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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신영 그룹 회장 | 중견기업 회원사 모두 세계적 전문기업 돼야죠
입력 : 2014.09.02 17: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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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아직은 빌딩도 없고 인원도 조촐하다. 이름에 걸맞은 단체의 토대 만들라고 (회원사들이) 나를 뽑은 것 같다”고 운을 뗐다.
중견기업연합회(이하 중견연)는 1992년 한국경제인동호회로 출범해 1998년에 현재 이름을 갖게 됐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는 동호회 수준이었다고 했다.
“일할 동력이 없었다. 법이고 정책이고 아무것도 없었다. 2011년 7월 개정 ‘산업발전법’에 처음으로 ‘중견기업’ 개념이 들어갔다. 그게 우리의 모태가 됐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2013년 회장에 취임하자마자 법정단체 만들려고 뛰었다고 했다. 남들은 의구심을 보였지만 겁 없이 뛰다보니 진짜로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회원사 모두가 일본의 무라타제작소나 일본전산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전문기업으로 성장해 100년, 200년 이어가게 하고 싶다고 밝혔다.
“우리는 글로벌 전문기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 회원사 중엔 이미 전문기업이 많다. 휴맥스나 서울반도체, 와이지원, 형지, 하림 등 모두 대단한 회사들이다. 그 분야에선 독보적이다. 하림의 김홍국 회장한테 ‘닭 모가지 비틀어 뭐 돼요’라고 농담을 하지만 사실 하림은 우리 회사보다 열 배나 더 크다. 특히 농업 부문에서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회사를 만들었다. 켄터키 프라이드가 유명하지만 양계만큼은 하림이 세계 최고가 아닐까 한다.”
강 회장은 이 대목에서 다시 명함을 꺼내 보여줬다.
“‘히든챔피언’이니 ‘강소기업’이니 하는데 중견연은 영문 이름부터 ‘Association of high potential enterprises of Korea’이다. 글로벌 전문기업으로 가자는 뜻을 담고 있다. 몇 가지 대안을 놓고 회장단이 숙고 끝에 고른 것이다.”
독일 히든챔피언 넘어설 것 그는 회원사들이 대부분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추고 해외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많은 회사들이 삼성, 현대와 거래하지만 사실 세계를 함께 보고 있다. 신영은 금형도 하고 지그도 하는데 용접용 지그만큼은 대한민국 1등이다. 와이지원이나 서울반도체도 세계 최고다. 우리의 목표는 독일 히든챔피언을 넘어서자는 것이다. 수출만이 살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중화학공업 위주로 경제를 육성한 한국에선 중견·중소기업이 삼성전자나 현대차 같은 대기업과 거래하면서 성장하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4년 루프트한자 민항기 빌려 타고 광부들과 함께 독일 가서 지원을 받아왔다. 대만은 중소기업 위주로 갔는데 우리는 중화학공업으로 성공했다. 여기서 대기업과 협력업체가 함께 성장하는 구도가 나온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협력업체는 크지 못했다. 수출 드라이브를 하는 삼성과 현대의 협력업체 중에서 일부가 히든챔피언이 됐고 지금 또 다른 회사들이 크고 있다. 서울반도체만 해도 삼성에 납품하던 회사다. 히든 챔피언 전문가인 독일의 헤르만 지몬 교수는 독일 히든챔피언의 69%가 B2B로 성장했다고 한다.”
겹겹 규제 풀어야 글로벌 시장서 경쟁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 모두 힘을 합쳐 해외로 나가야 하는데 걸림돌이 너무 많다고 했다. 정책이나 법이 너무 낙후돼 있다는 것. 기업 입장에선 타이밍이 중요한데 연구개발이나 자금조달 어느 것 하나 쉽지가 않다고 했다.
“너무나 갈증을 느껴 국회 가서 릴레이 토론회 개최하며 중견기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겨우 그분들의 마음이 돌아서 법을 만들어 우리가 놀 수 있는 마당을 만들어줬다.”
