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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프로축구단 첫 사례 심찬구 스포티즌 대표 | 벨기에 축구팀 깜짝 인수… “제2 박지성 육성”
입력 : 2014.09.02 17: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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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즌이 인수한다고 밝힌 벨기에 프로축구단은 1953년에 창단된 AFC 투비즈다. 2008~2009년 벨기에 1부 리그(주필러 리그)에 참가했으며, 현재는 2부 리그에서 활동 중이다. 특히 투비즈는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 선수인 에당 아자르가 유소년 시절을 보낸 유서 깊은 구단으로 알려졌다.
재계와 스포츠업계에서는 벨기에 축구팀을 인수한 스포티즌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2000년 설립 이후 국내 스포츠마케팅 업계에서 독특한 아이디어와 마케팅으로 주목을 받아왔던 스포티즌이 이번 벨기에 축구팀 인수를 통해 성장가도를 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서다.
특히 골프와 동계스포츠에 집중됐던 스포티즌의 포트폴리오 역시 축구로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스포티즌과 심찬구 대표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국 최초로 해외 축구단을 직접 인수하며 스포츠마케팅 업계에 새로운 역사를 쓴 심찬구 스포티즌 대표를 지난 8월 8일 청담동 사옥에서 만나봤다.
5년간의 준비가 드디어 결실을 맺다 “유럽 축구팀 인수는 사실 5년 전부터 기획했던 프로젝트입니다. 당시 설기현 선수가 뛰었던 로얄 안더레흐트 등 벨기에 리그 여러 팀과 스페인, 이탈리아까지 많은 축구팀을 만나 얘기를 나눴습니다. 하지만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역사와 전통을 갖춘 AFC 투비즈를 알게 됐고, 인수계약을 체결하게 됐습니다.”
심찬구 대표는 벨기에 축구팀 투비즈의 인수 과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투비즈를 선택한 것은 클럽 대표님의 경영방침 때문”이라며 “사람을 중요시하는 것이 투비즈의 경영방침이라면 우리와도 앞으로 비전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계약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사실 심 대표의 스포티즌은 연매출 1000억원대의 스포츠마케팅 회사에 불과하다. 회사 매출도 대부분 골프대회에 집중돼 있다. 스포티즌은 지난해까지 두산그룹 방계기업인 이생그룹(회장 박용욱) 주최의 넵스마스터피스 골프대회를 운영해왔다.
이처럼 작은 규모의 스포티즌이 최고의 클럽팀이 모여 있는 유럽 축구팀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하고 있는 스포츠마케팅이란 일은 사실 고객사에 계속 제의를 해야 일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국내 산업계에서 아직까지 스포츠마케팅이란 분야가 생소합니다. 그래도 나름 일찍 사업을 시작해 1등이란 말을 들었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고객이 직접 우리를 찾도록 하는 서비스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 반드시 필요로 하는 마케팅 포인트를 찾다보니 유럽 리그가 눈에 띄었습니다. 또한 이왕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거면 글로벌 프로젝트를 운영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의뢰 규모나 수익 역시 높아질 것으로 분석했죠. 마지막으로 골프에 집중된 포트폴리오를 바꾸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다른 스포츠도 규모를 늘려야 회사가 더욱 성장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이런 고민 끝에 내놓은 결론이 바로 유럽 축구팀 인수였고, 오랜 기간 여러 팀을 만난 결과 투비즈를 인수하기로 결정하게 된 겁니다.”
그가 생각한 고객이 직접 회사를 찾게 하는 서비스 구조는 대체 어떤 것일까. 심 대표는 “벨기에 리그는 유럽 축구의 메인은 아니지만, 상위 리그의 교두보 같은 곳이라고 보면 된다”며 “같은 의미로 유럽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에게 우리는 투비즈를 통해 마케팅 교두보의 역할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투비즈는 2부 리그 팀이지만, 올해 성적이 좋기 때문에 1부 리그 승격이 예상됩니다. 게다가 투비즈는 휘하에 청소년 팀과 유소년 팀까지 운영합니다. 우리는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축구 유망주들을 투비즈로 보내 유럽 리그에 데뷔시킬 계획입니다. 제2의 박지성, 설기현 선수처럼 유럽을 무대로 활동하는 코리안 플레이어를 육성하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물론 유럽에 진출한 한국기업들 역시 공략 대상입니다.”
영플레이어의 유럽 메이저무대 진출은 물론 국내 기업들의 유럽 진출을 위한 마케팅 교두보로서의 역할도 하겠다는 게 심 대표의 계획이다. 특히 그는 “이미 관심을 보이고 있는 기업들이 많다”며 “당장의 결과물보다는 오래가고 믿을 수 있는 파트너를 선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영학도에서 스포츠 사업가로 대변신 한국의 젊은 유망주들을 유럽 리그에 데뷔시키는 것을 통해 국제적인 스포츠마케팅 업체로 거듭나겠다는 심찬구 대표는 사실 비(非)스포츠인 출신이다. 그는 1997년 연세대에서 정치학 석사를 취득한 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국제경영학을 전공하며 학자를 꿈꿨다고 한다. 그러나 1999년 한 일본인 친구의 일을 도와 IT업계에 발을 디디면서 사업가로 변신했다.
“1999년에는 닷컴열풍이 한창일 때였습니다. 과거 일본 교환학생 시절 알던 친구가 국내에서 다국적 IT기업을 한다며 도움을 요청했죠. 처음에는 단순히 도움만 주려고 합류했습니다. 그런데 사업전선에 나서보니 너무나 재미있었습니다. 내가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나오는 피드백과 결과물에 빠져버린 겁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사업을 고민했고, 2000년 스포츠마케팅으로 지금의 스포티즌을 설립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스포츠마케팅 업체를 설립했을까.
