    이 교수는 유라시안 인문학이 그 연결망을 갖추는 뿌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고대설화나 언어, 몽고반점, 철학 등의 공통점을 가졌다. 지금 멕시코와 교류가 없지만 그들도 갓 쓰고 도포 입고 가채머리 하는 게 우리와 같다. 손성태 배재대 교수는 멕시코의 어원은 고구려의 터를 뜻한다고 한다. 우리 유전자가 남아 있으니 남이 아니라 이웃사촌으로 친해질 수 있다. 이 동질성이 중요하다. 이스라엘은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까지 한 민족으로 받아들이지 않나.”

    이렇게 연결망을 구축하는 것 자체가 미래의 자산이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 해석의 바탕이 유라시안 인문학이란 것이다. 이 교수는 그렇다고 이것이 서양과 대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보다는 이런 연구를 통해 “세계가 더 풍부해지고 암묵지가 형식지가 되어 문화자산이 된다”는 것이다.

    역사 사대주의 심각 그렇기에 이렇게 큰 자산에 무관심한 우리 학자나 학생들을 그는 개탄했다.

    “네트워크가 잘되려면 먼저 우리 정체성을 정립해야 한다. 무분별한 사대주의나 국수주의로는 안 된다. 그런데 우리는 균형은 없고 사대주의와 국수주의만 있다. 강단사학자는 사대적이라 중국 일본의 사관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다. 재야는 그 반작용으로 우리 역사의 뿌리를 파다가 국수주의에 빠져버렸다. 그런 게 아니다. 우리 선조들은 힘을 얻기 위해 (이웃과) 교류하고 협력하며 살아왔다. 중국이나 일본식 사대사관도 안 되지만 국수주의도 안 된다. 미래지향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데 힘이 안 된다.”

    그러면서 이제라도 진정한 역사 찾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한글날 페이스북에 정인지의 훈민정음 해례본에 대해 올렸다. 이를 알아야 한글의 철학적 깊이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정인지는 해례본에서 자음은 상극의 오행이요 모음은 상생의 오행이라고 했다. 이를 통해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정치적 대립이나 양극화나 모두 순환의 문제다. 해례본에는 순환을 이끄는 철학적 뒷받침이 있다.”

    그러면서 실제로 존재하는 우리 문명과 역사마저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학생들에게 홍산문명에 대해 물었더니 아는 학생이 거의 없다. 진짜 웅녀가 마늘 먹고 사람이 됐다고 믿는 건가? 홍산과 하가점에선 이미 문명의 자취가 발견됐다. 하가점 하층문화는 기원전 2400년 정도로 단군시대와 일치한다. 그런데도 동북아역사재단은 홍산문명은 우리것이 아니라고 잘라버렸다. 개탄스런 사대주의다. 그뿐인가. 지방 박물관에 가보면 한국 역사가 BC108년에 시작됐다고들 적어 놓았다. 한사군이 우리 문화의 시작이라고 한다. 일본의 조작 그대로다. 이런 역사관으로는 일류 국가는 불가능하다.”

    일류국가 되려면 인문사회학 받쳐줘야 그러면서 1만원 뒷면을 보라고 했다. 혼천의의 배경으로 깔린 천상열차분야지도에 대해 이 교수는 지금까지 알려진 최고의 천문도라며 고구려 시대에 이 정도 정교한 천문도가 있었다는 것은 “문화가 있고 사회적 니즈가 있고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1400여 별자리를 정확히 관측했다는 것은 엄청난 관측기술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

    이처럼 한국의 문화 역사 철학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유라시안 국가와 상호 대등한 교류를 하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가 이처럼 유라시안 인문학을 강조하는 것은 실용학문인 경영기술로는 2만달러까지는 갈 수 있으나 그걸 넘으려면 인문사회학이 받쳐줘야 한다는 믿음에서다.

    “인문사회학의 뒷받침 없이 일류국가는 불가능하다. 새로운 가치가 왜 필요한가를 찾아내는 것은 인문의 문제다. 비용절감은 경영이 하고,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기술이다. 문화와 경영 기술이 합쳐져야 한다. 그동안 정부는 경영과 기술 이 둘만 가동해 국가를 이끌었다. 이게 추격형 경제의 전형이다. 여기에 인문사회가 들어서야 남들이 하지 않은 것을 만들 수 있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 것으로 우리가 기여하지는 못한다. 우리가 논어 맹자나 그리스철학을 아무리 해도 그들을 앞서기는 어렵다. 그들에게 기여하려고 해도 우리의 가치를 이끌어내야 한다. 한국의 인문학을 글로벌화하는 것, 이것이 유라시안 인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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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이 규제의 핵심 화제를 창조경제로 옮겼다. 창조경제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뜻밖에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화두 자체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실천방안에선 엇박자가 많이 나와 안타깝다. 창조경제의 핵심은 벤처창업이다. 창업이 없으면 성장도 없고 일자리도 없다. 그런데 규제가 창조경제를 가로막고 있다. 규제의 대부분은 금융위와 공정위 두 부서 것이다. 특히 금융이 국가의 발목을 잡고 있다. 아프리카 수준이다. 그것도 날이 갈수록 떨어진다.”

    구체적으로 무슨 규제가 그렇게 심한지 물었다

    “아직도 창업자 연대보증을 해야 한다. 창업하면 알거지 되는 거다. 그러니 누가 창업을 하냐. 그게 금융위 소관이다. 클라우드 펀딩도 표류하고 있다. 인재를 끌어올 스톡옵션도 개선이 안 되고 있다. 회계기준을 개선해야 한다. 기재부는 차라리 낫다. 세제는 개선했는데도 회계는 아직 그대로다.”