그렇지만 ‘중견기업특별법’ 제정에도 불구하고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제정 등 제도를 갖추기 위해서만도 할 일이 너무나 많다고 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나 화평법 개정 같은 것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이라고 했다.
“관련 법령들이 많고 정비가 시급하다. 2011년 7월 산업발전법에 중견기업이 들어가고 2년 반 지나 작년 12월 26일에야 겨우 국회에서 중견기업특별법을 가결했다. 그것뿐이다. 2년 반 동안 법령 하나밖에 안됐다. 법도 법이지만 조세나 금융쪽 개혁이 더 필요하다.”
법이 안 된다면 시행령으로 가능한 부분이라도 먼저 풀어야 한다는 그는 특히 금융은 환골탈태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만큼 금융지원이 아쉽다는 얘기다.
연구개발이나 인력수급을 위한 세제도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견기업 입장에선 R&D와 인력수급이 정말 중요하다. R&D에서 인력문제가 연결된다. 넥센타이어도 그렇고 서울반도체도 그렇고 중견기업의 52%가 지방에 있다. 이들 모두 R&D 수요가 매우 많다. 그런데 어느 순간 중소기업 졸업하면 갑자기 대기업 취급을 한다. 연구가 계속되고 있는데 중견기업이 됐다고 어느 날 갑자기 지원을 딱 끊는다. 매출 1500억원이라도 여전히 중소기업인데…. ‘피터팬증후군’이니 뭐니 말들은 잘 만드는데 왜 우리가 그런 것까지 신경을 써야 하나.”
그러면서 중국과 인도의 사례를 소개했다.
“얼마 전 모나미의 송하경 대표가 얘기를 잘 해주더라. 그 분이 인도에서 작은 기업 수백 개 갖고 있는 기업인을 만났다고 했다. 인도는 인프라는 발달했는데 규제가 너무 발달해 중견기업이 되면 엄청나다고 했다. 그래서 여러 개의 작은 중소기업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대조적으로 중국은 투자하려고 하면 정부가 엄청난 지원을 한다. 자동차 부품업체들 가보면 기술은 없는데 우리보다 훨씬 좋고 엄청나게 큰 기계들을 잔뜩 깔아놓고 있다. 굳이 무엇을 할지 연구할 필요도 없다. 이런 나라만 봐도 어떻게 해야 할지가 보인다.”
정부와 정치권 학계가 지혜를 모아달라는 것이다. 강 회장은 특히 독일이 한국처럼 상속세를 거뒀다면 지금 같은 경제는 없었을 것이라며 독일 수준의 가업승계 기준을 주문했다.
“독일은 한때 유럽의 병자였는데 이젠 구세주가 됐다. EU GDP의 30% 이상을 독일이 만들어내고 있다. 볼펜 만드는 회사인 파버 카스텔은 8대에 걸쳐 254년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한국의 상속세 규정으로는 이렇게 대를 이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최대주주의 경우 최고세율 50%에 30% 할증까지 감안하면 65%까지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농우바이오의 경우 1200억원이 넘는 상속세를 내야 했다. 어떻게 그 많은 돈을 한 번에 낼 수 있나. 주식을 팔 수 밖에 없다. 경영권이 날아간다. 다행히 농우바이오는 농협이 인수해줘 잘 됐다. 흥농종묘는 몬산토가 인수해 농민들이 씨앗 살 때마다 엄청난 로열티를 내고 있다.”
상속세가 경제에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닌데 국민정서만을 따르다보니 이런 문제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기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해야 산업도 커지고 고용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독일은 정말 잘 한다. 그러니 구태여 다른 연구할 필요 없이 독일이 어떻게 하는지만 보면 된다. 나머지 문제는 사전사후로 관리하면 된다. 독일 히든챔피언은 가업승계 대상 매출액 상한이 50억유로다. 우리 돈 7조원이다. 우리는 1000억에서 3000억으로 늘리고 다시 5000억원으로 늘린 게 불과 몇 년 사이다.”