그는 “당시에는 IT회사들이 참 많았다”고 말했다. 지금의 다음커뮤니케이션과 네이버 등 대형 IT기업들이 실제 이때부터 시작됐다. 게다가 엔터테인먼트와 바이오 역시 사업아이템으로 고민했지만, 비슷한 이유로 포기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테헤란로는 그야말로 불야성이었습니다. 거리의 사람들에게 활기를 찾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사업 아이템에 대해 더 깊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 결과 내가 즐거워야 일도 재미있을 것이고, 그래야 성공은 물론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스포츠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사업 초기에는 너무나 힘들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에는 스포츠마케팅은 물론이고, 마케팅에 대해서도 모르는 분들이 많던 시기”라고 말했다. 스포츠마케팅 업체를 시작했는데, 주변에서 ‘스포츠센터를 운영하냐’는 오해를 샀을 정도란다. “스포츠마케팅에 대한 개념과 필요성부터 설명하고 회사를 설명해야 했습니다. 지금이야 스포츠마케팅이란 말이 널리 쓰이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개념 자체가 새로운 것처럼 들리던 시기여서, 사업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이뿐 아니다. 선수와 지도자로 양분되는 스포츠계의 폐쇄적인 문화 역시 심 대표의 걸림돌이었다. “대부분의 만남에서 무슨 운동을 했는지 물어보셨죠. 제가 운동을 안 했다고 하면 거부반응을 보이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이런 분들과 친분을 갖기 위해 4~5년은 정말로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지금은 ‘스포티즌’이라고 하면 대부분 아시지만, 초기에는 정말로 왕따 당하는 기분이 들 정도였습니다.”
① AFC Tubize 구단 인수,파트너십 체결식에서 심찬구 대표가 향후 계획에 대한 설명을 하고있다. ② Tubize 위치
“아마 스포티즌을 하지 않았다면 문화나 예술 분야에서 다른 사업을 하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원래 예술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았거든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 바로 ‘퍼플 카우(세스 고딘, 2004)’입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새롭고 유니크한 일이 바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입니다. 비록 주변에서 돈키호테로 볼 수도 있지만, 식상하고 모두에게 외면 받을 수 있는 평범한 것을 하는 것보다 오히려 우리만 할 수 있는 독특한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넵스마스터피스 골프대회 역시 그런 의도에서 출발했습니다.”
실제로 심 대표는 스포티즌 사옥 1층에 ‘살롱 드 에이치(Salon de H)’라는 화랑을 운영하고 있다. 그의 집무실에도 여러 작품들이 자리할 정도로 예술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다.
“스포츠와 예술은 자체만 놓고 보면 연관성이 없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습니다. 국제스포츠행사인 올림픽만 봐도, 이번 런던올림픽의 포스터와 개막행사를 모두 예술가들이 맡아 진행했습니다.”
이어 그는 “골프대회를 진행하면서 기존의 골프대회 포스터와는 다른 예술적인 감성이 강조된 포스터를 최초로 선보였다”고 덧붙였다. 과거 선수들과 그린, 그리고 골프대회 로고와 스폰서 업체들의 이름이 나열된 보고서식 포스터와 달리, 스폰서들의 기획 의도가 반영된 감성적이고 예술적인 포스터를 선보이면서 국내 스포츠행사의 포스터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설명이다.
그는 스포츠마케팅 역시 인문학적인 접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후원을 얼마나 하고, 기업의 로고가 얼마나 자주 보이느냐로 접근하는 것은 스포츠마케팅에서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다.
“국내 스포츠산업의 발전에는 사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노고가 절대적이었습니다. 프로 스포츠 창단에서 소외종목까지 이들 대기업이 아니었으면 대한민국이 스포츠강국이란 말은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단순히 수치로만 스포츠마케팅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업들은 스포츠에 대한 투자를 주저합니다. 막대한 후원과 투자를 했지만, 제대로 된 효과를 얻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Why(왜)’라는 개념을 도입해 접근합니다. 스포츠와 기업이 하나의 공통된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제대로 된 스포츠마케팅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스포츠마케팅은 굉장히 전략적이고, 인문학적 지식서비스입니다. 스포츠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감동과 공감에서 나오는 가치를 사는 것이 바로 스포츠마케팅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 국내 최초의 유럽 축구단 인수로 업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은 심찬구 대표는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수계약에도 5년이란 시간과 많은 공을 들였지만, 투비즈와 스포티즌이 서로 윈-윈(Win-Win)하기 위해서는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중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오랜 기간 준비했고, 치밀한 전략을 세웠지만, 그래도 부족한 게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한국에서 최초이고, 유럽에서도 이런 사례가 많지 않기 때문이죠. 정부와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이번 스포티즌의 행보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스포츠산업 육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대한 방법론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국내 스포츠마케팅 1세대로 업계의 리더 역할을 해왔던 심찬구 스포티즌 대표. 유럽 벨기에 축구팀 AFC투비즈 인수로 사업 인생의 후반전을 연 그가 얼마나 멋진 플레이를 보여줄지 기대된다.
심찬구 대표 1970년생으로 영동고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미국 캘리 포니아대학원 국제경영학을 전공했다. 2000년 스포츠마케팅 전문기업인 ‘스포티즌’을 설립했으며, 화랑 ‘살롱 드 에이치’를 같이 운영하고 있다.
[서종열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8호(2014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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