    그가 이처럼 금융의 문제점을 강조하는 것은 한국 금융제도가 지나치게 상업은행 쪽으로 치우쳤기 때문이다.

    “추격경제에선 상업은행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창조경제는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일을 하는 거다. 그래서 융자로는 안 된다. 일류국가가 되려면 투자시장이 발달해야 한다. 북유럽과 남유럽의 차이가 뭔지 아나. 바로 투자시장 차이다.”

    이 교수는 투자자들이 벤처에 자금을 지원하지 않는 것은 투자자금을 회수할 제도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가장 큰 문제는 회수시장이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코스닥이 최종 회수기관인데 여전히 미비하다. 일류국가는 다양한 회수시장이 존재한다. 미국만 해도 나스닥이 있고 페이턴트 로열티(특허 로열티)에 M&A 등 다양한 회수시장이 존재한다. 한국은 금융당국이 투자자금이 순환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클라우딩 펀딩조차 회수를 못하게 만들었다.”

    최근 공정위가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제재를 강화했다지만 그는 여전히 친(親)대기업 노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대·중소기업 문제는 여전히 숙제다. 공정거래가 안 된다. 외국인이 한국서 사업하려면 첫 번째로 느끼는 게 공정위 문제다. 이 두 부처가 창조경제를 가로막고 있다.”

    힘의 불균형에서 생기는 문제가 여전하다는 것. 그래서 벤처 창업은 아직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사람도 없고 돈도 없고 경험도 없다. 한국선 특히 돈 구하는 게 가장 어렵다.”

    공무원들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감사원 탓도 크다고 했다.

    “정책감사가 문제다. 완전히 소탐대실이다. 작은 잘못 하나 막자고 전체 공무원의 혁신을 막았다.”

    창조경제를 위해선 교육도 혁신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창조경제에선 인재상이 바뀌어야 한다. 추격경제에선 스펙형 인재가 필요했다. 그러나 창조경제에는 발굴형 도전형 인재가 있어야 한다. 따라갈 때는 문제를 알기 때문에 정답만 알면 됐지만 지금은 문제를 모른다. 문제 찾는 게 중요하다. 이 때문에 발굴형 도전형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창조경제연구회는 국가 교육을 창조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차원에서 최근 창조교육을 주제로 공개포럼을 열기도 했다.

    카이스트 창업도 냉랭한 분위기 이처럼 국가 시스템이 벤처창업을 막으면서 한때 한국 벤처의 산실이었던 카이스트의 창업 열기도 식었다고 했다.

    “카이스트는 과거 창업이 많았다. 한국 벤처 창업의 4분의 1 이상을 맡은 적도 있다. 벤처기업협회도 카이스트의 과기회 임원들 주도로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 카이스트의 벤처 창업 비율이 2% 수준에 불과하다. 리더십 문제다. 2006년부터 카이스트를 이끌면서 창업을 저해하는 구시대 교육을 강조했다. 학교를 학과수업 위주로 이끌어 학생들을 학점벌레, 공부벌레로 만들어 창업을 저해했다. 많은 학생들이 자살했고 자유로운 수업 분위기가 사라졌다. 카이스트 발전에 악영향을 미쳤다.”

    이 교수는 창업을 꿈꾸는 개인들이 많아지도록 교육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바꿔야 하고 학교가 기업가 정신 교육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진국은 초중고교의 기업가 정신 교육을 의무화했다. 한국도 기업가 정신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 그 교육을 한 그룹과 하지 않은 그룹의 창업은 3배나 차이가 난다. 또 교육 받은 그룹은 창업을 하지 않더라도 연봉이 27%나 많다. 오하이오주립대와 카프만 재단이 13년 동안 추적연구해 얻은 결과다. 스펙 교육에서 기업가 정신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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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패를 인정하는 사회 시스템 필요 창업을 장려하려면 사회시스템도 혁신해야 한다고 했다.

    “투자시장을 열어 실패를 뒷받침해야 한다. 실패는 자산이고 혁신의 기반이다. 실패가 최종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 시스템은 그걸 최종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모두가 공무원 되려고 한다. 공무원에 대한 젊은이들의 기대가 높기 때문이다. 지금 사회 시스템에선 사업하면 신용불량자가 된다. 중소기업에 가면 별 볼일 없고, 대기업 가도 7년 만에 쫓겨난다. 그러니 공무원 되려고 하는 것이다. 대졸자 50만명 중 27만명이 공무원 시험 보는 이상한 나라다. 직업 서열 1위가 공무원이다. 국가 시스템을 그렇게 만들었다. 그 주범이 금융위다.”

    이 교수는 국가 시스템을 그렇게 퇴보시켜 놓고도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며 거기엔 언론 책임도 크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적어도 그 점에선 중국이 우리보다 훨씬 앞섰다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는 미래지향적으로 개방적이고 유연하다. 그들은 (초장기 과제인) 역사나 철학까지도 로드맵을 갖고 움직인다. 역사에 대하여 형편무인지경인 우리와 대조를 이룬다.”

    이민화 교수 중앙고, 서울대, 카이스트 석사 박사. 메디슨 대표, 벤처기업협회 초대회장, 사법개혁추진위원회 위원,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한국대표, 한국기술거래소 이사장, 기업호민관 등 역임. 현 카이스트 초빙교수, 유라시안네트워크 이사장, 한국디지털병원 수출사업협동조합 이사장,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 한국디지털병원 수출사업협동조합 이사장 [정진건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0호(2014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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