강 회장은 독일 기업들은 인구 5억명(EU 28개국)의 내수 시장을 갖고 있어 그것의 10분의 1도 안되는 작은 시장에서 노는 한국 기업들에 비해 월등히 유리하다고 했다. 그들과 같은 조건은 아니더라도 불합리한 규제만은 풀어달라는 것이다. 그는 특히 청년들은 물론이고 부모들도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이 크려면 청년들과 함께 부모들의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 이정훈 서울반도체 사장은 판교가 젊은이들에게 일 가르치는 마지노선이라고 한다. 그 밑으로는 내려오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사고로 어떻게 글로벌 시장서 경쟁을 하나. 부모들 머리에 삼성, 현대만 있으니 젊은이들이 대기업에 먼저 원서 내고 떨어지면 우리한테 온다. 세계 여행 많이 하면서 왜 중견기업들 잘 하는 건 안 배우는지 모르겠다.”
강 회장은 특히 삶의 질 면에서 많은 중견기업들이 대기업보다 낫다고 했다.
“지금 대기업에 있던 사람도 우리 회사로 오고 있다. 기업에 있을 때는 잘 나가는 것 같지만 50세가 되면 정리해고를 당해 실업자가 된다. 대조적으로 우리 회사엔 65세 된 중역도 있다.”
진주고, 고려대 경영학과, 미국 조지아 주립대(회계학 석사). 통상교섭본부 자문위원(외교통상부) 글로벌 전문기업 포럼 회장, 현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
늘 새것 추구하는 게 신영의 신(新)패밀리 문화 강호갑 회장은 월급쟁이로 출발해 외환위기 때 부도 중소기업을 인수해 굴지의 회사로 키운 입지전적 인물이다. 당시 종업원 230명 전원의 고용을 승계했는데 2013년 말엔 3100명이 넘었고 매출액은 300억원 규모에서 9000억원대로 30배나 커졌다. 현재 매출의 약 56%를 외국에서 올릴 정도로 국제적 경쟁력도 갖추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모기업인 신영을 비롯해 신원 신호 신정 등 계열사 모두 ‘신’字 돌림이라는 것. 강 회장은 새로울 ‘신(新)’을 쓴다고 했다.
“‘신’이라는 단어의 한자적 의미는 ‘새롭다’이다. 여기에 우리는 ‘신명나다’ 또는 ‘신나다’라는 감성적 의미를 더해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의미에서 ‘신’을 이해하고 실천하려 한다. 법인의 이름뿐 아니라 회사가 추구하는 신(新)패밀리 문화도 마찬가지다. 쉬지 않고 혁신과 변화를 거듭해 100년 기업을 달성하자는 것이다.”
일은 즐겁게 적극적으로 해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그는 매년 지구를 여덟 바퀴 돌 만큼 출장을 다니며 일을 즐긴다. 그렇지만 임직원들의 신명을 북돋우려 때로는 치어리더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임직원들이 나를 어렵게 생각할 수도 있으나, 적어도 등산모임이나 체육대회에선 경영자가 아닌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으로 그들과 함께 한다. 개그콘서트 유행어로 분위기도 이끌고, 애창곡인 ‘베싸메무쵸’를 한 곡 뽑기도 한다.”
그에게 신영의 비전을 물었다.
“1차적으로 ‘100년 기업’을 목표로 잡았다. 초기 신영을 인수할 때부터 품어온 비전이자, 중견기업연합회 회원사들과 함께 가기를 희망하는 비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천년기업’의 초석을 다지고 싶다. 독일에서 254년 기업이 나왔는데 그 이상 가야 하지 않겠나.”
당연히 자동차 부품을 넘어설 생각도 갖고 있다. 신영의 역량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다는 것. 다만 세계 최고의 전문 기업이란 목표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신영은 아주 젊은 기업이라고 했다.
강 회장은 딸만 셋을 두었다고 했다. “늦게 결혼해서 아직 승계를 얘기할 때는 아니다. 요즘은 여자들도 잘 하니 능력이 있으면 할 것이고, 아니면 회사에 능력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 그들이 할 수도 있다.”
[정진건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8호(2014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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